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사함의 은혜. / 罪赦された恵み。(2023년 5월 21일 주일예배)
본문; 시편 32:1-5
시 32: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1. 【ダビデの詩。マスキール。】いかに幸いなことでしょう/背きを赦され、罪を覆っていただいた者は。2. いかに幸いなことでしょう/主に咎を数えられず、心に欺きのない人は。3. わたしは黙し続けて/絶え間ない呻きに骨まで朽ち果てました。4. 御手は昼も夜もわたしの上に重く/わたしの力は/夏の日照りにあって衰え果てました。〔セラ〕 5. わたしは罪をあなたに示し/咎を隠しませんでした。わたしは言いました/「主にわたしの背きを告白しよう」と。そのとき、あなたはわたしの罪と過ちを/赦してくださいました。〔セラ〕。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자기 스스로의 죄를 인식하면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임을 나누었습니다. 나의 죄를 인식하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우리는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죄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을 용서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인생을 살면서 영생을 사는 참으로 사람답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다시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합당하게 여기시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다윗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행 13:22)
이 말씀의 근거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경고하는 말씀인 삼상 13:14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람들의 욕망과 육신적인 가치관의 요청으로 세워진 사울왕 대신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이 새로운 왕이 될 것임을 예언하는 구절입니다.
물론 다윗에게도 흠이 많고 심각한 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마음에 들어하셨다는 것을 성경은 증언하고 계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겸손은 우리의 기준에서의 겸손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에서 겸손인 것이지요.
우리는 말투가 자상하고 조곤조곤하며 몸짓과 자세가 조용한 이들에게서 겸손함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겸손은 무엇인가 다소곳한 태도와 자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다소곳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양치기로서 양을 지키다가 늑대나 들짐승이 양을 헤치려고 하면 물맷돌을 돌려 그것들을 쫓아냈습니다. 평소에 단련된 그 물맷돌 실력으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리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 골리앗을 대면할 때는 오히려 분노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삼상 17:46)
다윗의 하는 말을 들어보면 결코 나긋나긋하거나, 미소를 머금은 자상한 태도는 분명히 아닙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하게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언제나 복종하며, 순종하며, 납득하고 수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죄를 짓고 나서 회개의 요청이 있을 때는 곧바로 납득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그의 죄를 일깨워 주었을 때 다윗은 변명하거나,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고 곧바로 주님께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삼하 12:13a)
다시 말해 다윗의 행동을 통해서 본 성경적인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자신의 사악함과 범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변명하지 않으며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겸손한 다윗이었기에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다윗의 고백과 그의 태도를 통해... 죄를 인정하고, 죄인임을 인정하는 나로부터의 태도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겸손인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런 죄인식의 겸손이 곧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겸손의 태도를 가진 이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 삶에 고이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자기를 비하하는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실체인 죄인됨을 인정하고 죄를 인식하고 사는 것이 겸손인 것이지요.
다윗은 오늘 시편을 통해 복이 있는 사람의 조건 하나를 말하고 있는데요. 곧 자신의 허물인 죄가 용서함을 받은 자, 자신의 범죄가 가려진 자가 복된 인생을 살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주님께 정죄당하지 않는 것이 복이라고 고백하고 있지요.
이 네 가지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곧 죄인식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 마음속에 간사함이나, 정죄당함이 없는 삶이 축복이고, 곧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능력을 경험하는 감동을 은혜라고 부르지요. 교회에서 받는 은혜, 즉 선물은 죄사함의 선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조직이나 모임, 그리고 활동 가운데 죄를 용서하고, 사하여 주는 것을 복된 것이라고 말하는 곳은 교회가 거의 유일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속된 조직과 사람들의 만남에서는 눈에 보이는 어떤 성과나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을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속의 기관들이나 만남의 관계들은 오로지 육신적인 이익이나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유익함의 기준을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와 복음은 삶의 유익함을 보는 기준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생하는 삶으로 상급을 받습니다. 영생하는 삶이란 현재의 상급이기도 하고, 미래의 상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겸손하여,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이런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허물과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진정한 복이고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길로 말미암아 우리도 다윗이 누리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데요. 2주 전부터 계속 말씀을 드려 온 십자가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한 죄인식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인 것이지요.
이런 능력을 주시는 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암송하고 있는 요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사랑이 완전하고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육신의 질병이 치료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영적으로는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곧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증표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허락하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눈에 나타난 것이지요. 그리고 동시에 그 사랑은 주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이미 채우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그 자체로 능력이며, 또한 주님의 역사를 알게 하는 은혜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늘 자신의 몸에 가까이 두는 것은 그 은혜의 증표를 나의 삶에 가까이 두는 것과 같겠지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떠올리고, 실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삶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지신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께서 직접 죄값을 치르신 은혜를 발견하게 합니다. 죄사함을 통해 우리는 주의 은혜를 알고,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건강한 신앙생활의 성장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은 세속적인 성공의 열매가 아니라,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한 영혼이 죄사함을 받으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실감나게 체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같은 말이 무한으로 반복되는 것 같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가 꼭 기억하고 믿어야 할 것은 주님의 은혜를 현실의 증표로써 남겨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의 죄와 함께 죽어 주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고, 거룩한 존재로서 살면서... 인생을 살아도 영생을 사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예화로... 어떤 목사님께서 부활절 설교에서 자신이 지은 과거의 크고 작은 허물과 죄들로 인해 자신의 죽음과 멸망에 대해서 감각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부끄러운 죄로 인해 가족과 단절되고, 친구와 이웃들과도 버림을 받는다면... 그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과 동일한 상태라고 고백한 내용인데요. 참으로 동의가 되고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음을 정직하게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또 반복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죄를 용서받는 복보다 더 귀한 복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이미 그 복을 받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능력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희생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이 아니면 다른 그 어떤 죄도 대신 용서하거나 혹은 대신 죄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극도로 미워하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영생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죄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십니다. 또한 죄와 함께 범죄도 심판하십니다. 원래는 우리도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해야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어둠이었고, 죄였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8)
이 어둠의 존재들을 빛의 존재로 바꾸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그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시고, 견디어내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육신의 삶으로도 영혼의 삶으로도 모두 자기 자신의 존재함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복을 누리며 지금 살고있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복을 바로 기억하며, 십자가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로 우리는 능력도 체험할 수 있고, 십자가로 자신의 죄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과하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거룩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곧 사람다움이 회복된 상태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선물과 같은 시간들인 것을 믿습니다. 다윗처럼 겸손한 삶으로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허물과 죄의 사함을 받고 그만큼의 크기와 넓이와 깊이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십자가를 통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거룩한 삶의 궤적을 쌓는 일상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