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독서: 에세 S01E30 - 중용에 관하여
중용이 동양 철학의 개념이라 본 책의 소제목에 있는 것이 특이하여, 이전에 서정님께서 주신 링크에서 제목을 찾아봤더니, OF MODERATION 으로 절제에 관하여라고 볼 수 있겠다. 과한 것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우리가 흔히 좋은 미덕이라 여기는 '정의''애정'조차도 과해지면 악덕이 된다는 것이 몽테뉴의 생각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여러 형태의 고통을 계속하여 마주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아무리 올바른 가치라 하더라도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극단의 고통에 빠트리는 걸 보면 조금은 괴상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범인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범주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적당한 범위에서 도덕과 부도덕, 조리와 부조리를 넘나들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게 타인을 이해하기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편하다. 법에서도 가족의 범죄를 고의를 숨기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으로 말해서, 인간이란 가련한 동물이 아닌가? 자신의 자연스러운 조선으로 딱 한 가지 온전하고 순수한 쾌락을 겨우 음미하는데, 이성으로 그것을 잘라 내 버리려고 애쓰기까지 하니 말이다. 인위적인 수단으로, 공부로, 자신의 비참함을 늘이지 않으면 충분히 초라하지 않은지," p.362
신학과 철학같은 학문도 교리나 규범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인간의 행동 양식을 규제하려 한다. (p.360)
마치 자연이 인간에게 준 쾌락을 즐기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안 되는 것 처럼.
가만히 그냥 살아가기만 해도 삶은 우리에게 쾌락에 준하는 고통을 주기도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삶을 깨우치기에 모자라는 걸까?
그러고 보면, 그 옛날, 신과 자연을 달래기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잔혹한 행위를 했다는 걸 들었을 때, 와 대박 무섭기만 했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종교인들이 삶을 깨우치기 위해 일부러 고행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도.
몽테뉴의 글을 읽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첫댓글 "나는 온건하고 평범함 천성을 좋아한다."
(중략)
"과녁을 넘어가는 화살은 과녁에 못 미친 화살과 마찬가지로 실패한 것이다."
(중략)
"철학은 절제 있게 취하면 즐겁고 유익한 것이나,
(중략)
빰을 맞아도 싼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에피쿠르스 등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전체 서양철학사에서 일부분을 차지하는,
'지나침이 없는 상태'인 중용을 권유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아가 부부간의 성관계까지 중용을 요구한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여 읽어보니,
"결혼이란 경건하고 신성한 관계라고 정의하면서, 어느 정도 진중하고 정성스러운 쾌락만큼만 즐기라고 권유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여성을 찾으라고 말이다.
어허, 500년 전에는 그게 미덕일지 모르겠으나 현대는 그렇지 못하니,
이 또한 500년전 한 유럽의 남성 지식인이 제시하는 의견으로 참고하는게 나을거 같다.
부부의 애정과 관련된 부분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안 가서 그냥 넘겼네요. 서정님이 주신 링크에 있는 원문을 지피티한테 번역해 달라고 해봤더니 아래와 같이 나왔는데, 책에서 읽은 느낌과 좀 다른 것 같아서 한 번 붙여넣어 봅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정당한 것이지만, 신학은 그것조차 절제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어느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결혼이 금지된 가까운 혈족과의 혼인을 막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 사이의 우정이 지나치게 깊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한 애정이 본래 충만해야 하는데, 여기에 친족 간의 정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이 남편을 이성의 경계를 넘어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을 다루는 학문, 즉 신학과 철학은 모든 일에 간섭하려 한다. 인간의 가장 사적인 행위조차도 그들의 감시를 피할 수 없다.
@삐용이 나는 여기서, 결혼 생활에서 지나치게 열정을 쏟는 남편들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주고 싶다. 결혼에서 누리는 기쁨조차 지나치면 비난받을 만하며, 그것을 지나치게 방탕하게 즐긴다면 불륜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처음의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방종한 행위들은 단지 품위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롭기도 하다. 아내에게 그런 태도를 직접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녀들은 우리의 요구에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나로 말하자면 언제나 단순한 방식으로 해왔다.
결혼은 신성하고 경건한 결속이며, 따라서 결혼에서 얻는 즐거움도 절제 있고 진지한 기쁨이어야 한다. 그것은 신중하고 양심적인 기쁨이어야 한다. 결혼의 주된 목적이 출산이라면, 몇몇 사람들은 남편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자식을 기대할 수 없거나, 아내가 이미 임신한 상태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것은 일종의 살인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몽테뉴의 결혼에 대한 설명이 저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결혼생활에서 진실하고 고상한 모범이라고 한 사례는 웃음짓게 하더군요. 몽테뉴가 이야기한 쾌락의 가짓수와 달콤함을 줄이는 다른 길, 보다 자연스러운, 고로 참되고 편하고 거룩하다고 한 길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