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님께서 쓰신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제2부 1839년 기해박해의 진상 ( 가슴 아픈 이야기 )
실로 서글픈 일은, 갓 태어난 교회 초창기부터 언제 어디서나 거짓 형제들이 잇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 시대에도 성 바오로가 증언한 대로 교회의 요람에서조차 열두 사도들 가운데 배반자 유다가 있었고, 그는 적잖은 자기 제자들을 사방에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그리 놀랍게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조선에서도 거짓 신자들 때문에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들 중에 특히 김여삼은 1801년에 조선교회에 큰 해악을 끼쳤습니다. 김여상(즉 김순성)은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신자를 자처한 자인데, 1839년에 신자들에게 최대의 재난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는 양반 출신으로 20세 때에 아내와 함께 천주교에 입고하여, 처음에는 천주교 법규를 충실히 준수하였습니다. 그는 신앙 때문에 부모에게 가혹한 박해를 받았으나 잘 견디어 냈습니다. 결국에는 가족 전체에게 시달림을 당한 그는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아버지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는 30세가 되었을 때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면서 지극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한 생활 태도 때문에 신자들에게 존경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1838년 11월쯤에 그는 포졸한테 가서 돈을 받고 몇몇 신자들을 배신하여 팔아 넘겼습니다. 그다음 그가 알고 있던 모슨 신자의 이름을 적은 수첩을 포졸들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그때 제2재판소인 포청의 판관들인 김영과 구신희는 포졸들에게 어디에서든 신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왕후에게 제청되어 조병현이라는 사람을 제1재판소인 형조의 판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으뜸 판관이 된 이 사람이 우선 2품의 궁중 신하 즉 조신인 김정의에게 갔습니다.
김정의는 예비 신자로, 지금 귀양 가 있습니다. 김정의는 그와 아주 친한 사이였으며, 그에게 신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미구에 끝낼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선인 김정의가 판관을 칭찬하고 주교님께 불안을 떨치고 마음 편히 계시라고 알려 드렸습니다. 동시에 신자들에게 가장 신중하게 경계하고 혹시라도 그들 중 누가 체포되면 굳센 정신으로 신앙을 옹호하고 형벌의 공포 때문에 다른 이를 배신하지 말라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신자들에게 형화가 인정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의 희망은 자주 반대로 됩니다. 김 대비의 오라버니인 김유근은 신다들을 애호하였으나 중병을 앓고 사망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나라의 최고 실권자였는데, 진정 하느님께 회두할 것으로 보였던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최고 통치 권력이 대신 조만영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이지연, 천주교를 맹렬히 반대하는 집의 정기화와 더불어 대왕대비 즉 현 임금님의 조모(즉 순원황후)의 뜻을 거슬러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체포하도록 새로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김영과 구신희는 지극히 포악하게 신자들을 괴롭히도록 설득되었습니다. 그 결과 체포된 신자들은 잔인하게 고문하고 도망간 신자들을 가혹하게 추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뿐 아니라 어인아이까지도 학살하였고, 그들의 재산은 모두 약탈하였습니다.
조병현은 신자들의 박해가 증폭되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포졸도 신자들의 재산에 손대미 말아야 하고 이미 탈취한 것은 모두 되돌려 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명령은 오래 지속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명령을 어긴 많은 포졸이 유배형을 받았습니다. 포도청의 판관들에게 더 잘 임무를 수행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대비에게 고발하겠다고 엄중히 경고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죄한 신자들을 사형에 처하기를 원치 않아서 자신의 관직을 버렸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조정 대신 중의 한 명인 조인영은 포도청 재판소의 판관들에게 신자들에 대한 소란을 새해가 오기 전에, 즉 1839년에 타결을 짓고 결판을 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악한 판관인 구신희는 이를 나쁜 쪽으로 이해하여 신자들을 모두 처형하라는 줄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어린아이와 시종들까지 수감자들을 모조리 학살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구신희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백성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박해가 커지자 신자들이 혼잡하게 피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배신자 김여상이 1839년 음력 7월쯤, 주교님과 신부님들을 체포할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포졸을 데리고 교우촌으로 갔습니다. 신자들이 거처하고 있는 지방들을 모두 거쳐 가면서 끔찍한 해악을 저질렀고, 모든 재산을 약탈하면서 온통 난동을 피워 신자들을 모질게 박해하였습니다. 그는 신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과 지극히 포악한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신자들을 모욕과 고문의 폭력으로 꺽어서 신부님들을 배신하도록 하려는 계획이 성과를 거둘 수 없음을 알아차리자 다른 방법을 궁리해 냈습니다. 그리하여 야만적인 방법을 버리고 가장 신심 깊은 신자처럼 위장하여 포졸들과 함께 천주교 신자의 표지를 지니고 다니면서 먼저 수리산으로 갔습니다. 수리산 지방의 주민들은 포졸들을 보고 하느님을 위하여 굳센 정신으로 피를 흘리기로 서로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의 60명이나 되는사람들이 아이들을 업고 안고 하여 이사하는 모양으로 행렬을 지어서 법정으로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고문의 폭력에 꺽이어 하느님을 저버리고 가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서울에서는 여인50명이 법정에 자수하기로 의논하고 입고 갈 옷을 짓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들의 결심을 제지하였습니다.
그 후 배신자가 한터골이라는 곳에 가서 자기 마음대로 많은 거짓말을 꾸며 젊은이들을 오류로 꾀어냈습니다. 포졸들을 데리고 온 마귀 같은 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천주교가 자유를 얻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대비와 대신들이 종교의 진리를 깨달아 그리스도께 가담할 결심을 하였으며, 신부님들이 조선에 입국하여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 신부님들을 궁궐로 모셔 오도록 자기들을 파견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신부님들이 계신 곳을 모르니 신자 중에 누구든 신부님들이 거처하는 장소를 알려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여상이라는 신자에게 가서 주교님이 계시는 곳을 대라고 매우혹독하게 고문하였습니다. 그는 고통에 못 이겨 자기는 주교님의 소재를 모르지만 정 안드레아 라는 사람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배반자와 포졸들은 김여상과 함께 정 안드레아한테로 갔습니다. 김여상은 그 후에 체포되어 살해되었습니다. 포졸들이 정 안드레아를 붙들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러 가지 우스꽝스러운 말을 꾸며대면서 속이려 들었습니다.
한편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 지극히 공경하올 앵배르주교님은 손 안드레아의 집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진하여 박해자들의 손에 잡힐 마음을 항상 갖고 계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신부님들과 의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주교님은 이재의토마스라는 자기의 복사를 왕도인 서울에 보내어 돈과 소식을 가져오게 시켰습니다. 그동안에 정 안드레아는 속아서 유다 김여상과 포졸들과 함께 주교님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정 안드레아는 혼자서 주교님이 계시는 집에 들어가서 기쁜 낮으로 공경하올 주교님께 자기가 들은 대로 대비와 모든 대신이 신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등의 말을 털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교님은 “너는 마귀한테 속았구나.”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고서 미사성제를 거행하고 자진하여 체포되었습니다. 손 안드레아가 이 광경을 보고 울면서 주교님을 뒤 따라 가면서 자기도 주교님과 함께 죽으러 가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장에는 허락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체포되어 하느님을 위하여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포졸들은 공경하올 주교님을 교자에 태워 서울로 모셔 왔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주교님께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정하상 바오로, 조신철 가롤로, 김제준 이냐시오(저의아버지)와 그 외의 많은 신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목자의 면전에서 힘을 얻고 각기 자기 감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 포졸들이 두 분 신부님(즉 모방과 샤스탕신부)들을 체포하도록 사방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신부님들은 주교님의 체포 소식을 듣고서 배를 타고 피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재의 토마스와 최베드로가 신부님들의 분부를 받들어 군푸대에서 돈을 가져오기 위하여 서울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룻길을 여행하였을 때에 정 안드레아가 그들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울면서 자기 잘못으로 주교님께서 포졸들의 손에 잡힌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장소를 지나고 있는데 포졸들이 여관에서 갑자기 몰려나와서 정 안드레아를 체포하였습니다.
그리고 토마스와 베드로는 그냥 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들도 신자인 줄을 포졸들이 몰랐기 때문입니다. 석방된 그들은 밤을 지내려 어떤 신자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포졸들이 처음부터 속은 정 안드레아들 데리고 한밤중에 어떤 신자 집을 덮쳤습니다.
그 집은 토마스와 베드로가 손님으로 머물고 있던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포졸이 오는 것을 보자 한 사람은 궤 속에 숨고 한사람은 건초더미 속에 숨었습니다. 포교와 포졸들이 그 집을 겹겹이 포위하고 그 집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먼저 베드로가 건초도미 속에 숨었습니다.
포교와 포졸들이 그 집을 겹겹이 포위하고 그 집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먼저 베드로가 건초더미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냈고 다음에 토마스를 궤속에서 꺼내 체포하였습니다. 포졸들은 그들을 여관으로 평화롭게 끌고 가면서 매우 친절히 대해주며 다음과 같은 달콤한 말로 그들에게 타일렀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참으로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해보니까 옛날의 임금님들과 대신들이 신자들을 박해한 것은 아무 이유도 업이 전후 사정도 고려하지 않았고 함부로 마구 행하였던 것이지만, 오늘날 김대비와 대신들은 종교를 더 깊이 연구하여 그 진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가 그리스도께 가담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즈음에 대비가 주교님을 당신에게ㅔ 모시고 오도록 명하였고, 주교님을 만나보자 더할 수 없이 기뻐하였으며 주교님이 궁궐에 거처하도록 조치하셨습니다.
이와 동시에 주교님에게 가장 좋은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드리도록 명하였습니다.
대비께서 모든 대신과 수령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오늘날 모든 조선 백성이 참 하느님께로 전향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신부님들이 모이지 않고서는 유효하게 이루어 질수 없기에 신부님들을 궁궐로 모셔 오도록 우리를 파견한 것입니다.
이제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이 천주교를 가장 진정한 종교로 인정하게 되는 가장 쉬운 길 인줄 알 것입니다. 오로지 신부님들의 행동 양식만이 천주교의 진리를 우리에게 설명할 것입니다. 그들이 조국을 떠나서 부모,현재,친구,친지들을 영원히 하직하고 수만리 떨어진 이 먼 타국에 구사일생으로 가까스로 와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자기들의 돈과 자기들의 물건을 사용하고 있으니, 그들이 거짓말을 하려고 이렇게 먼 곳까지 왔겠습니까?
그들이 설교하는 종교가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면 정신이 미치치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행한단 말입니까?
이제 우리에게 보고된 바로는 당신들이 신부님들의 복사들이라고 하니, 당신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신부님들이 어디에 머물고 계시는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제자들은 자기들이 바다에서 신부님들에게 하직 인사를 드렸고, 따라서 그분들이어디로 가셨는지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신부님들을 배반하도록 이처럼 교할한 말로 속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형벌로 강요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포졸들은 분통이 터져 고문하는 형틀을 가까이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때 포졸들이 자기들끼리 “아! 틀림없이 이 정부에 재난이 덮칠 거야. 이 나라가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이렇게 흘리게 하면서 어떻게 평화로이 지탱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였습니다. 토마스가 “그렇다면 왜 당신들은 우리를 박해합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포졸들은 “우리는 다만 명령에 따라 실행 할 뿐이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죄가 없소. 우리도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으나, 다만 희망은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다음에 토마스는 정 안드레아와 함께 신부님들을 찾으러 가기 위해 풀려났습니다.
그리하여 신부님한테 당도하여 자기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사정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는 포졸들한테로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신부님이 이를 금지하였습니다.
그동안 포졸들은 토마스의 귀환을 기다리다가 실망하여 베드로를 괴롭히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손씨라는 포교가 주교님의 편지를 가지고 도착하였습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앵메르 주교님은 주변 사정이 이처럼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자 신부님들에게 조속히 죽음을 향해 달려오도록 편지를 쓰셨습니다.
같은 시각에 거의 모든 신자가 비탄에 빠져 자기들도 목자들과 함께 죽을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목자들의 죽음을 전후하여 많은 신자가 포졸들에게 자수하여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손 씨와 함께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고 주교님에게 새로운 편지를 받고 손 씨와 포졸들과 함께 신부님들 계신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길을 가는 도중에 베드로는 포졸들을 속여서 따돌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편지는 어떤 신자 편으로 신부님들께 보내드리고 자기 자신은 산속 절벽에 숨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포졸들은 베드로가 도망친 것을 눈치채고 눈믈\물로 한탄하며 새로운 방법으로 신부님들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신자들은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신부님들을 숨겨 드리고 신부님들을 더 깊이 숨겨 드릴 만한 장소를 물색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이 주교님의 편지들 받아 읽고서 신자들에게 “이제 다 끝났소. 주교님이 명령이 떨어졌소. 우리는 급히 서울로 가야 하오.” 라고 말했습니다.
신자들은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님들과 더불어 자기들도 죽을 가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런 다음 신부님들이 두 명의 신자들을 앞서 보냈습니다. 한 사람은 김 알렉시오라는 사람이었는데 장사꾼 모습으로 변장하였고, 또 한 사람은 농사꾼 모습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포졸들이 멀리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포졸들과 마주쳤습니다. 신부님들은 눈앞에 있는 신자들은 말로 위로하고 현장에 없는 신자들에게는 편지로 위로하고서 미사성제를 드린 다음, 최상의 형벌을 받으러 출발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사들은 울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해가 진 다음, 신부님들은 홍주읍 근처에 사는 어느 신자 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막 저녁 식사가 끝날까 말까 할 무렵에 김 알렉시오가 도착하여 포졸들이 문 앞에 와서 서 있다고 알렸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은 마당에 나가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앉았고, 그 자리로 인도된 포졸들이 신부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포졸들의 대장인 손 씨가 누가 모방 신부님이고 누가 샤스탕 신부님인지 물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손 씨는 눈치로 두 분을 구별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포도대장은 신부님들에게 “우리는 명령에 따라 신부님들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신부님들이 그들에게 “당신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포졸들이 “그렇다면 신부님들은 우리를 따라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한밤중이 가까이 되었으니 길에 이슬이 많아서 신부님들의 옷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밤은 여기서 조용히 지내십시오. 우리는 여관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신부님들을 모시러 오겠습니다. “ 하고 말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은 포졸들의 말을 듣고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같이 갑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이 포졸들과 함께 여관으로 갔습니다. 포졸들은 신부님이 주무 실 침실을 마련해 드리고 자기들은 밖에서 잤습니다.
포졸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알렉시오에게 “우리는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신부님들을 모시러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관장이 당신에게 질문하거든 우리와 똑같이 대답해야 합니다.(포졸들은 먼저 그 지역의 관장에게 들러가야만 했습니다) 그런즉 신부님들이 어떤 신자 집에서 체포되었다고 관장에게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길에서 우리가 신부님들을 마주쳤다고 말해야 합니다.” 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약속하고서 홍주 읍내에 들어갔습니다. 홍주읍의 영장이 신부님들을 자기 앞에 대령 시키라고 명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을 대령시키고 머리에서 갓을 벗기고 무릎을 꿇게 하자 신부님들이 “우리가 어떻게 맨땅에 꿇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멍석을 갖다 주어 않았습니다.
영장은 신부님들을 보고 “ 이 가난뱅이들, 가히 동정할 만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신부님들에게 포대를 입히고 볏짚으로 만든 바구니 안에 앉혀서 말 위에 올려놓고 서울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김 알렉시오가 뒤따랐으나, 신부님들이 반대하여 되돌아갔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신부님들은 주교님께로 인도되었습니다. 주교님은 거의 한 달 동안 감옥에 갇힌 다음, 그리고 신부님들은 10일 동안 감옥에 갇힌 다음 세분이 같은 날 함께 살해되었습니다.
신자들은 목자들의 사망 후에도 2년 이상이나 박해를 받았습니다.
(1839년에 전국에 극단적인 흉년이 들었습니다. ) 신자들은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구걸하여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애덕이 식어지고 영신적으로 무기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신자들이 차차 신앙심이 불타올라 열성이 자라고, 배교자들은 뉘우치고 회두하며 사방에서 외교인들이 입교한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천주교는 지금 찬미를 받고 신자들은 정직한 사람들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도록 청하여 주십시오(마태 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