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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박상진(경북대학교 임산공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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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고속도로 서김해IC를 빠져나와 8차선 넓은 도로를 잠시 달리면 거리에 주촌면 입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좌회전하여 좁아진 2차선도로로 얼마 들어가지 않아 주촌면 소재지다. 읍내의 천곡마을 회관 건물과 허름한 농협창고 사이의 좁은 골목길 옆, 아름드리 고목 한 그루와 맞닥뜨린다. 나무이름은 쌀밥을 뜻하는 이밥나무에서 왔거나 입하(立夏) 때 꽃이 핀다하여 입하나무로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벼농사와 관련이 있다. 꽃이 일제히 싱싱하게 피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고 한다. 땅속의 수분이 충분할 때 꽃도 많이 피고 활력도 있을 것이니 모심기철인 이때 물이 풍부하다는 뜻이고 따라서 풍년이 들기 마련이다. 농사의 풍흉을 점칠 수 있는 이런 나무를 기상목(氣象木)이라 하며 옛 사람들은 귀하게 여겼다. 이곳 이팝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 모른다. 노거수라면 으레 갖는 이름난 선비와의 인연도, 마을을 지켜주었다는 흔한 전설도 없다. 처음부터 거창한 의미를 갖고 태어난 귀족나무가 아니다. 농삿일에 지친 농민들의 평범한 쉼터나무로 풍상의 긴 세월을 오늘도 조용히 이겨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팝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 되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이 나무를 만나고 돌아서는 길은 개운치 않다. 3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챔피언으로서 격에 맞는 대접을 해줄 만한 충분한 값어치가 있으련만, 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터전은 너무 비좁고 주위에는 훼방꾼투성이다. 차지하고 있는 땅이라고는 밑동을 겨우 둘러싼 돌계단 위의 몇뼘이 고작이니 그 큰 덩치를 유지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삼 층짜리 마을 회관과 낡은 농협창고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 가지가 더이상 뻗어나갈 수 없으며 건물 쪽으로 자라는 가지는 아예 잘라버렸다. 사람들이여! 이제 욕심 그만 피우고 조금만 숨통을 터 달라고 가만히 외치는 것 같다. 출처 :◈ 문계의 집 ◈ (Mungye's flower & arts) 원문보기▶ 글쓴이 : 문계-文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