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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료바구니(기독) 원문보기 글쓴이: 자료바구니
마귀를 부수는 능력
나는 귀신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표현에 있어서도 악한 영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귀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귀신이라는 언급이 훨씬 더 직접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아무튼 그러한 영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의 중심이 주님이시며 악한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의 중심이 주를 사모하고 예배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귀신을 부수고 이기는 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나친 전투 중심의 신앙은 억압에서의 자유함이 있기는 하나 항상 긴장이 있게 된다.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아래서 바로 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을 탈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귀를 이기기는 하였으나 주님과의 누림과 연합은 알지 못하였다.
주를 아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인데 그들은 마귀와 싸우고 이기는 데에만 급급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대다수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데에 실패하였다.
신앙의 중심은 주를 아는 것이다.
마귀를 알고 부수는 것은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멈추어 있으면 안 된다.
물론 영적 전쟁을 도외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서는 눌림의 원인을 알 수 없으며 해방도 자유도 없다.
바로와 그의 군사들을 무찌르지 않고 가나안에 직접 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비율은 중요하다.
너무 전투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악한 영들은 사람의 생각을 알며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제로 악한 영들은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모른다.
그래서 실제로 물질계에 나타난 것만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말이나 글을 보고 그들은 난리를 꾸미게 된다.
요즘에 이상하게 귀신, 악한 영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되었다.
조금 조심스럽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반응이 오게 된다. 또한 악한 영들로부터 공격도 많이 받게 된다.
악한 영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거나 들을 때의 각 사람이 느끼는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첫째 : 무섭고 싫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 귀신이나 악령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두렵고 꺼림칙하다.
둘째 : 속이 시원한 사람이 있다. 악한 영들의 계략이나 활동을 알고 대처하는 방법을 들으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셋째 : 아무 감각이 없는 이들이 있다.
넷째 : 화가 나는 사람이 있다. 속에서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하는 느낌과 함께 거부감이 온다. 이상하게 자꾸 짜증이 올라온다.
다섯째 :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머리가 아파오거나 아니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자꾸 졸립거나 아니면 멍해져서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간단하게 설명하자.
첫째의 사람은 영이 눌린 사람이다.
이러한 이들은 악한 영들에게 눌려 있기 때문에
싸움만 생각해도 무섭고 떨린다.
이들은 혼자 있을 때 특히 눌리고 무서워한다.
두 번째의 사람들은 영이 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느 정도 영감이 있다.
그러나 영력이 약하며 영적 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에
속으로는 악한 영들을 부수고 이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자주 속고 눌린다.
그러다가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서 깨달음이나 영력을 얻게 되므로 힘이 생기고 실제로 악한 영들이 기가 죽으며 영이 강해진다.
세 번째 의 사람들은 영감이 거의 마비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영의 느낌, 체험들이 거의 없으며 세상을 사랑하고 육적인 만족을 구하는 경향이 많다.
네 번째의 사람들은 악한 영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는 이들이다.
예를 들어서 분노나 미움이 많다든지, 고집이 강한 편이라든지.. 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평소에 악한 영들에게 속으며 악한 영들이 심어주는 생각이나 감정에 도구가 되는 적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속에서 숨어있는 악령이 그러한 마음을 심어주게 된다.
다섯째의 사람들은 평소에 악한 영들이 넣어주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는 편이다. 주로 공상이 많거나 잡념이 많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고 체계를 악한 영들이 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것을 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세하게 나누면 길지만 아무튼 대략 그러한 반응들이 나타난다.
대체로 자기 안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동이나 느낌들의 근원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에 영적 무지로 인하여 악한 영들에게 속고 눌리는 이들이 너무나 많고, 그래서 이것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름답고 행복한 기도의 세계>를 쓰고 있다가 중단하고 <대적하는 기도>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여기에 글을 올렸는데 그 순간부터 치열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사소한 일에 시험이 들고 몸이 아프게 되었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이 아프고 심령이 막혀버렸다.
방심하고 있다가 당한 일이었는데, 일단 당하고 나면 물 속에 깊이 잠겨버린 것 같기 때문에 혼자서 헤쳐 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느끼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하고 있었다.
꼭 미칠 것 같고 발작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1분 1초가 지옥과 같다. 그 증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굳이 설명하자면 군대에서 진통제 없이 발톱을 뽑은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고통의 천배쯤 된다고 할까..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도와달라고, 살려달라는 메일이나 전화는 끊이지 않는다.
아내와 애들은 나를 위한 기도에 들어갔다. 악한 영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을 그들은 느끼게 되었다.
윤미 자매가 우리 집에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러 오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곤 한다.
그런데 그녀는 깜짝 놀랐다.
우리 집의 근처에 오기만 하면 항상 평안과 기쁨이 있는데 이 날은 집 가까이 오기만 해도 어두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집회를 했을 때 수천 수만의 귀신들이 우리 집을 포위하고 내가 거의 죽을 정도가 된 적이 있었다.
윤미 자매가 느낀 것은 거의 그러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상하게 느꼈다고 한다. 목사님이 집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한 공격이 있는 것일까? 하고..
자매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나의 상태를 선명하게 느꼈다.
어느 정도만 영성이 훈련되면 사람을 보지 않고도 상대방의 상태나 어떤 장소나 공간의 영적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과 울면서 사무실에서 나를 위해서 기도했다. 목사님을 회복시켜달라고..
그리고 기도하며 요엘서를 펼쳤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 그대로가 나타나 있었다.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의 날이라. 많고 강한 자들이 쳐들어오고..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전반부는 정말 비참한 메시지였다.
후반부에는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찢으라..
그렇게 할때 재앙이 물러가리라.. 하는 메시지였다.
윤미와 아내, 아이들은 울면서 기도하고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고..
그렇게 며칠 있다가 나는 회복되었다.
며칠 전에는 빨리 세상을 뜨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는데 회복이 되어서 물속에서 빠져 있다고 바깥으로 나오고 나니 엄청나게 화가 났다.
잠깐 방심했다가 또 한 칼을 맞았구나 싶으니 정말 화가 났다.
나는 글을 쓸 때 많은 공격을 받는다.
영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는 것이나 마귀들이 공격하는 것이나.. 이러한 부분들이 허공에 뜬 구름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티브이나 신문에 난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영적 세계는 정말 너무나 선명하고 확실한 것이다.
마귀의 역사, 하나님의 은총..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결정짓는 실제적인 설계도이다.
아내와 데이트를 하던 청년시절에 어느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었다.
탁월한 강해설교자로 소문난 사역자가 귀신론을 강해하고 있었다.
아내는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어서 예배가 끝난 후에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려요?
아내는 대답했다.
다 맞는 이야기잖아요. 성경적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맞기는 뭐가 맞아요. 정확하게 100% 거꾸로 가르치고 있는데..
나는 성경을 펼치고 그의 논지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리고 말했다.
논리적으로 성경을 들어서 설명하는 것은 옳아 보이지만
항상 반대의 시각으로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한 거에요..
머리가 좋은 사람이 논리적으로 성경의 문맥을 들어서 설명할 수는 있어요.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청중의 감흥을 일으킬 수도 있고..
하지만 귀신론.. 영적 전쟁.. 이런 분야는 머리로 해결되지 않아요.
그것은 체험의 영역이지 논리의 영역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영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설명을 하고 가르치는 것은
나중에 그대로 다 심판의 대상이 되는 거에요..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몹시 놀랐다.
지적인 이들은 자신의 논리로 대부분의 사람들을 납득시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영적 경험이 있는 이들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이론에서 나오는 것인지 실제에서 나오는 것인지 안다. 그냥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에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사역자가 최근에 영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로 지적 사역을 하시는 분들은 몇 십년 동안 사역을 하다가 지치고 한계에 오면 영성을 사모하고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분명한 것은 영적 전쟁이나 영적 세계의 일들은 실상이며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적인 싸움이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있는 한 마귀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속을지 모른다.
멍청하게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 목회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자매에게 붙어있는 귀신을 쫓아주고 집으로 밤늦게 왔다.
그리고 집에 오는 순간에 갑자기 내가 쫓아낸 귀신이 웃는 것이 보이더니 아들 주원이가 넘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서 주원이는 두달동안 기브스를 하고 지냈다.
이것이 장난인가? 아니다. 실제다. 이것은 실제로 삶이다.
악한 영들은 곱게 물러가지 않는다.
특히 세상을 사랑하며 주님께 헌신되지 않은 이들은 아직 마귀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마귀들은 그들에게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곱게 나가지 않고 각종 재앙이나 사고를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 드려지지 않는 이들이 무사하고 멀정한 것은
주님께서 은혜가 그들을 기다려주시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언제든지 그러한 이들을 멸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주님은 천사를 명하여 그들을 보호하게 하시며 주님께로 돌이키도록 마음에 감동을 주신다. 물론 무한정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께 드려지지 않은 영혼은 마귀에게 속해있다.
악한 영들은 그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할 때 내버려둔다.
그러나 그들이 악한 영들을 배반하고 그들의 수하에서 벗어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려 하는 것 같으면 악한 영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며 그것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강하여 진정으로 주께 속하려 하는 자가 아니면 주님께 속한 길을 오래 동안 가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재앙이나 대형 사고와 같은 것은 악한 영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구 지하철 사고와 같은 것도 그렇다.
어느 지역에 일정 분량의 분노와 미움, 원망이 있으면 이것은 악한 영들이 역사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래서 일정한 분량이 차면 사고를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80년대에 광주 등의 호남 지역에서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많았다.
이것도 비슷하다. 어느 지역에서 일정 분량의 한이나 억울함 분노가 내재되어 있으면 그러한 에너지는 재앙을 끌어당기게 된다.
한이 많은 한국에 많은 전쟁과 재난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같은 원리이다.
마귀들은 어떤 이들은 사로잡으며 어떤 이들은 누른다.
마귀는 성품이 강한 자들을 사로잡아서 혈기를 부리게 하고 남에게 고통을 주고 악한 일을 하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을 잊어버리지만 당한 이들은 그것을 잊지 않는다.
마귀는 또한 마음이 선하고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누른다.
강퍅한 자들을 사용하고 그들을 눌러서 혈기를 당하게 하고 억울함을 일으키고 억압된 분노를 만든다. 그것이 한이다.
그러므로 선하고 약한 이들의 분노와 증오가 다시 재앙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악한 이들은 더욱 잔인하고 악하게 남들을 괴롭히는 마귀의 도구가 된다.
약자는 더욱 더 억울함과 상처가 쌓이게 된다.
이것이 마귀가 일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받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는 가해자다.
주님을 찌른 것은 남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위로보다는
반성을 통해서 회복된다.
심령이 약한 자는 마귀에게 눌리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기 반성을 통해서 회복되고 강건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귀는 징벌의 마귀가 있고 쾌락의 마귀가 있다.
먼저 쾌락의 마귀가 유혹을 하고 쾌락을 주며 징벌의 마귀는 나중에 온다.
쾌락의 마귀는 먼저 미끼를 사람의 속에 깊이 박아놓고
징벌의 마귀는 그 줄을 끌고 다니면서 사람을 괴롭힌다.
물고기를 낚는 것과 똑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쾌락을 얻었기에 자기 안에 심겨진 미끼를 버릴 수 없다.
마귀들이 일하는 방식은 어떤 원리가 있으며 체계가 있다.
바울은 우리가 그의 궤계를 모르는 바가 아니라고 말했다.
마귀는 이렇게 그들의 전략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며 그들의 작전을 드러내는 사역자들을 치열하게 공격한다.
5,6년 전에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이러한 선명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지만 여기 저기 사고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영적 원인이 무엇일까 기도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이런 꿈을 꾸었다.
한없이 넓은 광장이 있었다.
그 광장의 중앙에 황금빛의 여우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10미터는 넘을 것 같았다.
그들은 마귀들의 대장인 것 같았다.
그 여우 밑에 수많은 동물들, 기괴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 귀신들이 경배하는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황금빛 여우 한 마리가 말했다.
우리가 맡고 있는 지역에서 저 교회가 참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누가 저 교회를 파괴할 자가 없느냐.. 묻는 것이다.
여러 귀신들이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는 저렇게 하겠다고 보고를 드리고 있었다.
여우는 한참을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절대로 그 교회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거기에는 강한 능력이 있으니 중상을 입을 것이라고 바깥을 포위하라고 했다.
그리고 집에까지 따라가서 하나 하나씩 공격을 하라고 했다.
나는 거기까지 꿈을 꾸고 깨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깬 것도 여전히 꿈이었다.
나는 꿈에서 성도들에게 말했다.
방금 이런 꿈을 꾸었으니 조심하라고. 깨어있으라고.. 그리고 지금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바깥이 포위되어 있으니 지금 무장을 하고 가라고..
그런데 평소에 말을 잘 듣지 않고 깔짝거리는 여집사님이 지금 집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렸다. 지금은 안 된다고.. 조금 있다가 가라고.. 지금 위험하다고..
그러나 집사님은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는데 그녀가 바깥에 나가는 순간 어디선가 꽝! 하는 총소리와도 같고 무엇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은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그녀가 악! 하고 쓰러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전화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전화를 받으니 꿈에서 총에 맞은 그 여집사님의 남편이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곳은 병원의 응급실이었다.
갑자기 멀쩡하던 그녀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아파서 죽겠다고 해서 응급실로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꿈으로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프다고 온갖 엄살을 부렸지만 나는 마귀가 장난치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를 안심시키고 기도를 해주었다. 그녀는 곧 회복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적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실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질세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미 그들에게 포로가 되어 탐욕과 무감각 속에서 살기 때문에 영들은 나타나지 않지만 진리와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치열하게 나타나서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나는 화가 나서 <대적하는 기도>에 대한 책을 빨리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동안 이놈들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까 귀찮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영역을 더 좁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공간에 임하시는 주님>을 쓸 때도 정말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개념적인 책을 쓸 때 그들은 별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공간에> 천국을 누리고 경험하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위협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공격했는지 모른다. 많이 아프고 한동안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고.. 많은 곤경을 치렀었다.
내가 그 책을 쓰면서 버틴 것은 느헤미야서의 말씀이었다.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하려 할 때 온갖 방해공작이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 편지를 보내며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온갖 공격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으로는 건축을 했다.
그리고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성은 완공되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나온다.
<성 역사가 오십이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6:15,6)
나는 알았다.
마귀는 일을 이루지 못하도록 온갖 공격을 하지만 일단 완성이 되면 그들은 낙담하며 떠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극심한 공격 속에서 그 말씀을 붙들고 책을 썼고 마침내 완성했을 때는 기뻐서 울었다. 살아서 무사히 이것을 마쳤구나.. 하고 기뻤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악한 영들은 이를 갈고 떠나서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렸다.
아직도 내게 많은 전쟁이 있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기고 끝나면 그들은 낙담하며 떠날 것이다. 나는 그 승리를 기대한다.
어떤 이들은 묻는다.
목사님은 어떤 때는 마귀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어떤 때는 아주 심각하게 말씀하시니 어떤 것이 맞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우리가 깨어있다면 마귀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잠들어있고 취한 듯이 산다면 우리는 속으며 패배하게 된다.
또한 마귀는 실제적인 막강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선포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힘을 잃어버린다.
우리의 선포가 그들을 박살내는 것이다.
어떤 자매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낼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귀신을 쫓아낸다니까 이 자매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녀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자매이다. 신학대학도 졸업한 자매이다.
다만 영성인의 앞에 가면 자기의 속에 숨어있는 영들이 정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나를 보기만 했는데 마구 울면서 싫어. 싫어. 안 나갈 꺼야! 하고 소리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가 뭐 하는 사람인데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가 귀신을 쫓아내려고 그녀의 눈을 응시하자 그녀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 더러운 귀신아..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말했다.
기도를 마친 후에 나중에 그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를 보았을 때 그녀는 내가 만만하게 보였다고 했다.
한번 해보자. 싸울 만 하다.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느낌이 아니고 그 속의 악한 영이 그런 느낌을 준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을 하자 맥이 탁 풀리면서 낙담이 되고 눈물이 났다고 한다.
눈물이 나면 그것을 통해서 악한 영들이 나가게 된다.
귀신은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위협을 하며 강한 상대에게는 울면서 하소연을 한다. 그래도 호통을 치면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마귀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악한 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무서워하는 이들은 마귀에게 지속적으로 잡혀 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귀에 대해서 분노가 생기고 화가 나는 사람은 곧 마귀가 도망가게 된다.
싸움과 똑 같다.
화가 나면 이긴 것이고 무서운 것은 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시인과 선포가 악한 영들의 힘을 아주 약화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악한 영들아.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다.
너희들은 파괴되었다. 주님이 승리하셨다. 할렐루야!
이러한 고백들은 마귀에게 고통을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울면서 떠나가는 것이다.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그것은 실제적인 지식을 준다. 그것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실제로 적용을 하게 되면 그 결과와 열매를 즉시로 얻게 한다.
천신만고 끝에 <지금 이 공간에..>를 썼지만 책은 별로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책을 사건 안 사건, 또는 읽기만 하고 실제적인 방법을 적용하지 않아서 자신에게 실제가 되지 않던, 그것은 나의 사명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각 사람의 문제이니까.. 주님께서 나에게 나중에 책임을 물으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아무튼 이제 다시 이 괘씸한 놈들을 혼내주기 위해서 전쟁기도에 대한 책을 시작해야겠다.
싸움이 있겠지만 며칠 혼이 난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다. 최후의 승리자는 주님이시다.
마귀는 부서지고 그들의 계략은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될 때 많은 속박에 있는 이들이 속임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가게 될 것이다.
세상의 쾌락과 허무한 데에 묶여있는 이들의 마음이 주님에게로 가게 될 것이다.
사람은 오직 주님을 예배하고 사모하고 사랑하도록 지어졌다.
오직 거기에만 기쁨과 만족이 있다.
아무리 마귀가 방해하더라도
주님께 속한 주님의 사람들은
굳세게 즐거워하며 사모하며
그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