치유의 글쓰기 28ㅡ 진실을 마주할 힘 (지호이야기 7) (사소)
식사는 하지 않고 지호는 연신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후, 나중 막판에야 이름 없는 의대에 붙었지만 음식점을 하던 집이 그동안 코로나를 겪으면서 망해버려서 등록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했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일 정도로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서 반대하는 공부를 너무 오래 해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기로 했고 전액 장학금을 주는 조건인 대학을 가야 해서 결국에는 그마져 포기했다고 했다. 그 후 공부도 알바를 하느라 제대로 할 수 없다 했다.
그녀는 다른 것도 아닌 돈 때문에 훨훨 날지 못하는 지호의 이어지는 비극이 안타까웠다. 그럴 때 왜 선생님을 찾아오지 않았느냐? 등록금 정도는 급한 대로 댈 수 있는데 그 힘든 일을 왜 말하지 못했냐고 연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그녀는 지호가 왜 그토록 그렇게까지 의대를 가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본인은 꼭 응급실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떤 결연한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지호가 의대를 가든 안 가든 여전히 사랑하는 제자라는 걸 잊지 마라고, 과거 일은 잊고, 하고픈 공부에 몰두하라고 했다. 그리고 젊은이가 돈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옳지못하니 이제부터 지원을 해줄 테니 딴 생각 말라고 했다.
그리고 지호의 일을 혼자만 아는 비밀에 부쳤다. 학원 대학 합격생 명단에 넣거나 홍보한 적은 없었지만, 가짜 의대생으로서 알바를 했었다는 걸 누구라도 알게 되면 뉴스에 나올 일이었다. 촘촘히 거미줄처럼 얽혀진 학부형들이나 지역에서 알면 학원 이미지가 단번에 실추될 게 뻔했다. 그 후 학원에서 의대 얘기는 누구도 묻지도 꺼내지도 않게 했다. 하지만 학원에서 다시 삼수생으로 알바를 하게 해 주면 지호 자존심도 살릴 수 있고, 혼자 공부하는 외로움도 씻을 수 있겠다 싶었다.
수능이 다시 가까이 오고 있었다. 수리 논술로 지원하는 지호는 본인 공부도 하고 학원 프로그램도 열심히 했다. 그 모습이 기특해 가끔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데 한 번은 먹더니 이후로는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녀는 공짜로 받지 않고 싶어 하는 지호가 안타까운 한편 대견도 했다. 다시 수능날이 왔다. 지호는 수능시간이 끝나자마자 덕분에 시험을 잘 치렀다는 전화를 했다. 그리고 수능 점수가 나오는 날, 그녀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수능 성적표 사진을 찍어서 톡으로 보내왔다. 모두 1등급이었고 생 1만 2등급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의대에 갈 수 있을 정도로 표점도 높았다.
'그런데 왜 성적표 사진을 보내줬을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는 의문이 들었고, 경력이 많은 컨설턴트에게 성적표 사진을 보여주니 조작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적혀있던 표점과 원점수의 순서가 진짜 수능 성적달랐는 달랐다. 의심하지 않고 보면 감쪽같을 일이었다.
'도데체 지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그녀는 지호 어머니께 드리고 싶지 않은 전화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은 그녀가 듣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얘길 하셨다. 지호의 집은 코로나로 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식당을 하고 계셨다. 어머님은 알코올 중독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간 공부를 한다며 지호는 매달 한 달에 300만 원 정도를 가져가 흥청 망청 써왔다고 하셨다.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다. 지호가 학원에서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고 사흘 정도 안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를 여쭈니, 어울리는 친구들과 2박 3일 놀러를 다녀왔다고 했다. 절박한 수험생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게 도무지 무슨 일인지 숨을 쉴 수 없었다. 사실을 말하시는 어머니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지, 그녀는 들으면서 호흡도 소리도 신음 소리도 죽여야 했다. 어머니는 지호랑 어릴 때 한 동네에서 자란 여자 친구 얘기를 하셨다. 같이 재수를 하다가 여자 친구가 먼저 경북에 있는 의대에 붙었는데, 그곳은 지호의 고향이기도 해서 그쪽 건축학과에 4년 전액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한 학기를 다니더니 반수를 하겠다며 휴학을 했다고 한다. 몇 해 전 지호가 그녀를 찾아와서 힘을 얻기 위해 점심을 사 달라할 때가 바로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어머니는 집안이 많이 부유한 의대생 여자 친구가 옷도 다 사 줄 정도로 지호에게 정말 잘하는데, 모두가 지호한테 그렇게 잘해주는데 왜 그렇까지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셨다.
물론 나중에도 이름 없는 의대에 합격한 적도 없었다. 그 모든 게 완벽한 거짓말이었다. 지호가 같은 날 성적표 사진을 어머님께도 보냈는데, 학교 선생님인 외숙모가 받아보고 아무래도 이상하다 해서 안 그래도 원장 샘께 전화를 해보려던 참이었다고 하셨다.
거짓말치곤 너무 지능적이었고 정교했다. 씁쓸함으로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전화를 끊고 학원에서 알바중인 지호에게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지호는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될지 그녀는 생각이 필요했다.
ㅡㅡㅡ 계속 ㅡㅡㅡ
첫댓글 가슴이 아프네요.
휴! 누군가의 아픈 가슴만큼을 모아 제대로갈 수 있는 일이라면...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