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론과 메타윤리
‘신명론’이란 ‘신의 명령에 대한 이론’ 혹은 ‘신성한 명령에 대한 이론’을 줄인 말이다. 중세의 대다수의 철학자들은 ‘신명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신학에서 중요한 한 주제이다. 신명론에서 다루고 있는 주된 문제 중 하나는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의무’이거나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신의 명령’이기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신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는 요나에게 니네베(Nineveh)로 가서 그들의 잘못에 대한 신의 분노를 전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신약에서는 사도 바오로(Paul)에게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되라는 신의 명령이 있는데, 이러한 ‘명령’들은 이성적인 차원에서 고려해 볼 때 전혀 납득할 수 없고 타당하지 않는 명령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이 유한하고 신은 ‘사랑’이기에, 가끔은 인간의 이성이 납득할 수 없지만 보다 차원 높은 신의 계획을 통해서 불합리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최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자 데번포트(Davenport)는 신의 명령을 ‘아가페적 명령윤리(agapic command ethics)’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명령윤리는 ‘하나의 의무를 산출하기에 충분하거나(충분조건)’ 혹은 이것만으로 ‘필요하고 동시에 충분한 것(필요충분조건)’이다.
신명론에 대한 논의는 철학에서는 더 이상 잘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개념으로 현대철학에서 여전히 다루고 있는데, 그것이 ‘메타윤리’이다. 메타윤리는 어떤 의무의 이행이나 행동에 대해서 직접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무나 행동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형성(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문제 삼는 윤리학의 한 분야이다. 특히 종교적인 영역에서 어떤 행위에 있어서 올바름의 조건은 그것이 ‘신의 명령’이기에 혹은 ‘신이 거기 있기에’ 올바른 것이다. 그래서 만일 예언자가 어떤 말을 전할 때, 그것의 옳고 그름, 정당성 등을 판단할 때는 그 예언자의 말의 내용을 이성적으로 헤아려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진정 신의 부름을 받은 것인지, 혹은 신의 현존이 그와 함께 하는 것인지 하는 것만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아무리 타당하고 멋진 말을 한다하더라도 신의 명령이나 신의 현존과 함께하지 않는 예언자라면 거짓 예언자가 되고, 그의 말이 아무리 이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하더라도 신의 현존이 함께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것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의 대다수 성직자들의 설교에 공감이 잘 가지 않는 것은 한 가지 이유 '그것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면 과장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