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고빈다②
“들어보시오. 사랑하는 벗, 잘 들으시오. 나나, 당신 같은 죄인들은 지금은 죄인이나, 언제든지 한 번은 범이 될 것이고, 극락세계에 들어갈 것이고, 부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보시오. 이 ‘언제든지 한번’이란 것이 미망의 생각이오. 그것은 다만 비유에 지나지 않는 말이오.
죄인은 부처가 되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오. 우리는 그 외의 딴 방법으로 생각키 어렵겠지만, 죄인 속에 부처가 있는 것이오. 지금, 오늘에 이미 미래의 부처는 있는 것이오. 미래는 모두 그곳에 포함되었소. 그러므로, 죄인인 당신과 모든 사람들 속에 내포되어있는 앞날의 숨은 부처를 존경해야 할 것이오.
친구, 고빈다! 세계는 불완전한 것이 아니오. 완전한 것에로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도 아니오. 모든 죄는 이미 그 속에 속죄를 품고 있고, 모든 어린애 속에 이미 백발의 노인이 숨어 있소. 모든 젖먹이에게는 이미 죽음이, 모든 죽음에는 이미 영생이 깃들어 있소. 누구나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옆에서 보고 평가할 수는 없소.
도적이나 노름꾼 속에도 부처가 있고 바라문 속에도 도적이 있는 것이오. 깊은 명상 속에 잠겨 시간을 초월하여 있었던 생, 있는 생, 있을 생을 동일하게 볼 수 있어야만 되오. 그 때에 모든 것은 선이며, 모든 것은 완성이며, 모든 것은 범이오. 그러므로,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선으로 보이며, 죽음도 삶으로, 죄악도 신성한 것으로, 지혜로운 것도 어리석은 것을 보이오. 모든 것은 그렇게 되어야 하오.
모든 것은 다만 나의 동의와 호의와 사랑하는 이해를 요구하고 있소.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선이오. 나를 해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소. 나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런 것을 경험하였소. 나는 죄악을 요구하였소. 쾌락, 탐욕, 허영 그리고, 가장 경멸할 자포자기까지도 요구하였소.
반항을 단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내가 희망하고 공상하는 세계를 만들어서 현실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중지하고, 있는 그대로 세계를 사랑하고, 기쁨으로 세계를 따라가기 위해 그런 모든 죄악의 요구가 나에게 필요했었소. 오, 고빈다! 이것은 내가 도달한 의미 있는 사상의 일부요.”
싯다르타는 허리를 굽혀 땅에서 돌을 주워 매만지면서 말하였다.
“여기에 돌이 한 개 있소. 이것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흙이 될 것이오. 그리고, 그곳에서 풀이 돋아날 것이오. 또는 동물도 되고 사람도 될 것이오. 이전 같으면 나는 이렇게 말하였을 것이오. ‘이 돌은 다만 돌이다.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고, 미망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윤회를 거치는 동안 이 돌은 사람이 되고, 영혼도 될 것이므로, 나는 돌에도 가치를 인정한다’고.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오.
이 돌은 돌이오. 이 돌은 또한 동물이오. 또한 신이오. 부처요. 내가 이것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장래의 그것이 어떤 물건이 된다고 하여서가 아니라, 영구히
그리고, 언제나 이미 그러한 물건이므로 존경하고 사랑하오. 그리고, 그것은 돌이오, 이 날 이 때에 돌로서 내 눈에 보이므로 사랑하오.
그리고, 나는 이 돌의 금간 것, 움푹 들어간 것, 누른빛, 잿빛, 굳은 것, 내가 칠 때에 나는 소리, 표면이 말라 있는 것, 혹은 젖어 있는 것 그대로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오. 돌 중에는 기름같이 번들번들한 것도 있고, 비누와 같이 미끈미끈한 것도 있소. 어떤 것은 나뭇잎 같고, 어떤 것은 사탕 같은 것도 있어, 각각 독특한 모양으로 ‘옴’을 부르고 있소.
모두가 범이오. 또한 같은 돌이기도 하오. 동시에 기름 같고, 비누 같기도 하오. 실로 그 점이 나에게 만족을 주고, 또한 신기한 감도 가지게 하고, 숭배할 가치를 가지게 하오. 그러나, 그 점에 관하여는 이만 말하기로 합시다. 대체 말이라는 것은 내면적인 것을 해치니까요. 우리가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이 다소 다른 것이 되오. 약간 모조(模造)가 되고, 미숙하게 되어 버리오.
허나 그것 역시 매우 좋은 것이오. 어떤 사람에게 지보(至寶)가 되며, 지혜로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항상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좋은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이해하고 있소.” 고빈다는 묵묵히 잘 듣고 있었다.
“왜 당신은 특히 돌에 대하여 말씀하였소?”
잠시 후 고빈다는 주저하면서 물었다.
“거기에 별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아마 돌이건 강이건 우리가 보며 배울 수 있는 까닭이겠지요. 고빈다! 나는 한 개의 돌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고, 한 그루의 나무도, 나무껍질일지라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소. 그것은 ‘물건’이오. 그리고, 사람은 ‘물건’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오. 그러나, 나는 말은 사랑할 수 없소.
그것은 가르침이라는 것이 나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오. 그것은 딱딱하지도 않고, 연하지도 않고, 빛도 없고, 모나지도 않고, 향기도 없고, 맛도 없고, 말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까닭이오. 평화를 발견하려는 당신에게 장애가 되는 것은 아마 그 말일 것이오. 해탈이나, 덕이나, 또한 윤회나 열반은 모두 말에 불과한 것이오. 고빈다! 사실 열반이라는 물건은 없는 것이오. 다만 열반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오.”
“친구여, 열반은 다만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이오.”
고빈다는 말하였다.
싯다르타는 말을 계속했다.
“그야 사상일 수도 있겠지요. 친구여! 나는 당신에게 고백하오. 다른 것이 아니라, 나는 사상과 말 사이에 그리 큰 차별을 두지 않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상을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소. 나는 그보다 물건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오.
이 나룻터에 나의 선배요, 나의 스승인 사람이 있었소. 그는 오랫동안 다만 강을 믿을 뿐, 그 외에 아무것도 믿지 않은 성자였소. 그는 알고 있었소. 강물 소리가 그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그는 거기에서 배우고, 그 물소리는 그를 기르고, 그를 가르쳤소. 강은 그에게 신이었소.
그는 오랫동안 모든 바람, 구름, 새, 벌레도 강과 같이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과 같이 많이 알며 많이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었소. 다만 그는 강을 믿었으므로, 스승도 책도 없이 당신이나 나보다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소.”
고빈다는 말하였다.
“그러나, 당신이 물건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현실적인 실체를 말하는 것이오? 그것은 미망이라는 거짓이며 다만 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소? 돌, 나무, 강 그것들은 대체 현실적인 것이오?”
“그것도 또한,” 싯다르타는 다시 말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소. 만일 물건이 환영이라면 나도 또한 환영일 것이오. 그것들은 언제나 나와 같은 것일 것이오. 그것이 내게 사랑스럽고 존경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 점이오. 즉, 그것들은 나와 동일한 것이라는 것이오. 그러므로, 나는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소. 그리고, 당신이 웃을 줄 모르나, 고빈다, 무엇보다도 사랑이야말로 가장 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오.
세상을 통찰하며, 설명하며,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의 일이오. 그러나, 사랑은 가장 귀중한 것이오. 세상을 경멸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고, 세상과 나와 그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하여, 경탄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귀중한 일이오.”
“그것은 나도 이해하오.” 그리고 고빈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지존은 그것을 기만이라고 말씀하셨소. 그분은 호의와 관대와 동정과 인내를 권하였으나 사랑은 권하시지 않았소. 그는 우리들의 마음이 속세에 대한 사랑에 속박되는 것을 금하시지 않으셨소?”
“나도 그것을 아오.” 싯다르타는 말하였다. 그때 그의 웃음은 금빛으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