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호 강원도 최고 이발사 자격증 보유의 자긍심>- 차0철(남, 78, 고려이발소, 2021.3.23.)
가게는 아담하게 잘 지어져 있었다. 어디든 걸려 있는 자격증, 표창장 그리고 커다란 거울과 이발의자 등 흔한 이발소의 모습이다. 다만 거울 위에 올려놓은 많은 인형은 이발소와 어울리지 않는 색다른 풍경이었다.
이발소로 들어서자 마을주민이 이발을 하고 있었다. 익히 안면이 있는 터라 인사를 하고 이발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는 이발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인터뷰 준비를 하였다. 송재익 이장이 미리 연락해 놓아 쉽게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잘 하신다.’고 이 소리를 들을 때가 제일 자부심을 갖고 내가 하고, 그럴 때가 제일 행복하죠.”
이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를 묻자 대답한 말이다. 누구든 칭찬을 받으면 즐겁다. 차완철 씨는 특별히 이발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손님을 대하는 터라, 손님이 만족하면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가졌다. 차0철 씨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그만큼의 노력과 애쓴 인생역전이 있었다.
“야, 너. 이발 배워라. 기술 배우는 게 제일이야. 그래야 밥이라도 먹지.”
그해가 17살이 되던 해다. 막내 누나 친구 중에 미용사가 있었다. 미용사 누나의 권유로 이발을 하게 되었다. 삼시 세끼 밥을 먹기가 어려운 시절 얘기다. 밥을 먹기 위해 이발소로 들어갔다. 그러나 밥은 그냥 먹는 게 아니었다. 얼마나 손님들의 머리를 감았는지, 손톱이 닳아 감자 깎는 숟가락처럼 반달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받은 월급이 단돈 천원이었다. 노력과 애 쓴 결과물로는 너무나 액수가 작았다.
“야, 이걸 받고 이 고생을 하냐!”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때 그 누나가 그랬다.
“조금만 참아라. 기술만 배우면 된다.”
삼 년을 그렇게 꾹 참고 기다리며 기술을 익혔다. 그렇다고 주인이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어깨 너머로 익혀야 했다. 참으로 힘든 기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누나이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 춘천에 시험을 보러 갔다. 스무 살 때였다. 실기시험, 이론시험, 면접시험을 모두 봤다. 차완철 씨가 하도 나이가 어리니 면접관이 몇 살이냐고 물어보았다. 시험을 본 후 한 달 지나 합격통지서가 집으로 왔다. 횡성군에서는 첫 이용사면허증을 받았다. 강원도지사면허 1001호였다. 1002호는 삼척에 있는 이용사 분이었다.
그 후 우천에 와서 동업으로 이발소를 차렸다. 동업을 하시던 분이 ‘고려 이발관’으로 하자고 해서 간판을 달았다. 동업을 하다가 1976년도에 독립했다. 벌써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따로 가훈은 없지만 늘 마음속에 새긴 문장이 있다.
“그냥 성실하게 직업에 충실하면 된다.”
이 문장은 힘들 때마다 손님들 대할 때마다 마음으로 다짐을 한다. 다행히 시골인심이 좋고 모두 동네사람들이라 큰 탈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까다로운 손님은 있다. 그런 손님을 대하면 사실 성질난다. 그럴 때마다 꾹 참고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더욱 친절하게 대하면 까다로운 손님도 기분 좋게 나간다.
“시대에 맞게 지금 스타일로 배워라.”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났다. 그러다 보니 옛 기술은 이제 새롭게 많이 변했다. 그래서 지금 이발을 배우겠다고 하면 차0철 씨는 시대에 맞춰 변화를 주면서 현대식으로 배우라고 말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게 이용과 미용계통이다. 헤어스타일도 변하고 기술도 변하고 약품이며 도구가 모두 현대식으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60년 이용사를 해 온 차완철 씨는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만둘 때가 된 나이에 새로운 스타일을 따르기는 쉽지 않다.
고려이발관의 손님은 늘 오신 분들이라, 한 분 한 분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손님의 취향에 맞게 이발을 한다. 어쩌다가 휴대폰에서 머리 스타일을 꺼내 보여주면서 그대로 해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 그 스타일이 나오게 한다. 손님이 완전히 맘에 안 들어도 맞춰 드려야 하는 게 이 계통 일이다.
“내가 힘닿는 데까지 하려고요.”
차o철 씨에게 고려이발관은 직장이면서 놀이터이다. 평생을 함께 한 정말 고마운 곳이다. 큰 애가 몰래 뽑아 놓은 인형을 이발소 화장대 위에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부모에게 들키면 혼 날까봐 숨겨둔 것인데 이사할 때 나왔다. 버리려고 하니, 아내가 아이들 꺼라 아깝다고 이발소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고 보니, 이발소는 차완철 씨 혼자의 공간이 아니라, 온 가족의 관심 공간이었다. 차0철 씨가 이발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나이 들어 손 떨려 못하면 그때 그만 두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