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 2019년 2월 17일 일요일 날씨 맑음 그러나 바람 많음
함께한 사람 : 아내와 필자
구간개요 : 덕산재에서 출발하여 - 대덕산(투구봉) - 초점산 - 수도지맥 갈림길 - 소사고개(지경내) - 덕유삼봉산 - 금봉암 갈림길 - 호절골재 - 수령봉 갈림길 - 된새미기재 - 수정봉 - 빼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15.9km 남진으로서 이 구간은 두번의 큰 오름 즉 덕산재에서 대덕산의 오름과 소사고개에서 삼봉산 큰오름이 있다.
구간지도(펌)
덕산재(644m) 주치령이라고도 한다
금방 얼음폭포 갈림길에 얼음폭포가 유혹하지만 겨울이라 생략하기로 한다. 여름이라면 시원함을 즐길 수 있겠다.
덕산재에서 대덕산까지는 646m의 표고차가 있지만, 이를 감내할 만한 순한 오름이다 육산이기도 하거니와 오름길이 S자나 Z자로 구비구비 돌려 있어 최상의 길이다. 구룡령 옛길이 1천미터가 넘지만 나귀로 넘을 수 있듯 이곳도 그에 못지 않다.
오름 능선에서 만난 멋진 일출. 언제 봐도 맛갈스럽다
대간능선을 걷다보면 능선길 바로 옆에 시원한 옹달샘이 몇개 되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이곳은 정상근처에 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얼어 있다.
철계단을 지나 대덕산에 오른다.
대덕산(大德山 1,290m). 투구처럼 생겨 투구봉이라고도 한다.
헬기장과 함께 넓은 공터와 훌륭한 조망이 있다.
옛날 민초들이 갈 곳 없이 마지막으로 흘러 들어 온 곳이 대덕산 자락이었는데, 뜻밖에 많은 부를 누렸다. 그들은 그 복의 근원이 모두 이 산 덕택(德澤)이라 여겼다. 그래서 크게(大) 덕(德)을 누리게 하는 산이란 뜻으로, 대덕산으로 불렸다.
대덕산에서 향적봉방향
옛날에는 다락산(多樂山)으로 불렸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진안 마이산과 더불어 산정상에 기(氣)가 강하게 흘러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고 소문이 나서, 평시에도 많은 사람이 정상에서 야영하면서 새벽기운을 받는다고 하는데, 추운 오늘도 역시 젊은이 한 사람이 야영을 한다. 대단한 열정이다.
대덕산에서 초점산으로 가는 능선.
대덕산에서 능선을 지나 좌틀하여 안부를 내리고 오른 후에 초점산에 오른다.
초점산(草占山 1,248m).
3개의 삼도봉 중의 하나다.
전북과 경북, 경남의 도계를 이룬다. 군으로는 무주와 김천, 거창이다.
1,000m 이상 고봉 중 이 곳은 안개가 많기로 유명하다. 겨울에 습기를 머무는 습기와 안개가 급격히 얼어붙어 영하 6도 이하 습도 90%이상에 피는 서리꽃을 피우는 것을 상고대(樹氷 혹은 霧氷 rime)라 하며, 눈이 없어도 즐길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수도지맥 갈림길(1,180m 지점) 국사봉 방향이 수도지맥. 소사 방향이 대간길.
수도지맥은 이곳에서 시작하여 국사봉(873.1m) 우두령재(백두대간과 다름) 수도산(1313m) 단지봉(1236.7m) 두리봉(1135m 가야산 입구산) 마령(1007m) 이상봉(1046.2m) 두무산(1026m) 오도산(1120m) 싸리티재 만대산(688.7m) 솜등산(271m) 필봉(327m) 성산(206.7m) 바람재 황강에서 마치는 지맥을 말한다. 지맥치고는 상당히 웅장하고 거대하다.
가던 능선에서 보니 가야 할 삼봉산 끼마득하다.
저길 언제 저길 가나?
독도가 까다로운 소사고개까지의 길. 하지만 곳곳에 띠지가 있고 조금만 주의하면 찾아갈 수 있다.
소사(笑沙)고개 지경내 혹 지경령(680m)
이 마을은 사사사철 바람으로 인해 모래가 날려 쌓여 땅이 기름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풍이 불어 집안에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기도 해서, 이래도 기쁘고 저래도 기뻐, 기쁜 마음으로 모래를 맞았다 하여 소사현(笑沙峴)으로 불려졌다. 원래는 경계의 의미에서 지경령이라고도 했다. 고개 이름을 무주 쪽에서는 '도마치'라고도 부른다. 도계에서 항상 농사가 잘 된다는 무풍(茂豊)까지는 약 9km.
생태이동 통로 위로 그냥 지나가야 원 대간길이다.
고냉지 채소밭을 지나 한 걸음 씩 걷다보면 어느새 삼봉산으로 올라가는 들입이다....
곧바로 된오름이 있는데, 삼봉산까지 오름은 무시무시하다. 돌계단과 밧줄이 섞여 있고, 경사도가 거의 60도는 족히 되어 보인다. 눈도 녹지 않아 아이젠을 치고 올라가야 했다 2.1km밖에 안 되지만 거의 두시간이 소비되었다.
능선 안부에 올라왔다. 여기서 능선 반대길 즉 아래 사진에서 우틀하면 오두재다. 삼봉산 방면은 좌틀.
철계단에 오른다. 여기서부터는 정상능선을 걷는다.
바위능선을 여러개 지난다. 바위능선 중에 솟아 있는 9개 봉우리 중 하나인 노적봉에서..
덕유삼봉산(德裕三峰山 1,254m)
삼봉산은 거창의 진산이다. 거창 고읍지 및 조선환여승람 거창군 산천조에도 ‘삼봉산은 거창 북쪽 오십리에 있으며 무주로부터 대덕산 서쪽 가지라 적혀 있다. 해발 1,254m의 거봉으로 큰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얻었다.
향적봉에서 바라 봤을 때 이 봉우리가 뚜렷한 ‘山’자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봉우리를 다시 세분하여 투구봉, 노적봉, 칼바위, 장군바위, 신중봉, 부부봉, 신성봉, 칠성봉, 장군수마당바위 등으로 칭하며 9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이웃 금봉암(金鳳庵)의 비경과 어우러져, 소금강의 신비경을 연상케 한다. 거창과 무주를 경계 짓는 삼봉산은 이 같은 덕유연봉(德裕連峰)이 시작되는 첫 머리봉이라 마을사람들은 삼봉산을 덕유원봉이라 부르며 자랑스러워 한다.
덕유삼봉산에서 동쪽방면. 가운데 뾰족한 산이 가야산.
삼봉산 다음봉우리, 아마도 칠성봉인듯 하다. 누군가 1,260이라고 썼다.
금봉암(金鳳庵) 갈림길
금봉암은 고제면 봉산리 삼봉산(1,254m) 기슭에 있다. 금봉암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절 터에 1905년 주상면 거기리에 살던 불심 깊은 청송 심씨가 세운 절이다.
이 절에는 이름난 세 개의 바위, 세 개의 용머리, 세 개의 바위샘이 있다. 요사체 뒤에 용바위, 용굴에서 내려와 얼굴을 쑥 내민 세 개의 용머리가 있는데 맨 윗쪽 용머리가 옛날 거창 부사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봉암을 나한도량으로 영험스런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세 개의 샘이 자랑거리로 이름나 있다. 석불바위 뒤에 숨어 있는 샘을 피부병에 좋다 하며,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샘이고, 용바위 용굴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호절골재
삼봉산과 수령봉(1,090봉) 사이의 움푹 들어간 넓은 허리목이다. 삼거리에서 금봉암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 남동쪽으로 45°에 가까운 경사면이고, 북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인데,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여러 개의 지류가 모여 삼거리 독가촌 마을 앞을 지난다. 매우 넓고(호:浩) 막힌(절:絶) 골(곡:谷)자기. 즉 호절곡이 원 이름인데 호절곡에서 호절골이 되었다. 근처가 모두 채소밭으로 개간되어 있으니 이름을 지으면 기막히게 이름 대로 되는가 보다. 호절골재에서 표시목 뒤로가면 삼오정이나 오두재로 넘어가고 표시목 앞쪽은 고제면쪽 절골로 갈수 있지만 지금은 길이 모두 희미하다.
수령봉(1,090m) 갈림길
수령봉은 정상이 대간에서 약간 비켜있고 대간길은 뚜렷하지만 수령봉 올라가는 길은 희미하다. 잘 살피지 않으면 그냥 능선에 불과하다. 남진기준 우측으로 270도 꺾여서 수령봉으로 간다. 푸른색은 수령봉으로. 어떤지도에는 수령봉과 수정봉이 같은 것으로 되어있으나 이는 오류이다.
수령봉(1090m)이 남진기준 대간길 오른쪽에 있다.
된새미기재.
남진기준 대간길은 급 우틀이다.
호절골재에서 30분 남짓한 거리에 봉산리에서 올라오는 소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고개이기는 하지만 허리목은 아니다. 북쪽의 전북 무주는 지대가 높고 남쪽의 경남 거창은 지대가 훨씬 낮은 것이 확연하게 관찰된다. 큰(된) 새목 고개이다. 된새목이재가 된새모기재로 다시 된새미기재로 되었다.
수정봉 (1030m)
아무런 표식이 없어 구분이 잘 안되고 편안한 등로를 이어가다 우측으로 휘돌아 나가게 되어 있다.두개의 안부같은 능선이 바로 연이어 있는데 빼재쪽 능선보다는 삼도봉쪽 능선이 약간 높다 GPS가 없이는 구분하가 어려웠다. 잘 찾아 인증사진 찍는다. 야간산행에는 구분이 불가능하고 낮에도 주위를 잘 샆펴야 한다. 정상엔 잡목들로 전망이 가려져 있다.
남진기준 아래 표지석 직전100 전방 능선이 수정봉이다.
빼재 (920m)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길을 넘나 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요, 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꾼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 둔 곳이라 하여 뼈재라 했다. 사진은 빼재를 빼어날 수(秀)라고 잘못 적어 누군가 수령(秀嶺)라 정상돌을 세워 놓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았던 결과다. 빼재라고 고쳐야 한다.
빼재는 추풍령을 본떠 새로운 추풍령이라고 관에서 억지로 지어서 신풍령이라고 불렸다 하나 이도 또한 고쳐져야 한다. 휴게소 명칭도 신풍령이니 기가 막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옛 이름인 빼재로 불려지기를 원하고 있다.
날입.
계단으로 되어 있다.
도상거리 15.9Km .
만보계 거리 25.948Km.
실제 걸은 시간 7시간 12분 19초.
37,069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