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표정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 「지옥」(Inferno)편 칸토VII에 지옥의 다섯 번째 원(circle)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스틱스(Styx)라는 이름을 가진 지옥의 강이 음울한 시내를 만들고 그것이 유독한 회색 해안 기슭으로 흘러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멈춰 서서 집중하여 바라보았는데, 그 펄의 호수 속에 진흙을 뒤집어 쓴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벌거벗은 상태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들은 손으로뿐만 아니라 머리와 가슴과 발로 서로 후려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빨로 서로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선한 주인(Virgil)이 말했다. “아들아(Dante), 이제 너는 분노에 정복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보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나는 네가 수면 아래 한숨지으며 수면에 공기방울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기를 바란다. 눈길을 어디로 돌리든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저 늪에 처박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햇빛도 즐거워하는 향기로운 공기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속에 침체된 연기를 지닌 채 찌무룩했다. 이제 우리는 이 어두운 진창 속에서 찌무룩하다.’ 그들은 이런 노래를 목구멍으로 계속해서 꼬르륵거리며 해댄다. 왜냐면 끊어지지 않은(unbroken) 말로는 그걸 노래할 수 없으니까.”
위에서 아래로 팽이 모양으로 연결된 지옥의 아홉 개의 원(circles)들 중 다섯 번째 원은 분노에 찬(wrathful) 사람들과 찌무룩한(sullen) 사람들이 처벌 받는 곳이다. 그 원은 늪이며 거기에서 분노에 찬 사람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고, 그 늪의 표면 아래 찌무룩한 사람들이 가라앉아 자신들의 분노로 질식당하고 있다. 분노에 찬 사람들이 늪의 위쪽에서 난폭하게 싸우고 있는 반면에, 뚱한 사람들은 그 늪 속에 가라앉은 채 자신들의 억눌린 분노를 표출하지 못한다. 늪 속에서 그들이 내는 말소리는 목구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일 뿐 의미 있는 말로 표현되지 못한다. 미움과 불만, 증오를 내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와 그 고통을 단테가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마음속에 점점 더 많은 미움을 품게 되고 따라서 찌무룩한 표정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의 얼굴은 불만 가득한, 화난 표정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늙었다고 느껴질 즈음에 “인생 뭐 있어? 힘 남아 있을 때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데 가고, 좋아하는 것 하고, 그러는 거지.”라고 억지스럽게 큰소리치며 허무의 늪 속으로 빠져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마음속에서 사람들에 대한, 세상에 대한 불만과 미움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어느새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점점 미워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갑이라는 친구도 꼴 보기 싫고, 을이라는 지인도 밉고, 병이라는 연예인도 못마땅하고, 정이라는 정치인도 나와 맞지 않다. 어떤 때는 나 자신도 밉다. 젊은 세대는 싸가지 없으니 당연히 밉다. 게다가 나의 마음속에서 허무가 시시때때로 어른거린다. 지금 나의 정신 상태가 단테가 묘사하는 불만과 미움, 분노와 우울의 늪 속에 가라앉아 꼬르륵거리는 꼴이다. 미움과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보다도 억누르는 내가 더 심한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처벌이 지옥의 늪에서 행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나의 마음속에서 실행되는 것 같다. 내가 내 마음속 미움과 분오의 늪 속에 나 자신을 가라앉혀 스스로 질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억지웃음이라도 짓지 않고 사진을 찍어 보면 그런 마음 상태가 얼굴 표정에 나타난다. 약간 화가 나 있는 것 같고, 약간 독기를 품은 듯도 하며, 약간 침울한 듯도 하고, 약간 두려워하는 듯도 한 그런 오묘한 저 얼굴이 나의 표정이라니. 나만 그런 표정을 가진 건 아닌 것 같다. 오늘날은 인자하고 온화한 노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이다. 늘 해피 페이스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김형석씨도 엄청 욕먹는 마당에, 나 같은 초보 노인은 어떤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하회탈이라도 쓰고 다녀야 하나?
첫댓글 중고등학생 때 수업 시간에 무엇 때문인지 웃음이 터져 선생님께 혼도 많이 났었는데요...그 시절의 웃음이 그립습니다. ^^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니까 지옥에 가는 게 당연하지만, 분노를 자신의 내면에 가두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지옥에 간다니… ^^
그러게요. 미움과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보다도 억누르는 사람들이 더 심한 처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늪이라는 게 바로 사람의 마음속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걸 마음속에 쌓으며 살아가는 건 그 마음의 늪 속에 자신을 가라앉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될수록 마음속에 미움을 담아두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네요. 자칫하면 마음이 미움 저장고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