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소설드라마>
졸업을 위해
김 광 욱
* 나오는 사람들
선아(22)……대학생, 술집 여급(호스티스)
미선(20)……동생, 대학생
강영주 부장……술집 동아홀 부장
여급 아가씨들(1, 2, 3, 4)
사장들(1, 2, 3…)
동네 부인
(F. I)
S 1 시내버스 정류장(오후)
시내버스가 와서 멎고 손님들이 내린다.
선아도 내린다.
무거운 가방과 보따리를 양 어깨와 손에 들고 있다.
S 2 골목
긴 골목길을 힘들게 걸어오는 선아.
가방과 보따리를 내려놓고 잠시 쉰다.
S 3 골목 언덕길
선아 뒤뚱거리며 낡은 집들이 있는 골목 언덕을 올라간다.
또 한 번 짐들을 내려놓고 이마의 땀을 닦는 선아.
삽살이를 데리고 마주 오는 부인을 보고 꾸벅 인사한다.
부인 "시골 엄마 집에 다녀오는군. 엄마가 맛있는 것 많이 주셨어?"
선아 (웃으며)"예."
부인 "무겁겠다. 내가 좀 들어 줄까?"
선아 "괜찮아요. 집에 다 왔는 걸요."
부인 "그래, 어서 가 봐."
선아 "안녕히 가세요."
부인에게 인사하고 언덕을 올라간다.
S 4 셋방 앞
집에 들어와서 짐을 내려놓고, 수도대로 가서 물로 얼굴을 닦는 선아.
수돗물을 틀어 꿀꺽꿀꺽 마신다.
방문을 열고 가방을 방에 들여놓고 보따리를 끌러 물건들을 정리.
여러 가지 야채, 먹거리들……어머니 정성이 배인 것들.
가방에 든 것도 꺼내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카메라, 천천히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미선의 등을 비춘다.
S 5 마당 수도대
선아, 풋고추와 상추를 수돗물에 씻는다.
S 6 셋방 안
공부하다 잠이 든 미선.
언니가 온 줄도 모르고 잠만 잔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
선아 밥상을 차려놓고 미선을 깨운다.
함께 저녁밥을 먹는 두 자매.
먹다 말고 언니 먹는 걸 구경만 하는 미선.
선아 "어서 먹어. 밥통에 밥이 그대로 있는 걸 보니 점심도 안 먹었던데."
미선 "먹기 싫어."
선아 "먹기 싫어도 먹어야지. 난 밥맛이 좋아서 먹는 줄 아니? 살려니까 먹지. 내일은 외식 한번 하자."
미선 "언니, 술집에 안 나가면 안 돼? 언니가 술집 다닌 줄 알면 엄마는 기절하실 거야. 돈 없어도 천금 같은 내 딸이라고 항상 자랑하시는데. 그 생각 하면 학교 다니기 싫어져."
선아"내가 술집에 나가는 건 술집이 좋아서가 아니다. 우리 둘이 생활하고 학비 마련하기 위해서지. 술집은 보수가 많아. 내년에 내가 졸업하면 더 건전한 일자리가 생기겠지."
미선"나도 일하고 싶단 말이야. 언니만 고생시키는 게 싫어."
선아"고생이 아냐. 난 즐거운 걸."
선아, 얼른 혼자 먹고 나서 예쁘게 화장을 한다.
바삐 서두르는 선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미선.
선아 옷을 갈아입고 핸드백을 들고 달려나간다.
S 7 술집 골목(저녁)
'동아홀'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주객들을 유혹한다.
S 8 '동아홀' 실내(대기실)
강영주 부장이 4명의 어급 아가씨를 모아놓고 친절과 몸가짐을 강조한다.
강 부장 "장사는 요령이다. 취객 중엔 벼라별 사람이 다 있으니 좀 언짢은 요구를 하더라도 이해하고 예쁘게 응대해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아가씨들(합창) "예!"
강 부장 "너희들 언행이 우리 업소의 존폐를 좌우한다는 걸 명심하고 나쁜 소문 안 나게 잘 하도록 부탁한다. 선아는 왜 안 왔나?"
아가씨1 "저기 오네요."
선아 숨을 헐떡이며 들어와서 강 부장 앞으로 온다.
선아 "죄송해요. 다음엔 늦지 않겠습니다."
강 부장 "혹시 몸이 아픈가 하고 걱정했지. (일동에게) 오늘은 높으신 손님들이 올 테니 더 신경써 주기 바란다."
아가씨2 "높은 분들이 많이 오시나요?"
강 부장 "한 열 명쯤."
아가씨들 "와아!"
아가씨3 "우리가 모두 합석해야 돼요?"
강 부장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지 않을 수도 있고. 상황 봐서 인원 배치할 테니 걱정 말고 평상시처럼 잘하면 될 거야. 거기다 조금만 더 마음을 쓰란 뜻이야."
강 부장 나가고 아가씨들 대기실에 앉아 수근거린다.
아가씨4 "얼마나 높은 사람들일까?"
아가씨1 "지체 높은 사람이 사장님이나 관공서의 상관밖에 더 있겠어? 거기서 거기지."
아가씨2 "난 장관 한번 모셔 봤으면 좋겠다."
아가씨3 "고작 장관이냐? 난 대통령 한번 오셨으면 좋겠다."
아가씨4 "대통령이 이런 델 오시겠어?"
아가씨1 "왜 안 와? 마리린 몬로보다 더 예쁜 미인이 있는데."
아가씨2 "그게 누군데?"
아가씨3, 4 "누군 누구야? 선아지!"
모두 선아를 바라본다.
선아 거울 앞에서 화장을 다듬고 있다. (DIS)
S 9 홀 좌석(밤)
술 취한 사장님들 속에 앉아 술을 따르는 아가씨1, 2.
넥타이를 풀어헤친 사장1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사장1 "이 집엔 이런 여자들밖에 없어? 너무 못낫잖아? 우릴 뭘로 보는 거야? 나 가겠어."
일어서서 나가려고 하는 사장1을 2가 붙잡으며,
사장2 "그건 인격 모독이야.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야지."
사장1 "(도로 앉으며) 인격 모독이래도 좋아. 더 예쁜 아가씨 오라고 해. 팁은 얼마든지 줄 테니."
사장3이 식탁 위의 벨을 누르자 남자 웨이터가 온다.
사장1 "누가 웨이터 오라고 했나? 사장 오라고 해! 아니면 예쁜 아가씨를 데려오든지."
웨이터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나간 뒤 선아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장들 그 미모에 놀라서 입을 벌린다.
사장1, 선아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선아, 사장1 옆에 얌전히 앉는다.
사장1 "정말 미인이구먼. 그 예쁜 손으로 술 한 잔 따라 주겠소?"
선아 "예."
공손히 술을 따라 올리는 선아.
사장1 술을 마시지 않고 그 술잔을 선아 입에 대주며 마시라고 한다.
선아 "저는 술을 못합니다."
사장1 "술집에 근무하면서 술을 못 마신다니 말도 안 돼. 어서 마셔요. 어려워 말고."
손님2 "학생이야. 술 권하지 마."
사장1 "무슨 소리야? 여기가 교실이야? 여긴 술집이라그."
사장2 "술집이라고 다 술 마시는 건 아니잖아? 안 마시는 사람도 있고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아가씨가 고운 손으로 따랐으니 자네가 마시고 아가씨에겐 팁이나 듬뿍 주게."
사장1 "좋아. 내가 마시지."
사장1 술잔의 술을 다 마시고 나서 선아에게 입을 맞추려고 한다.
선아 피하는 척하며 선선히 키스를 받는다.
그러자 사장1 선아를 껴안고 여기저기 더듬는다.
선아 굴욕감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나간다.
사장1 따라가서 선아를 붙잡고 재킷을 벗긴다.
사장들이 말려도 사장1의 힘을 당하지 못한다.
선아의 재킷이 찢어지고 한데 엉킨 두 사람.
치마가 찌어지며 팬티가 드러난다.
강 부장이 달려와 말린다.
강 부장의 뺨을 때리고 욕을 하는 사장1.
선아, 사장1의 손을 물어뜯고 달아난다.
S 10 술집 골목
옷이 찢긴 채 '동아홀'에서 달려나오는 선아.
사장1(소리) "거기 서 있지 못해?"
S 11 번화가(밤)
인파 속을 헤치고 달려오는 선아.
갈가리 찢어진 옷이 가관이다.
숨이 차서 달리기를 멈추고 돌아본다.
사장1 따라오지 않는다.
누군가 선아의 등을 툭 치는 손.
돌아보니 골프채를 손에 든 미선이 서 있다.
선아 "웬 골프채니? 너 골프 배우니?"
미선 "언니를 지켜주려고 고물상에서 산 거야. 언니는 잘도 도망치더라. 내가 지켜줄 필요도 없이."
선아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두 자매는 마주 껴안고 운다.
S 13 달리는 시내버스 안(밤)
선아와 미선, 승객들 속에 끌안고 서 있다.
찐긴 언니의 옷을 미선 몸으로 가려 준다. (DIS)
S 14 셋방(밤)
잠자리에서
직장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선아.
잠이 오지 않아 뒤챈다.
미선도 자지 않고 눈을 말똥거린다.
미선 "언니, 걱정하지 마. 이제는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와 학비를 댈 테야. 직장도 알아뒀어. 그러니 술집만은 제발 나가지 말아."
선아 "안 돼. 넌 공부나 열심히 하란 말이야. 살림은 언니가 하는 거야."
미선 "나도 성인이란 말이야. 내 앞길은 내가 개척하겠어."
선아 "너 정말 언니 속썩힐래?"
미선 "언니가 너무 가엾어서 그래."
선아 "화내서 미안해. 내일을 위해서 자자. 내일은 하루종일 수업이 있잖아?"
미선 "알았어. 잘게. 언니도 잘 자."
선아, 조용해서 돌아보니 미선 쿨쿨 자고 있다.
S 15 밝게 솟아오른 아침해(인서트)
S 16 셋방(아침)
각기 책가방을 챙기면서
선아 "오늘 외식한다고 약속했으니까 수업 끝나고 일찍 와라."
미선 "나 외식 안 먹어도 좋으니까 돈 아껴. 이제 직장에서도 잘렸을 텐데 뱃속인들 편하겠어? 집에서 된장국에 밥 먹으면 되지."
이때 선아의 핸드폰이 울린다. 선아 받는다.
강 부장(E) "어제 편한 잠 못 잤지? 나도 마찬가지야. 경찰서에서 잤거든."
선아 "강 부장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부장님 고생시켜서……"
강 부장(E) "취객이 소동 피운 것 사장님도 알고 있다. 넌 하나도 잘못한 게 없으니 많이 위로해 주라고 하시더라."
선아, 가슴이 벅차서 말을 못한다.
미선도 옆에 와서 듣는다.
강 부장(E) "어제 그 나쁜 자식 내가 혼내 줬다. 난 폭행죄로 경찰서에 끌려갔다 방금 풀려났어. 너 참 용감하더라. 여자는 그래야 돼.
비록 술집에서 일하며 돈 좀 있는 놈들 술시중 들고 산다만, 이것도 직업 아니니? 더 힘을 내서 열심히 돈 벌어야 돼. 명예의 졸업장을 꼭 받아야지."
거기서 전화는 끊어진다.
선아는 잘리지 않아서 좋아하고 미선은 시무룩하다.
책가방을 메고 셋방을 나오는 두 자매. 상반된 표정.
S 17 골목 언덕길(아침)
다정히 등교하는 두 자매의 얼굴에 햇살이 쏟아진다.
언니를 보는 미선의 표정도 밝다.
선아의 소리(E) "미선아, 졸업 때까지만 언니를 이해해 줘, 응."
미선의 소리(E) "그래 알았어. 졸업 때까지만이야."
(F, O)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