巫(무) 혹은 무교(巫敎)를 무속이라는 보통 쓰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재래 풍습 혹은 민간 신앙적 관습 정도로 보거나 더 나쁘게는 미신으로 매도해 버리는 것은 공평치 못한 일이다. 무교는 분명 종교로서의 모든 요소를 갖춘 순전한 종교이다. 한국의 무속은 한국의 종교들 가운데 가장 본질적이고 오래된 종교 전통이다. 무속은 한반도와 남만주에 살았던 부족들의 종교로서 일반적으로 샤머니즘(shamanism)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사회에서 씨족과 부족의 우두머리는 여러 가지 역할 중에서 특히 인간과 신계(神界)를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샤만은 일반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을 빌고 질병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의 혼을 위무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다음에서 우리는 무교에 대한 기본적 정의, 무교를 이루고 있는 각 요소들과 그 요소들이 이루고 있는 구조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며 아울러 무교의 간단한 역사에 대해서도 검토하게 될 것이다.
1.무교의 정의와 역사
무교란 무엇인가?
신령(신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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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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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신도)
무교의 신화에 의하면 초자연적인 존재와 통하는 능력은 원래 누구나 갖고 있었던 것인데 대부분이 '타락'하면서 잃어 버리고 극소수의 신령한 인간만이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극소수의 인간이 바로 무당인 셈인데 위의 도표에서처럼 기본구조로 보면 무교는 여느 유신론적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신령의 성격이 다른 유신론적 종교와 다를 것이고 사제로서의 무당의 직능도 부차적인 면에서 약간의 다른 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세 요소는 일정한 판이 형성되어야 가능한데 이것이 바로 '굿'이다. 이것을 통해 우주를 이루고 있는 두 요소인 천계(신령계)와 인간계가 다시금 조화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굿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직능을 보기 위해서는 巫라는 글자를 분석하는 게 좋을 성 싶다. 巫는 아래위의 직선과 그 선을 연결하는 수직선, 그리고 양쪽에 사람 인(人)자가 두 개 있는 형상이다. 이 때 위의 선은 하늘을, 아래의 선은 땅을 상징하며 그것을 연결하는 수직선은 무당을 나타낸다. 신령계와 인간계를 연결하는 무당의 기능을 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巫 = ‾ + 蝡 + ⁰ + 人人
하늘 땅 중재자 춤추는 모습
신령계 인간계 무당
신령
왼쪽 도표에서 신령과 단골 사이만이 유독 점선으로 되어 굿 있는 까닭은 양자가 무당의 중재없이 직접 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당 단골(신도)
한국 무교의 기원 이러한 기본적인 틀을 놓고 볼 때 학자들은 동북 아시아의 시베리아 에 있던 샤머니즘을 한국 무의 연원으로 삼는다. 그것은 이 양자가 구조적인 면에서나 그 기능 등의 면에서 볼 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무당이 천계와 교통하는 망아경(忘我境, ecstacy)의 기술(technique)에서 이다.
한국 무교의 경우에는 천계의 신령들이 무당의 몸에 실리는 빙의형인 반면 시베리아 샤먼들은 망아경이 되면 혼이 몸을 빠져나가 천상계 (혹은 지하계)로 가서 신령들과 직접 만나는 이동형이다. 이것을 가지고 혹자는 한국 무당들이 지나치게 신(령)에게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라는 평을 하는데, 그런 식의 설명보다는 양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생긴 차이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2. 무교를 이루고 있는 것들
1)무교의 주인공 : 무당
무병과 신내림 무당은 巫라는 글자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성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속된 인간을 벗고 다시 태어날 때 무당 후보자는 무병(巫病) 혹은 신병(神病)을 앓는다. 이 병은 일반병과는 달리 병원에서조차도 해결되지 않는다. 하다 하다 결국 가족들은 이 후보자를 무당에게로 데려가게 되고 곧 신이 지폈으니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이때 만일 후보자가 이 신령을 끝까지 거부하고 버티려고 하면 '인다리' 와 같은 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인다리 현상이라 함은 신을 거부하는 후보자가 가깝게 지내거나 특히 사랑하는 인척들의 목숨을 몸주가 될 신령이 앗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결국 후보자는 대부분의 경우 신내림을 승낙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아프던 신병의 증상도 내림굿을 받고 내림굿의 클라이막스인 소위 '말문이 터지면' 다시 말해 몸주가 될 신령이 내려와 무당의 입으로 발설을 시작해 내림굿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 말문이 터지지 않으면 며칠이고 계속한다.- 그 아픈 것이 싹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무당의 종류 우리나라의 경우 여자 무당이 남자 무당인 박수보다 훨씬 많은 형편이다. 무당의 종류는 크게 신이 내려 무병을 앓고 무당이 된 '강신무' 와 가업으로 이어받아 무당이 된 세습무로 나뉜다. 양자를 비교할 때 후자는 예능 면에 뛰어나 춤이나 노래에서 전자를 앞지른다. 지역적으로는 중부 이북 지방에 강신무가 많고, 호남지방과 남부지방은 세습무가 많다고 한다.
2)굿
굿당 굿은 보통 굿당에서 벌어진다. 대표적인 곳으로 인왕산의 국사당과 무악재의 사신당이 있는데, 국사당은 원래 남산에 있던 것을 일제가 남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지금의 식물원 자리에 명치신궁을 세우면서, 신궁위에 있던 국사당의 위치가 무례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인왕산 자리로 옮겼으며, 무악재에 있던 사신당은 새마을 사업으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 굿당에 가보면 우선 성스러운 나무 혹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의미로서 신목(神木, cosmic divine tree)이 눈에 들어 온다. 굿을 하는 방에는 보통 무신(巫神)들이 그림의 형태로서 모셔 있는데 이 무신도 위에는 신령의 마음을 상징하는, 놋쇠로 만든 명도 거울이 걸려 있다.
굿의 소품들(악기와 무구) 굿은 보통 세 명의 무당이 한다. 주무(主巫) 한 사람에 두사람 정도의 보조 무당이 주무를 거두어 준다. 무구(巫具)들로서는 신령의 마음을 상징하는 명도(혹은 명두)라는 것이 있다. 놋쇠로 만들어진 둥근 모양의 것으로 아마 청동기 시대에 신령 정치가 행해질 때 정치적 수장자이며 종교적 사제였던 우두머리가 갖고 있던 성스러운 물건 가운데 하나였던 거울(다뉴세문경)에서 유래되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유물 가운데는 청동으로 만든 방울도 있는데 이것 역시 무구의 전통에 포함되어 특히 무당들이 점을 칠 때나 춤을 출 때 애용하는 중요한 도구 역할을 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진한에 있었다고 하는 소도, 즉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지역인 소도에서는 기둥을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았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소도에 무당이 사제로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 것이다. 무당이 신령의 도움을 받고자 신령을 청할 때는 항상 방울을 사용한다.
그외에 삼지창이나 월도 같은 무기들도 사용하는데 이것은 잡귀를 내쫓을 때 위협을 주기 우螡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삼지창은 특히 굿에 정성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안들어갔는지를 보려고 할 때 사용한다. 이를 위해 무당들은 독특한 실험을 한다. 삼지창을 쌀 위에 세워 놓고 창 위에 돼지머리를 걸어 놓아 이것이 쓰러지지 않아야 제대로 정성이 들어간 굿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눈을 끄는 것으로 작두가 있다. 몇 시간을 갈아서 날을 잘 세운 작두 위에서 무당이 맨 발로 올라가 그 곳에서 춤을 추거나 신의 말을 전하는데,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발이 베여야 하는데 피가 나기는 켜녕 작두날 위에 올라간 무당은 평소보다 기분이 더 상쾌하다고 한다. 그것도 모든 무당이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작두대감이나 작두신을 모신 무당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굿 도중에 점을 칠 때 쓰는 오방신장기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검정, 파랑, 노랑, 흰색, 빨강 등 다섯가지 색깔로 된 깃발로 무당은 신도가 어떤 깃발로 무당은 신도가 어떤 깃발을 뽑는가에 따라 점을 쳐 준다.
굿의 종류와 내용 - 재수굿과 오구굿
굿의 종류와 전체적인 모습은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흔히 만나는 굿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천신굿(혹은 재수굿)과 오구굿이다. 천신굿은 이름 그대로 여러 작은 신령들까지 잊지 않고 잘 대접해 신령들의 대동화합을 꾀해 굿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신령계와 인간계의 조화를 통한 재수를 기원하는 것이며, 오구굿은 전형적인 사령제(死靈祭)로서 죽은 영혼들을 저승세계로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 주는 굿이다. 저승보다는 이승을 더 선호하는 무교에서는 죽은 사람이 이 좋은 이승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집착을 보일 것이라는 가정을 했던 모양이다. 특히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한 맺힌 죽음을 당했다면 그 혼은 더더욱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 이 때 무당은 그 영혼을 불러 맺힌 것을 풀고, 황망히 이승을 떠나느라 식구들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했으면 다시 이별의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시간과 장을 마련해 준다. 이것이 오구굿의 목적인데 오구굿처럼 많은 이름을 가진 굿도 있지 않다. 진오기, 지노귀, 망무귀, 수양, 씻김 등 지방마다 이름을 달리하며 그 이름의 유래도 불분명한 것이 많다.
무교를 비롯한 한국의 민간 신앙에서는 죽어서 저승에 안착하기까지의 중간 기간을 부정하고 위험한 것으로 본다. 이 과도기에 있는 영혼은 이승에 대한 강한 집착력 때문에 살아있는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 수가 있다는 것이 무교에서의 일반적인 믿음이다. 만일 객지에서 죽었다든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든지 해서 문제 있는 죽음을 당한 영혼들이라면 해를 끼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오구굿은 말하자면 영혼을 삶에서 죽음으로 안전하게 옮겨주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이렇게 망자의 혼을 저승으로 모셔 놓아야, 다시 말해 죽음 저편으로 넘어갔다고 생각을 해야 그 혼을 집안으로 모셔올 수 있고 조상신으로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령들이란
신방(神房)이라 불리는 제주도 무당들은 신령이 일만 팔천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닐 지라도 숫자 면에서나 종류 면에서 지극히 다양한 것은 틀림없다.
신령을 종류별로 크게 나눌 때 보통 천신류, 지신류, 인신(人神)류, 잡귀류의 보통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종을 이루는 부분은 천신과 지신류로서 일월성신에 관한 신령, 또 산신, 수신(水神) 등 자연계에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의인화하여 만든 신령을 통칭해서 말하는데 전체 신령의 60%이상을 점유한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인신에는 구체적인 예가 몇가지 보이는데, 보편적인 인신으로, 먼저 영웅적인 생애를 살았으나 비참한 최후를 마친 장군들의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영 장군으로 고려왕조를 지키기 위해 왜구의 침입을 막아 냈지만 결국 이성계에게 처참하게 처형되고 마는 비극적인 생애에 민중들이 크게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러나 비슷한 유의 장군이라도 이순신장군 같은 경우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부족한 탓인지 신령으로 모셔지지 않았다. 연산군, 광해군 등도 신령에 포함되는데 아마도 왕을 나라 자체로 보던 시절의 왕의 비극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종교로부터 빌려온 신령도 적지 않다. 이 면에서는 도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도교에서든 무교에서든 굉장히 힘이 센 것으로 간주되는 신령은 관우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불리는 관운장이다. 불교계 신령으로는 부처 그 자체를 모시기도 하고 제석(帝釋)과 같은 가공의 인물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이렇게 역사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역사적 현상 혹은 사건이 의인화 되는 경우도 있다. 호구신은 천연두를 의인화 하거나 고려때 몽고로 끌려간 처녀들의 수호신을 말할 때 부르는 신령인데, 이것은 민중들의 쓰라린 체험을 무당들이 함께 나누면서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 낸 신령으로 생각된다. 이 외에 탐욕스런 대감신, 무조(巫祖)라 불리는 바리데기 등 많은 신령들도 이 인신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면 이 신령들은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볼 때 어떤 성격을 가졌을까? 가장 큰 특징으로는 아마도 선신이다, 악신이다 하는 구분이 분명치 않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신령과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신령의 본성이 어떻다는 것보다는 그 신령을 어떻게 대접하느냐이다. 가령 병을 주는 별로 좋지 않은 신이라 할 수 있는 별상이나 호구는 대접하지 않으면, 즉 달래지 않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모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시는 신도들의 이익을 위해 다소 실리적인 계산에서 신을 모시는 것이다. 또한 이 신령들간에는 서로 횡적 연관성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모두 자기의 직분만 담당하지 다른 신의 영역에는 별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악귀가 헤친다고 해도 선신이 적극적으로 나와서 이것을 퇴치하지는 않는다.
3) 신격
한국 무속의 신(神) 개념은 지고신, 대기의 신, 토지신, 수신, 이름없는 신, 그리고 조상신 여섯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특징
종류
지고신(하날님, 하늘님)
인간의 삶, 수확, 비를 비롯한 자연 현상관장.
형체가 없고 만물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제의는 지고신이 권위를 부여해 준 다른 신들에게 바쳐진다.
칠성신 - 제석이나 천신과 함께 하느님의 또다른 모습, 또는 그를 대체하는 신이다. 고대에는 북두칠성이 지고신의 거주처로 믿어졌던 것 같다.칠성을 모시는 칠성각은 조그만 기와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사찰 대웅전의 좌측이나 뒤쪽에 있다.
대기의 신
오방장군 - 지고신의 바로 아래에서 그를 보좌하는 신은 다섯 방위를 맡고 있는 오방장군이다.
각각의 방위는 각각의 색과 연결되어 있는데 청제장군(靑帝將軍)은 동쪽을, 백제장군(白)은 서쪽을, 적제장군(赤)은 남쪽을, 흑제장군(黑)은 북쪽을, 그리고 황제장군(黃)은 중앙을 지배한다.
신장(神將) - 오방장군에 예속되어 있는 부관이라고 믿어졌다. 신장의 수는 거의 8만에 이른다고 한다. 신장 아래에는 다시 사자(使者)와 같은 존재들이 있는데 이들이 천군(天軍)을 구성한다. _
토지신(지신)
산신 - 산신각에는 간단한 제단이 있고 그 뒤에 신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산신은 자애롭고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그리고 소나무 밑에 있는 호랑이를 타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산신에게 불로주를 바치는 동자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것은 도교적인 영향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나 아들을 낳지 못한 여성들이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빈다.
천신 - 천신은 땅의 비옥함과 관련이 있는 지신이다. 농부들이 들에서 점심을 먹을 때 음식의 일부분을 이 신에게 바치곤 하였다.
장승 - 마을 입구에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천하 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있다.
기타 가신(家神) - 성주는 대청의 대들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솔잎 다발에 거주하며 가정을 지키는 최고의 수호신이고, 출산의 신인 삼신할머니는 내실에 보관되어 있는 흙으로 만든 쌀그릇에 거주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터줏대감은 집의 안쪽을 경계해 주며 조왕과 변소 각시는 악귀로 부터 부엌과 변소를 보호해 준다.
수신
수신(水神)들은 모두 용으로 믿어진다. 용은 강과 하천, 샘과 우물, 그리고 바다와 하늘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 용은 비를 관장한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은 일반적인 사당외에 용왕을 위한 전각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해왕(海王) - 용왕이다. 해인사에는 거대한 용왕상이 있는데 왕들이 입는 옷을 입고 사나운 얼굴을 가진 물 속의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가뭄이 들었을 때 고기잡이 나갈 때 제사를 지낸다.
이름 없는 신
위에서 언급한 신격들 이외에도 집안의 조화를 위해 위무되는 신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도깨비가 있는데, 집안의 물건을 숨기거나 또는 부엌의 그릇을 깨는 것과 같은 장난을 좋아한다.
조상신
유교의 조상숭배를 조직화
부족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단군 신화는 조상에 대한 숭배 의식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단군 신화에서 숭배되는 조상은 왕족의 조상, 나아가서 민족 전체의 조상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오늘날 샤만이 주관하는 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도 이와 유사하게 무속적인 조상숭배는 행해진다.
※집에서 행하는 의례
☞ 유교적인 가족 중심의 조상의례인 제사와 유사한 무속 의례로 산오구굿과 오구굿이 있다. 산오구굿과 오구굿은 개인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 지는데 중세 시대의 장레의식과 어느정도 유사하다. 산오구굿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오구굿은 죽은 사람을 위한 굿이다.
전형적인 산오구굿은 3일 밤 3일 낮 동안의 시간이 소요되며 여섯 개의 제의 과정들로 구성된다. 이 여섯 개의 제의과정들은 ⸁ 무당이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 들이는 정화 목적의 부정굿, ⸂ 마을의 수호신에게 바치는 골맥이굿 ⸃ 최근에 죽은 사람의 혼에게 바치는 초망자굿 ⸄산오구굿의 핵심과정인 바리데기굿 ⸅ 죽은 사람의 혼을 다음 세계로 보내는 영산맞이굿 ⸆여러 잡귀들을 위한 거리굿을 말한다.
바리데기굿의 주요 목적은 죽은 사람의 혼을 조상으로 변화시키는데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이 죽었을 때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바리데기 굿에서 구연(口演)되는 바리데기 신화에 의하면 신화의 주인공인 바리데기의 아들이 북두칠성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상에 대한 숭배 의식과 칠성에 대한 숭배의식의 관련성을 살필 수 있다. 영산맞이굿의 한가지 흥미있는 특징은 조상의 위패를 하얗고 긴 천을 따라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조상이 좋은 세상으로 뻗어 있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무속적인 조상의례는 좀더 친족 중심적이고 완고한 형식을 지닌 유교적인 의례와 비교해 볼 때, 정교하고 장황하고 그리고 풍부한 상징을 지니고 있다.
바리공주 이야기와 오구굿
오구굿을 가장 특징있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만신(萬神)의 왕, 무당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바리공주 혹은 바링데기 공주의 이야기이다. 바리공주 무가(巫歌)는 무당이 공주 복장을 하고 장구를 세워 한쪽만을 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방울을 흔들면서 서너 시간을 혼자 부르는 노래이다.
옛날에 어떤왕이 계속 딸만 낳았는데 그 일곱 번째 딸이 바리데기였다. 일곱째도 또 딸이라는 소리에 화가 난 왕은 딸을 갖다 버리도록 시켰다. 한 십여 년이 흘러 왕과 왕후가 죽을 병에 걸려 점을 쳐보니 저승에 있는 약수를 먹어야 산다고 했다. 이때 왕은 여섯 딸들에게 그 약을 가져올 것을 부탁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바리데기는 다시 왕과 왕후에게 나타나 약을 가져올 것을 약속하고 저승으로 떠난다. 저승까지 가는 길에 공주는 수 많은 역경을 겪지만 불보살의 도움으로 무사히 저승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승의 수문장(무장신선)이, 같이 살면서 일곱명의 아들을 낳아주고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7여년의 시간이 지나 불사약인 약수를 수문장에게 달라고 하자 매일 길어 이고 다녔던 바로 그 물이라 하고 그 약과 함께 남편과 일곱 아들과 함께 부모를 찾아 돌아오던 바리데기는 오는 길목에서 왕과 왕후의 상여를 만난다. 그러나 바리데기가 마지막 시도로 약수를 왕과 왕후의 입에 흘려 넣자 그들은 다시 살아났다. 다시 살아난 왕과 왕후가 바리데기에게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지만, 바리데기는 모두 거절하고, 자신은 만신의 왕인 무당이 되고 남편과 아들들도 각각 신이 되었다.
3. 무교와 우리
1)불교와 무교
조선조 건국과 함께 승려나 무당의 신분이 천민으로 떨어지고 도성의 절이 폐쇄되는 등 혹독한 박해를 받기 시작하면서 무교와 불교는 살아남기 위해 민중들에게 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불교는 신도들을 산골 절에까지 오게 하기 위하여 무교의 많은 요소들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삼신(三神), 즉 불교 계통의 독성(獨聖), 도교나 무교 계통의 산신과 칠성신을 모시는 삼성각(三聖閣) 혹은 삼신각의 경우이다.(삼신각은 산신각, 칠성각 등으로 나뉘어 모셔지는 경우도 종종있다.) 그 영향을 지금도 한국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데, 절의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삼성각이 없는 경우는 절은 거의 없다.
무교의 내세관이나 죽은 영혼에게 가하는 심판의 기준 등에서 내세를 크게 천상계(극락)와 지하계(지옥) 둘로 나누는 데 이러한 이분법적인 도식은 민간 불교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무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명부(冥府)로 가 시왕(十王)듣 앞에서 생전의 선악 행위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는 것도 불교적인 것으로, 사원에 가면 명부전에 얽힌 교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굳이 다르다고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 주재(駐在) 보살인 지장보살 이야기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교는 이렇게 불교의설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나름대로 아주 현세적인 저승관도 갖고 있다. 즉 이승과 저승의 거리를 모퉁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불교에서 무교 계통의 산신이나 칠성신을 받아들였듯이, 무교에서도 불교 계통의 신령을 받아들였다. 그 가운데에서 앞에서 본대로 삼불제석(三佛帝釋)은 가장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삼불제석은 보통 무당 부채 위에 세 사람의 고깔을 쓴 승려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을 위한 제석거리는 어떤 굿에서든지 대단히 중요한 거리로 취급된다.
불교는 원래 개방된 종교이고 우리에게 있어 부처님은 가장 자애로운 이미지로 박혀 있기 때문에, 무당들도 무신도로 가득한 자신들의 제단에 불상을 모시는 데에 하등 모순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무교에서 불교적 모티브가 두드러지게 나오는 것은 앞에서 본 바리데기 무가, 삼불제석과 같은 불교 계통 천신 이야기가 있는데 이 중에서 불보살의 자애로운 이미지는 바리공주 무가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즉 바리공주가 저승까지 가는 동안 거쳐야 했던 수많은 역경들을 넘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불보살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 무가에 나오는 저승관이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부산 지역에서 많이 하는 것으로 노인들이 살아 있을 때 극락가는 것을 보장 받기 위해 하는 산오구굿이 있다. 이것은 신도들이 죽기전에 극락행 차표를 미리 따놓을 심산으로 행하는 불교의 예수재(豫修齋)의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이렇듯 무교에는 불교의 많은 요소들이 아무 거부감 없이 수용되어 왔다. 이것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중국 고유의 종교인 유교, 도교와 만나서 상호 교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사건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무교는 불교의 규격잡힌 의례 형식이나 수준 높은 세계관, 혹은 자비심 등은 무당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2) 무교의 문제와 한계
신령은 존재 하는가? (신령의 실재성 여부)
무당들은 수만 가지 신령이 있다고들 하던데 도대체 그 신령들은 정말로 있는 것일까? 해, 달, 별, 돌, 강, 바다 등 자연물에 모두 신령이 있다고 하면서 빌고들 하면서 도대체 무당들은 어떤 힘을 느끼기에 그러는 것일까?
신령을 모시고 살면서 굿을 통해 공수를 전달하는 현상에 대해 정신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투사된 것에 불과 하다느니 콤플렉스가 발현된 일종의 정신병이라느니 하면서 '유아적인 소망충족'적 행위라는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무의식의 투사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왜냐하면 무당은 전혀 모르는, 처음보는 신도들의 집안 내력을 그 자리에서 부분적이나마 알아 맞추는 일을 적지 않게 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의 집안 사정을 부분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것일까? 금세기의 프로이드와 같이 심층심리 연구의 대가로 뽑히는 칼 구스타프 융도 귀신의 실체를 애써 부정하지는 않았다.
신령들의 도움으로 예언을 하는 경우도 신령들의 실재성을 방증하는 자료가 되겠지만 신병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도 신령들의 존재를 확증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신병이 가져오는 증상의 혹독함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바인데 외부적인 원인이 아니라면, 또 무당되는 게 편안 길이 아닌데 누가 자진해서 그런 고통을 몇 년 동안이나 겪으려 하겠는가? 신령이 있어 그런 병을 주니 할 수 없이 겪지 자기가 일부러 겪을 사람은 없다는 얘기이다. 신병을 겪는 도중 환청이나 환시에 따라 어디론가 마구 끌려가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정신없이 마구 격한 춤을 추다가 혼절했다는 이야기, , 깨어나 그곳을 파보니 어떤 무당이 죽으면서 묻어 놓은 무구(巫具)가 있었다는 주장등이 모두 신령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냐고 무당들은 항변한다. 마지막으로 그 처절하게 아프던 신병도 내림굿을 하고 말문이 터지면 씻은 듯이 낳는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두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다.
- 참고문헌 -
한국 종교 이야기 최준식 저 1995 한울
한국 종교사 강동구 옮김 1995 민족사
한국인의 종교 김태곤 외 1988 정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