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를 떠다니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조우하는 경우가 있다. 육지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시체는 물론 거대한 고래의 사체(死體), 덩치가 대형 트럭보다 큰 원목(原木), 반쯤 가라앉은 컨네이너, 지역에 따라서는 얼음덩이 등 벼라별 것이 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얼음덩이(流氷)들을 유빙(流氷)이라고 한다. 유빙대(流氷帶)는 이 유빙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체이다. 육지 부근 혹은 해상(海上)에서 바닷물이 얼어붙었던 것이 해빙(解氷)과 함께 큰 덩어리 채로 떨어져 해상을 떠다니는 동안에 파도에 의해 조각조각 부서진 것이 흩어지지 않은 상태로 해류나 바람을 따라 표류하는 것이다.
사전적(辭典的) 정의로는 물 위에 떠 있는 얼음덩이가 수면 위에 나타난 높이가 최소 5m 이상 되는 것을 빙산(氷山)이라 칭하고 그 보다 낮은 높이이면 유빙(流氷)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빙산(氷山) 하면 떠오르는 것이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항을 출항, 미국 뉴욕항으로 항해하던 호화여객선 Taitanic(타이타닉)호가 북위 42도 부근에서 한 밤중에 빙산과 충돌함으로 탑승인원 2,224명 중 1514명이 사망, 생존자 710명으로 세기적 해난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고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타이타닉”이 제작됨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직 정확하게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빙(流氷)은 주로 시베리아 전역 해안, 알래스카 연안, 북대서양, 북태평양 극북, 남극, 영국본섬 및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노르웨이 서부 북동부 해안, 일본열도 극북 등 추운 지방이라면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다. 겨울 내내 얼었던 바닷물이 봄이 되어 해빙(解氷)으로 바다로 떠내려온 것이다.
내가 조우한 유빙대(流氷帶)는 러시아 동부와 일본 동북쪽에 위치한 오오츠크해(Sea of Okhotsk)에서 생성된 것으로 이들이 남하하여 쿠릴제도를 벗어나 태평양쪽을 흘러나온 것이다.
‘오츠크해(海)’란 말은 우리들에게 꽤나 친숙한 이름이기도 한다. 지리적인 이름보다 한반도 기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4대 기단(氣團) 중의 하나인 ‘오호츠크해 기단’이 여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냉대(冷帶)에서 발생한 이 습윤한 기단의 영향으로 영동 지역에서는 저온 현상과 함께 늦겨울(2월~3월)에 강설이 잦으며 이 기단으로 부는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영서 지역에서는 푄 현상(Föhn : 독일어로 바람이 산 표면에 닿아 산을 넘어 하강 기류로 내려와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에 의해 그 부근의 기온이 오르는 현상)으로 인한 고온 현상이 일어난다. 높새바람 혹은 샛바람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 오츠크해는 가을, 겨울철에 동해상(東海上)나 일본 부근을 오가는 선박들을 괴롭히는 저기압이나 태풍이 이 바다에서 소멸된다고 해서 ‘저기압의 무덤’이라고도 불린다.
당시(1970년대) 우리의 북양어선들의 주어장(主漁場)은 지금 러시아의 캄챠카반도 남쪽 부근에서 그 아래쪽의 오네고탄섬까지의 동부연안, 수심 200~300m 되는 곳이었고, 항로는 일본의 혹가이도(北海道) 에리모미사키(襟裳岬)를 지나 줄곧 쿠릴제도를 따라 섬들을 관찰하면서 항해를 했다. 유빙이 오츠크해를 따라 남하(南下)하다가 이 쿠릴제도를 지나 태평양으로 넘어오면 조우하는 수가 있었다.
항해사 시절이다. 해가 넘어가면 북양(北洋) 어둠은 삽시간에 온 천지를 감싼다. 항로상에 이상한 형태의 물체가 레이다에 잡혔다.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선속을 낮추고 바짝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레 접근했다. 유빙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얼음덩이들이 레이다상으로 봐서 가로길이가 약 3~4마일(1mile=1852m) 두께가 0.5마일 정도였다. 완전히 항로상을 가로질러 막고 있었다. 일단 정선(停船)하고 선장(船長)에게 보고 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안심은 되지만 문제는 말로만 들었던 이런 유빙을 모두가 처음으로 본다는 것이다.
일반적 상식으로 빙산(氷山) 같은 얼음덩이는 물 위에 보이는 부분보다 수면하의 부피가 더 크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히 참고도서를 뒤져 본다. 분명히 이 계절에 이 지역에 유빙이나 유빙대가 있다고는 나와 있으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해상(海上)에서 장애물을 만나면 피해서 가는 것이 절대적 상식인 이상 더 언급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리라.
당연히 그렇게 하면 된다. 문제는 그 유빙의 크기와 가로놓인 방향 그리고 우리의 항로 등을 감안하면 시간상, 거리상 막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만선(滿船) 귀항은 어선에 있어서 최대의 기쁨이고 경사(慶事)이다. 한 시간이 급한 지금이다. 아직 십여 일을 더 항해를 해야 하지만 마음으로는 눈앞에 부산항이 보이고 집과 가족의 웃는 얼굴이 보이는 듯 한 때다. 우회하자면 작게는 4~5시간, 상황에 따라 자칫하면 하루가 늦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본선 약 10여 마일 앞에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일본국적의 어선 한 척이 같은 방향으로 항해를 하고 있었다. 이 선박의 위치나 코스를 감안하면 분명히 이 유빙대를 조우했을 것이 분명하다. 선내 고급사관들과 경험많은 선원들이 모여 현장을 보며 숙의(熟議)에 들어갔다.
일단 Engine(기관)을 정지하고 타력(惰力)으로 뚫어 보자는 Capt.(선장)의 결단과 지시에 따라 행동으로 옮겼다. 유빙대의 추정 폭이 약 4~500m, 선박의 최대 속력은 만약의 경우를 고려해서 사용치 않고 상태를 봐서 중간중간에 한 번씩 기관을 가동함으로 타력을 붙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 얼음덩이에 스쿠류(프로펠러)에 작은 손상이라도 입는다면?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혹카이도(北海道) 어느 항구에 긴급입항한다는 방법을 배수진으로 쳤다.
레이다 측정으로 가장 폭이 좁은 부분을 선정하고 선회(旋回)하여 방향을 정하고는 반속(半速)으로 전진하다 유빙대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기관을 정지했다. 육중한 선체가 유빙대를 뚫고 들어서자 선체에 얼음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쿵쿵쿵… 하여 울리는 데 온 신경이 바짝 긴장한다. 둔탁하면서도 기분 나쁜 울림이 어찌 그리 크게 울리는지 곧 거대한 빙산이라도 부닥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느리게 얼음덩이를 헤치고 전진은 하고는 있지만 시간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사실상 단단한 강철판이라지만 육중한 무게를 갖고 항해 중 단단한 물체와 부딪치면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진 경우는 여러 번 본적이 있다. 인간의 간사한 이기심과 어느 정도 예측되는 위험에 대한 우리의 그 ‘설마…’ 하는 얄팍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타력에 의한 선속이 거의 약해졌을 때 기관가동을 명령하기 직전의 긴장감 역시 마치 미지의 세계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과연 괜찮을까…?’ 차가운 북해의 바람속에서도 장갑낀 손에 땀이 났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몇 번의 기관가동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만큼 긴장했었다는 탓이리라. 아무턴 무사히 빠져나왔다. 한참 동안 기관실과 연락, 스쿠류 회전에 진동 같은 것이 없는지 철저한 확인을 했다. 프로펠러에 약간의 손상이 있어도 심한 진동이 있어 항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마치 어릴 적, 낯선 개천에 놓인 돌다리를 조금 긴장하며 건넜던 기억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의 경우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돌다리에서 미끄러져 빠지면 금방 나와 툴툴 털고 나면 그만이지만…. 전 선원의 목숨과 막대한 재산이 걸린 일이기에….
앞서가는 일본선의 경우도 뚫어 본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우리처럼 처음으로 모험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무모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한편으로는 희귀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은 또 다른 종류의 위험에 대처하는 새로운 지혜와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해서 인간의 삶이 발전해가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당시 내 자신이 선장이었다면 긴 시간을 허비해서라도 피해서 항해를 했을 것이다. 불분명한 모험을, 더구나 해상(海上)에서 감행한다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고 평소 생각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유빙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상업화하고 있다. 수면하에 있는 프로펠러에 얼음덩이가 직접 닿지 못하게 선체구조를, 혹은 외판을 더 두껍게 하는 등 필요한 장치 등을 하고 유빙 가운데를 지나거나 적당한 곳에서는 정선(停船)하고 승객들이 내려 얼음 위를 걸어보거나 하는 관광상품으로 이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