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래 별러왔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딸 둘이 모두 취업을 하면 가족 여행을 하기로 한 약속을 한 지는 제법 됐는데 드디어 그 때가 왔지만 또 막상 상황이 되니 일정 잡기가 어렵더군요. 어찌어찌 각자 조금씩 무리를 해서 용감하게 제주로 떠났습니다.
아침 일찍 김포를 떠났습니다. 집에 강아지를 혼자 두고와서 모두 마음이 짠했지요. 늘 한 가족이라 생각하고, 말하고 살았는데.. 결정적인 순간 녀석은 역시 아직 가족이 아니더군요..ㅠㅠ
그래도 제주는 도착. 이호해변, 애월해안도로를 달려 협재로 갔습니다.
맑고 투명한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아내도 두 딸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비양도를 뒤로 하고 협재를 떠나 초콜릿 박물관, 오설록뮤지엄을 휙 스쳤습니다. 그리고 산방산을 끼고 달려 사계에 계신 목사님댁에 선물을 투하(?)하고, 1박 숙소인 대평포구 '돌담에 꽃 머무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 온 고향 선배님이 오 년 전 제주로 내려와 운영하고 계신 게스트하우스 '돌담에..."입니다.
멀리 바다 위로 마라도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절경인 깻깍주상절리 절벽이 섰습니다. 앞으로는 조그마한 대평포구가 정겹게 자리하고 있는.. 참 평안한 곳입니다.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어서 도미토리를 찾는 국내외 젊은 여행객들이 많다는데 저희는 네 식구여서 가족실에 머물렀습니다. 넓은 창밖으로 제주 바다가 눈높이로 펼쳐진, 마치 바닷가에 누워 잠을 청하는 듯한 좋은 방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서는 길 선배님과 형수님이 깜짝 에피타이저를 마련해 불렀습니다. 근처 포구에서 해녀들이 막 따온 해산물들이라며 돌멍게, 문어, 뿔소라, 해삼, 미역 등을 맛보라고 주셨습니다. 달콤한 와인도 한 잔씩.^^ 너무 맛있더군요. 저는 이빨이 시원찮아 평소 해삼, 문어 잘 못먹는데 맛있어서 이빨 빠질 각오로 먹었습니다.
원래 먹으려했던 대방어는 현지인(?) 선배님의 조언을 따라 포기하고 마을 입구의 횟집에서 모듬회로 대신 했습니다. '오늘은 회'라는, 선배가 잘 아는 횟집이라는데 돔, 광어회에 뭘 한도 없이 주셔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부푼 배를 붙들고 돌아오는 길은 비가 제법 많이 내렸습니다. 둘째가 핸들을 잡았는데 길을 잘못 들어 본의 아니게 밤 드라이브를 아슬아슬하게 하고 숙소로 돌아와 비 오는 밤 제주를 바라보며 선배님 내외랑 저희 내외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분은 원래 가까운 곳으로 밤 데이트를 가시기로 하셨는데 저희가 너무 오래 붙들어 못가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는 밤새 내렸는데 아침에는 말끔히 개였습니다. 배탈 난 큰 딸 침 맞느라 아침부터 드라이브 하고 (제주는 한의원이 아침 여덟시에 열더군요. 거기다 명의였습니다. 대박!) 좀 늦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선배가 채려주신 아침을 먹었습니다. 직접 만든 빵, 귤잼, 샐러드, 호박죽.. 커피 등 등 평소 아침 안 먹는 저이지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선배님과, 그리고 그 집의 흰둥이 검둥이와 정말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오고싶은 '돌담에 꽃 머무는 집'을 떠났습니다.
산방산이 내내 우리를 배웅했습니다.
이번에는 첫째가 차를 몰고 성산포로 향했습니다. 내가 운전하는 것 보다 만배쯤 피곤하더군요. ㅎㅎ 그래도 이 친구들이 언제 이렇게 어른이 돼서 운전을 하고 우리 부부를 싣고 가나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성산포에서는 그저 그랬습니다. 점심 먹고 유람선 타고 우도, 일출봉 주마간산(? 주주간산?)하고 허겁지겁 둘째날 숙소인 서귀포로 돌아왔습니다.
남은 마일리지 탈탈 털어 잡은 서귀포칼호텔 스위트룸. 좋더군요. ㅎㅎ 방른 낡았지만 넓직했고 무엇보다 전망이... ㅎ 창문밖 풍경 값이 호텔비의 80%쯤 된다 생각했습니다.
저녁은 서귀포 시내의 사람 바글바글한 흑돼지 집에서 먹었습니다. 돈 잘 버는 둘째가 쐈습니다. 미리 말해줬으면 더 많이 먹었을텐데.. 계산할 때가 돼서야 제가 하겠다더군요. 영악한.. ^^
시간이 아까워서인지 아침마다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눈앞이 시원하더군요. 덕평포구 바다가 조신한 아가씨라면 서귀포 바다는 뭐랄까? 서구형 미인의 모습? 마음은 탁 트이지만 딱히 드는 생각은 없더군요. 잘 포장된 상품을 보든 듯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을 쪼개 첫 날 들렀던 목사님 교회를 다시 찾았습니다. 늘 행복한 미소의 목사님.. 아내가 특히 좋아하는 우리가 띠동갑 동생벌 목사님입니다. 항상 보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분인데 길게 있지를 못했습니다. 주일인데도 목사님 주재하는 예배도 못드리고 돌아서려니 아쉬움과 미안함이 더했습니다.
그러고는 뭐 별일 없었습니다.
의례처럼 용두암 한바퀴 돌고 렌트카 반납하고 더운 면세점 괜히 서성거리고.. 비행기 타고 창문밖 눈 빠지게 내려다 보다 김포 도착하고...
강아지가 격하게 반겨주는 집에 도착하니 어둑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 네 가족 전원 출근 기념 제주 2박 3일 여행은 끝났습니다. 마일리지랑, 그간 꿍쳐둔 비상금 다 털리고 몸도 피곤했지만 한 바탕 달리기를 끝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출발선을 바꿔 또 달려야겠지요. 언제나처럼 네 식구, 아니 강아지까지 아옹다옹하며 또 달리다 자. 이쯤에서 쉬자 하면 또 가야겠지요.
갈매기 가족들처럼 말입니다..
|
출처: 희미한 詩의 기억 원문보기 글쓴이: 취몽인
첫댓글 갈매기가족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