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열 등산동호회 2011년8월 백두산/압록강 원정 결과<2>
압록강 일대 고토(故土)는 언제 다시 찾아오나<110802>
통하에서 남행, 압록강 집안(集安)의 고구려유적지로 91
고구려 강토였던 이곳 한적한 지방도와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 들-
지금도 논농사 지역은 우리 동포들의 삶터라네 92 0445/ 02709
오녀봉 산성과 관문을 지나니 곧 집안-
고구려유적지가 “중국역사문화명역”이라니?! 94 97 98
먼저 천혜의 요새 환도산성과 석총들을 돌아보고 0453 51 60/3501
집안 노변의 조선족동포 상점 02725
호태왕(=광개토대왕) 유적지에서 뜻밖에 종은 네를 반갑게 만나고-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08 13
광개토대왕 비각에서 12 0496 0502
훼손된 대왕의 능-위대한 조상의 유산을 지키지 못한 자괴(自愧)가 0512 3517
능 남쪽 압록강너머로 북한 땅이 선명-
저기가 북한이지, 북한스럽게(?) 산은 헐벗고 0516 18
장군총을 돌아보며 동북공정에 맞설
대륙공정의 의지를 새삼 다져본다 19 0536 21 0540
압록강에서-보트로 스릴을 즐기는 한편으로
북한쪽 강변으로 다가가 그곳 동포들의 애달픈 삶을 접한다
26 27 28 0561 65 33 39 36 41 42 43 0579
국내성터- 한심한 자취를 일별하고 53 06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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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으로 향한 길-압록강을 연하는 북한 땅을 내내 지켜보면서 56 59
길림성과 요녕성의 경계 혼강의 절경도 즐겨본다 62 63 0634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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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압록강을 만나 대하를 이룬 하류 대평만댐에서 02854
단동에 이르러 북중 철교 아래서 6.25의 상흔에 가슴아파하고 86 87
유람선을 타면서 단동의 황홀한 야경을 감상하는데 95 96 3601 0694 3607 3613
이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칠흑 속의 신의주를 바라보는 가슴은
북녘동포에 대한 동정으로 더욱 참담해 3614
우리 언제 이 압록강 철교의 야경을 남북동포가 즐겁게 함께 할까?? 362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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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에서의 저녁-광희가 내놓은 좋은 술로 축배를 26 29 27 0784
5성급 숙소에서의 이 잊을 수 없는 뒤풀이 0787
이제 백두산도 압록강도 일정이 끝났다. 모두 성공적이었지.
우리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광희가 내놓은 좋은 술로 축배하며
실질적인 이번 원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저녁 먹고 자고 내일 심양을 거쳐 귀국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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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봉천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심양에서의 반나절<110803>
단동에서 4시간 북행고속도로를 타고 심양으로-북경을 가르키는 모택동상 02861
중국 최초의 코리아타운 서탑(西塔)거리를 찾아
점심식사 후 국어간판 즐비한 이 지역을 산보하는데
눈에 띄는 북한직영 상점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02869 0809 16
이곳이 몽고식과 티베트식이 접합된 서탑(西塔)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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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코스로 제2의 자금성 청(靑)의 왕궁(王宮)을 거닐고
02880 0847 55 5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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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에 올라 인천공항에서 성공적인 여행을 자축하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 0964 65
첫댓글 산호회의 꽃 이었습니다. 기억이 생생합니다.
천지에 제일 먼저 올라 노행환 동기와 함깨 활짝 개여 선명하게 나타난 천지를 보고. 뒤이어 오르는 일행을 보고, 야! 명수야 우리 대성공이야! 환호해 를 외쳤던 선두 병노형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대열동호회의 활동들이 있어 대열가족은 더욱 즐거웠습니다. 대열산호회의 백두산여행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영산 백두산을 못가봤을지도 모릅니다. 추억속에 오래남을 그때 그 순간이었습니다. 주관해준 김명수산호회장 수고했고 고마웠습니다.
재림이 형은 그때의 모습을 동영상으로도 남겼었지요! 정말 이제 우리 다신 가보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 그렇게 여기저기 많이 돌아볼 수는 정말 없을 것이란 생각에, 참으로 소중해지는 백두산 등정 추억입니다.
등산 동호회 활동중 백두산 여행이 정말 추억에 많이 남습니다. 당시 김회장 수고 많았지요! 저도 당시 사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