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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기적처럼 세 쌍둥이가 태어났다. 딸 하나에 아들 둘. 성격도 외모도 각기 다른 아이들은 정모(40)씨에게 찾아온 세 명의 아기 천사였다. 하지만 갓난아기 세 명을 동시에 돌보려면 홀로 남겨진 아내의 시간은 '지옥'일 터였다. 내년 복직을 준비하는 아내를 위해서 3개월 만이라도 육아휴직을 할 계획이다. 아, 휴직이어도 일은 할 거다. 물론 '공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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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냐고요? 휴직이면 일 하지 말아야지 왜 혼자 물을 흐리냐고요? 제가 왜 돈 안 받고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표에게 잘 보이려고? 놉! 절대 아닙니다. 대표님, 물론 저 휴직 안 하면 안 되냐고 하시죠. 아쉽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가지 말라는 말 절대 안 합니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노동부 신고 들어가면 더 골치아파진다면서요. 제가 휴직을 하고도 '공짜 노동'을 자처하는 이유는 바로 '동료'들 때문입니다.
직원 100명이 조금 넘는 인터넷 도소매업인 저희 회사는 '중소기업'입니다. 저는 직원이 5명도 안 될때 입사해 회사와 함께 성장했고, 현재 팀장 직급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원 대부분은 여성인데요, 남자 직원은 스무명 남짓. 그 중 절반이 팀장급입니다. 저도 그 중 하나죠.
저는 연차 안 쓰기로 유명한 팀장이었습니다. 팀원들이 제발 휴가 가라고 등 떠 밀어야 겨우 며칠 쓰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는 "역대급 휴가 소진율"을 기록중입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세 쌍둥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서 행동발달과 뇌발달 검사를 하고 재활을 받아야 합니다. 아내의 육아를 도와주고 계신 대전 장모님 댁에서 서울 대학병원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다니다보니 3월까지 벌써 연차 5일을 사용했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이다 보니 육아휴직이 절실하지만 당장 휴직계를 낼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저희 회사 남자 직원 절반이 팀장급이라고. 사원이 휴직에 들어가면 인원을 보충하던가 업무를 나누던가 하겠지만 "중소기업에서 팀장의 역할"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새 직원을 뽑는다고 신입이 제 업무를 대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남자 후배들은 장난 식으로 말합니다. "팀장님이 총대를 메 달라"고. 그만큼 중소기업에서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입니다.
제가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미안해서입니다. 결혼-출산 연령이 높아지다 보니 저희도 첫 아이를 낳은 직원들 직급이 모두 '과장'급 이상입니다. 과장이 휴직에 들어가면 과장급의 업무가 사원들에게 분배되겠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베네핏(이익)이 없는데 업무만 많아지는 상황"이 됩니다.
저희는 또 포괄임금제여서 업무가 남으면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렇다보니 직원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육아휴직을 가는 사람이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 말이죠. 휴직을 가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팀원들에게 미안해 하고. 정말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이 육아휴직 때문에 말도 안 하고 어색해지는 걸 실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비혼 또는 딩크 직원들도 불만이 큽니다.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을 건데, 육아휴직 가는 직원들의 업무를 내가 왜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불만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하죠?"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려 휴직을 했는데, 그게 오히려 나의 동료에게는 "피해"가 되는 현실. 최저 출산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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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열렸죠. 위원회에서는 대기업에 비해(13.7명) 중소기업(6.9명)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이 훨씬 적다면서 '근로감독 확대'와 '전담 신고센터 신설'로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실태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했다네요.
하…이건 지금까지 제가 말한 것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그게 아니거든요. 미혼, 비혼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안 가는 거지 사업주 때문에 못 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업주와 직원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 딩크-비혼 직원이 많아진 '현실'을 반영했으면 좋겠어요. 일본처럼, 육아휴직 가는 직원의 업무를 대신하는 직원들의 연봉을 일정 부분 올려주고, 인상분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방식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휴직은 할 겁니다. 아, 물론 일은 할 거에요. 재택으로. 휴직 처리 됐으니까 월급은 안 나오겠지만 '공짜' 노동이라도 제가 할 일은 해야죠. 동료들이 저 때문에 피해 안 보려면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