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물리·천문분과 · 노 삼 규
우리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 꾸 어 놓 고 있 는 4 차 산 업혁명은 지난 수십 년간 진화해온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이 빚어낸 핸드폰과 인터넷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기발한 두 고안물을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지난 70여 년간 끊임없이 진보를 거듭해 온반도체기술이 있었다.
반도체가 지금의 최첨단 핵심산업으로 발전하기까지에는 2가지 획기적인 기술적 도약이 있었다. 실리콘(Si) 소재의 채용과 전계효과트랜지스터(metal-oxide-semiconductor field-effect transistor, MOSFET) 소자의 발명이 바로 그것이다. Si의 산화물인 SiO 2 가 나노미터(nm) 수준의 초미세 패턴기술을 가능하게 한 여자 주연이라면, MOSFET 소자는 평면공정에 기반한 초미세 집적회로(IC)를 가능하게 한 남자 주인공이다. 이들 두 기술에 기초한 초고집적 메모리소자 (RAM/ROM)와 마이크로프로세서 (CPU)는 대용량 컴퓨터를 탄생시켰고, 이들을 탑재한 초소형 핸드폰과 초고속 광통신 인터넷은 4차 산업혁명의 추동력을 제공하였다.
반도체 소자는 1947년 쇼클리, 브래튼, 바딘이 발명한 점접촉 트랜지스터 (point-contact transistor)로부터 시작 되었으나, 현대적 개념의 IC 기술은 초기 트랜지스터와는 전혀 다른 전계효과에 기초한 MOSFET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러한 지금의 초고집적 반도체 IC를 가능하게 한 MOSFET을 발명한 사람은 바로 한국인 과학자 “강대원”이다.
강대원 박사 (1931-92)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줄곧 미국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한 한국인 과학자이다. 그당시 반도체 연구개발의 산실인 벨 전화연구소(Bell Lab)에서 30년을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반도체 기술과 산업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꾼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발표하였으며, 미국 NEC연구소 소장을 마지막으로 61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천재 과학자이다.
Bell Lab에서 그는 동료인 Martin Atalla와 함께 그당시의 트랜지스터는 집적화와 대량생산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전력소모가 적고 고집적화에 적합한 MOSFET 개발 (1960)에 성공하였음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초미세-대용량의 CPU와 DRAM을 가능하게 한소자로, 반도체가 현재의 거대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결정적인 발명품이다. 이어서 그는 전원이 꺼지면 입력된 정보가 사라지는 MOSFET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동료 Simon Sze와 함께 MOSFET 위에 산화막(SiO 2 )과 금속 Gate(G)를 교차 적층한 Floating-gate (FG) 기술을 개발 (1967) 하였다. 이것이 바로 전원이 끊겨도 정보가 유지되는 Flash-memory, EP-ROM, EEP-ROM 등의 비휘발성 메모리의 원조로서, 정보저장매체에 활용되어 반도체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FG-MOSFET이다.
1960년에 강대원 박사가 발명한 MOSFET 구조는 10년 후 디지털 영상기술의 핵심소자인 MOS 기반의 CCD (Charge Coupled Device, 1970)의 발명 (W.S.Boyle, G.E. Smith)을 낳았으며, DRAM과 CPU의 고집적화 기술전쟁으로 이어졌다. 1970/71년에 최초로 컴퓨터에 탑재된 1kb-DRAM (Intel C1103)과 4bit-CPU (Intel C4004, 1971)는 각각 1.5년과 2년에 집적도를 2배씩 증가(Moore의 법칙)시키면서 2000년경에는 256Mb/16Mb 고초밀도 IC로 발전하였다. 기하급수적 성장을 거듭해 온 반도체 산업에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는 삼성반도체통신 (삼성전자의 전신)이 64kbDRAM 개발을 시작한 1983년이다. 삼성과 하이닉스는 반도체 세계시장 1·2위를 점유하면서, 국가 예산의 1/5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는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0년 전후부터 본격적인 고집적도 경쟁에 뛰어든 Flash-memory는 삼성반도체가 세계시장을 주도하여 64Mb에서 1년에 2배씩 집적도를 증가 (Hwang의 법칙)시켜 10년 만에 64Gb를 달성한 바있다. 2017년경에는 Flash-memory 기반의 1Tb-SSD를 상용화하여 노트북에 탑재함으로써, 반도체에 비하여 부피가 크고 속도가 느린 기존의 HDD를 급속히 대체해 나가고 있다.
강대원 박사는 생전에 35편의 논문과 3권의 저서, 그리고 22건의 특허를 발표하였으며, MOSFET과 FG-MOSFET 개발은 반도체 기술사에서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획기적 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업적이 인정되어 1975년에는 탁월한 과학기술자에게 수여되는 플랭클린연구소(미국)의 밸런타인 메달을 받았으며, 트랜지스터 발명 62주년인 2009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특허청이 운영하는 <발명가 명예의 전당 (NIHF)>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강대원 박사는 61세에 타계한 미국 국적의 한국인으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필자가 대학원 시절에 공부했던 반도체 교과서에는 강 박사가 발표한 초기의 논문이 참고문헌에 소개되어 있었다. 필자가 미국 Bell Lab 소속의 “Dawon David Kahng”이 한국인이라는 사 실 을 안 때 는 잭 킬 비 가 I C 를 고 안 한 업 적 으 로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2000년경이었다. 킬비는 “강대원 박사의 MOSFET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IC도 없었을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그 당시에 강박사가 생존해 계셨더라면 킬비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였을 것은 자명하다. MOSFET을 발명한 지 50년이 지난 2009년에 강대원 박사의 이름이 미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비로소 그의 업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그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추진되었다. 2014년 서울대에서는 부설 반도체공동연구소에 그의 흉상을 세웠고, 2017년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는 <강대원상>을 제정하였으며, 2018년 정부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명예의 전당>에는 그를 현대 메모리 소자의 핵심인 “MOSFET과 Flash-memory 기술을 발명한 과학자”로 소개하면서, “세계 반도체 역사에서 거대한 변곡점을 만든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과 산업이 세계 1-2위를 점유하고 있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60년 전 한국인 강대원박사의 창의적인 피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필자소개 :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이학박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미국 Michigan대, UCLA 객원연구원
한국진공학회 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사
동국대학교 물리·반도체과학과 초빙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