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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미국 속의 유대인
미국의 100대 부자의 30퍼센트는 유대인이며, 최고의 명문사학이 모인 아이비리그 대학에는 교수진 40퍼센트, 학생 30퍼센트가 유대인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유력 신문매체와 3대 공중파를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 출신 저명 언론인들이 미국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전체인구의 약 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며, 이러한 미국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1. 미국의 산업과 유대인
미국 산업의 역사는 유대 재벌의 산업사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제조업의 부흥과 동시에 금융자본주의가 태동한 역사이기도 하다. 대공황 직후 제이피모건과 록펠러의 자본금은 776억 달러 대 449억 달러로 7대 4 비중으로, 미국의 전 사업이 두 가문 손에 양분되어 있었다.
즉, 모건과 록펠러는 미국 산업사의 양대 축이었다.
1) 제이피모건
흔히 제이피모건의 지난 170년사를 알면 미국 금융과 경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제이피모건 이야말로 미국 금융계를 지배해온 최대 실력자로서 금융 이외에도 철도, 철강, 통신, 영화산업 등 실물 경제에서도 패권적 지위를 행사해 온, 한 마디로 미국 근대 산업의 역사 그 자체다.
제이피모건은 창업주 존 피어폰트 모건(J. Pierpont Morgan)의 약자다.
그는 코네티컷 주에서 1837년에 태어났다. 모건은 개신교를 믿었지만 이스라엘 귀환법에는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을 모두 유대인으로 간주됨으로 이 법에 따르면 모건은 유대인이다.
모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직물공장과 면화 브로커 사업을 하며 보험업과 부동산 투자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으며, 아버지 모건은 한 때 런던에 본점을 둔 미국 금융업체의 동업자가 되어 영국에서 일하며 당시 세계 최대 은행인 로스차일드 상사의 파트너가 되었다. J. P. 모건은 유럽에서 대학을 마치고 뉴욕에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금융계 수업을 받았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한 때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그는 남북전쟁 동안 북군의 낡은 소총을 약간 수리하여 남군에 파는 거래로 큰 재미를 보기도 하고, 금에 투자를 하여 큰돈을 벌기도 하는 등 전쟁 기간 동안 이런 종류의 사업은 계속하였다. 4년간의 전쟁이 끝나자 J. P. 모건은 미국 최고의 재력가로 부상했으며, 이로써 미국의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J. P. 모건 시대가 본격 개막하게 되었다.
(1) 모건-듀폰 공조, 군수 사업
남북전쟁 당시 모건이 군수 사업을 하면서 만난 사람이 듀폰 대령으로 듀폰은 프랑스계 유대인이다.
이 인연이 훗날 군수산업복합체인 ‘모건-록펠러-듀폰’ 군수재벌의 시작이다. 듀폰은 나중에 모건의 지원으로 세계적인 화학업체인 ‘듀폰’의 창업주가 되었다.
(2) 철도사업과 전신사업
미국 산업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은 서부개척과 광활한 국토를 연결하는 철도건설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은 철도의 아들이다’라고 부를 만큼 철도는 미 대륙을 하나로 통합하고 황무지를 개척해 오늘날 미국을 탄생시키는 모태가 되었다. 남북전쟁 중인 1862년 7월 링컨 대통령은 대륙횡단철도건설을 위한 ‘태평양 철도부설령’에 서명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19세기는 철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철도 산업은 과잉건설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9세기 마지막 25년 동안 미국 철도회사의 절반인 7백 개가 문을 닫기도 했다. 철도주가가 폭락하자 1875년 J. P. 모건은 여러 철도노선을 사들였다. 또 그는 당시 철도왕인 유대인 윌리엄 밴드빌트의 주식 매각을 성공시켰으며, 철도회사들을 아홉 개의 대기업으로 합병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1890년 모건은 미국 4대 철도업자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하게 된다. ‘제이피모건’은 이를 기반으로 밴드빌트와 힘을 합쳐 미국 굴지의 전기회사 ‘웨스턴 유니언사’를 합병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모건은 전신을 장악해 누구보다도 빠른 정보를 접하게 되어 철도사업에 뛰어든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다.
(3) 모건과 에디슨의 만남, GE의 탄생
1878년 여름, 에디슨(Thomas A. Edison)은 가스등을 대체할 전등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안전하고 값싼 전등을 발명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자, J. P. 모건은 본능적으로 사업 가능성을 직감하고 밴드빌트 등과 함께 합작회사 설립을 제의하고 당시 3만 달러를 연구개발비로 지불했다.
J. P. 모건은 추가로 자금을 투입해 에디슨의 백열전구 특허권을 샀으며, 드디어 1880년 말에 16와트 전등이 시장에 나오자 모건은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그 후 에디슨이 과다 투자로 빚을 지게 되자 모건은 더 많은 투자를 해서 경쟁사까지 합병하여 세계 최대의 전기회사 ‘GE’를 만들었다. 오늘날 세계 최대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은 발명왕 에디슨이 1878년에 설립한 ‘에디슨 전기회사’가 그 모태인 것이다. 전등과 발전소가 에디슨에 의해 발명되었다면 이를 실용화해 대량 공급하기 시작한 것은 모건의 자본력에 의해서였다.
그는 세계 최초의 벤처캐피털리스트였다.
(4) 언론 <뉴욕타임스>까지 장악하다
1896년 당시 파산지경에 빠졌던 <뉴욕타임스>를 제이피모건의 자금지원으로 독일계 유대인 아돌프 옥스가 인수한 것이 유대인의 대형 언론사 접수의 첫걸음이다. 그는 모건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문가격을 내리고 윤전기 등 신문 제작 시설을 최신화 하여 <뉴욕타임스>를 일약 권위 있는 신문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AP통신사에도 관여했다.
지금도 <뉴욕타임스>에 모건스탠리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5) 철강회사 US스틸
금융, 철도, 전기 등 미국의 주요 산업들을 차례로 장악한 J. P. 모건은 당시 떠오르는 산업인 철강업의 필요성을 판단하고 제철회사를 설립하고 곧 바로 ‘카네기철강’을 시세보다 더 높은 거금 5억 달러를 주고 인수 했다.
1901년 카네기철강을 인수한 그는 소유하고 있던 세 개의 철강회사와 합병하여 ‘US스틸’을 탄생시켜 순식간에 철강업계를 장악했다.
그 뒤 기업을 공개해 카네기철강 매입가격의 두 배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얻어 결론적으로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미국 최대의 철강회사를 공짜로 손에 넣은 것은 물론 가외로 5억 달러를 더 벌게 된 꼴이다.
(6) 미국 연방준비은행
1907년 금융공황은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는 달리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자본금이 있는 개인 주식회사로서 조폐권을 가지고 있다. 현재 연방은행법에 따른 약 1천 개의 은행과 연계되어 있는 방대한 조직을 구성하고 있지만 1910년 기구 초안을 만들어 1913년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때부터 모건, 록펠러, 로스차일드 등 3대 유대인 금융가문이 주축이 되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7) 거대 재벌
세계공황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1930년대 중반 모건그룹의 지배 아래로 들어온 대형 기업만 해도 제이피모건과 퍼스트내셔널뱅크 등 은행 14개, 생명보험회사 4개, GE와 아메리카전신전화 같은 전기·전화·가스 등 공기업 8개, 철도회사 4개, US스틸과 GM 등 자동차·철강제조업체 12개에 이르렀다. 여기에 중견기업까지 합하면 모건 산하의 기업체 수는 44개사였다.
2) 석유왕 록펠러
바위를 뚫는 사람이라는 뜻의 록펠러(Rockefeller)란 성은 원래 독일계통의 성인 로겐펠더(Rogenfelder)를 미국식으로 부른 것이다. 로겐펠더는 동부 유럽에서 흔한 유대인의 성이다.
록펠러는 그의 어머니가 유대인이다. 이스라엘 귀환법에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난 사람”도 유대인으로 정의하고 있으므로 록펠러는 유대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 혈통일지라도 유대교를 믿지 않으면 유대인으로 분류하지 않기도 함으로 록펠러도 모건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최초로 유전이 시추되면서 급속도로 석유 개발이 붐을 탔다. 록펠러는 남북전쟁 중에 석유 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보고 석유업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유전을 찾는 것보다는 석유 정제와 파급효과에 관심을 쏟았다.
당시 거리의 가로등에는 비싼 고래 기름을 쓰다가 석탄을 증류해 조명용 가스를 생산하여 사용했는데 이는 폭발 위험이 있어 가정용으로는 거의 쓰지 못했다. 석유는 원유를 그대로 등화에 사용했을 경우 매캐한 연기와 냄새를 발산했으며 그다지 밝지도 않았지만 석유에서 증류해 낸 등유는 밝고, 폭발 위험이나 소음도 없고 이동도 쉬워 등유 램프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록펠러는 1870년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하여 창업한지 9년 만에 미국 전체 석유의 95퍼센트를 장악하였다. 록펠러는 미국 내 정유 업계를 평정한 후 목표대로 세계시장을 거머쥐기 시작했다. 세계 80개국 이상에서 사업 활동을 하면서 70개 이상의 정유시설을 운영했다.
오늘의 엑슨(Exxon), 에소(Esso), 임페리얼오일, 셰브런(Chevron) 등은 모두 록펠러가가 대주주다. 록펠러의 독점에 대한 꿈은 석유산업으로 끝나지 않았다. 스탠더드오일은 다른 회사들의 주식을 지배하는 지주회사로 개편되어 은행, 선박, 철강, 석탄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
3) 미국을 움직이는 오늘의 유대인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미국 투자은행의 역사는 인수합병으로 점철된 역사다. 끊임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미국 투자은행들은 덩치를 키웠고 대형화된 자본력과 인력으로 세계 경제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월가와 세계 금융 산업의 실체를 살펴보면 유대인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1) 시티그룹
전통적으로 월가의 대표 선수는 시티그룹이다. 그 역사를 보면 로스차일드, 록펠러, 모건 등이 함께한 유대계 금융기관임을 알 수 있다. 시티그룹은 1812년에 창업한 ‘시티뱅크 오브 뉴욕’이 그 전신이니 200년이 넘었다. ‘금융황제’, ‘금융제국의 사냥꾼’으로 불리는 샌디 웨일 전 시티그룹 회장은 폴란드 계 유대인으로써, 1933년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나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정상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2) 제이피모건체이스
2000년 말 제이피모건과 체이스맨해튼이 합병한 회사가 ‘제이피모건체이스’다. 체이스맨해튼의 모체의 하나인 맨해튼 은행은 1799년 설립된 맨해튼상수도회사가 전신으로 로스차일드가의 후원으로 세운 회사다. 또 다른 하나인 ‘체이스내셔널은행’은 록펠러가의 금융기관이었다.
(3) 골드만삭스
골드만삭스는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이자 유대계 자본의 상징이다. 골드만과 삭스라는 장인과 사위 관계인 독일계 유대인(장인 골드만과 사위 삭스)이 세웠을 뿐만 아니라 전·현직 최고경영자들이 모두 유대인들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 10여 단계의 면접을 거쳐 철저한 능력 중심의 인재만을 채용해서 강한 결속력을 가진 엘리트로 키우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행정부의 인재 파이프라인으로도 잘 알려질 정도로 미국의 최고 엘리트 지도자 양성 사관학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4) 미국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
클린턴 집권 시절 행정부 내 주요 인물의 42퍼센트가 유대계였으며 유대인 각료만 10명에 이르렀으며, 연방대법관 9명 중 새로 임명된 2명도 유대인이었다.
정권이 바뀌어 부시 행정부가 들어섰어도 유대인 중용은 그칠 줄 몰랐는데, 부시의 외할머니는 유대인으로 그에게도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부시 정부의 국방부 및 정보기관의 유대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미국의 중동정책이 왜 친이스라엘 편향인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 볼튼, 국방장관 럼스펠드, 국방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백악관 중동정책 책임자 엘리어트 에이브럼스,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 미국 정보기관 총괄기관 DNI 책임자 존 네그로폰 등등이 모두 유대인들이다.
오바마 정부도 경제정책의 핵심자리는 거의 모두 유대인의 몫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19년 간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세계금융시장을 주도한 앨런 그린스펀과 그를 이어 2006년~2014년 벤 버냉키, 그리고 현재 연준 의장 재닛 엘런 도 유대이다.
미국의회 또한 유대계 의원들이 하원 40여명, 상원 10여명이 늘 차지하고 있다.
(5) 트럼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 세계 발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2017년 12월 6일 공식 선언했다. 또 그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분노와 우려가 쏟아지고 있으며 중동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도시다.
예루살렘이 워낙 예민한 지역이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메티스 국방장관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방안에 반대했다고 뉴욕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핵심 부처 장관들이 반대하는데도 트럼프가 이 방안을 밀어 붙이려는 것은 유대계 측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뉴저지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교까지 ‘예시바’라는 유대 학교를 다녔다. 하버드대를 나온 뒤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와 완전 유대식 결혼을 치렀고, 이방카도 유대교로 개종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친 유대계 인사로 활동해왔다.
2. 어! 이 사람도 유대인?
유럽 유대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중·동부 유럽계 백인종 혼혈인 아시케나지(Ashkenaz)와 원래 유대 민족인 지중해(스페인, 포르투갈)·중동계 셈족인 세파라디(Sephard)로 구분한다. 현재 아시케나지는 전 세계 유대인의 80%를 차지하며, 이스라엘은 아시케나지 55%, 세파라디 계가 45%로 구성되어 있다.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1,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나라별로 가장 많다는 미국 유대인 인구도 650만 명(미국인구의 2.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래서 이들 유대인을 알면 세계가 보인다고 말한다.
위에서 언급된 인물 이외에도 미국의 행정부, 의회, 연방대법원, 방송(CBS, ABC, NBC) 및 언론사(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경제계 및 금융계, 대학과 학계 등등에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이외에 ‘어! 이 사람도 유대인?’하는 인물들만 박재선 씨의 저서『100명의 특별한 유대인』에서 간추려 보자.
1)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할리우드 7대 메이저 영화사 중 디즈니를 제외한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폭 스, MGM, CBS(현 컬럼비아), 워너브라더스 등 6개사는 유대인이 설립
2) 영화 제작자 및 감독, 배우
(1) 제작자 및 감독
제리 브룩하이머, 윌리엄 와일러, 스티븐 스필버그
(2) 영화배우
커크 더글러스, 토니 커티스, 로렌 바콜, 더스틴 호프만, 해리슨 포드, 골디 혼, 리처드 드레퓌스, 벤 킹슬리, 데브라 윙거, 기네스 펠트로, 새라 제시카 파커, 내털리 포트만, 에바 그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제임스 프랑코, 스칼 렛 요한슨, 레이첼 맥아덤스, 사이아 라보프. 마릴린 먼로(유대인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
3) 엔터테이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밥 딜런, 훌리오 이글레이시아스, 케니 지
4) 상품 세계화
(1) 아이스크림
미국의 3대 아이스크림 업체 (배스킨라빈스, 벤 앤 제리, 하겐다스)의 창업자는 모두 유대인
(2) 스타벅스(커피)
뉴욕 빈민가 태생 독일계 유대인 하워드 슐츠, 1953년 창업
(3) 에스티 로더(화장품 기업)
평범한 주부였던 헝가리 계 미국 유대인 에스티 로더, 1946년 설립
(4) 비달 사순
가위 하나로 여성을 해방시킨 미용계 대부.
5) IT 및 인터넷 검색, 정보 서비스 업체
(1)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 폴 앨런, 스티브 발머 등 3인 모두 유대인
(2)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더스틴 모스코비치, 셰릴 샌드버그(현 CEO)
(3)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6) 마술사
유리 겔라, 데이비드 카퍼필드, 데이비드 블레인, 해리 후디니
7) 운동선수
마크 스피츠(미국 수영선수), 데이비드 베컴(영국 축구선수, 어머니가 유대인), 샌디 쿠팩스(미국 야구선수)
8) 문학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 하인리히 하이네(시인), 프린츠 카프카, 아서 밀러(극작가), 프리츠 레비(증언 문인)
9) 미술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이태리), 마르크 샤갈(프랑스), 페기 구겐하임(미국), 맨 레 이(미국)
10) 음악계
구스타프 밀러(체코, 지휘자), 자크 오펜바흐(이태리, 작곡가), 조지 거슈윈(미국, 아메리칸 클래식), 레너드 번스타안(미국, 작곡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아르헨 티나, 피아노, 지휘자), 디미트리 티옴킨(미국, 영화음악), 리처드 로저스(미국, 뮤 지컬).
11) 섹스 스캔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전 IMF 총재, 프랑스 사회당 정치인, 2011년 호텔 여자 청소원 성폭행 미수로 체포), 엘리엇 스피처(뉴욕주지사, 2008년 콜걸 추문), 잭 루비(케네 디 대통령 암살범(하비 오스왈드)을 암살)
모니카 르윈스키(1995년부터 2년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대통령 집무실에서 9차 례나 성적 유희를 벌려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몬 백악관 인턴사원)
<‘모니카 게이트’와 관련된 이설과 음모론>
‘지퍼 게이트’라고도 불리는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은 1998년 언론에 보도되자 처음 클린턴은 잡아뗐다. 그러나 대통령의 정액이 묻은 르윈스키의 드레스의 DNA 검사결과에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 사건은 의회로 비화돼 하원은 대통령 탄핵을 가결시켰으나, 상원은 부결시켜 클린턴은 겨우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클린턴의 탄핵 위기에서 벗어난 것에 대하여 하나의 이설이 있다.
클린턴은 전설적인 국제 비밀결사체 프리메이슨의 주력인 일루미나티의 높은 품계에 오른 인물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숫자의 미국 상원의원도 이 결사체의 회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클린턴을 구제해 주었다는 것이다.
워트게이트 사건으로 의회 탄핵 직전 스스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닉슨은 프리메이슨이 아니었으며 소수파 개신교인 퀘이크 신자였다.
‘모니카 게이트’는 당시 아랍 세계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아랍권 언론은 이 사건을 미국 유대 로비의 음모로 추리했다.
미국 유대 사회의 큰 지지로 대통령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은 임기 중 세계 대통령으로서 획기적인 업적을 의식하고 중동 평화회담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미국 유대 사회는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중동평화 중재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스라엘 양보가 항상 전제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린턴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진 미국 유대인 로비가 클린턴을 견제하고 이스라엘 총리를 지원하기 위해 이 스캔들을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아랍권 언론의 음모론 주장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 다수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인 당사자 르윈스키를 위시해 르윈스키에게 사건 폭로를 사주했다고 알려진 <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인 백악관 직원도 유대인이다. 또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하고 최초로 보도한 <뉴스위크> 기자, 그리고 이 스캔들을 확산시킨 인터넷 매체 <드러지 리포트>의 사주와 자유 기고가, 모니카의 변호인 등등이 모두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지퍼 게이트’로 곤욕을 치른 클린턴은 이후 중동 평화 노력에 동력을 잃고 더 이상 중동문제 합의 이행을 이스라엘에 강요하지 않았다.
첫댓글 고기가 물 만난듯
유대인에게 신천지는 약속의 땅이었네요.
유럽에서 학대받은 그들이
미국을 통해서 세계를 다스리고,
그림자 정부를 유령처럼 부리고 있는듯 합니다.
세계 60억 인구중 1500만도 안되는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하는군요. 더구나 3억5천 인구의 패권국 미국을
650만 유태인이 지배 한다니 놀랍군요.
얘루살램을 이스라앨 수도로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은
다 목적 카드로 발표햇고 한국 ,미국 안보에도 연관이 있기도 하겟지요?
"만촌" 전장군 !
연재 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소
"탈무드"책은 간간히 봤지만, 유태 역사는 흥미 있네요,
박 회장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작년 이맘 때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것,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 속 깊이 새겨
오래 오래 기억하고자 합니다.
돈은 鬼神도 부려먹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야 하물며...., 世上을 떡 주무르듯 하는 그들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