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정종'이라는 불법에 관심을 가진 어느 부인이 회관의 어강에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어강이 끝나자 “부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열심히 본당 안을 다 둘러보아도 안 보였으며 아무리 찾아봐도 불상(佛像)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일련정종은 만다라를 본존으로 모시고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요.
먼저 불상(佛像)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이라는 것은 불상입니다. 그러나 불상을 본존으로 하라고 누가 정했을까요?
우리나라의 절마다 가보면 번쩍번쩍 금색으로 칠한 불상이 수십 체, 수백 체나 줄지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불교의 본존이라는 것은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듯이, 본존으로서의 부처님은 한 체로 좋습니다. 수 백체의 불상이 줄지어 있어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그런 절(寺), 이제 모두 관광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석존의 사진이 있습니까? 있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불상을 만든 사람에 따라서 석존의 얼굴이 모두 다릅니다. 조각가가 만든 상이 본존으로 될 수 있을까요?
그것도 금색 찬란합니다. 실제로 석존은 소똥을 말려서 만든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 죽은 사람이 입고 있던 천을 섞어서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분잡의(糞雜衣)라고 합니다. 그런 것인데 금색 찬란하게 만든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금색 찬란한 것을 색상장엄불(色相莊嚴佛)이라고 합니다.
신심이 부족하니까 부처님을 보면 저절로 고개 숙이도록 금색이나 붉은색을 칠하고 몸을 장식해야 신심의 대상으로 되는 건 아닌지요. 그런 부처님은 정말 불쌍합니다.
진정한 부처님은 불력(佛力)과 법력(法力)이 엄연하게 있으니까 전혀 장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무작삼신[(無作三身): 조작하지 않고 만들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부처님은 자연 그대로이고 몸을 장식할 필요도 없고 '내가 부처님이다.'라고 절대 과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정한 부처님으로서 대자비가 있으면 그 마음이 그대로 상(얼굴)에 나타나고 말에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식하지 않아도 부처님이다!'라고 납득합니다.
그런 것을 신심이 없고 힘이 없으니까 호화롭게 장식해야만 하고 특히 금색으로 칠하는 것은「성금불(成金佛)」로서 실로 겉만 번지르르 하고 보여 주기만 하는 관광용, 관람용일 뿐입니다. 실제로 부처님은 곤란해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석존은 쿠시나가라 라는 곳에서 슌타(純陀)라는 사람이 바친 공양물 즉 돼지고기 요리 혹은 버섯요리가 썩은 것을 먹고 설사를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입멸하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석존이 입멸하시면 우리들은 무엇을 믿고 불교 신앙을 계속하겠습니까?”
그러자 석존은 대답했습니다.
“내가 입멸해도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설하고 전력을 다했다. 그래서 나의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법을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라는 가르침 중에 부처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각이나 시멘트로 대량생산한 금색 찬란한 불상 중에 부처님의 생명, 부처님의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먼저 여기서 왜 석존상은 본존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지요?
그러면 왜 만다라일까요?
만다라(蔓茶羅)는 「공덕의 집합」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만다라에는 4종류가 있습니다. 대만다라(大蔓茶羅), 삼미야만다라(三味耶蔓茶羅), 천수관음(千手觀音), 법만다라(法蔓茶羅)입니다.
석존의 상이라는 것은「대만다라」형식이라고 합니다. 삼미야만다라는 예를 들면 11면 관음, 11개의 관음의 얼굴이 없으면 세계의 생명으로서 신의 힘을 나타내지 못한다든가 천수관음은 관음에 천 개의 손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 구제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일반 사람들에게 11개의 얼굴을 가진 관음이나 천의 손을 가진 관음이 본존으로서 올바르니까 이것을 가져라 라고 말해도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이 4종의 만다라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은 법만다라입니다. 이 만다라는 한 장의 종이에 부처님의 생명의 실상을 쓰고 또 부처님의 생명의 본원, 종자를 써서 나타낸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님은 이 법만다라 형식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니치렌이 혼을 먹물에 담아 썼습니다. 착실하게 믿으시오. 부처님이 설하려는 진정한 마음은 법화경입니다. 그 부처님의 생명을 남묘호렌게쿄의 한 폭의 본존으로 하여 나타내셨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어문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본문의 본존이라고도 하여 일염부제(전세계) 총여의 대만다라 라고도 말합니다.
우리들이 입상불을 버리고 만다라 본존님을 신앙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만다라는 부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기원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죄로서 소멸되지 않는 것이 없고 복으로서 오지 않는 것이 없고 리(理)로서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원래 대승불교였습니다만 조선시대의 탄압 등으로 실제는 소승적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불상을 많이 만들어 안치해 두는 인(因)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는 불상이라는 관념이 우리들의 가슴 속 깊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본질에서 말하면 만다라 본존이 올바른 것입니다.
석존 50년의 설법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면 아시겠지만 수많은 경을 설하셨습니다. 그 중에 대집경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그 속에 석존이 입멸하시고 2천년 이 후를 말법[입멸 후 1천년은 '정법', 2천년은 '상법']이라고 합니다만 그 말법엔「백법은몰(白法隱沒)」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백법(白法)은 즉 석존의 가르침을 말합니다만 그 힘이 은몰 즉 숨겨지고 만다는 것을 석존 자신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역시 삼천년 전의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설하신 법은 현대의 과학 만능, 스피드 시대에는 없어진다는 것이며, 다시 말하자면 말법시대를 구제해 주실 새로운 성자가 나타난다는 것, 이 새로운 불교 지도자의 출현 또한 법화경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법화경 용출품 15와 신력품 21)
말법의 법화경 행자로서 이 예언대로 출현하신 분이 바로 니치렌 대성인이십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이 유교라는 것은 인생의 교훈이나 인간이 처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상이나 사회상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유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또 유교사상이 만연한 조선시대는 모든 것이 유교 논리에 의해 국가사회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문명과 민주적인 사고 앞에서 유교는 무너졌고 이제 우리나라에서 유교는 아주 멀리 후퇴하였습니다.
그러면 조선시대 전의 고려왕조를 생각해 보면 고려왕조는 한국 역사상 제일가는 불교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고려왕조 말기에는 불교의 타락이 극심하였고 그래서 천하를 잡은 이성계는 불교로는 국가사회가 잘되지 않는다고 인식하여 불교를 부정하고 유교를 정치사회의 골격적인 사상으로 한 것이지요. 그리고 조선왕조 대대로 왕이 심하게 불교를 탄압했습니다. 배불숭유[(排佛崇儒) : 불교는 배척하고 유교는 숭상한다는 뜻] 정책은 조선시대의 중요한 정책이었죠.
고려왕조 말기 몽고에 정복당할 즈음 말법시대가 들어온 것입니다. 몽고가 침략해 오고 그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고 하여 두 번이나 석존의 일체경을 판목에 새겼습니다. 그 하나가 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입니다.
그렇게까지 했지만 결국 고려는 몽고제국의 침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석존이 대집경에서「백법은몰」, 석존자신이 나의 불법의 힘은 없어진다고 말한 그대로의 현실이 고려왕조 말기에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13세기에 몽고제국은 일본을 두 번이나 침략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 다 실패했습니다. 그때 이미 니치렌 대성인님은 일본에 출현하셨고 몽고국 침략의 예언을 하시고 대 몽고국 조복(調伏)의 본존님을 도현하셔서 말법 법화경 행자로서의 불력, 법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려는 고려대장경을 만들어 전 국가가 모두 부처님에게 기원하고 불법에 매달렸습니다만 결국 몽고로부터 침략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역시 석존의 불법은 백법은몰하여 불력, 법력이 없어졌다는 것이겠지요.
니치렌대성인님은 「국가가 멸망하는 것은 제일 큰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가가 멸망해버리면 불법도 불력도 법력도 없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국은 멸망하고 조선시대로 바뀌면서 불교는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조선시대의 유교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시대에 맞는 종교나 사상은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 변해지는 것입니다.
불교인데 왜 석존을 믿지 않는가? 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의 조선왕조가 불교를 부정한 사실 즉 이미 천 년 전에 부정했습니다. 이 현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시대에 맞게 사람을 구제하고 사회를 구제하고 불교 지도자는 변하고 변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말법에 있어서는 석존이 설하신 불교를 새로운 형태로서 전해주신 니치렌대성인님의 법화경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니치렌대성인님은『제법실상초』에
「일염부제 제일의 어본존을 믿으실지어다. 기필코 기필코 신심을 강성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신편어서 p.668)고 교시하셨습니다.
대성인 불법의 구극(究極)이신 본존님을 성불의 유일무이의 법이라고 믿는 것이 불도수행의 근본이며, 그 위에 행학(行學)의 이도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한 주도 용맹정진하십시오.
ㅎㅎ
감사합니다.
ㅋㅋ돌아서면,까마득하게
잊겠지만,,어려움이닥치면,
그래도,
회장님의강의내용이떠올라
지혜롭게헤쳐나갈수있답니다.
ㅋㅋ
반갑습니다.
니치렌 대성인님은 『일념삼천법문(一念三千法門)』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여설수행(如說修行)을 하면 반드시 일생중(一生中)에 한 사람도 남김없이 성불(成佛)하느니라, 비유하면 봄·여름에 농사를 짓는 데 조만(早晩)은 있을지라도 일년중(一年中)에는 반드시 이를 거둬들이듯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도 상중하근(上中下根)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일생중(一生中)에 증득(證得)하느니라.」(신편어서 p.11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설수행(如說修行)을 하면 누구나 반드시 일생 중에 성불(成佛)의 경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절대적 행복경애를 확립한 사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강한 생명력으로 유유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시고 한걸음씩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상쾌한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강의에 참여하시면서 말법에 있어서는 석존의 불법이 아닌 니치렌대성인님의 법화경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를 잘 아셨으리라 셍긱됩니다.
어떤신가요?
이번 한주도 힘차게 정진(精進)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잘 이해하셨지요?
네 감사합니다^^
보고 또 보고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