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의료계에서 말하는 장애와 사회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장애, 장애인복지법에서 말하는 장애, 보험사에서 말하는 장애가 각각 개념과 정의가 다르다.
의료계에서는 각종 질병이나 증후군, 이상 증상 등을 모두 통틀어 장애라고 한다. 수면장애, 결정장애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즉 장애는 치료의 대상이다. 그리고 장애의 모든 주도권은 의료인이 가지고 있다. 즉 의료행위의 치료 대상인 것이다. 의료인이 아니면 생명이나 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고, 건강이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은 의료행위이다. 치료라는 용어가 의료적 행위이므로 장애인계에서는 서비스를 치료라는 말이 아닌 재활이란 말을 사용한다. 언어치료사가 아닌 언어재활사이다.
‘재활’은 중도장애로 인하여 생긴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말하고, ‘가활’이란 선천적이어서 원래부터 없던 기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분리하여 말하기도 한다. 의료계에서도 재활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의료적 패러다임이 아닌 사회적 패러다임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웃음치료가 의료행위인가? 그렇다면 웃음치료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환자인가? 강의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말을 들으면 웃기는 이야기라고 순수하게 웃어야 하는가, 환자취급을 받고 있으니 울어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장애라는 용어는 사람만이 아닌 물건이나 현상에도 적용한다. 전파장애, 교통장애 등 무언인가 원활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막히거나 장벽이 있으면 장애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사회적 제약을 가진 자를 말한다. 대통령으로 정한 15가지 장애유형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사회적 제약을 인정받아야 한다. 장애 유형은 정신적 장애로 발달장애와 정신장애로 나누고 있다.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로 다시 나눈다. 외국에서는 발달기에 장애를 가지게 되면 시각장애라 하더라도 발달장애라고 한다. 학습장애나 정서장애는 국내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신체적 장애는 외부기능장애와 내부기관장애로 나눈다. 외부기능장애는 다시 운동장애와 감각장애로 나눈다. 각국의 장애 출현율을 국제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서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비만도 장애로 인정되며 암환자 등도 장애로 인정된다. 국내에서는 노인성 질환의 경우 뇌졸중은 장애이고, 치매는 장애가 아니다. 몸의 상태는 의료적이며 생물학적인데, 사회적 제약은 사회적이며 생태적 문제이다.
장애는 장애 상태가 진행 중이 아니어야 하고, 고착된 상태라야 한다. 그리고 일시적 장애가 아닌 장기간에 걸친 장애라야 한다. 그리고 장애로 인정받는 것은 각종 서비스권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사회적 제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당장 서비스가 필요한데 진행 중이라 고착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삶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장애를 치료가 끝나고도 남아 있는 질환이란 의미로 폐질인이나 잔질인이라 불렀다. 장애는 손상에서 출발하여 기능저하나 상실이 있으며, 그것으로 사회적 핸디캡이 발생하는데 이 핸디캡을 장애라고 하기도 한다. 유엔에서는 장애를 건강의 문제로 보고 ICF 건강분류체계에서 다루고 있으며 여기에는 신체적, 정신적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환경과 개인적 특성과 취향까지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감각장애 중에는 오감 중 청각이나 시각 상실만이 장애로 인정된다. 통증장애는 감각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과민반응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애판정기준에 통증으로 인한 것은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통증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워서, 아니면 꾀병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근이양증으로 인한 통증이 있어 휠체어에 앉아 10년이 넘도록 생활을 하여 왔는데, 당연히 장애로 인정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통증으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지 절단도 아니고, 관절이상도 아니니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타지체기능장애가 아니냐고 항변하였으나 기타지체기능장애는 척수장애와 근육마비, 소아마비 등 신경절단과 마비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증장애는 만성적 통증이 심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사회적 제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통증이 있지만 기능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증이 인정되면 장애 등급을 상향하기 위해 통증이 있다고 말하면 그것을 증명하기도 어렵고, 중증장애인 수가 늘어나 정부의 복지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소수 장애인은 장애인 가운데에서도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 시청각 중복장애인에게 의사소통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장애인계에서 있었는데, 중복 장애인이니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한 시급한 문제라고 정부가 인식하였으나 그 수요를 알아보고는 실제 혜택을 볼 장애인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멀어졌다. 외국의 경우 희귀난치성 유형이 5천 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1천400 가지만 인정하고 있고, 그 중 장애로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통증장애인은 소수라는 점, 객관적 진단이 어렵다는 점, 사회적 제약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국가 예산의 증가를 피하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장애등록에서 제외되고 있다.
손해보상에서 통증장애는 정도에 따라 노동력 상실을 인정하고 있다. 노동력 상실은 개인의 신체적 기능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제약의 결과이기도 하다. 노동은 소득과 자아존중감, 자아실현과 연관되며 사회생활의 하나이다.
통증장애는 약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과도한 운동의 경우 통증은 증가될 수 있기도 하고, 의료적 서비스를 위하여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장애가 과거에는 인정하기를 기피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장애는 복지 서비스권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통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통증으로 인하여 감각이나 운동에 속발성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의 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능 상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판정의 의료적 판정은 현재의 장애상태나 기능의 저하나 상실을 따지기보다 원인을 따지거나 기계적 분류체계에 의존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는 매뉴얼의 자구해석주의에 빠져 있다.
통증장애인의 삶의 질과 복지서비스의 제공, 장애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인권적 차원에서 장애로 인정되어야 한다.
복합통증증후군 환우회는 보건복지부에 장애 유형을 확대할 것을 어려 차례 건의한 바 있으며, 토론회나 기고를 통하여 꾸준히 통증장애에 대하여 알리고 있다. 병은 알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알려야 최선의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임상경험도 들을 수 있고 명의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학에서 해결을 하든 아니든 간에 알려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알리는 것은 어려움을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고, 배려를 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파도 아픈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심리적 아픔을 안겨주는 것이고, 일종의 방임인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서 신이 준 의학인 은물은 치료가 더 이상 되지 않는 사람에게 의술을 행하는 것은 낭비라는 말은 구시대적 말이다.
대한의학회에서는 장애 분류체계를 복지부로부터 용역을 받아 분과별로 연구를 한 바 있다. 소위 KAMS 평가이다. 이 기준에서는 성 장애도 인정했으며, 통증장애도 인정을 했다. 그런데 15가지 법적 장애 유형에 맞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노동력을 기준으로 하여 0%는 사망, 100%는 정상이란 의미로 100가지 등급으로 표현되자 장애인단체에서 강력하게 거부를 받았다. 장애계에서 배척이 되자 법원에서의 손해보상의 기준으로 시범적용을 하는 연구가 있었으나, 아직 뚜렷한 결과는 없다.
소수 신경학 관련 의료인들이 통증장애에 대한 연구를 하고 통증장애 등록의 지지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의학계 전체에 설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고객지원 차원의 통증환우회가 아닌 통증장애인회를 지지하고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
법조계에서는 장애등록에서 탈락된 자를 중심으로 행정소송을 통하여 장애인정을 받는 사례가 축적되어 가고 있다. 앞으로 15가지 유형분류는 모법의 취지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작위 위헌소송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각종 행사나 책자를 통하여 통증장애에 대하여 홍보를 하고 있다. 홍보는 인식개선과 건강교육, 복지서비스의 욕구에 대하여 매우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나 아직 사회적 관심도는 낮은 편이다.
통증장애를 장애 유형으로 추가하는 것은 의료계, 법조계, 장애인단체가 공동 노력을 하여야 할 문제로 인식한다. 그리고 의료계에서 강력하게 복지부에 의견개진을 하여야 한다. 장애인 구강건강의 중요성과 청각장애인 인공와우수술의 필요성을 의료계가 복지부에 어필하여 장애인전문치과가 생겼고, 인공와우수술에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가장 필요한 당사자가 주장하는 것이 가장 호소력이 있으나 복지부는 당사자보다 전문가의 주장을 더욱 반영하기 쉽다.
서인환(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출처 : 소셜포커스(SocialFocus)(http://www.socialfoc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