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행전 8장 1절『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디오그모스)가 있어(에게네토)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디에스파레산)』
사울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율법주의자들이 바라볼 때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단이었다. 분명히 율법 속에서 메시야를 발견할 수 있는데도, 율법주의자들은 메시야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율법에서 정한 규율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면,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된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사 속에서 희생제물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희생제물과 제사를 하는 자와는 별개의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을 때마다 죄인을 대신해서 죽어야 하는 희생제물을 통해서, 희생제물이 곧 죄인 자기 자신임을 발견하고,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생각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통해서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에 대해서 깨달았어야 하는데,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사야 53장 6-8절『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디오그모스(διωγμὸς)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려고 추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게네토(Ἐγένετο)는 사건이 발생하다 라는 의미다. 스테반 집사의 죽음을 계기로 유대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고 붙잡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한 그날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위기를 맞게 되었고, 교회에 대한 박해는 한 때로 끝나지 않았다. 그 후로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약 300년간 박해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박해는 분명 교회의 위기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였음을 교회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예를 바로 예루살렘 교회가 보여주고 있다.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는 사도들만 남기고 교인들을 유대와 사마리아 땅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붕괴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사람들은 무서워서 숨어 산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
디에스파레산(διεσπάρησαν)은 뿌리다, 퍼뜨리다 라는 의미다. 개역개정은 흩어지니라 라고 말을 하므로 제자들이 피신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복음의 사명을 받은 제자들이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으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복음을 전하는 모습인 것이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χώρας τῆς Ἰουδαίας καὶ Σαμαρείας)』이 말은 마치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다른 나라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이다. “모든”이라는 말이 불필요한 것이다. 제자들이 복음의 시작지역인 예루살렘을 떠나 남부 지역 유대땅과 북이스라엘 지역이었던 사마리아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 곳은 가장 먼저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이었다. 그리고 바울이 회심한 후에는 바울에 의해 이방 땅인 터키와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유럽 지역으로 확대되고, 아시아로 확대된 것이다. 이후 미주지역이 선교의 중심이 되었고, 전세계로 복음의 씨가 퍼진 것이다.
복음의 씨는 계속 퍼진다. 마치 농사를 하는데, 씨를 퍼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21세기 이전에는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했으나, 오늘날에는 선교사 외에도 인터넷으로도 복음의 씨가 전파된다.
사도행전 1장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복음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증인은 성령과 제자들 심령 속에 임재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비록 제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전하지만, 두 증인은 예수님과 성령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이 임하지 않은 자는 아무리 복음을 전했다고 하더라도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세례를 베풀 때도 아버지와 두 증인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곧 예수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르쳐야 할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 만을 가르친다면 반쪽 짜리 복음이 된다. 부활만 강조해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지만, 의미를 다르게 가르치면 이는 다른 복음이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죄인의 죽음이므로 죄인도 함께 죽었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복음이다. 부활도 죽은 후에 죽은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영적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거듭남의 부활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죽은 후에 죽은 육체가 부활한다고 가르치면, 다른 복음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선교사가 전세계로 파송되는데, 그들이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이는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