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하 순
“내일부터 며칠 여행 다녀올 거야.”
엄마한테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진종일 게임을 하다, 밤에 엄마 오는 기척이 나면 자는 척하는 생활이.
“가겐 어쩌고?”
엄마는 추석, 설날을 빼곤 쉬는 법이 없었다.
“네가 맡아야지.”
나는 마치 엄마가 내준 오렌지 주스가 시어서 그러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허, 말도 안 돼. 그 소리 하려고 불러냈어?”
물에 헹군 유리잔에 마른행주질을 하던 엄마 손길이 뚝 멈췄다. 나를 휙 돌아보는 엄마 얼굴은 오늘따라 십 년은 늙어 보였다. 부은 건지, 화장이 떴는지.
“그냥 알바 써. 내가 무슨 주스를 팔아. 모양 빠지게.”
나는 주스 잔을 카운터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다. 유리잔 속 얼음 조각들이 짤랑 소리를 냈다.
“모양이 빠져?”
엄마는 행주를 쥐어짰다. 물방울이 개수대 위로 투두둑 떨어졌다. 엄마가 그렇게 비틀어 짜고 싶은 건 분명 나였을 것이다.
“정학 맞은 건 모양 안 빠져! 알바를 왜 써. 펑펑 노는 일손 두고.”
짜증이 밀려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옆 테이블 의자에 하이킥을 날렸다. 엄마는 말을 잊은 듯 저만큼 나가떨어진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왜 건드려. 여행을 가든 말든 맘대로 해.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씩씩대며 가게를 나오다 들어오던 사람들과 부딪쳤다. 옆 병원 인턴들이었다. 엄마 주스 가게는 병원 건물에 붙어 있었다.
밖은 몹시 뜨거웠다.‘불량한 주스 가게’라고 굴림체로 한껏 멋을 내서 쓰인 간판을 보니 더 열불이 났다. 처음에 그걸 보고는 황당해서 물었다.
“엄마, 왜 하필 저 이름이야?”
“글쎄……. 요즘 불량이란 말이 자꾸 친근하게 느껴져서 말이야.”
묘한 얼굴로 빙글거리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한 방 먹은 것 같던 기분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가능한 빨리 엄마 가게와 병원이 있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로 갈까? ……잠깐 상후와 민기가 생각났지만 그냥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워드에 반성문을 쓰고 있는데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났다. 컴퓨터 하단에 표시된 시간을 보니 새벽 한 시. 평소보다 늦은 귀가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부끄럽게 생각하며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해가 있었다 해도 폭력을 써선 안 되는 거였습니다.>
반성문 쓰는 노하우는 빠삭하다.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있다는 멘트를 곳곳에 박아 준다. 단,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아 상대의 화를 돋우는 일은 피해야 한다. 어찌됐든 날마다 A4 용지로 두 장을 채우는 건 고역이었다. 쓰고 있자니 새삼 중현이 자식을 향한 분노가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너 기다려라. 한 번 더 발라줄 테니까. 나는 손가락 마디를 으드득 꺾었다. 코뼈 부러진 정도 갖고 정학을 먹인 담임도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설사 우리들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다 걸린 전과가 몇 번 있었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한 처분이었다.
담임한테 반성문을 전송하고 다시 몬스터 사냥을 시작했다. 구질구질한 마음을 씻어 내는 데 게임만 한 게 있을까.
출출해져서 자판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부엌으로 가면서 보니 엄마가 방문을 활짝 연 채 가방을 싸고 있었다.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붙박이 벽장 앞에서 컵라면이 좋을까, 사발면이 좋을까. 잠시 고민했다. 밤을 새우려면 배가 든든해야겠지? 사발면을 꺼냈다.
“갔다 올게.”
다음날 아침, 엄마가 내 방 문을 열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현관문이 쿵, 닫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용돈이 떨어진 게 생각났다. 아아, 젠장.
엄마가 나간 후에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어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휴대폰 벨 소리에 깨어나 보니 오후 세 시가 넘어 있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다.
“당구장이야. 중요한 의논 있으니까 나와.”
상후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짜식, 왜 명령조야.’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올 봄, 고등학교에 올라와 상후와 가까워지던 때가 생각났다.
상후는 주먹이 세고 허우대가 좋았다. 같이 다니면 나까지 뽀대가 나는 것 같아 으쓱해졌다. 녀석은 내가 담임 수업시간에도 전, 혀, 상관 않고 초지일관 엎어져 자는 모습이 소신 있어 보여 끌렸노라고 했다.‘수업 시간엔 자야 제 맛이지.’ 난 구태여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잔 것뿐이라고 털어놓진 않았다. 중현이와 민기가 연이어 우리 무리에 들어왔다. 초대박 쫄쫄이로 줄여 입은 교복 바지, 탈색 흔적이 남아 있는 머리, 중현이는 첫눈에 봐도 쌩 날라리였다. 민기는 작지만 다부졌다. 우리는 이른바 잘 나가는 패거리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상큼 달달했다. 아무 것도 거칠 게 없었다.
그 날, 우리는 여름 방학이 끝난 기념으로 나이트를 가기로 했다. 각자 가진 돈을 털어 보니 제대로 놀려면 부족할 것 같았다. 삥을 뜯자는 말이 나왔다. 값나가는 가방에 운동화, 비리비리해 보이는 중딩 하나를 발견하고 뒤를 쫓았다. 녀석이 돈이 없다고 버티자 상후가 바지 주머니에서 커터 칼을 뽑아 들었다.
“얼마나 잘 드는지 보여 줘?”
상후는 중딩 녀석을 벽으로 몰아붙였다. 가슴에서 둥둥 북소리가 났다. 다리가 저절로 후들거렸다. 민기는 태연히 웃으며 중딩이 움직이지 못 하게 꽉 붙들었다. 날카로운 칼끝에 중딩 녀석의 교복 단추가 톡톡 떨어져 나갔다. 중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질린 듯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나는 겁쟁이가 되기 싫었다. 상후와 민기를 쫓아 킬킬 웃는 시늉을 했다. 중딩 녀석이 질질 짜며 학원비 봉투를 내 놓았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중딩을 보낸 뒤 돌아보니 중현이가 없었다.
그 일 이후 중현이는 우리를 피했다. 어느 날 우리는 녀석을 운동장 구석으로 데려가 에워쌌다.
“나, 니들이랑 안 맞는 거 같다.”
녀석은 결심한 듯 우리를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땐 우리였는데, 녀석은 이제 니들이라며 마치 우리를 송충이 보듯 했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 날 방과 후에, 우리는 중현이를 학교 근처 빌라 주차장으로 끌고 갔다. 눅눅한 그 지하 주차장은 우리가 가끔 숨어서 담배를 피던 곳이었다. 녀석은 각오하고 있었는지 그다지 저항하지 않았다. 속이 더 뒤틀렸다. 코로, 입으로 피를 질질 흘리는 녀석을 보면서도 우리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층계를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휴대폰 카메라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은 우리가 몰려서서 담배를 피우면 사람들은 눈이 마주칠 새라 피하기 바빴는데, 그 뽀글 머리 아줌마는 달랐다. 우리들로서도 중현이로서도 불운한 일이었다. 안 그랬음, 우리는 그곳에 녀석을 팽개쳐 둔 채 영화라도 보러 갔을 것이고, 중현이는 집에다 층계에서 굴렀다고 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우리는 꼼짝 없이 걸려들었다. 무기정학이었다.
문을 열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당구장 안은 사람들이 내는 말소리와 당구공끼리 통통 부딪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민기가 손을 흔들었다. 함께 무기정학을 당한지 삼일 째. 휴가라도 온 듯 여유 있게 당구를 치고 있는 상후와 민기, 두 녀석을 보자 풀썩 웃음이 나왔다. 나는 샌들을 끌며 건들건들 그쪽으로 향했다.
상후가 말한 중요한 용건이란 오토바이 날치기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그냥 오토바이를 빼앗기만 하면 돼. 나머진 그 형이 처리할 거야.”
상후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뺏긴 자식들이 경찰에 신고하면 어쩔 건데?”
내가 묻자, 상후는 느물대며 웃었다.
“면허 없는 놈들 꺼만 뺏을 거니까 문제없어.”
민기는 그 선배를 믿을 수 있는지 불안해했다.
“걱정 마. 의리 하나는 끝내 주는 형이니까. 니들 날 그렇게 못 믿어?”
상후는 인상을 팍 썼다. 그 일을 제안한 건 상후 중학교 선배였는데 나도 한두 번 얼굴을 본 적은 있었다. 그는 폭행과 도벽으로 경찰서에도 몇 번 드나들었고 작년에 학교도 때려치운 모양이었다,
“야, 이건호! 너도 같이 하는 거지?”
민기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담임은 우리가 정학을 맞던 날 협박하듯 말했다.‘니들 다음에 또 걸리면 퇴학이야!’눈앞에 선이 보이는 듯했다. 폭력과 불량을 가르는.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선을 넘기 원하는지, 어떤지.
그때 왜 갑자기 중현이 눈빛이 떠올랐을까. 주먹질과 발길질을 이 악물고 참아 내던 녀석의 눈빛! 먹구름이라도 낀 듯 마음이 찌뿌드드해졌다.
한 판 정도는 이길 줄 알았는데, 내리 세 판을 졌다. 우리가 내기 당구를 하는 동안 상후가 데려온 계집애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감자 칩, 조미 오징어, 캔 음료 따위를 쉬지 않고 먹어댔다. 우리가 시켜 먹은 자장면 값까지 합쳐서 사만 원이 넘었다. 상후와 민기도 돈이 없다고 잡아뗐고 외상도 안 통했다. 혹시 가게에 가면 돈이 있지 않을까!
터덜터덜 가게로 갔다. 불빛이 환한 꽃집과 약국 사이에서 엄마 가게만 불이 꺼져 있었다. 스산해 보였다. 엄마와 내 생일을 조합해 만든 비밀번호를 눌러 도어록을 열었다.
조리대 위에 깨끗이 씻어 놓은 믹서 두 대, 하얗게 빨아 널어놓은 행주,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마룻바닥, 가게 안은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지난밤 구석구석 대청소라도 한 모양이었다.
금고엔 한 푼도 들어 있지 않았다. 투덜거리며 돌아서는데 카운터 테이블 위에 노트가 보였다. 집어 들자, 뭔가가 툭 떨어졌다. 현금 카드와 메모지였다. 그럼 그렇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메모를 읽어 내려갔다.
<사과하고 바나나가 거의 다 떨어졌어. 장 좀 봐. 카드는 꼭 시장 볼 때만 써. 노트에 주스 레시피 정리해 뒀어. 주스마다 들어가는 재료나 양이 다른 거 알지? 날마다 폐점 전에 매출 장부 정리하는 거 잊지 말고. 임금은 시간당 삼천 원. 오케이? 참, 주스 만들기 전에 꼭 손 빡빡 씻기다?>
시급 삼천 원? 엄마가 아니고 마녀라니까. 나는 메모지를 구겨 던졌다. 현금 카드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나면서, 다른 용도로는 사용하지 말라고? 일을 안 하면 용돈은 없다는 거지. 중학교 땐 정 용돈이 아쉬우면 가게에 나와 카운터 일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때 그 호락호락하던 내가 아니었다.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부터 하고 싶었다. 엄마 가게를 나와 병원 내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현금 지급기에 카드를 밀어 넣고 있을 때였다.
“혹시,‘불량한 주스 가게’사장님 아들?”
계산대 앞에 서 간호사 한 명이 기웃거리며 다가왔다. 손에는 토마토 주스 병을 든 채. 말을 거는 게 성가셨다. 퉁명스레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맞구나! 전에 본 적 있어요. 나 거기 주스 중독이거든. 휴, 사장님 퇴원할 때까진 참아야지 뭐. 또 봐요.”
‘이윤선’이라고 써진 이름표를 단 간호사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돌아섰다.‘퇴원’이라니?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런데 엄마가 여행을 어디로 간다고 했더라? 멍 때리고 서 있었더니 현금 지급기가 제한 시간이 지났다고 경고음을 냈다.
편의점을 나와 간호사실까지 오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가 천 리처럼 느껴졌다.
“결석이 작으면 수술 안 하고도 치료가 가능한데, 학생 어머니는 좀 큰가 봐. 수술이 내일로 잡혀 있네.”
수술?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이윤선 간호사가 내민 메모를 받으며 멍하니 되물었다.
“수술이라고요?”
“심각한 수술은 아니야.”
그 음성이 아득하게 멀리 들렸다. 삼 년 전. 아빠 수술을 앞두고도 병원에선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아빠는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이체질이라고 했다.
처음엔 아빠가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실감이 안 난다. 특이체질이라니. 아빠는 왜 그리 운이 없었을까? 왜 우리 가족만 그런 일을 당해야 했던 거지? 억울하고 분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뭔가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책상 위 전화기가 울렸다. 나는 목례를 하고 간호사실을 나왔다. 아빠 수술 때는 엄마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엄마 수술 동의서엔 누가 사인을 했을까? 조용한 복도에 내 샌들 끌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창턱에 놓인 군청색 여행 가방 덕분에 엄마 자리를 금세 찾았다. 엄마는 똑바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4인용 병실 안은 면회 온 사람들과 간병인들로 북적였다. 엄마 곁에도 간병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린 채 앉아 있었다.
나는 병실 앞에서 머뭇거렸다. 엄마한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돌아서며 생각했다. 엄마가 먼저 거짓말을 했으니 나도 모르는 척해 주겠어. 그게 서로에게 공평한 거야.
병원을 나오기 전에 다시 간호사실을 찾았다.
“엄마한테 내가 알게 된 걸 알리지 말아 주세요.”
이윤선 간호사는 우리 모자가 콩가루 사이임을 눈치 챘는지 어색한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휴대폰 번호 알려 주고 가요. 혹시 모르니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파란 불이 깜박이고 있었다. 중간도 못 가서 불이 바뀌었지만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택시 한 대가 빵빵 대며 나를 피해 갔다. 멈칫, 뒤로 물러섰다. 중앙선 위에 꼼짝 없이 서 있게 됐다. 전조등을 밝힌 차들이 모두 내게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기분이 거지 같았다. 여행 간다고 거짓말을 했으면 들키지나 말던지. 삼류 드라마 찍나? 줄지어 달려오는 불빛들을 눈이 아프도록 노려봤다. 문자가 오지 않았으면 두 눈이 잠자리 눈처럼 터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여기서 죽쳐야 되는 거야!>
상후였다. 그제야 두 녀석이 당구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생각났다.
<알아서 해결 해. 나중에 갚을게.>
글자를 찍어 보내고 전원을 껐다.
밤늦게 외삼촌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건호야, 별일 없지. 저녁은 먹었고?”
술을 마셨는지 혀 말린 소리였다. 삼촌은 다른 때와 달리 엄마 안부를 묻지 않았다.
“삼촌, 엄마 여행 갔어.”
“……그래? 네가 이제 다 컸으니까 마음 놓고 여행을 갔구나. 자식 신통하다. 신통해……. 잘 자라. 또 전화할게.”
삼촌은 음성이 이상해지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른 새벽에 갈증이 나서 깼다. 모기가 있었는지 팔뚝 여기저기가 근질거렸다. 목이 쓰리도록 진한 오렌지 주스, 엄마가 만들어 주던 그 맛이 그리웠다.
집을 나와 터벅터벅 걷다 보니 가게 앞이었다. 컴컴한 가게 안에는 과일 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냉장 진열장도 살아 있음을 과시라도 하듯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딸깍, 스위치를 올렸다.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풍경이 왠지 낯설게 느껴져서 한참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아빠가 갑자기 죽은 뒤, 엄마는 살던 아파트를 팔았다. 그리고 이곳에 주스 전문점을 냈다. 가게는 아주 작았다. 카운터 앞에 의자가 세 개. 테이블도 일렬로 세 개.
냉장 진열장을 열었다. 손질된 과일들이 종류별로 밀폐 용기에 담겨 있었다. 처음엔 그저 오렌지 주스 한 잔만 만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시작을 하고 보니 멈춰지질 않았다. 오렌지, 딸기, 바나나, 토마토, 키위, 파인애플…….
믹서에 과일 조각을 넣는다. 거기에 레시피에 적힌 대로 물 조금, 우유와 시럽 약간. 얼음을 넣은 뒤 뚜껑을 덮고 스위치를 누른다. 그러면 위이이잉 소리가 나며 내용물이 갈리기 시작한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노트엔 식감을 위해 알갱이가 약간은 씹히게 갈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난, 넋 놓은 채 있다가 번번이 정지 버튼 누르는 시점을 놓쳤다.
만든 주스들을 조리대 위에 일렬로 늘어놨다. 시간은 아직 오전 아홉 시. 가게를 여는 시간은 두 시간이, 엄마 수술 시간까지는 세 시간 삼십 분이 남았다. 나는 그 주스들을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한 잔, 한 잔 마셨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딸기 주스도 바나나 주스도 엄마가 만들어 주던 맛이 아니었다. 시럽이나 우유가 지나치게 많거나 적게 들어갔고, 너무 묽거나 진했다.
첫 손님, 그러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선 건 삼십 대 중반의 남녀 한 쌍이었다. 남자는 사과 주스를, 여자는 파인애플 주스를 주문했다. 테이크아웃이었다. 잔뜩 얼굴을 구긴 채 꾸물꾸물 주스를 만들어 냈더니, 두 사람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돈을 지불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갔다.
얼른 여기를 떠야 해. 서둘러 조리대 위를 치우는 사이에 또 손님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레시피 노트를 이리저리 뒤적여야 했고 속으로 으아아악! 비명을 질러댔다. 믹서에 넣다가 떨어뜨린 과일을 밟아 찍 미끄러지고, 시럽을 치다가 엎지르고…….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다.
엄마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광경을 떠올리면 심장이 호두처럼 쪼글쪼글해지는 것 같았다.
“가게 안이 좀 덥네.”
한 손님이 투덜댔다. 그제야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엄마 생각에 뼈 속까지 떨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다. 정신없도록 빨리.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어 이윤선 간호사가 문자를 보내 왔다. 엄마가 마취에서 깨어나 방금 회복실로 옮겨졌다고. 긴장이 풀렸다. 나쁜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선생님, 저희가 중현이를 때린 건 중현이가 우리를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배신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현이가 우리한테 맞을 때, 빌거나 사정하지 않는 걸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용기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습니다.>
손님이 뜸해진 시간에 엄마 노트북으로 반성문을 썼다. 좀체 진도가 안 나갔다. 몇 시간째 A4 용지 반 장 분량도 못 채우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집을 나설 땐 어스름하던 하늘이 청과물 시장에 도착했을 땐 환하게 밝아 있었다.
새벽 시장은 거대한 생명체 같았다. 과일을 싣고, 나르고, 흥정하는 사람들 속을 뚫으며 걷자니, 눈가에 달려 있던 졸음이 싹 달아났다.
마주오던 사람과 쿵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그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사과 상자를 받쳐 주다 깜짝 놀랐다. 근육질의 팔뚝이 오일을 바른 듯 번들거려서 청년인 줄 알았는데 노인이었다. 땀이 뚝뚝 흘러내리는 그 이마엔 주름이 자글거렸다.
할아버지가 박스를 풀어 진열한 것들 중엔 빨갛고 윤기 도는 건 없었다. 하나 같이 병자 얼굴처럼 거칠고 누르퉁퉁했다. 모두 불량품 같았다. 괜히 저 할아버지를 쫓아 작고 허름한 가게로 들어와 버렸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더니 밖을 내다보던 할아버지가 담배를 끄고 다가왔다.
“겉만 그럴싸하다고 좋은 게 아냐. 오히려 그런 놈들이 맛은 형편없는 경우가 많거든.”
할아버지가 사과를 한 알 골라 내밀었다. 그 중 볼품없어 보이는 놈이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하고 즙이 많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배어 나와 혀 돌기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짱 맛있어요! 나는 엄지를 세워 보였다. 할아버지도 금니가 보이게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장을 본 후에 택시로 돌아오면서 상후한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만나자. 될 수 있으면 11시 이전에.> 곧바로 상후한테서 응답이 왔다. 피시방에 있으니 그리로 오라고. 과일들을 가게에 내려놓고 피시방으로 갔다.
상후는 눈이 게게 풀린 채 연신 하품을 했다. 또 피시방에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함께 있다던 민기는 화장실에라도 갔는지 안 보였다. 나는 사만 원을 나무젓가락이 꽂힌 컵라면 그릇 옆에 툭 떨어뜨렸다. 하루 반나절치 알바 임금이었다. 상후는 날 옆자리에 끌어 앉히더니 오토바이 날치기 얘기를 꺼냈다.
“한 사람은 망보고 둘이서 오토바이를 빼앗기로 했어.”
“……난 빠질래.”
상후가 왜냐고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우리들은 주변의 건방진 놈들을 어떻게 제압해 왔는지, 꼴통 교사들을 어떤 식으로 속이고 무시해 줬는지 살을 붙여 떠벌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나 가족 얘기는 서로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꿈이나 미래 계획 같은 건 더더욱. 내가 오늘 새벽에 청과물 시장에 갔었고, 거기서 심장으로 따뜻한 피가 스며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상후는 어떤 얼굴을 할까. 아마 그럴 것이다. 미친 놈, 너 맛이 갔구나.
“너도 우리랑 깨지고 싶어?”
고개를 돌리니 민기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중현이 입가에 토마토 주스처럼 흘러내리던 피가 떠올랐다.
“됐어. 맘대로 해. 대신 너랑은 이제 쫑이다.”
상후 말투는 차가웠다.
“다음에 우리 만나거든 알아서 기는 게 좋을 거다.”
민기가 확인 사살을 날렸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가게를 열기 전에 아침에 장 본 과일들을 손질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외상을 요구하는 깍두기 아저씨들. 메뉴에도 없는 코코넛 주스 같은 걸 찾는 명품 족 아줌마들……. 그런 손님들이 날 열 받게 했다. 다행히 진상 손님은 어쩌다 가끔이었지만. 일주일이 흘렀건만 주스 만드는 실력은 늘지가 않았다. 방심하고 있다 보면 학생 같은데 왜 학교에 안 가고 여기서 일을 하느냐, 꼬치꼬치 쓸데없는 호기심을 남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불량한 눈빛으로 째려 줬다. 찔끔해서 돌아 나갈 때까지.
“여기 사장님 아프시다던데 수술은 잘 받으셨나?”
괜히 오지랖 넓게 아는 척을 하는 병원 직원들한테는, 쌩을 까 주었다.
“사장님, 여행 가셨는데요.”
가끔 이윤선 간호사가 오면 그녀가 주문한 주스 위에 캡을 씌우기 전에 알록달록한 토핑 가루를 아낌없이 뿌려 줬다.
비가 내리는 날은 손님이 뜸하다. 빗방울이 끊임없이 유리벽 위로 흘러내린다. 꼭 물방울 커튼이 드리워진 것 같다. 게임이나 할까,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검은 상복 차림의 할머니였다. 1층 후문에 장례식장이 있어서 가끔 조문객들이 오긴 했지만 유족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우산꽂이에 꽂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뭐로 드릴까요?”
할머니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메뉴를 살폈다.
“글쎄……. 종류가 너무 많아서.”
“신종 플루 예방되는 키위 주스로 드릴게요.”
키위가 그 전염병을 예방하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언젠가 엄마가 손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을 뿐이었다.
적당히 익어 몰캉몰캉한 키위 조각을 믹서에 넣고 있을 때였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내다보던 할머니가 불쑥 입을 열었다.
“눈물이 안 나와.”
혼잣말인 줄 알았다. 묵묵히 믹서에 시럽을 치고 뚜껑을 닫았다.
“남들이 독한 할망구라고 쑥덕대는 거 같아 바늘방석이야.”
“할아버지랑 사이 안 좋으셨어요?”
계속 잠자코 있기 뭐해 말을 받았다.
“그 영감탱이 속도 어지간히 썩혔지. 내 속에 이 창자가 다 문드러졌을 거야. 여태 살아 있는 게 용하다니까. 이따가 화장터에서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까 봐 걱정이야.”
할머니는 손에 쥔 손수건을 조몰락대며 한숨을 쉬었다. 아빠의 유해가 화장장 불 속으로 들어가던 생각이 났다. 엄마는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먼저, 화풀이부터 하세요.”
나는 컵 받침 위에 키위 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올려놓았다.
“화풀이?”
“할아버지 앞에서 그동안 열 받았던 일을 다 따지는 거예요. 옆에 누가 있든 말든 안면 까고 욕도 막 해 주시고요. 그러고 나면 혹시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거참 고약한 주스 가겔세…….”
할머니는 검은 씨앗들이 동동 떠 있는 초록빛 키위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주스를 다 마신 할머니는 테이블 위에 지폐를 올려놓고 기운차게 일어섰다.
“잘 마셨어.”
문 손잡이를 잡은 채 할머니는 씩 웃었다. 우산을 쓴 할머니가 유리 칸막이 밖으로 멀어지는 걸 지켜다가 중얼거렸다.
“여긴 불량한 주스 가게거든요.”
고딩 서너 명이 시시덕거리며 지나갔다. 쫄딱 젖은 채 우산도 없이. 나는 왜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을까. 바보 같이, 한심하게. 아빠는 내 속을 썩이지도 않았는데.
저녁 햇살이 가게 안으로 비쳐 드는 늦은 오후, 내가 가게를 맡은 지 열이틀 만에 엄마가 돌아왔다. 조금 핼쑥해진 얼굴로. 긴 소매 블라우스로 가을 분위기를 풍기며.
엄마를 테이블 앞에 앉히고는 돌아서서 사과 주스를 만들었다.
“장사는 할 만하던?”
대꾸 없이 사과 주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는 그 주스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톡톡 털어서 마셨다.
“여행 어땠어?”
“응. 좋았어, 아주.”
“자퇴하고 주스나 팔까? 학교 다녀 봤자, 어차피 변변한 대학도 못 갈 건데.”
“학교를 대학 가려고 다녀? 지식도 쌓고 좋은 친구도 사귀려고 다니는 거지.”
엄마한테서 그런 교양미 넘치는 말이 튀어나오다니! 결석 떼어내면서 뇌 이식까지 했나. 실실 웃다 보니 상후와 민기 얼굴이 떠올랐다. 그 두 녀석에게 줘 터져서 불량이 된 내 얼굴도 함께……. 웃음이 싹 가셨다.
“엄마, 왜 나한테 가게를 맡겼어? 내가 말아 먹었으면 어쩌려고.”
엄마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널 믿고 싶었어.”
목 안쪽이 박하사탕이라도 문 듯 싸해왔다. 억지로 말을 돌렸다.
“엄마도 이제 알바 써. 이왕이면 여대생으로. 면접은 내가 볼게.”
엄마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선 연락 없어?”
“날마다 반성문 절절하게 써서 보내고 있는데 감감 무소식.”
사실 난 감감 무소식인 편이 좋았다.
<저는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아빠가 안 계시다고 동정받거나 위로받는 건 싫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참았습니다. ……전 제가 강하고 멋지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어요. 전, 겉만 그럴싸하고 맛은 형편없는 불량 사과 같은 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잘해 낼 자신이 없습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선생님들께 고분고분해지는 것도……. 과연 이런 제가 학교로 돌아갈 자격이 있을까요?>
다음 날, 담임한테서 학교로 복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빡친다, 진짜! -끝-
제9회 푸른문학상 당선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