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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저- 정호승 산문집
출- 비채(2013.7.9. 483쪽)
독정-2019.6.25.
· 햇살에게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벽속 문을 보는 눈
영화 헤리포터를 떠올리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차단된 벽 속으로 해리가 성큼 발을 내디뎌 들어서자 벽 속에는 마법학교로 가는 특급열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승강장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것은 벽이 문이 되는 장명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모든 벽 속에는 문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레 되었다. 헤리포터 시리즈는 인생의 벽 앞에서 작가 조앤 K롤링에게도 ‘헤리포터 시리즈’는 인생의 벽 앞에서 작가 자신이 연 용기의 문이었다. 이혼 후 어린 딸을 데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살가지 생각할 정도로 벽 앞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헤리포터를 씀으로써 벽을 문으로 만들었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 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 서라는 뜻으로 벽이 있다. 벽을 벽으로만 보면 문은 보이지 않는다.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다고 생각마면 결국 벽이 보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보면 결국 문이 보인다. 벽속 문을 보는 눈만 있으면 누구의 벽이든 문이 될 수 있다.
-벽(정호승)
줄임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 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방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기부 천사 철가방 아저씨
생일날 아침에 어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 한 그릇에는 이 세상에 한 사람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우주만큼 소중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기일에 제사상에 올리는 살밥 한 그릇에는 하나의 우주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매년 12월 31일을 실패 기념일로 정해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를 생각한다. 겨울의 추위에 떨려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이 내 실패 기념일의 모습이다. 성공은 굳이 자신이 간직할 필요가 없지만 실패는 철저하게 자신이 기억하고 간직해야 한다. 기념하지 않은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기념함으로써 비로소 성공의 싹을 틔운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교사다. 나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실패라는 교사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그런 학생이 되고 싶다.
·2011년 9월 54세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우수씨는 철가방을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짜장면을 배달하는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1.5평짜리 고시원 쪽방에서 자며 월급 70만원으로 살며 6년 동안 여섯 명에게 매달 10만원씩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보냈다. 철가방 기부천사 김우수의 나눔의 삶은 바로 일류 삶이다.
“오늘 하루 종일 후원 아동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었지. 읽고 또 읽었어. 그 편지를 읽는 시간이 너무 행복한 거야.“
평소 이런 말을 한 그는 삶의 보람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삶의 보람이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자기를 던질 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몽골에서 맹인의 피리
수도 울란바타르 ‘간단사원’에서 원통형 통에다 불교 경전을 넣어 손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 마니차를 돌리고 나서 입구 오른쪽 담 안으로 들어가니 애절한 피리소리가 났다. 허리 구부러진 남루한 맹인이 안구가 푹 꺼진 눈을 감추지 않은채 불당 마루 주춧돌에 앉아 애간장 녹이는 피리를 불고 있었다. 불당 앞 회색 비둘기들도 피리소리에 마음 빼앗긴 듯 조용했다. 시력을 되찾을 수 없어 부처님께 기원하고 공덕 쌓으려고 매일 피리를 분다는 게 3년째란다. 지금쯤 부처님 마음을 움직여 시력이 회복되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한일 자를 10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는 말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못 이룰 게 없다.
·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 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내가 평생을 음악에 바치게 딘 것은 모차르트 덕분이라 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내 생애 마지막까지 그러할 것이라 했다. 괴테는 모차르트는 하느님이 내려준 기적의 표식이라 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면 모차르트를 가장 먼저 만나보겠다고 했다. 천재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차르트의 삶을 소재로 한 영와 ‘아마데우스’를 보면 그와 상재적으로 평범한 존재가 되어버린 살리에리라는 법인의 고통을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킨 영호다. 모차르트는 일곱 살 때 건반악기와 바이올린을 능숙하게 다루는 신동으로 바티칸 교황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서른다섯 살에 생을 마감했는데 독살설이 있을 정도다.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 이를 발자크 백작 대신 살리에리로 대치하여 그가 작곡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모차르트를 과로사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32년 동안 괴로워한 나머지 젊은 신부에게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장명이 나온다. 궁정에 초대받은 모차르트를 위해 살리에리는 ‘환영 행진곡’을 만들어 황제가 그 곳을 피아노로 연주하가 모차르트는 황제 앞에서 그 곳을 혹평하고 즉흥적으로 고쳐 연주했다. “어떻습니까? 아까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이런 수모를 겪은 살리에리의 마음을 표현했다.
시를 쓰는 일도 노력하는 일이다. 한 작품 당 평균 서른 번은 넘게 고쳐 쓴다. 글도 모차르트가 조금도 부럽지 않다. 내 자신이 살리에리인 것이 오히려 축복이다. 나는 나로써 만족할 뿐이다.
·성철스님은 엷은 미소를 띤 호랑이처럼 보였다. 스님 뒤를 따르며 한 말씀 해주시라 청하면“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 알 건데.” 빙그레 웃었다. 호랑이 한 마리가 그려진 백련암 방향을 가리키는 나무표지판이 나오자 그 갚 바위에 앉아 사진 찍도록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동안 남을 들여다보는 일은 수없이 많았어도 나 자신을 들여다본 일은 거의 없었다. 우물이 넓기만 하다면 바다이지 우물이 아니다. 우물은 넓이도 중요하지만 결국 깊어야 우물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다. 인생은 바다가 되기만 바랄 게 아니라 깊은 영혼의 우물을 지닐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깊은 데 있다, 청년의 인생이 깊어지려면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 꿈과 목표라는 그물을 반드시 깊은 데 던져야 한다.
<새들은 바람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왜? 꽃샘바람이 불어오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 부러지지 않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까. 떨어진 나뭇가지가 크고 굵기만 하다면 새들이 그 연약한 부리로 어떻게 나뭇가지를 옮길 수 있을가. 새들은 바람 강한 날 집을 짓는다. 강한 바람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태풍이 불어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꺾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바람 강한 날 지은 집은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튼튼한 집에서 새들이 알을 낳아 알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새끼 또한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새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나무에 지을 수 있어 좋고
나무는 새들 집 때문에 자신들이 아름다워져 좋다. 새는 집 지을 때 지붕을 짓지 않는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잠들고 싶어서다. 지붕이 없으면 눈비 올 때 참 추울 텐데 새들은 비바람과 눈보라쯤은 별을 바라보기 위해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다.
<이사-정호승>
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부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주로 동여매고
하늘을 우러러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이삿짐 트럭에 실려 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
까치들이 따라간다
울지도 않고
아슬아슬 아직 가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
울지도 않고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양을 사고 팔 때 양의 키나 몸무게의 상태에 따라 값을 정하지 않고 양의 성질에 따라 값을 매긴다. 팔 사람과 살 사람이 서로 지켜보는 가운데 가파른 산비탈 중간지대까지 양을 몰고 올라가 풀어 놓는다. 양이 산비탈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풀을 뜯어먹으면 키 작고 깡말랐더라도 값이 비싸지고 산비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풀을 ?뜯어먹으면 양이 아무리 몸집이 크고 살이 졌더라도 값이 떨어진다. 몽골에서 말을 탔을 때 말이 길을 가다가지 않고 자구 강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고삐를 잡아당겨도 자기 마음대로 얕은 늪지대를 지나 강으로 가 물을 맛있게 먹었다. 말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말 자신이었다. 말을 탔다고 내가 말 주인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 말처럼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스승은 나 자신이다. 좋은 학생을 훌륭한 스승이 만들기도 하지만 훌륭한 스승을 좋은 학생이 만들기도 한다.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쓴 미국 스펜서 존슨의 책 <행복>에 ‘필요한 것은 하고 원하는 것은 하지 마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필요하다고 해서 다 원할 수 있는 것ㅇ른 아이었다. 인생은 원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소유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매달리는 삶(백화점에 달려가 물건을 사는 것)일 뿐이다.
·손을 펴면 손바닥이 되고 주면 주먹이 된다. 손바닥은 햇살을 받을 수도 있고, 물건을 올려놓거나 쥘 수도 있고 남과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주먹은 홀로 주먹으로 존재할 뿐이다.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 한 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소세어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힌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장미뿐 아니다. 척박 땅에 뿌리를 내리는 아카시아는 살아남으려고 가시를 먼저 틔운다. 오랜 세월 둥치가 굴ㅇ저지면서 가시 없이도 생존할 수 있게 되면 그대서야 꽃을 피우고 굴을 생산하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멀리 날아가는 까닭은 그렇게 가시라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피어나기 때문이다. 꽃이 피기 전에 가시 때문에 구박받는 찔레도 꽃이 피면 그 향기가 얼마나 은은한가.
찔레꽃 향기가 향기로운 것 또한 찔레[ 가시 때문이다. 가수 장사익 씨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했다. 척추장애로 1354키인 편물기술자이자 국제사회복지사인 김해영씨는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책에서 말한다. 딸로 태어났다고 화난 아버지가 방바닥에 던져 척추를 다쳐 초등학교만 다니고 고물상 하던 아버지는 자살하고 어머니는 정신질환자가 되어 열네 살 그녀가 엄마 대신 동생 넷을 키우려고 식모살이를 한다. 직업훈련원에 들어가 편물기술을 배워 전국기능대회를 휩쓸고 1985년 세계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기계편물 부분 1위를ㄹ 한다. 그 후 아프리카 극빈국인 보츠와나 직업학교 ‘굿 호프’의 교장이 되어 14년 동안 아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미국 나약대학을 거쳐 2009년 컬럼비아대 국제사회복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편물기술을 가르치는 국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 스승인 모이라 커튼 교수는 “그녀는 장애를 부정적 방식으로 정의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의미 있는 인생으로 창조해냈다.”고 했다. 그녀는 “세상은 내게 좌절을 권했지만 나는 희망을 찾고 싶었다. 내개 견딜만한 고통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작은 키를 치명적 약점이라 하지만 나는 작은 키가 강점이었다. 행복한 것은 그냥 지나기지만 아픔과 상처는 그 자리에 남아 반짝반짝 빛을 낸다. 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그 상처와 아픔의 힘으로 계속 살아가고 있다.” 한다.
·인생은 형식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사는 게 곧 인생의 형식이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절망하는 것이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희망은 바로 옆에 있다.
·‘신의 거주지’‘신의 땅’을 뜻하는 라씨는 테베트인이라면 평생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인생의 성지다. 나도 내 인생의 라씨를 걸으며 길은 험하지만 길가에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어 걸음 멈추고 그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피어난 꽃들은 아무도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꽃들이 자꾸 피어난다.
·한 농부가 참깨를 심어야하는ㄴ데 없어 냉동실에 보관해둔 먹으려던 참깨를 밭에 뿌렸는데 그 전 해에 봉지에 담아 보관했던 참깨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싹이 돋아 영하 20도의 냉동실에서 참깨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냈다.
·홍수에 떠내려 온 나뭇가지들 옆에 앉아
평생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칼를 꺼낸다.
햇살에 칼이 웃는다
눈부신 햇살에 칼이 자구 부드러워진다
물새 한 마리
잠시 칼날 위에 앉았다가 떠나가고
나는 푸른 이끼가 낀 나뭇가지를 던지듯
강물에 칼을 던진다
다시는 헤엄쳐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갈대숲 ㅇ너머 멀리 칼을 던진다.
강물이 깊숙이 칼을 껴안고 웃는다
칼은 이제 증오가 아니라 미소라고
분노가 아니라 웃음이라고
강가에 풀을 ?뜯던 소 한 마리가 따라 웃는다
배고픈 물고기들이 우르르 칼끝으로 몰려들어
톡톡 입을 대고 건드리다가
마침내 부드러운 칼을 배불리 먹고
뜨겁게 산란을 하기 시작한다.
<어는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저 전태일
뇌성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의 영역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글린, 그리고 도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른ㄴ,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사.
내 생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정호승>
쓰러진 짚단을 일으켜 세우고
평화시장에서 돌아온 저녁
솔가지를 꺾어 군불을 지피며
솔방울을 한 줌씩 집어던지면
아름다운 국화송이를 이르며 타오르는 사람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하늘과 가까워져
이제는 새벽이슬이 내리는 사람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해 남편을 병으로 잃고 넉 달 뒤에 스물여섯 살 아들을 사고로 잃고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그 고통을 견디는 고장 속에서 신을 원망하고 신을 이해하는 심경을 적나라하게 나타내었다. 어떻게 그 고통을 극복하셨습니까? 물으니 “그것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했다. 고통을 극복하려는 것은 고통에 대한 저항의 자세이다. 그런 자세를 지니면 지닐수록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견딤의 자세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받아들이지 않고는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 신은 가끔 인간에게 방 대신 돌멩이를 .그 돌을 원망하며 걷어차 버리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고 그 돌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지을 수도 있다. 신이 던진 돌멩이에 맞은 인간은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인생의 아름다운 집을 지은 사람을 닮고 싶다.
목적은 결과일 뿐 목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이 중요할수록 과정에 집중해애 한다 목적에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목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 목적에 다다른다. 진주조개도 진주를 품어야만 진주조개다. 고통에 저항하지 않으면 진주조개가 죽는다는 사실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내겐 충격이었다. 생존을 위해 상처와 고통에 저항하는 진주를 만들어내는 그런 진주조개가 되고 싶다. 내 삶의 고통이라는 이물질에 인내와 견딤의 나카를 입힘으로써 인간이라는 진주가 되고 싶다.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기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인내이다. 인내의 시간 없이 만들어지는 진주는 없다.
·“신부님, 새해 세운 계획도 모두 잊어벼렸습니다.“ 여인의 말에 신부는 창고에서 뽀얗게 먼지 앉은 소쿠리를 들고 와 여기에 물을 가득 담아오라한다. 여인은 화가 난 얼굴로 돌아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쿠리를 내밀었다. 신부 왈 ”소쿠리에 물은 안 담겼지만 먼지는 깨끗이 사려졌지요? 마음먹은 대로 안 되어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실패 없는 성공을 원한다면 가시 없는 장미를 원하는 것이다. 장미 향이가 꽃에서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선인 아폴로 11호에 탑승할 우주비행사 뽑을 때도 미국항공주주국에서는 ‘실패했던 사람 우대 합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실패라는 인생의 위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재한 것이다. 우주여행이라는 불확실성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과학적 판단 때문이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패라는 동반자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인생의 수없는 동반자 중에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바로 실패다.
상처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ㄷ가. 한 그루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이 지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되기까지 수많은 고통과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아름다운 모란 무늬로 남기고 있다.
· 아무리 작다 해도 다람쥐는 자기 역할을 다해내는 주체이지 코끼리의 노예가 아니다. 코끼리가 다람쥐처럼 나무 위로 올라가 도토리 같은 나무열매를 따먹을 수 없다. 다람쥐도 코끼리처럼 등에 사람을 태우거나 무거운 짐을 올려놓을 수 없다. 코끼리는 코끼리대로, 다람쥐는 다람쥐대로 각자 주어진 역할과 능력대로 사는 주체적 존재일 뿐
·일제 강점기 수필가 김소운 선생의 ‘외투’라는 수필에서 영하 40도에 북만으로 가는 청마가 외투 한 벌 없이 떠나려하자 외투도 없고 만년필 한 자루가 손에 만져져 내스승에게서 물려받은 불란서제 <콩쿠랑>일본에서도 열자루가 없다는 만년필을 꺼내 “만년필 가졌나?”
물에 청마는 제 주머니에서 흰촉이 달린 싸구려 만년필을 끄집어내어 나를 준다. 그것을 받아 내주머니에 꽂고 <콩쿠링>을 청마 손에 쥐여 주었다. 만년필은 외투도 방한구도 아리련만 그때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입은 외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내는 기분이었다.“ 친구를 일컬어 ‘내 뼈를 묵어줄, 내 관머리를 잡아줄 사람”이라 한다.
·시인은 시 쓰는 기계가 아니야. 짜면 나오는 치약이나 틀린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처럼 시를 생각한다고 시가 나오는 게 아니란 말이야. 크게 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작은 이익에 집착하면 큰 이익도 얻을 수 없다.
<밤하늘은 별을 사랑해도 자신을 온통 별로 채우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활로 별을 쏘아 덜어뜨려 맛있게 요ㅗ리 해먹는 신이 살았다. 그날도 신은 시장기에 하늘에 화살을 쏘았다. 네 개의 별이 화살에 꿰여 땅에 툭툭 떨어졌다. 신은 그 별을 그릇에 넣고 양념하여 별이 익어가는 달콤한 내음이 아프리카 초원 멀리 퍼졌다. 대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추장이 음식 냄세에 이끌려 신이 별 요리흔 곳까지 찾아갔다.
“정말 맛이써 보입니다.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음. 이건 별 요라야. ”
“저 하늘에 있는 별 말입니까?”
“그렇다네. 참 맛있지. 쇠고기 같은 육질에 굴처럼 달콤하지.”
“그런데 여기가지 어떻게 별을 가져올 수 있읗신지...”
“화살을 쏘지, 별을 잡는 데는 화살이 최고야.”
추장은 그 활을 제게 좀 보여달라고 한다. 신은 몇 번 망설이다가 절대로 화살을 쏘아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받도 활을 죽었다. 그러나 별이 너무 먹고 싶었던 추장은 별을 향해 힘껏 활사위를 당겼다. 순가느 활에서 강한 번개가 번쩍 튀어나와 추장은 그만 그 번개에 타죽고 말았다. 신은 얼른 활을 집어들고 사라져버렸다. 신이 사라진 뒤 하늘에 아름다눈 무지개가 걸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활이라 여겼다. 그것 또한 신의 경고라고 생각했다. -신화연구가 이경덕씨가 들려준 신화 재구성- “자기가 담 흘려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능력 밖의 욕망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워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만 홀로 있을 때는 겨울 숲처럼 서로 함께 있음으로써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칼릴 지브란 ‘사랑과 결혼의 시’-기타 줄이 한 음악을 연주해도 서로 떨어져 홀로 있듯이
신전의 기둥이 서로 따로 떨어져 신전을 받치고 있듯이
홀로 있을 때만이 자유롭다.“
<세 나무 이야기-요람이 된 나무>
세 그루 나무가 한 나무는 아름다운 보석상자가 되어 온갖 값진 보석을 담고 싶었다. 두 번째 나무는 커다란 배가 되어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세 번째 나무는 하늘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이 자라 신께 영광을 드리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 첫 번째 나무는 꿈꾸던 것과는 달리 평범한 여물통이 되어 마소들이 먹는 집이나 마른 풀을 담게 되었다. 두 번째 나무는 어부가 타고 다니는 고기잡이배가 되었다. 세 번째 나무는 몸통이 잘린 통나무가 되어 산 아래 통나무 더미에 던져졌다. 어느 날 은신처를 찾는 한 젊은 목수와 임신한 아내가 여물통이 있는 마구간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여물통을 정성껏 잘 닦아 새로 태어난 아기의 요람으로 사용했다. 첫번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 바로 메시아라는 보물을 담은 상자가 되었다. 30년 뒤 한 사람이 갈릴레아 호수가에 사는 몇 명의 어부와 함께 자그마한 고기잡이배에 올라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물 위로 걸어갔으며, 거친 바람과 파도를 잠재웠으며, 병든 자를 고쳐주었다. 고기잡이배는 이제 고기를 잡지 않고 그와 함께 진리를 위해 일하는 살마 낚는 이들을 태우게 되었다. 그 후 3년 뒤, 통나무 더미에 누워 있던 세 번째 나무는 그 사람이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는 십자가로 사용되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통나무로 버려졌다가 진리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를 모시는 영광을 입게 되었다. 세 나무의 꿈은 처음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참된 목적에 소중히 사용됨으로써 미래의 꿈이 이루어진다. 미래에 꿈을 가지자. 누가 미래를 두려워 잠ㅁ 못 들면 그느 아직 오지 ㅇ낳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는 것이다.
<내일>
농부가 일을 열심히 하고 품삭을 기다려도 주인이 주지 않으며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주겠네.”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찾아가자
“내가 내일 준다고 했을 때 자네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나? 지금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일세.
내일 다시 오게나.”
·노르웨이 어느 어부의 이야기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 어부가 풍알을 만나 육지를 향헤 노를 저어도 방향조차 잡을 수 없었다. “너무 어두워서 방향을 잡을 수 없구나.” 아버지 말에 둘째 아들이 소리쳤다.
“아버지, 저쪽이에요. 저기 불기둥을 보세요. 우리 이제 살았어요.”
불기둥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 집에 도착해 아내를 봐도 아내는 어두운 표정이라 왜 그러느냐 물었다.
“여보, 오늘 저녁 때 내가 잘못해서 불을 냈는데 우리 집이 다 타버리고 말았어요.”
“그 불기둥 때문에 우리가 살아서 돌아온 거요. 방향을 잡지 못하고 난파 짖겆이었는데 그대 불기둥을 본 거여. 당신이 우릴 살린 거요.” 불기둥은 우리 삶에 필연적으로 다른 고통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119104 번호로 불리는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플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 상 고통이 아니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을 넘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1955년 10월, 40여 년 동안 수제화를 만들던 남궁정부씨는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술을 한잔하고 지하철을 타다가 선로에 떨어져 병원에서 깨어보니 한 쪽 팔이 없었다. 토원 후 의수를 맞추러 갔다. 보조기 가게 주인이 오랫동안 구두를 만들었으니 장애인용 구두를 만들면 어떻겠냐 했다. 그는 바로 이거다 싶어 곧 일을 시작했다. 한 손으로 구두 한 컬레 만들려고 칼질을 잘못해 허벅지를 찌르기도 했지만 왼손을 놀리면서 구두 한 컬레를 만들게 된 것은 5년 지난 후였다. <꿈꾸는 구두 5만 컬레>책에서 그는 “내가 만들어준 신발을 신고 40년 동안 안자아만 있다가 처음 걷게 되었다는 사람, 맞는 신발이 ㅇ벗어 붕대를 감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자기 발에 곡 맞는 신발을 갖게 되었다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살마이라느 것을 알게 도ㅙ 무척 기쁘다”고 했다. 그에게 불행한 사고가 없었다면 그의 말대로 그는 그저 ‘예쁜 구두 만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금 ’희망이라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오른팔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른 팔 빼고는 다 있다. 내가 필요한 ㅅ라마인 것을 개닫기 위해 오른 팔이 사라졌다.”며 장애인 구두 5만 컬레를 만든 ㄴ굼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고통도 선택적이다. 선택은 항상 나의 몫이아. 같은 감방에 갇힌 두 사람이 창 너머를 바라볼 쌔 한 사람은 흙탕물이 고인 바닥을 보고 한 사람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다.
<창가의 남자> 미국 헤리 부시먼의 단편
미국 제퍼슨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12층에 위치한 앍고 좁은 병실에 죽음을 앞둔 두 환자가 있었다. 폐 일부를 제거한 빈센트와 사고로 척추가 탈골된 파커가 병실에서 나눈 이야기다. 창밖을 멍하니 보는 빈센트에게 파커가 뭐가 보이냐고 물었다.
“오늘 날씨가 화창하네, 이름다운 공원이 있고 꼬마들이 놀고 있어. 분명 오후 수업을 빼 먹은 모양이야. 호수에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고 그 옆으로 귀여운 오리들이 줄지어 가네, 저런 꼬마들이 아주 흙투성이가 됐는데?”
“니더 일어나 바깥을 볼 수 있다면 좋겠어.”
“자네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야. 일어나 낮게 될 거야. 몸을 일으켜 창밖도 보게 될 거야.”
그 후로 빈센트는 매일 오후 세 시에 바깥을 내다보고 풍경을 이야기해주었다. 날마다 변화무상한 날씨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덕분에 파커의 상태도 호전되었는데 어느 날 오후 시 시 빈센트는 몽을 일으키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텅빈 병실에 혼자 남겨진 파커는 간호사를 불러 자기 침대를 빈센트가 있던 창가로 옮겨달라고 했다. 그는 기적처럼 몸을 일으켜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웃 건물의 벽돌담 뿐이었다.
·장영희 교수는 노인과 바다에서 희망을 보고도 가지지 않는 것은 빛을 보고도 자신을 어둠속에 가두어버리는 자살행위다고 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대통령이자 노밸평화상 수상자 넬슨 만델라는 정치범으로 독방에 갇힌 지 4년 만에 어머니를 잃고 이듬해 큰아들을 자동차 사고로 잃었다. 아내와 딸은 강제로 흑인 거주 지역으로 끌려갔고 둘재달은 우줄증에 시랄렸다. 그는 가족을 위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고통 받는다는 절망감만 깊어졌다. 감옥에서 14년 째 되던 해에 맏딸이 그를 찾아왔다. 손녀 이름을 지어달라고 . 그는 작은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딸은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손녀의 이름은 바로 ‘희망’이었다. 희망을 잃었을 때 자살하는 사회에 희망을!
<보석 밭>성찬경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놓은 듯(줄임)
돌과 보석을 구분하는 인식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버섯이 아무리 고와도 화분에 기르지 않는다. 버섯은 버섯 일 뿐. 꽃은 화분에서 키울 수 있지만 버섯은 화분에 키울 수 없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꿈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꿈이라는 피라미드를 쌓는다면 어떻게 쌓을 것이며 허문다면 어떻게 허무느냐는 것이다. 결국 돌 하나를 나르는 일이서부터 먼저 시작된다. 배를 타고 고기를 으러 가는 어부들에게 깁는 시간은 필수적이다. 만선의 기쁨을 원한다면 그물 깁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삶에는 고기만 잡고 그물을 깁지 않는 어부는 없다.
<가진 것을 다 버려도 너 자신만은 버리지 마라>
164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스트라다바리우스는 원래 나무 세공사였으나 바이오린 마드는데 흥미를 느껴 열여덟 살 되던 해에 바이올린 재작자로 유명한 니콜로 아마티의 견습공이 된다. 각종 공구 다루는 법, 단풍나무가 다른 나무둘보다 소리의 공명을 잘 받아들여 깨긋한 소리를 낸다는 것, 단풍나무 중에서도 오랫동안 물에 담갔다가 잘 말린 나물를 택해야 한다ᅟᅳᆫㄴ 것, 몸통의 길이가 36센티미터, 두께가 3센티미처일 때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는 것, f자 모양의 구멍은 균형이 잘 잡혀야 한다는 것, 표면에 칠하느 ㄴ니스의 배합 비율이 음질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 등을 터듣하며 바이올린 장인으로 기초를 다졌다. 스무 살이 넘자 혼자 바이올린을 만들며 아무리 정성들여 만들었다하더라도 좋은 소리가 안 나면 가차없이 부숴버린다. 그런 바이올린에는 절대 내 이름을 넣어 팔지 ㅇ낳는다는 원칙이었다. 서른여섯 살에 자립하여 자기 작업실을 열었다. 훌륭한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작, 상아. 흑단을 활용하기도 하고 마흔에 스승 니콜로만큼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었다. 눈이 어두워지고 손이 무뎌진 여든이 되었을 때에도 좋은 소리를 내지 않는 이올린이 만들어지면 망설임 없이 부숴버렸다. 그는 1737년 90세로 사망하며 1116개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지금 700여개가 남아 있는데 세계의 명기 ‘스타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다. 250년 후 영국 한 경매장에서 그의 바이올린이 29만 7250달러 경매되었다그의 친구가 만든 바이올린은 불과 1만 달러였다. -옳게 사는 법은 기 주변 것을 다 버리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버리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 자신은 지켜라.
·도공은 빈 공간을 만든다
동공은 그릇 형태를 만드는 것 같지만 실은 그릇의 빈 공간은 만든다. 그 공간이 쓸모 있는 그릇으로 완성된다. 내가 하나의 그릇이라면 나라는 사람에게 나만의 빈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 , 빈 공간이 있음으로 쓸모 있는 그릇으로 완성된다. 피카소도
고독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만들어질 수 없다.“고 했다.
어둠을 싫어한느 왕이 군사를 풀어 칼과 몽둥이로 어둠을 내리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군사들이 어둠을 내리쳐도 어둠은 물러가지 않았다. 그때 왕자가 촛불을 들고 왕에게 다가왔다. 어둠은 금세 사라졌다. 공백은 비어 있는 곳이고, 여백은 바늘 하나 찌를 곳 없는 충만을 ‘뜻한다.“화가 이종상의 말이다. 씨앗이 제대로 움트려면 자신에게 알맞은 땅을 만나야 한다.
<빵 장수 야곱> 노아 벤샤가 쓴 책인데 소년 요나가
“나는 나이가 들면 부자가 될 거예요.” 하자 야곱은 “조금만 덜 원하면 넌 이미 부자란다.”고 한다. “야곱 아저씨,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갖고 싶지 않으세요?”하고 묻자 야곱은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원하던 것을 갖게 되어서가 아니라 필요치 않다는 걸 알게 되어서 더 부자가 되는 거란다.”고 한다. 돈은 생계가 보장되는 단계만 지나면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생계가 보장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는 소득이 오르는 남큼 행복지수도 다로 오른다. 그 단계가 지나면 소득이 많이 올라도 행복지수는 크게 오르지 않는다. 돈에 대한 욕구가 지나쳐 행복의 기초가 파괴된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의 저 미국 머몬트 숲에ㅐ서 자급자족하는 자연주의적 삶을 산 헬렌 니어링은 남편 스코트 니어링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
가장 작은 욕심을 지닌 사람이 가장 신에 가깝다고 한다. 지나치게 많은 돈을 신의 축복이 아니라 악마의 저주일 수 있고 극락세계에는 보석이 거래되지 않는다.
<곷과 돈> -정호승
돈을 벌어야 사람이
꽃으로 피어나는 시대를
나는 너무나 오래 살아왔다.
돈이 있어야 꽃이
곷으로 피어나는 시대를
나는 죽지 ㅇ낳고
너무나 오래 살아왔다.
이제 죽기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꽃을 빨래하는 일이다.
곷에 묻은 돈의 때를
정성들여 비누칠해서 벗기고
무명옷처럼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꽃을 다림질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죽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돈을 불태우는 일이다
돈의 잿가루를 밭에 뿌려서
꽃이 돈으로 피어나는 시대에
다시 연꽃 같은
맑은 꽃을 피우는 일이다
·인생에 고통과 두려움이라는 비극의소나기가 오면 오히려 인생의 무지개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최악일 때야말로 최고의 기회이다. 내 인생이 가장 비극적일 때 축복의 손길은 찾아온다. 비극은 거꾸로 뒤집힌 축복이다.
<누ㅡ구나 자기만의 사막을 지니고 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서남쪽으로 차를 타고 하루 종일 달리면 백사막이라는 곳에 닿는다. 백사막은 예전에 바다였던 곳으로 석회석 성분이 많아 사막 전체가 흰 빛깔을 띠고 있다. 마치 사막에 내린 흰 눈이 햇살에 막 녹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은 희고 딱딱한 석회암 덩어리가 새월에 풍화되어 그렇게 보이지만 기기묘묘한 흰 바위들로 사막은 신비한 광영을 연출한다. 마치 신이 잠시 들러 흰 석회암으로 한바탕 조각을 해놓은 것 같다. 아기를 꼭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 사막을 달리다가 지금 막 멈춰 선 듯한 낙타의 모습, 깊은 고뇌에 빠진 인간의 두상 형상, 두둥실 하늘 향해 떠 이쓴ㄴ 버섯구름 모양 등 인간 힘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조각품들이 증비해 사막은 마치 신의 조각 전시장 같다.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낡은 메트리스를 깔고 오리털 점퍼를 입고 모래 위에 누워 별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밤하늘에 너무나 가득해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둥근 별들이 점점 머리 위로 가까이 내려와 손만 뻗으면 북두칠성 하나를 잡을 수 있을 듯 했다. 한여름인데도 사막의 밤은 한겨울처럼 추웠다. 백사막까지 지프차를 몰고 온 운전사가 준비해온 장작 몇 개를 꺼내 모닥불의 불길을 돋워주었다. 몸을 일으켜 모닥불 곁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자 마치 사막에 사는 베두인족아라도 된 듯 했다.
사막 여우 한 마리가 내 발치에 다가와 은근히 나를 쳐다본 것은 그때였다. 사막여우가 여행객의 신발을 물고 간다고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프레시를 강하게 비춰 사막여우를 쫓아냈다. 사막여우는 몇 걸음 뒤로 도망치는 듯 하다가 다시 다가와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막여우는 우협적인 녀석이긴 커녕 작은 몸피에 비해 두 귀간 유난히 크고 쫑긋한 참으로 귀여운 녀석이었다.
‘맞아? 사막여우도 외로워서 나를 찾아온 거야. 그런데 내가 마구 쫓아내다니!“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사막여우에게 미안해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 지평선에 노란 오렌지를 반으로 딱 쪼개놓은 듯한 거대한 반달이 떠올랐다. 순간 그 아름다움에 숨이 턱 막혔다. 처음엔 그런 달이 뜨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하고 지평선엔 반달이 떠오르고, 내 발치 모닥불 곁에는 사막여우가 은근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막의 밤! 그 밤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나는 한순간 숨조차 수리 수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사막도 아침이 되자 서둘러 떠나야 했다. 간밤 추위에 덜기도 했지만 밥에 모래가 들어가 통 먹지 못해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발리 카이로로 돌아가 뭘 좀 먹고 샤워도 하고 좀 쉬자는 게 일행의 공통 의견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막의 밤도 현대문명에 길들여진 인간은 하룻밤도 살기 어려웠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 그러난 사막을 지니고 살고 있다. 스스로 건너여 하는 자가만의 사막이 있고 광야가 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신기루이며 나의 고통은 오아시스인데 그것을 잘 일지 못한다.
·어느 주교가 꾼 꿈이야기다.
사람들이 아침부터 제각기 다른 심자가를 지고 먼기릉 가다가 자지가 짊어진 십자가가 무겁다며 어떤 사람이 꾀를 내어 점심때쯤 톱으로 자기 십자기를 잘라내었다.
“아이고, 이제 좀 가벼워졌네. 진작 잘라낼 걸 그랬어!”
그 사람은 바름 걸음으로 남을 앞질러 갔다. 몇 몇 사람들도 자기 십자가를 잘라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묵묵히 인내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갔다. 해가 기울고 종착점에 다달을 즘에 큰 도랑이 흐르고 도랑 건너편에 예수가 미소 띄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기쁜 얼굴로 예수를 향해 각자 지고 온 십자가를 도랑 위에 걸치고 건너갔다. 그러나 십자가를 자른 이들은 그 길이가 짧아 도랑을 건널 수 없었다.
내 인생의 고통의 크기나 무게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마터면 내 십자가를 톱으로 잘라버릴 뻔했다. 아니, 그동안 수없이 자르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십자가를 지고 내 인생의 사막을 묵묵히 걸아가겠다.
·아름다운 사향노루 한 마리가 코 끝에 스며든 향극한 향기에 늘 마음이 끌렸다. “어디에서 나는 향기일까. 으음, 난 이 향기가 너무 좋아!‘ 사향노루는 그 향기가 자신의 몸에서 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향샘이 있는 사향주머니가 배꼽과 생식기 사이에 이?ㅆ어 암컷이 그리울 때면 거기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저 아래인지도 몰라. 절벽으로 뛰어가다 처참하게 부서진 몸에서 짙은 사향 향기가 피어올랐다. 절벽 아래 깊은 계곡에까지 향긋한 사향 향기가 퍼져나갔다.
·신영복 선생의 책<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엔 ‘남에게 자기를 설명하려고 하는 충동은 한마디로 작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반증하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비방을 비난으로 응수하는 것은 불 속에 장작을 집어넣는 것과 같다. 비방하는 자에게 의연한 태도를 갖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이겨낸 사람이라고 한다.
“그 사람이 그대에게 욕설을 시작했을 때 그대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나는 그대의 주위에 천 명의 천사가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을 때 천사들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나도 그대 곁은 떠난 것이다.”
·어린 시절 달걀 하나를 한우만큼 귀하에 여겨 대부분 집에서 닭을 키웠다.
“지금 실천하세요. 우리의 삶은 매일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나느 실패입니다 .내 얼굴은 모과처럼 못생겼지요, 눈물을 질질 잘 짜기고 하고, 당을 치며 통곡을 잘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마음이 울적해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려버릴까하고 남산타워에서 몸을 날려버리고도 싶었습니다. 내 얼굴처럼 못생긴 모과가 되어 어느 집 응접실 한?쪽에서 조용히 썩어갔다. 그런데 살마들은 썩어가는 나한테 참 좋은 향기가 난다고 했다.
“요즘 같은 겨울철엔 구하기도 힘든데 . 은은한 향기가 정말 좋아.”
참으로 뜻밖이었다. 나는 그때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얘야, 실패를 너무 두려워말아라 .실패에는 성공의 향기가 난단다.”
<고도를 기다리며> 프랑스 극작가 사뮈엘 바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느데 그가 한 말 중 “다시 도전하라 또다시 실패해도 좋다. 이번엔 한결 성곡에 가가워져 있을 테니까.”
·수판 –11더하기 15하면 손가락으로 수판을 놓고 다음 계산으로 넘어갈 때믄 이미 계산된 앞의 숫자를 지우라는 뜻으로 꼭 “털고”하며 다음 숫자를 불러주엏ㅆ다. 수판은 툭 한번 흔들어 털어버리면 다시 계산할 수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것을 이렇게 수판 털 듯이 툭 털어버리면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신의 축복>-경선
천사가 공중에 0을 수없이 그려줬는데 하느님께 안 도와준다고 불평하자 신이 말했다. 그 0옆에 1이라도 써보지.
·<아버지의 나이-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개딜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 몽골의 절믕 청녕에게 붙잡혀온 양은 자기를 익힐 돌멩이들이 벌건 모닥불에 달구어지는 모습음 보면서도 그저 무심하였다 재빠른 솜씨로 칼로 명치끝을 푹 지른 후, 손을 집어넣어 숨통을 끊어버려도 한 순간 엷은 신음소리만 내다가 곧 숨을 거둘 뿐이었다. 순하게 죽어가던 양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자기 전부를 아낌없이 던진 한 순교자의 모습이었다. ‘사막의 성자’로 불린 샤를르 드 푸코 신부의 책<주님과 똑같이> 책에서 ‘하느님은 털을 짧게 깎인 양을 향해서는 바람을 보내지 않으신다’고 쓴 글을 읽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수의 품을 떠났다고 해서 떠난 게 아니었다. 삶 전제가 온전히 예수의 품안에 있었다. “아, 그렇지 하느님의 사랑은 이런 거야!‘ 턾을 짧게 깎인 양은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는데 그런 양을 위해 하느님은 바람조차 보내지 않는다. 얼마나 큰 배려. 신의 사랑인가?
·마추픽츠를 바라보는 순간, 고대 어느 한 시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한 신비로움에 휩싸였다. 잉카문명을 연구한 이들은 스페인군에게 쫓긴 잉카인들이 마지막으로 숨어든 곳이라는 등 여러 가설이 있다. 페루 남서부의 사막도시 나스카 평원에 그려진 그림은 삼각형. 사다리꼴, 소용돌이 등의 여러 도형과 새, 원숭이, 거미, 고래, 물고기, 도마뱀, 나무 등 여러 동식물 그림이 규모가 100미터에서 2~300미터 정도 된다. 새 그림은 날개 하나가 300미터로 거대해서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보지 않으면 전체를 다 볼 수가 없다.(작은 새를 거대하게 벽화로 그려놓은 곳에서 꿈을 이룬 작은 새 –동화 선 글감) 나스카인들이 무엇대문에 거대란 그림을 그렸을가 농사달력이거나 농경수로다. 천체를 관측하기 위한 기준선과 별자리다, 구히환하는 외계인들을 위한 활주로다. 하느 가설들이 있지만 나스카인들이 ㅅ머긴 별의 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바치는 구체적 행위가 그런 그림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잉카인들은 스페인군과 싸울 때 태양이 떠 있는 장에만 사우고 밤에는 ?싸우지 않았다고 하는데 낮에
사워야 그들이 섬기는 태양신이 도와준다고 빋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인들의 인간적 종교성이 맞추픽추라는 산정조시나 나스카의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신에 대해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누구나 삶의 중심에 자기만의 신전이 존재해 있다.
·중국이 테베트를 침공했을 때 달라이 라마는 피신하여 인도로 갔으나 그 스님은 피신하지 못하고 체포되어 감옥에 끌려가 18년 동안 온갖 고문을 당해 20년 만에 인도에서 그 스님을 다시 만나 18년 동안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두려웠던 적이 없었느냐 물었더니 “나 자신이 중국인들을 미워할까봐 중국인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게 될까봐 그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고 했다. 그토ㅓ록 무자비하게 나라를 빼앗고 감옥에 18년간 가둔 그들을 미워할까봐 걱정했다니. 용서할 수 없으면 잊기라도 하자. 누군가가 내게 잘못했을 때는 그 사실을 모래에 적어야 해. 요ᅟᅩᆼ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가 내게 좋은 일을 했을 때는 그 사실을 돌에다 기록해야 해.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아일랜드 동화
농사도 못 짓고 늙고 병든 몸이 살아 뭐해 당나귀를 매장하고 나도 죽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당나구의 무덤을 팠다. 우물을 파듯 구덩이를 깊게 판 다음, 당나귀를 줄에 매달아 구덩이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려 보내고 흙으로 구덩이를 메웠다. 구덩이 아래 있던 당나귀는 자기 몸 위로 쏟아지는 흙더미를 받으며 ‘주인이 우물을 팠는데 물이 안 나오니까 다시 메우려고 흙을 붓는 것이다. 나는 흙을 단단히 다지기 위해 구덩이 속으로 내려 보내진 것이다.’는 생각으로 쏟아지는 흙을 바로 다지고 또 다졌다. 농부는 당나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자꾸 울먹이며 구덩이에 흙을 퍼부었다. 다음날, 농부는 찬란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지상으로 올라와 이빨을 드러내고 크게 웃는 당나귀를 보고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야 할 때라고 당나귀가 내개 힘과 희망을 주었다고 결심하고 다시 밭에 나가 일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성공 중에 자살에 성공한 것만큼 부끄러운 성공도 없다. 자상은 자신을 살인하는 행위임 자살 또한 살인에 속한다. 타인을 죽여여먄 살인이 아니라 자신을 죽여도 살인이다. 자살은 자신에 대한 가장 가혹한 범죄행위이며 자살자는 자기를 죽인 범죄자이다. 지하철을 오가며 하모니카를 불거나 구걸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숭고한 생존의 풍경을 보며 자살할 이유보다 살아갈 이유가 더 많은 게 인생임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룬 업적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영국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의 환갑 기념 심포지엄에서 어느 기자가 당시이 이룬 업적 중에 가장 큰 업적이 뭐냐고 묻자 그렇데 대답했다. 온 몸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르게릭병으로 20세에 5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70세가 된 지금까지 살아 았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가락 두 개와 얼굴 근육의 일부뿐인데다 페렴으로 기관지 제거수술을 받아 목소리마저 일어버린 그가 쓴 책 <시간의 역사>는 4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천맙부 이상 팔렸다.
·“엄마 큰일 났어 반지 잃어버렸어”
“애야,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
“모임에 못 나가 죄송해요.”
“당신이 내 성인 만들려고 그러는 거니까 괜찮아. 당신 때문에 내가 성인되면 좋지 뭐.”
·길을 잃었다. 길은 언제나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끝나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없었다. 그건 늘 쉽고 넓은 길만 원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함께 걸어가기만 하면 길 잃을 염려가 없다. 그 길이 활짝 열린 대로 같았지만 좁아든 소로로 구불구불한 험로로 변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주저앉아 버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매 순간이 바로 길을 찾는 일이라는 걸 몰랐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길이 원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데도 걷기 편하고 아름다운 길로만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길만 걸으려 했다. 걷기 조금만 힘들어도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날 아침, 잠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 본 통나무집 숙소 주변을 온통 에델바이스 천지였다.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긑없이 겅러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ㅇ낳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곷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