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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14, 15, 24~30절 [달란트 비유 2 –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받은 재능이 적고 많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지난주에 이어서 ‘달란트 비유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말하는 ‘달란트’를 문자적인 뜻만으로~
각자에게 있는 재능이다, 라고 하며 달란트를 잘 감당하세요,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의 의도도 모른 체, 육신의 행위에 급급해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에게 맞춘 인본주의적인 가르침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생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의 종교심을 위해
아니면 신앙적인 안정감’을 위해서 신앙 생활하는 자는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종교인으로 악하고 게으른 자’입니다.
여기서 ‘악하다, 게으르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지 않는 것, 열심히 살지 않는 것, 나쁜 짓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 앞에 ‘게으른 자’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열심을 낸다는 것이 자기 열심으로 종교 생활을 하니
하나님 앞에 ‘악한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님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깨닫지 못하면서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또 선행을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의로 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 ‘게으른 자’요
말씀을 깨닫지 못하니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자기의 머리에서 난 것으로 종교 생활하는 ‘악한 자’인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하나님이 창세 전에 계획하신 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3년여 동안이라는 짧은 공생애 동안~
각 사람에게 달란트, 재능을 주었으니 그것으로 열심히 헌신해야 한다는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달란트 비유’를 하셨겠습니까?
그리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은 구원받는 것’을 말하는데
⇨ 구원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만 사랑해서 받는 것이지 자기에게 있는 재능으로 헌신한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달란트 비유’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상황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금 달란트와 같은 귀한 것’을 받았는데
이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로부터 ‘금 달란트와 같은 귀한 것’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셈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신약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지난주에 달란트 비유의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달란트로 표현했다는 것을.
2. 그 달란트는 여러 가지가 아닌 한 가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3. 금 달란트에서, 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4. 장사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16절).
5.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누구인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누구인지,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누구인지.
6. 한 달란트 받은 자가 24, 25절에 ‘땅에 묻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 이것에 대해서는 잘 알아야만 예수님이 ‘달란트 비유’를 들려주신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가운데 1~4번째 그리고 6번째 내용에 대해서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4, 25절을 봅시다.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진 재능이 적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 하나님과 상관없는 심판 받을 자가 누구인가를 말합니다.
말씀을 봅시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에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다.’고 하는데
이 말이 해석하기가 애매한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에서 ‘굳은 사람’이라는 것은~ 공동번역에서는 ‘무서운 분’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의미는~
‘주인님은 없는 것에서 있게 만드시고 심지 않아도 거두시는, 원하는 것은 다 얻고 마는 분,
계산에 대해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그래서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무서운 사람(악질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손해 입는 것을 원하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을 알고, 또 주인님의 것에 손해를 입힐 것이 두려워
주인님의 것을 땅을 파서 잘 감추어 두었다가 이렇게 손해 없이 가져 왔으니 받으십시오.
이렇게 손해 없이 가져왔으니 내가 주인님의 뜻을 잘 아는 충성된 자입니다.‘ 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왕이 전쟁에 나가면서, 한 신하에게~ 자기가 전쟁에서 돌아오는 동안
이곳에 남아서 훌륭한 장수가 되도록 명령을 하고 또 훌륭한 장수가 되는 비법이 담긴 비서, 책을 건네줍니다.
그런데 왕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 신하가 왕에게 와서 하는 말이
‘왕이여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제가 장수가 못되면 왕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되는 것이니
차라리 장수가 되는 것을 포기라는 것이 왕에게 손해도 끼치지 않고, 왕의 근심을 애초에 잘라버리는 충성된 신하라고 생각이 되어, 장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비서를 도로 가져왔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 한마디로 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 생각대로 살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자를 말하고 오늘 날도 이와 같은 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인의 뜻을 전혀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게으른 자’, 주인의 뜻보다 자기 뜻으로 사는 ‘악한 자’ 라 하시며
29, 30절에 그 귀한 금 달란트에 숨겨진 축복을 빼앗겨 버리고, 금 달란트에 숨겨진 축복이 아닌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받는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25절에 ‘땅에 감추었다.’에서 ‘땅’은~
흙이 있는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자기 마음, 자기 머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 주인의 뜻을~ 자기 머리에서 나는 생각 밑에다 묻고, 감추고, 잊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기 머리에서 나는 생각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달란트 비유의 장면’에서 오늘날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성도’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도 알고, 구원 받은 자에게 주시는 약속도 들어 알고,
그리고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달란트’를 자기 마음과 생각에 감추어 버린 것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과 구원의 소식’을 자기 육신의 정욕 안에 감추고, 육신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믿고 구한다는 것이 세상의 것에 맞추어져 살아가는 종교인을 말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심판을 받은 것과 같이
↳ 이들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기 육신의 정욕에 감추어 두었던~
예수님의 말씀과 구원의 은혜를 말한다 해도
그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으니 심판받는 자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금 달란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맡기신 ‘금 달란트 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금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언약, 메시야에 대한 언약’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우리에게 주신 ‘금 달란트’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 재림의 약속,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달란트가 사람에게 있는 재능이라고요?
사람을 올무에 빠지게 하는 말도 안 되는 말이죠.
이렇게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자’는~
↳ 하나님이 주신 ‘금 달란트와 같이 귀한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도 그 언약을 자기의 마음 밭에 감추어 버리고
결국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지 다음 주에)
이처럼 신약의 시대인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구원의 은혜를 자기 머릿속에 묻어버리고 세상을 주인 삼아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 이들이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자’입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에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는 표현은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능력이 없는,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앞서~
세상의 것을 욕심내며 사는 교만한 자, 짐승 같은 개와 돼지 같은 놈이라는 표현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 ‘장사했다.’ 라는 말입니다.
‘장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팔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금 달란트’를 받은 종은 무엇을 팔아야 하고 무엇을 사야 하는데 이것이 장사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팔아야 합니까?
‘금 달란트’는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이 주신 메시야 언약’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기 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제일 먼저 명하신 것이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 달란트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은
⇨ 자기가 있었던 찬란한 문명이 있던 곳이 아닌
너무나 척박한 광야를 지나며 나그네처럼 본향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 즉 ‘금 달란트와 같이 귀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은~ 무엇을 팔아야 합니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본향을 바라보는 그 신앙에 방해가 되는~
사단으로부터 나온 세상에 대한 정욕, 말씀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금 달란트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 그리고 구약의 참 선지자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사야 합니까?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과 메시야에 대한 끊임없는 간절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무엇을 사야 합니까? 그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과 메시야에 대한 신앙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금 달란트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자기중심에 주인이 되려고 하는 세상을 팔고, 메시야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갑니다.
오늘날, 신약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금 달란트와 같은 재림의 약속,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성경에는 그것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자랑, 이생의 자랑(요한일서 2장 16절)이라 했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한다(갈라디아서 2장 20절)고 했습니다. 이것이 파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사야 합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약속,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내 안에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멘”하는 것입니다.
⇨ 이것이 구약의 이스라엘이, 그리고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장사하는 일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는 팔고 사는 두 가지부터 시작입니다.
그리고 21절에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장사했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인데 이런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에게 있는 달란트대로 열심히 봉사하라, 헌신하라 한다면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몇 시간 째 말씀을 드리지만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육적으로 맞추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죄를 범하고 있음에도 자기가 세상을 사랑하는 죄에 있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잘되고 많이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육적인 뜻에 맞추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지 않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알기 전에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의 의미’를 잘 깨달아야
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기를 간절이 원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한울타리 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