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늦여름.
신촌 이대입구에 있는 피부과 건물에 전자경비 시스템 야간 시공 스케줄이 있어서 담당 부서장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려 집에 가는 길에 친구의 형을 만났다. 운전 중인 나를 인도에서 보고 손을 흔들며 쫓아왔던 것이다.
매우 건강하고 건장한 편이었는데 7년 만에 만난 형은 피부색이 거뭇하고 야위었으며 누가 보더라도 병색이 완연했다.
"당뇨에 간하고 신장에 합병증이 와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요즘 내가 이것 때문에 사네."
돌아가신 부친의 제사라고 해서 인근으로 이사한 형의 집에 함께 갔을 때 물통 하나를 꺼내면서 들려준 말이다.
"좋은 거면 한컵 더 주슈."
그리고 그날 밤 12시 경에 피부과 공사 현장에서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영락없는 숙변을 본 것이다.
20대에 거의 매년 7일~21일 단식을 했었기 때문에 숙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던 터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단식을 처음하는 경우에는 최소 본단식 10일~14일이 지나야 숙변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네 효과 봤구먼~!"
다음날 오전에 전화를 받았을 때 형이 들려준 말이다.
지난 밤의 그 검은 변이 숙변이며, 바로 그 물을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하, 형님 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진담처럼 하고 그러슈?"
그렇게 무시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일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 다단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 회사의 회장은 공교롭게도 친하게 지내는 동갑내기 최모 씨의 초등-중학교 동창이었다. 나는 교육단장이라는 직함으로 일주일에 한두번 전국을 돌며 강의를 했다.
그리고 그 회사는 매우 주목할만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단계와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사실은 그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90년인가 91년에 암웨이가 잠실에서 그랜드 펑션을 하기 전 해에 당시 유명 패션회사의 자회사로 설립된 유통회사의 사업본부장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당시 모기업인 패션회사의 공동대표이면서 한국패션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대표이사가 "우리도 MLM 한 번 해봅시다."라며 계속 성가시게 하는 바람에 사업 5부에 '특수사업부'를 신설하고 MLM 사업을 시작한 전력이 있다.
그 때도 매우 짧은 기간, 4개월 만에 회원수가 15만을 넘긴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몇 개의 회사 경영에 참여했고, 내가 운영하는 동안에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운영진과 사업자를 포함한 구성원 대부분의 자긍심과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필연인지 우연인지 모를 회사 운영을 통해여 다단계에 대해서 '잘만 운영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잘 운영해야될 책무가 있다."라는 두 가지의 확고한 주관이 생겼다.
특히 다단계는 인적 관계가 근간이 되기 때문에 잘못 운영하면 인간 관계가 파괴되고 불신이 조장되어 결국 사회적 해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른 어떤 비즈니스 보다 더 크기 때문에 첫재는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과 둘째는 사업자의 가치관이 먼저 정립되어야만 한다는 소신이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회사가 어느정도 성장하고 나면 경영진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단계는 돈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결코 올바르게 운영될 수 없다.
문제는 회사의 경영 철학이 그릇되거나 빈약하면 사업자 그룹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떤 다단계꾼 하나가 식당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도와달라고 해서 독일계 다단계 회사의 사업자 하나를 잠깐 도와준 적이 있다.
조건은 두가지, 한시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것과 단순한 돈벌이 도구가 아닌 '세상을 바꾸는 기여'로써의 철학적 공감대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는 다단계꾼에 불과했다.
먼저 자신에게 그 회사를 소개하고 후원해준 소위 '스폰서'에 대하여 악의적이고 추잡한 공격과 공작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실상의 1번 사업자였던 그 스폰서는 회사를 떠났다.
함께 떠난 옛 파트너들을 공격하기 위해 거짓 증언을 사주하기까지 한 사실을 알게되면서 나는 다단계꾼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 자는 리더는 커녕 다단계를 하면 안되는 인성을 가진 저급한 '다단계꾼'에 불과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돈벌이를 위해서 온갖 사악한 짓을 하는 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다단계의 맹점은, 어떤 인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현재 소득이 얼마인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공감대로 자리잡게 되면 사회악인 것이다.
천사와 마귀의 차이, 어둠과 밝음의 차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극단적으로 달리 발휘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에서 다단계가 손가락질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댓글 살기 위해서 사는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사는가의 차이인 것 같네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짐승과 다른 삶을 말하는 건데 호의호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다단계가 나쁜게 아니라 다단계하는 사람들 중에 본말을 모르고 한경에 지배되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거겠죠.
칼이 강도의 손에 들리면 흉기가 되지만 요리사의 손에 들리면 요리가 되는 것처럼요.
좋은 회사나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삶에 대한 선택인 것 같네요. 인간으로 살 것인가 짐승처럼 살 것인가.
공감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짐승에게는 없는 이성 때문인데, 사람답지 못한 생각과 언행을 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 '말하는 짐승'일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