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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이 있는 그곳에
2019. 8. 11(주일낮예배) 마태복음 6:19-21
수천명이 모인 미국청소년 집회에 죠시 맥다운목사가 강사로 갔다. 그리고 청소년 사역자인 죠시 맥다운목사님이 강단에 섰을 때 목사님 눈에는 비행청소년만 보였다. 이상한 머리와 옷, 그리고 온 몸에 타투를 한 청소년을 보는 순간 목사님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구할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청소년들은 설교는 듣지 않고 핸드폰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야유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죠시 맥다운 목사님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후에 설교를 이렇게 시작했다. 목사님은 제일 앞에 있는 이상한 옷을 입은 남학생에게 I wish you're my son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목사님은 그 옆에 있는 이상한 머리를 하고 귀고리 코고리를 한 여학생에게 똑같은 말을 하였다. I wish you're my daughter. 그리고 목사님은 수천명의 청소년들에게 나는 오늘밤 여기있는 한분 한분이 모두 내가 사랑하는 친딸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맥다운목사님은 오늘날 청소년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바라는 것은 이상한 옷과 머리스타일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뛰어놀고, 또 어머니와 함께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아서 이상한 옷과 머리스타일로 부모의 관심을 받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에 목사님은 수많은 청소년들 앞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시고, 또 여러분과 대화하고 싶어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 결과 많은 청소년들이 눈물을 흘리며 강단 앞으로 나와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비행청소년들만의 모습이겠는가? 지난 주 화요일 새벽기도 본문은 출애굽기 20:3절이었다. 하나님은 400년동안 애굽에서 종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었다. 애굽땅에서 하라, 하지말라는 명령만 듣던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언약의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소망중에 하나는 이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에 명령형은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광야생활 3개월만에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을 때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십계명은 하라 2개와 하지말라 8개로 구성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명령형에 대하여 큰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명령형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 십계명의 제일 처음이 무엇인가? 그것이 출애굽기 20:3이다. 함께 읽어보기 바란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관주성경을 보면 나 외에는 앞에 1)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를 보면 히, 내 앞에(עַל־פָּנָ֗יַ׃ 알-파나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1계명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명령은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결혼한 신랑이 신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당신이 보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신부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밥도 해야하고, 출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눈뜰 때마다 당신 앞에 있을 수 있어요 하고 말하는 신부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은 신랑이 신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 사랑하여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그 무엇이 가로막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사랑의 명령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어느 유머집을 보니 남존여비를 재미나게 해석한 것을 보았다.
남존여비 - 남자가 존재하는 한 여자는 비참하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남자가 존재하는데 여자가 왜 비참할까? 생각해 보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는 여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이 있다. 그리고 여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많은 남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편은 요구만 하고, 한 편은 그 요구를 들어만 준다면 결국 남존여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남존여비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도 그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서 사랑을 표현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사랑의 열매가 아름답게 맺혀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열매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는 사랑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은 백성의 삶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누가 송사하여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을 주라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지 말고, 은밀하게 구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천국백성이 가져야 하는 삶의 모습이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천국백성이 가진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주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그 주기도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주기도의 시작은 내가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천국백성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천국백성은 늘 손해보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면서 천국백성이 구하는 것은 내가 왼뺨을 돌려대었으니 하나님의 큰 손으로 그 놈의 뺨을 때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사는 것이 천국백성의 삶이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천국백성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제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6:19-21을 읽어보기 바란다.
(마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영어성경을 보면 네 자신을 위하여 라는 yourselves를 사용하고 있다. 천국백성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누가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농부 비유가 나온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다. 그리고 때가 이르러서 세를 받기 위하여 종을 보냈을 때 농부들은 그 종을 몹시 때려서 보냈다. 그 후 주인은 다른 종을 보내었지만, 농부들은 그 종들을 때리고, 능욕하여 보내었다. 이것이 3번 반복되었을 때 주인은 내 아들을 보내면 농부들이 존대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들을 보내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저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고 서로 의논하여 그 아들을 죽였다. 그렇게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였을 때 주인은 자신의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농부들을 진멸하고 그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다.
이것이 포도원 농부비유이다. 그런데 이 포도원 농부비유를 예수님께서 하셨을 때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굉장히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왜 불쾌한 반응을 보였는지 누가복음 20장 19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눅 20: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불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농부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지만 잡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백성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부와 권력과 백성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과 백성의 인정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며 살 수 있을 것같은데, 오히려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제가 말하는 연예인의 공통점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경규, 김구라, 이병헌, 김장훈, 차태현, 김하늘(여자), 정형돈, 기안84
이 연예인들의 공통점은 모두 공황장애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공황은 사람이 죽음앞에 놓였을 때 가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공황장애는 내가 죽음 앞에 놓이지 않았는데, 스스로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는 병이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흐르며,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 공황장애이다. 그런데 인기절정에 있는 연예인들이 이런 공황장애에 걸려서 연기를 중단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들이 이렇게 공황장애로 고통하는 이유 중에 지금은 사람들의 많은 사랑과 인기를 받고 있지만, 혹시 사람들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하나 하는 두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는 최고의 인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인기가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내 삶을 얽어맨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겠는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물을 쌓아두면 좀과 동록이 해하여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 말씀의 의미는 책에 좀이 쓸고, 또 동전에 동록이라는 푸른 녹이 쓸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면 그 보물의 가치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과 동록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8-11m의 좀은 종이와 풀과 탄수화물을 먹고 산다. 그리고 좀은 자신을 위하여 집을 짓는데, 그 집의 재료는 자기의 배설물이다. 그렇게 자기 배설물로 집을 지은 좀은 그것을 자기의 안식처로 삼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동록은 βρωσις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뜻은 고기, 음식, 먹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동록에 대하여 잘 알고 싶으면 민수기 11장을 읽어야 한다. 광야 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에 싫증을 내어서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였다. 그때 모세는 30일동안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로부터 바람이 나와서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진영으로 몰아서 떨어지게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추라기를 잡았는데 그들이 잡은 양이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메추라기를 진영에 펼쳐서 말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진노하여서 큰 재앙을 내리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메추라기가 아직 이 사이에 씹히기 전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것이 동록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좀처럼 배설물로 자신의 피난처를 세우고, 또 동록처럼 자신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을 자기 진영에 쌓아두는 사람은 누림의 삶이 아니라, 심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백성된 저와 여러분은 보물을 어디에 쌓고 사는가? 이제 21절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21절은 보물을 쌓아두는 원칙이 있음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다. 그 원칙이 무엇인지 함께 읽어보기 바란다.
(마 6:21)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천국백성은 원수가 오른뺨을 때리고, 또 송사하여 속옷을 달라고 할 때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까지 준다. 이렇게 천국백성이 바보같은 삶을 사는 것은 마음이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 좋아서 때로는 억울하게 맞기도 하고, 또 빼앗기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이 하나님께 있음으로 그 어려운 시련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7월 28일(주일)에 우리교회는 공유호장로님 가정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이번 주 15일(목)-16일(금) 양일간에 걸쳐서 화개제일교회 예배당 리모델링과 벽화를 그릴 것이다. 그런데 참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저는 여름에 에어컨 켜는 것이 아까와 손을 벌벌 떤다. 사실 우리교회는 한 달에 먹는 점심식대보다 냉난방비가 더 많이 지출되는 교회이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없는 방에 에어컨만 돌아가고 있던지 2-3사람 있으면서 큰 홀에 에어컨 켜고 있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한다. 그런데 우리교회 냉난방비보다 훨씬 더 많은 경비지출이 선교후원비이다. 그런데도 우리교회는 14명의 선교사님 가정을 후원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공유호장로님 가정을 선교사로 파송하며 기뻐하고 감격하는 것이다.
화개제일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우리교회는 교회당을 건축하고 본당만 인테리어를 하였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본당을 제외한 모든 곳에는 벽돌에 페인트칠이 되어져 있다. 그런데 교회가 40주년을 맞이하여 큰 꿈을 꾸고 있는데, 그것이 교회당 인테리어가 아니라, 시골교회 돕기 리모델링이다.
애 우리가 이렇게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가? 만약 우리의 마음에 나 자신에게 있다면 우리는 선교도 선교사 파송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교회당 리모델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또 은혜를 더하여서 부흥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한은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다(요1 3:18)고 하였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제 말과 혀로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할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세상이 보기에는 바보같은 행동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에 모두 함께하는 멋진 자여교회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