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삼례읍에 도착했다. 버스를 내리며 북카페 식당이 이른바 ‘마을사업’의 냄새를 풍기며 너르게 자리 잡고 있다. 하나하나의 규모가 크다. 관청이 느껴진다. 이 정도 시설은 관청의 돈이 아니면 어렵다. 한국도 드디어 국민보다 국가가 부자인 시대가 온 것이다. 동네에서도 관청이 제일 부자다.
이곳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음식 맛을 칭찬했다. 식당에 사람이 많은 것이 납득이 되었다. 선의로 하는 일들이 또는 공공의 이름으로 진행하는 일들이 질적으로 고급인 경우는 드문 일이다. 관청의 지원에 손을 잘 맞추어 큰 박수 소리를 내는 민간 조직이 궁금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에 식당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립형 대안학교와 방과 후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 밖 기구에 대하여 알아보러 전라북도 완주군에 왔다.
고산고등학교
국가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다. 일반 학교를 견디지 못하는 학생들이 갈 학교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라고 말하든 ‘새로운 세상을 찾는 학생’이라 부르든 상관없다. 보는 사람의 시선이 어떠하든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표현하든 가리키는 대상은 같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대안(代案)은 원안(原案)에서 삐져나왔지만 그 둘은 서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안은 여러 가지일수록 좋다. 다양한 선택이 보장될수록 사회는 안전하다. 한꺼번에 무너지는 참사는 주로 획일적인 곳에서 일어난다.
고산고의 대안교육은 역사가 길지 않다. 이제 2년이 지났다. 일반고를 대안고로 전환한 경우다. 일반고로 입학한 학생이 아직 한 학년이 남아있다. 학교를 절반 새로 짓다시피 하고, 수업내용을 대폭 바꾸고, 대안학교를 희망하는 교사들을 모셔오고, 고된 2년이 자났다. 여전히 고쳐 가야할 문제가 많지만 이 학교 ‘최종책임자’ 장경덕 교장의 표정은 편안하다. 큰 고생은 넘긴 얼굴이다. 지금은 좋은 교사를 찾고,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고, 교사들을 따독거리는 일이 주요 업무다. 새로운 시도들에 대하여 걱정이 많은 교사들에게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해 보라고 말을 한다. 교장실 책상에 놓인 명패에 아예 ‘최종책임자 장경덕’이라고 써 놓았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저녁에는 목공 재봉 요리 같은 활동을 한다. 매 학년 여행을 떠나고 학교 밖의 기관이나 가게에 가서 인턴생활도 한다. 일반고와 교과의 절반 정도가 다르다. 신입생의 1/3을 동네 중학교 졸업생으로 우선 선발한다. 그렇게 해야 학교가 동네에서 유리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장 교장은, 시흥에서 공립형 대안학교를 시도해 볼 양이면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지라고 거듭 말한다. 2년은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누가, 왜, 무엇을 할 것인지 팀을 짜서 토론하고 또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귀족학교 소리를 들었던 도시의 어느 대안학교와, 전라남도 땅 끝 유배지였던 곳에 있는 대안학교들을 떠 올려본다. 공립형 대안고등학교 고산고는 그 학교들과 무엇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지 시간을 두고 정리해 보기로 했다.
풀뿌리 방과후 교육 센터
장곡교육자치회가 방과후 교육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흔히 말하듯 학교의 업무를 덜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완주군 고산면의 상황을 보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간이 여의치 않아 방과후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게다가 학교가 학생 모집, 비용처리같은 업무를 여전히 맡고 있으니 학교의 업무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센터와 협의도 해야 하니 학교로서는 이전보다 더 일이 번거로워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자치회가 방과후 교육을 맡으면 교육 프로그램이 더 다양해지고 질도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산면의 경우를 보면 프로그램이 더 다양해졌다. 평일 프로그램과 별도로 주말 프로그램, 그리고 여름과 겨울의 프로젝트형 프로그램이 더해진다.
장곡교육자치회는 봥과후 교육을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자치회가 오래 유지되려면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 자치회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공익적인 일이 경제적 소득을 낳을 수 있다면 참 예쁜 일이다.
완주 고산면의 방과후 교육센터는 예산이 많다. 교육청에서 예산이 나오고, 농어촌발전기금이 정부에서, 삼성꿈 장학재단의 돈까지 몰려든다. 고산면의 센터는 마을 일이 ‘사업’처럼 되어버릴까 염려한다.
고산면은 농촌이면서 귀농 귀촌한 사람이 많은 곳이다. 다르게 살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마을사업에 조력자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교육의 위력이 도시보다 약하다. 시흥에서 방과후 교육이 활성화되면 그 자체가 사교육에게는 위협이다. 그리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라북도가 가까운 거리가 아니어서 견학에 하루가 꼬박 걸렸다. 배우기보다 생각할 것들이 많았던 하루였다. 장곡중 마을공동체 부장 교사가 참석했다. 김재란 교사와 마을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김지용 자치회 공동대표(응곡중 교장)가 출발하는 버스까지 와서 배웅해 준 것도 보기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