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6일(월) 광주일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작품으로 SF 영화의 역사를 뒤바꾼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소설 ‘꿈의 노벨레’를 각색하여 한 편의 영화를 기획한다.
그 작품이 바로 <아이즈 와이드 샷>. 하지만 이 작품이 개봉하는 것을 보지 못한고 큐브릭은 세상을 떠난다. 결국 이 거장의 유작이 된 셈인데,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두 부부의 모습을 통해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바닥까지 파헤치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은 영화를 보는 관객조차 불편하게 만든다.
16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진행되는 영화는 느릿한 속도로 사건을 몰아가면서 고뇌와 갈등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데, 결국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얼마나 처절하고 아픈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영화 속에 사용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도 이런 영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훌륭한 선곡이다. 슈트라우스 가문의 작곡가들이 만든 신나는 왈츠들은 결코 사람들을 슬프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는 쿵짝작~삼박자의 리듬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의외로 어둡고 음울한 단조로 작곡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공산당 볼세비키 혁명의 홍보수단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들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강요하였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성향은 공산당 정부와 맞지 않았다. 당시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처럼 번성한 재즈를 들은 쇼스타코비치는 재즈음악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1930년대 재즈기법을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작곡한 일련의 음악들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재즈 모음곡>이다.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재즈를 삼박자라는 왈츠의 리듬에 가둔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은 마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금기와 욕망 사이에 선 인간의 고뇌를 담듯 어느쪽으로도 갈 수 없고 결국은 울음을 터트려야하는 빌 하퍼드(톰 크루즈)의 모습과 같다. 정부가 금지한 불편한 양식을 취하고 싶지만, 노골적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 없던 쇼스타코비치의 고뇌가 이 <재즈 모음곡>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왈츠 2번은 가장 유명한 곡인데, 영화에 삽입곡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텔 미 썸싱>이나 <번지점프를 하다>와 같은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었다.
영화 속에서 직접 사용된 연주는 피아니스트자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녹음한 음원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최고의 명반은 리카르도 샤이가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데카 녹음반이다. 샤이의 스타일은 명료하다. 그는 이 곡도 결국은 춤곡이라는 마지막 결론 하나를 가지고 일관되게 음악만들기를 하고 있는데, 유려한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간결하고 심플한 샤이의 해석이 빚어낸 명녹음이다. 술에 취한채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미지의 작업남과 춤을 추던 앨리스(니콜 키드먼)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르게 만드는 음악이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