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 강 건널목을 날마다 건너며
이 재 곤
팔십 평생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으며 세월 강의 건널목을 통해 무사히 건너왔고 계속해서 건너는 중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건널목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이제 마지막 세월 강을 건너려고 건널목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나서서 있으니 외로운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일도 그렇지만 지금부터 하는 모든 일도 다시는 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하는 모든 일에 더욱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실천해야 할 것 같다.
세월 강 마지막 건널목 건너 가기를 시작하며 가을을 맞아 고향을 방문하고 추석 전에 다 못한 성묘를 하고 벌초도 하려고 길을 나섰다. 이해 가을도 다시는 못 만날 것이라 생각하니 더 애절하게 느끼며 감상에 젖게 된다. 고향 가는 길가의 들판은 벼가 누렇게 익어서 “날 좀 쳐다보고 반겨주고 가시오” 하며 고개를 숙여 숙녀같이 인사를 얌전히 하고 있다. 마음이 풍성하게 느껴질 즈음 바로 옆에 개망초와 잡풀이 무성하게 뒤덮인 논밭의 광경이 시야에 들어오니 한편으론 지금의 고향 실정이 허망하기도 하다.
건널목에서 바라보는 세월 강은 소용돌이 치고 있는 중이다.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은 거의 노인이고 이농 현상이 극심하여 토지를 경작하여 농산물을 생산할 여력이 없는 기막힌 실정에 놓인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고향의 작은 마을에 백여 명이 오순도순 살며 손바닥만 한 땅도 놀리지 않고 빈틈없이 농사를 지어 농산물을 생산하였는데 지금은 열 명 남짓이 살고 있어서 산기슭 쪽으로 서서히 농경지가 휴경지가 되니 이를 개선할 신통한 대비책이 없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앞의 정자나무인 느티나무는 둘레가 나 어릴 적 보다 두 배나 커진 것 같고 나뭇가지는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서 주위를 차일(遮日)을 친 듯이 넓게 덮고 감싸고 있다. 나무 아래는 휑하니 아무도 없다. 옛날에는 농삿 일을 하려고 나가면서 또는 들에 나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모두 잠시 나무 아래서 쉬며 이웃들과 정담을 나누었는데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그 아래는 근래에 지은 아담한 육각정(六角亭)이 덩그러니 자리 잡아 먼지만 잔뜩 뒤집어쓰고 멍하니 있다.
느티나무 아래 한쪽에 내 눈에 익숙한 돌, 키 높이 만 하고 둥글고 맷돌 모양의 연자방아 돌이 나를 반긴다. 원래 마을 앞 개울 건너에 연자방앗간(일명:돌 방앗간)이 있어서 그 돌이 거기에 있었으나 세월의 변화에 따라 쓸모가 없어지고 마을의 토지를 경지정리 하면서 방앗돌을 느티나무 아래로 옮겨놓은 것이다. 아마도 나의 고향마을에서 가장 오래되고 사연이 많은 묻어있는 마을의 대표적인 유산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아주 잠시 느티나무 아래 머무르며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더듬어 보는 사이에 큰집에 큰 질부(姪婦)가 나와 반가이 인사를 한다. 질부지만 칠십 대 백발노인이다. 우리 집에 시집와서 맏며느리 역할을 믿음직스럽게 잘해 주었는데 보답으로 별로 해준 것이 없어서 항상 마음속으로 미안하다. 큰 조카도 질부도 팔십 대를 바라보며 세월 강의 건널목을 건너고 있는 중인데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건너기를 기원한다.
성묘를 하고 벌초를 하기 위해 산으로 갔다. 산소가 높은 산등성이에 있는 곳은 나는 올라가다가 중도 포기를 했다. 체력이 도저히 따라주지 않아 한심한 마음이 들었다. 평지에서 걷기운동을 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아버님 어머님 산소에는 그나마 길이 나 있고 크게 경사지지 않아 땀을 흘리며 쉬면서 겨우 올랐다. 조카들과 우리 아이들이 같이 벌초를 하고 성묘를 했다. 잠시 쉬는 동안 묘축(墓築)에 앉아서 아버님 어머님 생전에 같이 살던 때를 떠 올리며 불초(不肖) 자(子) 막내도 마지막 세월 강의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아뢰었다.
성묘와 벌초를 마치고 고향마을 어귀에 있는 은송정(隱松亭)으로 갔다. 은송정은 나의 증조부님을 추모(追慕)하여 후손들이 뜻을 모아 칠십여 년 전에 목조 삼간 기와집으로 건립한 정자(亭子)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한 바퀴 돌아보고 빗자루로 방과 마루를 깨끗이 쓸었다. 이 정자를 건립하면서 모든 일은 인력으로 다 하였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는 길이 좁아 차가 들어오지 못했고 또 경제력이 넉넉지 못하니 기계나 발달 된 장비를 이용할 형편이 되지 않아서 어려운 가운데도 인력으로 마을의 입향조(入鄕祖)이신 증조부님을 추모하는 정성으로 이루어진 유산이며 문화재다.
다른 후손도 이 정자에 추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공개경쟁 시험을 치르려고 원서를 접수해 놓고 꼬박 한 달을 이 정자에서 시험 대비 공부를 해 합격하여 삼 십여 년을 근무한 이력이 있어서 항상 정자에 들어서면 좋은 기(氣)를 받는 느낌이다.
세월 강의 건널목으로 가을의 하루를 뜻깊고 보람차게 건너며 보냈다. 팔십 줄에 들어서 세월 강의 건널목을 건너며 생각이 많아진다. 저 멀리 노을이 비친다. 세월 강의 건널목을 주홍색으로 물들인다. 여생의 세월 강 건널목을 조심조심 보람있게 건너야 하겠다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굳게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