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3 주일설교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소서
사도행전 16:1~5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이 말은 극동방송국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한 말입니다. 김장환 목사는 6·25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미군에게 초콜릿을 얻어먹으려다가 한 미군 장교를 만남으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합니다.
김장환 목사의 말처럼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당위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을 말씀해 주십니다.
1차 전도 여행 때에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 전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쫓겨서 이고니온으로 왔고 이고니온에서도 쫓겨나서 루스드라에 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결국 돌에 맞아 거의 죽었는데 다시 깨어난 후 더베로 가서 전도했습니다. 그 후에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을 차례로 방문하며 고난이 와도 믿음에 굳게 서 있으라고 권면한 후에 수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2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진 후에 육로를 통해서 곧장 더베까지 왔고 루스드라-이고니온-안디옥으로 가면서 전에 전도했던 신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했습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일평생 아들처럼 아끼는 제자 디모데를 만났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인데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을 유대인으로 인정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디모데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에서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인이라는 말이 한글 성경에는 현재형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성경에서 과거형으로 되어있고 영어 성경도 모두 wa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디모데의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뜻입니다.
디모데후서 1:5을 보면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니게이고 외할머니는 로이스인데 3대가 모두 순수하고 가식이 없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디모데는 1차 전도 여행 때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믿었는데 2차 전도 여행 때에는 벌써 신실한 제자가 되어있었습니다(16:1). 그러니까 디모데는 바울이 잘 키워 제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가 잘 자라 있는 상태에서 바울을 만난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디모데는 루스드라만이 아니라 이고니온에서도 칭찬받는 훌륭한 청년입니다. 이런 디모데를 볼 때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마가 요한입니다. 불과 얼마 전에 바울은 마가 요한 때문에 바나바와 엄청나게 싸우고 갈라섰습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 마가 요한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청년 디모데를 만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기뻤을까요?
마가 요한은 사실 좋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최후의 만찬 자리를 제공한 여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집에 찾아오셨고 또 그 집에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요한은 선교사로서 바울과 동행하면서 구브로의 마술사 엘루마가 바울의 말 한마디에 맹인이 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러고도 선교를 버리고 도망쳤으니 바울이 요한을 가망 없는 청년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의 디모데는 요한과는 대조적으로 한번 전도해놓고 떠났는데 그새 신실한 제자가 되어있었으니 디모데를 만난 바울은 아주 흡족해서 그를 선교 동역자로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만남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죠. 바울도 좋은 제자를 만났지만 디모데도 평생 아버지처럼 따를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1차 전도 여행 때에 바울은 발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을 말 한마디로 고쳐서 올림포스산의 헤르메스 신이 강림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는데 유대인들이 선동해서 바울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불사신처럼 깨어났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떠날 때는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이 없었는데 바울이 다시 루스드라에 왔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또 디모데의 믿음을 인정해주고 바울의 선교 동역자로 데리고 가겠다니 디모데에게 바울은 정말 복된 만남이었습니다.
김장환 목사는 미군이 자기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 준 덕분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간 것도 바로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노사연은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바램이라고 노래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하지만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은 우연도 아니고 바램도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만나는 운명적 만남이 많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도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그 만남으로 엘리야는 엘리사를 통해 그의 사역을 계속 전개했고 엘리사는 엘리야를 능가하는 사역을 펼쳤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모세와 여호수아 역시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기록은 없고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아말렉과의 전투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아말렉을 물리치라고 한 후에 자신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적인 전쟁을 맡길 수 있는 여호수아, 결국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김장환 목사의 말처럼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저의 평생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소서.”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한 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필요하고 어디서든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주여,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두가 되어라
운명적인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인데 좋은 만남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에게 인간적 차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만남을 원한다고 해서 우리가 좋은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마가 요한 같은 사람은 아무리 애원해도 바울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어려움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인데 남녀 관계에서 계속 구애하면 넘어온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싫다는 사람에게 계속 구애하는 것이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바람직한 방법일까요? 그보다는 오히려 멋진 남자, 멋진 여자가 되는 것이 훌륭한 남편과 아내를 얻는 좋은 방법입니다. 흔히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는데 짚신에게 좋은 짝은 다른 짚신입니다. 짚신이 구두나 운동화를 만나면 오히려 불편하고 불행합니다. 그러므로 구두를 만나려면 자기가 구두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신실한 청년이 되었기에 모세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좋은 젊은이였기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디모데는 신실한 제자이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칭찬받는 젊은이었기에 바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좋은 만남을 위한 준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다음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성숙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1) 영성/ 기도도 많이 하고, 2) 지성/ 좋은 책도 많이 읽어 실력을 쌓고, 3) 성실성/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4) 관계성/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5) 체성/ 자기 건강과 체중 관리도 잘 해서 멋진 사람이 되면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훌륭한 사람에게 발탁될 수 있습니다.
발탁(拔 뺄발, 擢 뽑을탁)이라는 말은 재미있게도 받침을 바꾸어 박탈(剝 벗길박, 奪 빼앗길탈)로 완전히 반대 뜻이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멋진 사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에게 발탁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 나를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좋은 만남의 기회를 얻도록 멋진 사람이 되자는 말을 우리는 “구두가 되자”(짚신이 되지 말고)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옆 사람과 마주 보고 다짐해 봅시다. “구두가 됩시다.”
자신을 죽여라
지금 말씀드린 5가지를 잘 준비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한 마디로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좋은 만남을 가졌지만, 그 둘은 서로 잘 맞는 성격이 아닙니다. 우선 바울은 개성이 뚜렷하고 괄괄합니다. 성격이 급합니다. 바울은 변덕스러운 사람을 싫어하고 소심한 사람을 보면 답답해합니다. 바울은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디모데에게는 위장병이 있었는데 학자들은 성격이 소심한 증거라고 합니다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또, 디모데는 눈물도 많은 사람입니다. 성격이 나약하죠.
(딤후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심지어 디모데는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용기가 부족하죠.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이렇게 소심하고 겁이 많은 디모데는 때로 바울이 무섭고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갈라서면 인생 종칩니다. 바울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두드러진 특징은 한번 선택한 것은 끝까지 밀고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디모데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바울도 자기를 죽여야 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관계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내 맘에 쏙 드는 사람도 없습니다. 내 아내는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세상에서 최고입니다. 그런데 가끔 내 맘에 안 들어요. 저의 세 아들은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그런데 종종 내 맘에 안 들어요. 지금 제 아내와 아들들이 마음으로 소리치고 있습니다. “저도 그래요.”
초보 운전자 중에 “저도 네가 무서워요”라고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저는 가슴에 이렇게 붙이고 다닙니다. “저도 제가 맘에 안 들어요.” 내가 내 맘에 안 드는데 다른 사람이 내 맘에 들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관계는 잘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내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살 수도 없고 인생에 의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각자에게 딱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골칫거리는 사람입니다. 사람 중에서 가장 골칫거리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맘에 들지 않는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 그것이 성화의 정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