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우도는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면 돈지리에 속한 섬.
섬의 형태가 소와 비슷하고 나무가 많다 하여 수우도라 했다.
최고지점은 섬의 중앙부 은박산으로 해발 189m이며 사천, 고성, 남해, 사량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기암괴석의 해변 경관이 뛰어나며, 해골바위라 알려져 있는 수우바위, 단독섬, 그리고 독섬개,옆섬개, 잠여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며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이라고도 불리는데, 동백꽃이 피는 3~4월이면 초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섬에는 반인반어(半人半漁)인 설운장군이 수우도·욕지도·사량도 등 남해안 일대를 침략한 왜구를 물리쳤으나 모함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실제로 설운장군 사당에서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 다음백과
코스 :
수우도 선착장 - 수우리 경노당 - 고래바위(왕복) - 신선봉(왕복) - 금강산(왕복) - 해골바위(왕복) - 은박산
- 동백군락지 - 몽돌해수욕장 - 설운장군 사당
※ 시계방향 원점회귀
한달전 수우도를 갈려고 나섰다가 ‘가자세계로’호가 계속되는 적자로 운항을 중단하였다고 하여 허탕을 치고 온 일이 있었다.
수우도를 갈려면 아니 요즘은 수우도뿐만이 아니라 타지역을 방문할려면 교통, 숙박, 음식점 등을 미리미리 확인을 해두어야 나처럼 헛발질을 피할 수 있다.
수우도를 가는 방법은 삼천포수산시장에서 출항하는 112일신호와 삼천포여객터미널에서 출항하는 가자세계로호가 있는데
112일신호는 06:30, 14:30에 삼천포수산시장에서 출항하여 07:10, 15:10에 수우도에 도착하고
수우도에서 나오는 시간은 08:00, 16:45이다.
112일신호 내부. 앞은 좌석이 42개가 있고 뒷쪽에 난로를 피워두었다.
오늘은 새벽을 달려 삼천포 수산시장에서 06:30분에 출항하는 112일신호에 몸을 실었다. 16:50분 배로 나올 예정이니까 조그만 수우도에서 장장 10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말이다.
계속 천천히를 되뇌이며 선착장에서 수우리 마을앞을 지나 시계방향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시작한다.
천천히 간다고 하지만 결국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 조급증을 참지 못하고 하산하고 만다. 배시간은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았는데 어떡하지? 있을 곳도 없고, 춥기도 하여 생각해낸 방법(?) ‘한번 더 올라가자’ 그래서 하루에 수우도 산행을 2번이나 했다.ㅎㅎ
이름이 여러가지인 매바위. 앞은 고래바위에서, 뒤는 신선봉에서 촬영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설운장군 이야기
옛날 이 섬에 어느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늘 근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인은 천지신명께 제발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더니 지성이 효험이 있었던지 드디어 태기가 있고 아이를 낳게 되었다.
여느 아이들보다 몸체가 두 배나 더 큰 똘똘하게 생긴 사내아이였다.
아이는 첫 돌이 지나자 놀랍게도 혼자 바다로 나가 헤엄을 치기 시작했고,
물속에 들어가서는 고기들과 함께 헤엄쳐 다니다가 한참 후에야 바다 저 멀리에서 불쑥 올라오곤 했다.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며 궁벽한 작은 섬에 예사롭지 않은 아이가 태어났다며 좋아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곤히 잠든 아들 설운을 본 부인은 깜짝 놀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겨드랑이에 물고기의 호흡기인 아가미가 생겨났을 뿐 아니라 온 몸에 딱딱한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괴이한 아이를 낳았다고 혹시나 동리에서 쫓겨날 것을 염려한 부인은 이 사실을 일체 발설하지 않기로 영감과 서로 엄밀히 약조했다.
설운은 점차 장성하여 어느덧 나이 스무 살에 접어들고 있었다.
한편 이 무렵, 남해안에는 왜구의 노략질을 잦아지기 시작했다.
뭍에 올라 곡식을 약탈해 가고, 전라도 곡창지대까지 그 손길을 뻗쳤다가 이곳 수우도 및 사량도 앞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를 괘씸히 여긴 설운은 단신 바다로 뛰어들어 왜구를 무찔렀으며, 양곡을 다시 빼앗아 인근 섬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졌다.
그리고 설운은 도술을 부리곤 했다.
수우 섬과 사량섬, 욕지섬 멀리 남해섬 까지를 훌쩍훌쩍 건너 뛰어다녔으며, 산정에 걸터앉아 큰 부채를 펴들고 살래살래 부채질을 하면 먼 바다 위로 지나가던 왜구의 해적선들이 바람에 이끌려 오고, 순순히 응하지 않는 고약한 놈들은 파도를 거세게 일으켜 배를 침몰시켜 버리기도 했다.
드디어 청년 설운은 이곳 바닷사람들에 의해 남해를 지켜주는 ‘설운장군’으로 추앙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조정에는 반인반어의 해괴한 괴물이 나타나, 오가는 어선을 괴롭히기 때문에 어부들이 무서워 고기잡이를 못하고 모두들 굶어 죽어간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러한 왜구들이 퍼뜨린 소문에 의해 조정에서는 그 괴물을 당장 체포하라는 명령을 욕지도 호주판관에게 내렸다.
결국 관군이 온 바다에 삼엄하게 깔리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설운장군은 어부들을 모아 관군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욕지도 관아를 역습하여 판관부인을 납치해 절해고도 국점에 숨겨두고는 아내로 삼았다.
어언 일년이 지나 자신의 아이까지 낳은 판관부인이기에 성운은 자기의 여인이 되었으리라 믿고 방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껏 친절하게 대해 주면서도 설운의 약점을 살피며 탈출의 기회를 노리던 부인의 심중은 결코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번 잠이 들면 며칠을 곯아떨어지고 마는 습성을 알아차린 부인은 어느 날 몰래 산정에 올라 불을 지펴 봉화를 올렸다.
이를 신호로 알아차린 해상의 관군들이 급히 몰려와 잠든 설운을 생포하여 배에 실어 압송하는 도중,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설운이 힘을 쓰니 굵은 포승줄이 “뚝,뚝”하고 끊어졌다.
놀란 관군이 칼을 빼 급히 내려쳤으나 목이 댕강 떨어지는가 싶더니 곧 제자리에 도로 붙는 것이었다.
이에 판관부인이 다시 내려치게 명하고는 숨겨둔 메밀가루를 잘린 목에 뿌리니 머리가 갑판위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고 몸뚱이가 몇 번 꿈틀거리더니 서서히 죽어갔다.
이렇게 설운장군이 관군에 붙잡혀 죽자 왜구의 노략질은 다시 시작되었으며, 나라에서도 한동안 이를 막지 못해 그 피해는 날고 극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인근 해역의 섬사람들은 마을마다 설운장군을 바다의 수호신으로 모신 장군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그의 혼백을 달래는 한편, 왜구를 무찔러 달라는 간절한 바람과 더불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펌글
첫댓글 수우도 지난18년도에
다녀왔는데...경관이
경이롭기까지 하더군요
참으로 기암괴석 마디마디가 해골같았구요
또가고픈 곳입니다
공주언니!
방가방가요~~^^
언니는 좋은 곳은 다 다녀오셨네요.
부러워용~^^
언제 또 가 봅시당~♡
@려운 그랍시다용
전국 모두다녀보았지요
@김승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