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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 이신 장인어른의 생신상을 집에서 차려드리기로 했다. 매년 시골로 내려가 해드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우리 집으로 모시고 싶었다. 몇 번이나 더 생신상을 받으실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더구나 얼마 전 미국에 계시는 고모부가 93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것도 장인어른을 모셔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살아있다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가 백지장 한 장도 안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엔 간격도 없다. 늘 붙어있고 어쩌면 서로 하나일지도 모른다.
막내처남이 아버지를 모시고 오겠다고 해서 그러라 했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아이들은 말고 어른들만 모이기로 했다. 그것만도 6남매이니 부부로 하면 열둘이다. 그렇게 모처럼 잔치다.
생일상에는 여러 가지 기원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수(壽)를 누리라는 뜻이 담겨있고 좋은 일만 있으라는 바람도 담겨있다. 장인어른 말씀이 당신께선 참 복이 많다고 하신다. 이 나이가 되어도 앞서 보낸 자식도 하나 없으니 감사하고 수년 전에 장모님을 먼저 보내시긴 했지만 결혼한 여섯 자녀가 모두 일가를 이루며 하나 또는 둘씩 자식들도 낳았고 다들 70 전후인데도 모두 부부가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구 하나 먼저 죽거나 이혼을 하거나 특별히 가정에 어려움없는 평안함으로 살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이런 가정이 얼마나 있겠냐며 고맙다 하시지만 이 연세토록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자식들이 감사할 일이다. 거기다 나만 해도 손녀가 다섯이니 장인어른으로서는 증손인데 6남매에서 손주가 열하나 증손주가 열넷이나 되니 자손 복도 많으신 셈이다.
삶엔 희로애락이 상존한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질감도 무게도 달라진다. 장인어른은 6.25 참전용사로 기적적 생환을 하셨고 평생 농사로만 사신 어른이신데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신다. 아침 드시고 성경을 세 장 읽고 텃밭이나 집안 여기저기 손볼 것 없나 보신 후 점심을 드신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게이트볼장으로 가서 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돌아오셔서는 또 성경을 읽거나 책을 보신다. 내가 갈 때마다 몇 권씩 책을 가져다드리는데 그때마다 늘 다 읽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내가 건강해야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이라 열심히 운동한다.”고 하신다.
나는 부모님 생신상 한 번도 못 차려드렸다. 조실부모한 나를 키워주신 외조부모님께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생일상 하면 내겐 한 같은 설움이 나도 모르게 일어난다. 오래 전이긴 하지만 아내의 전화를 듣는데 언니랑 동생이랑 어머니 생신에 언제 어떻게 갈 거냐고 의논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듣는 순간 괜히 심통이 났다. 결혼 후 1년에 두 번씩 그렇게도 많이 부모님 생신에 가면서도 단 한 번도 그럴 수 없는 내 마음은 생각지도 헤아려 주지도 않아서였다. 부부라면 한 번이라도 그런 남편의 속마음을 헤아려 줄 수도 있을 법한데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인지 그런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아 내색은 안 했지만 많이 서운 했었다. 그런 서운함은 지금에도 여전하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어찌해 볼 수도 없잖은가. 대신 내 생일 때마다 딸과 아들 그리고 다섯 손녀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고 있지 않은가. 몇 년 전엔 나도 칠순이라고 생일상을 받았었고 아내도 작년에 칠순 생일상을 받았다.
상(床)은 정성이고 사랑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차려 올리는 상이건 부모가 자식에게 차려주는 상이건 하나 같이 온 마음을 다한다. 상을 차리는 마음이 얼마나 사랑과 정성이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만 그런 상차림 문화도 사라지는 시대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내년엔 백 세시니 시골로 내려가서 우리 부부가 먼저 나서서 멋진 생신상을 차리자 해야겠다. 그리고 이후 몇 번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가시는 날까지 우리 부부가 생신상을 다 차려드리고 싶다. 내 부모님 그리고 외조부모님 몫까지 더해. 하지만 다른 자식들도 있는데 그 또한 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