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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읍지』 「사근역지도」
GC07200269 |
嶺南邑誌沙斤驛地圖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물/서화류 |
경상남도 함양군 |
근대/개항기 |
김재현 |
[상세정보]
1871년 - 『영남읍지』 제작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1[신림동 산56-1] |
역지|지도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정의]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4책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사근역의 지도.
[형태 및 구성]
제목은 ‘동치10년10월일 사근도역지여선생안급지도(同治十年十月日 沙斤道驛誌與先生案及地圖)’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사근역지도(沙斤驛地圖)」와 「사근십오역도(沙斤十五驛圖)」의 지도 2장이 첨부되어 있다.
「사근역지도」는 사근도(沙斤道)의 본역인 사근역을 그린 지도이다. 사근역은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있었다. 사근도는 찰방이 임명되는 역도로서 관할 범위에 함양-산청-단성-진주-의령 방면의 역로(驛路)가 포함되었다.
「사근역지도」에는 연화산성(蓮花山城) 아래 집무를 보던 아사(衙舍)가 자리하고, 아사의 오른쪽에 마당(馬堂)이 보인다. 그 밖에 거창로, 산청로, 함양로, 안의로를 표시하였다. 「사근십오역도(沙斤十五驛圖)」는 산, 고개, 인근 고을, 도로 등을 그리고 사근역을 비롯한 사근도 소속 15역의 위치를 표시하였다. 사근도의 소속 역은 사근역(沙斤驛)[함양], 제한역(蹄閑驛)[함양], 임수역(臨水驛)[안의], 정곡역(正谷驛)[산청], 신안역(新安驛)[단성], 벽계역(碧溪驛)[단성], 유린역(有獜驛)[삼가], 신흥역(新興驛)[의령], 안간역(安磵驛)[진주], 소남역(召南驛)[진주], 정수역(正守驛)[진주], 율원역(栗元驛)[하동], 마전역(馬田驛)[하동], 횡포역(橫浦驛)[하동], 평사역(平沙驛)[하동]의 15개 역이다.
[특징]
역을 지칭할 때 “함양구화사근역(咸陽仇火沙斤驛)”이라고 하였는데, 『승정원일기』기사에서 “구화역이란 읍 가까이 있는 역으로, 명령을 전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仇火驛云者, 近州治之驛也, 以此傳命令, 故不可無者][숙종 2년 3일자 기사]”라고 하므로, ‘함양군 공문서 담당 성현역’으로 풀이된다. 대부분의 역이 있는 고을의 구화역이다. 역별 기록 마지막에는 15역 전체 역속(驛屬), 마필, 위전·복호의 합계를 내었다. 본역과 속역의 역리(驛吏)·노(奴)·일수(日守) 숫자의 합계는 모두 964명이다. 이 가운데 신역을 직접 짓는 자는 481명이고 나머지는 매명에 2냥씩 내었다. 역아선생안(驛衙先生案) 항목은 역대 찰방 명단으로서 신미년(1871)에 갈린 이헌기(李獻耆)까지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역지(驛誌) 본문에 있는 소속 역과 각 역의 역속(驛屬), 마필, 위전·복호 등과, 봉름(俸廩), 역아선생안(驛衙先生案)을 확인할 때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근역지」 외에도 1895년 편찬된 『영남역지(嶺南驛誌)』에 수록된 「개국504년정월일사근도15참사례성책(開國五百四年正月日沙斤道十五站事例成冊)」이 있다. 이 책에는 찰방의 관황질(官況秩), 본역속, 마액, 위전·복호, 속역별 현황을 기록하였다. 두 역지를 비교하면 19세 말 사근도 운영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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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리 석비군
花山里石碑群 |
역사/전통 시대 |
유적/비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1253-24 |
조선/조선 후기 |
박현열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모아 놓은 조선 후기 관리들의 선정비군. [건립 경위] 조선시대 수동면 일대에서 찰방, 군수,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찰방에 대한 선정비가 4기, 군수 및 관찰사는 각 1기, 기타 1기이다. 특히 찰방에 대한 것이 많은데, 이는 화산리 일대에 조선 시대 사근도를 관할하는 사근역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근도의 본역은 사근역이며 속역은 총 14개였다. [위치]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1253-24번지에 있다. 수동면 면소재지 내에 있으며 동쪽으로 수동파출소가 인접하고 있다. [형태] 2018년 기준 확인된 비석은 총 7기이다. 그 중 귀부와 이수를 갖춘 것 1기, 비개가 없는 것 3기, 가첨석 형태의 비개가 있는 것 3기이다. 비개가 없는 2기는 재질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비대에 장방형의 비신으로만 구성되었다. 가첨석이 추가된 3기는 그 형태나 모양이 다소 다르다. [금석문] 비석 7기의 비명은 모두 확인되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찰방 최후태령 청덕선정비(行察訪崔侯泰鹷淸德善政碑)」[1723년]
「행군수 조후제만 영세불망비(行郡守趙侯濟晩英世不忘碑)」[1834년]
「행찰방 성후우증 영세불망비(行察訪成侯祐曾英世不忘碑)」[순조대]
「행찰방 고후익진 영세불망비(行察訪高侯益鎭英世不忘碑)」[1883년]
「행찰방 장후대규 애민선정비(行察訪張侯大奎愛民善政碑)」[1828년]
「관찰사 조상국영복 애휼역민선정비(觀察使趙相國榮福愛恤驛民善政碑)」[1726년]
「국토보전 숭상궐덕 지방기좌 송정헌공덕비 거민뢰안 민각구전(國土保全 崇尙厥德 地方技佐宋政憲功德碑 居民頼安 珉刻求傳)」
[현황] 2018년 기준 석비군은 총 7기이다. 2006년 분포지도 조사 당시 6기로 표현한 것으로 볼 때, 2006년 이후 비석 1기가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2006년 당시에 돌담 위에 만든 철제 펜스도 모두 사라졌고 2018년 기준 화강암으로 축대를 쌓은 모습이다. [의의와 평가]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일대는 조선시대 사근역이 있던 지역으로 서부 경상남도 역로의 중심에 해당한다. 지금은 사근역터를 찾을 수 없지만 남아 있는 석비군으로 인해 화산리 일대에 사근역이 존재하였던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문화유적분포지도』함양군(함양군·경남대학교박물관, 2006) 문화재GIS인트라넷시스템(http://intranet.gis-heritage.go.kr)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