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시청사 샘순이 ・ 2023. 10. 9. 0:00 URL 복사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오슬로 시청사 오슬로 시의 행정 업무를 관장하는 청사로 매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노벨상의 다른 부문 시상식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리지만 평화 상만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시상하는데 이는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지금의 시청사 건물은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해 세운 전 물로 1931년 착공에 들어갔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1950년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좌위 대칭형 건물은 오슬로의 피오르를 바라보고 있으며 건물 전면에는 오슬로의 상징인 백조 상이 있는 분수가 있다 노르웨이와 오슬로 시의 신화와 역사 등을 주제로 한 부조가 늘어서 있는 입구와 화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된 홀이 나온다 소박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무척 화려하다 뭉크의 작품 LIFE 가 걸려 있는 2층의 방은 뭉크의 방이라고 부르는데 오슬로 시민들은 네 곳에서 결혼 서약을 하기도 한다 건물 1층의 대형 홀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며 2000년에는 우리나라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오슬로 시청사 옆에 있는 노벨 평화 센터는 노벨 평화상과 역대 수상자들에 대한 역사와 자료를 전시한다 영국인 건축가 데이비드 아디 아예의 설계를 바탕으로 옛 역사 자리에 지어졌다 건물의 외관은 고전적이나 안으로 들어서면 최신 영상과 조명 기술을 활용한 유니크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센터의 숍에서는 수상자들과 관련된 엽서나 책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시민들에게 개방된 대표적인 열린 공간이다 전 세계 시청사 건물 중 관광객들에게 중요 시설을 무료로 자유롭게 개방하는 곳은 오슬로 분이라는 사실 외관부터 내부까지 모두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독립한 조국에 바치는 노르웨이 예술가들의 역작이라는 것 생각한다면 시청사는 시민들의 위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정기적인 휴관이 가끔 있으니 방문 전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가면 도음이 됩니다
노벨상의 탄생 1895년 11월 27일 파리의 스웨덴 노르웨이 클럽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스웨덴의 사업가 알프레드 노벨이 마지막 유언장에 서명을 한다 바로 이 유언에 의해 노벨상이 탄생했다 현금화할 수 있는 내 남은 재산 모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다 유언집행자가 안전한 유가증권에 투자한 자산으로 재단을 만들고 매년 그 이익이 그전 해 인류를 가장 큰 혜택을 가져다준 사람들에게 상금의 형식으로 분배될 것이다 그 이익은 5개 분야에 균등하게 나누어진다 1/5은 국가 간 형제애 상비군의 폐지나 축소 평화 회의의 개최와 진흥을 위해 최대 또는 최고의 일을 한 사람에게 준다 평화의 챔피언은 노르웨이 의회가 뽑은 5인의 위원회가 선정한다 나의 특별한 바람은 상을 수여함에 있어 후보자의 국적을 결코 따져서는 안 되며 스칸디나비아인이 건 아니건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벨 평화상의 의미 현재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평화 상은 300여 개에 달한다 그중에서 노벨평화상이 가지는 권위와 명성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노벨평화상은 1896년 알프레드 노벨의 유증에 의해 개시되어 1901년 최초의 수상자를 낸 이후 한 세기가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거의 매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상으로 인하여 사상 최초로 평화가 매년 정기적으로 수여되는 더구나 엄청난 상금이 걸린 국재 어워즈의 주제어가 되었다 또 1767년 프랑스에서 근대 유럽 최초의 평화상이 제정된 이래 기존의 평화 상이 논문이나 저서 등의 학술적 성과를 주된 대상으로 했다면 노벨 평화상은 각종 운동이나 실천 활동 등에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럼으로써 평화의 지평을 보편적 이상이나 추상적인 이론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개인의 실제적인 행동의 차원으로 확대 시켰다.
세계 최대 무기상이 세계 최고의 평화 상을? 노벨 평화상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왜 죽음의 발명가 죽음의 상인 아라 불리던 세계 제일의 무기상이 세계 최고의 평화 상을 만들었는가? 라는 흥미로운 아이러니와 관련된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노벨이 파괴와 죽음을 대가로 축적한 부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가장 믿을 만한 그거는 베르타 폰 주트너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주트너는 병약한 노벨을 평생 돌봤던 어머니 강렬하지만 짧은 사랑을 나눴던 여인 소피 헤스와 더불어 노벨의 세 여인으로 꼽힌다 노벨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무엇보다 평화에 대한 생각과 방법에 있어 노벨은 주 트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유산의 사회적 환원이나 노벨평화상의 제정은 분명 주트너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현실주의자 노벨은 주트너가 이끌던 당대 평화운동의 기본 전제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군비축소나 철해 조정과 중재에 의해 국제 분쟁이 해결될 수 있을 거가 믿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강력한 무기의 출현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평화를 깨는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라도 군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민간 시민운동보다는 국가 간 집단안보조약에 더 큰 희망을 걸었다 그럼에도 그는 주트너의 평화운동 및 국제 평화단체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노벨평화상의 제정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부측일 뿐 노벨의 속내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았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서는 아주 독특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곳에서 결혼 서약을 하는 커플이 많다 내가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도 여러 커플이 서약을 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행객이 잘 모르지만 아주 의미 있는 장소로 보인다 오슬로의 지조는 백조이다 시청사 입구에 백도의 동상이 있고 분수가 있다. 어는 도시든 시조는 있습니다 이곳 노르웨이 오슬로에도 시조를 도시를 상징하는 새로 시청사 앞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