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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만나다
이홍사
장렬히 전사했다. 개고기집은,
시장경제의 총구 앞에서.......
그리고 그 자리에 잔잔한 바다 하나가 펼쳐졌다.
-바보의 시 중에서-
한줄기 저녁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그 바람에 도로 건너편 앞산에 어우러진 소나무에서 흩날리는 송홧가루가 황사처럼 누렇게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작년에 윤달이 끼인 관계로 올해는 음력이 좀 늦고 또 봄에 이상저온이 나타나 음력으로 따지면 삼월인데 송홧가루가 날리고 있다. 송홧가루는 윤사월에 날리는 거 아닌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송홧가루는 마당에 세워둔 흰색승용차가 노란색으로 보일 정도로 보닛 위에 내려앉는다. 며칠째 성가시다. 세차를 해도 소용이 없다. 금세 저 모양이다.
보닛 위의 송홧가루를 보며 누구의 시인지 기억이 가물거리는, 윤사월 산사에 송홧가루 날리면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기대어....... 그 다음이 뭐더라? 하릴없이 그 시를 떠올리며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들어올 포클레인 한 대가 아직 소식이 없어 마당을 지키는 참이었다. 포클레인이 들어오기 전에 앞 골목의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마당 입구에 승용차를 세우면 연료를 넣을 수가 없다. 일일이 식당을 뒤지며 차주를 찾아 차를 빼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아예 마당을 지키고 있던 참이다. 중기임대업을 하는 나는 원가절감을 위해 재작년까지 주기장으로 쓰던 마당에 아예 지하탱크를 묻고 주유기를 설치하여 아내의 이름으로 석유 판매소 허가를 내고 내가 운영하는 포클레인과 덤프는 도매금으로 들여온 연료를 이용하는데 그 이 년 사이에 공터로 비어 있던 앞 골목에 조립식으로 상가가 지어지고 식당들이 들어서고 저녁 무렵이면 주차 전쟁이 일어난다. 이렇게 장비가 늦게 들어올 적에는 마당을 지키고 기다리는 것이 속이 편하다. 마지막 차가 들어와서 연료를 넣으면 K가 기다리는 갈매기살 집으로 가서 소주를 한 잔 할 참이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에 찍힌 번호를 보니 거래처의 오부장이었다.
-예! 오부장님!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거래처를 유지하려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만 보고도 누군지 알아주는 것도 돈 들이지 않고 거래를 유지하는 한 방법이요, 사업에 있어서 처세술에 해당한다. 이사장님 큰일 났어요, 로 시작된 오부장의 전화를 받고 있는데 또 전화가 들어오는 신호음이 들렸다. 오부장은 엄살이 좀 심한 편이다. 콘크리트를 치다가 거푸집이 터져서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빨리 걷어 내야 하는데 중기가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선하다. 기초 콘크리트를 치다가 거푸집이 터져서 밖으로 흘러나온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빨리 거푸집을 새로 설치하여 콘크리트를 쳐야지 콘크리트가 오늘 타설한 것과 같이 융합되어 양생되고 또 어차피 폐기물로 처리할 것인데 딱딱하게 굳기 전에 작업을 해야지 파쇄기를 대지 않고 작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또 감독이 보기 전에 그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전화를 받는 사이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만 오부장이 다급한 마음에 계속 확답을 받으려고 현장의 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 당장이나 내일 새벽에 장비를 한 대 보내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들어온 기사들은 다 퇴근하고 없고 지금 장비를 보낸다고 해도 폐기물 처리업체도 마감을 했을 터이니 내일하도록 하고 장비를 수배해보겠다고 하는 사이에도 계속 다른 전화가 들어오는 신호음이 집요하게 울렸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전화도 들어오고, 일단 알았으니 끊고 장비를 수배해 보겠다고 말해놓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청기씨? 나 누군지 알겠어?
조심스런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렇게 전화를 할 사람이 없다. 혹시 황 교수가 아닌가 싶다. 옛날에 예술인 모임에서 대학 강사로 나가면서 같이 활동하던 황 교수는 내가 누구게? 하면서 전화를 하는 스타일인데 황 교수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다. 노처녀시절부터 같이 활동을 하던 황 교수는 결혼을 하고도 그렇게 격의 없이 지낸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상대를 조심스레 더듬었다.
-혹시 황 교수?
-황 교수는 아니고 누군지 모르겠어?
이렇게 말꼬리를 싹둑 잘라 먹으면서 장난을 칠 만한 상대를 더듬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문협 회원을 더듬었다. 없다. 문협 회원 중에는 고참에 해당하는 나에게 말을 이렇게 잘라먹는 사람이 없다. 알듯 하면서도 많이 들어 귀에 익은 음성인데 도무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나 보네?
-글쎄요. 목소리는 알듯한데 누구신지.......
-개판시대! 이제 알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번개처럼 스치고 가는 얼굴이 있었다. 그래 맞다. 그녀다. 순간적으로 이름도 떠오르지가 않고 말문이 콱 막혔다.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전율하고 있었다.
-왜? 나를 잊었어?
-아, 아니,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살아? 어디에 살고?
-신평에서 잘 살고 있어.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네.
그랬다. 잊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이다. 자주 만나거나 통화를 해야지 미주알고주알 할 말이 있는 법인데 너무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니 안부를 묻고 나면 할 말이 궁해지는 법이다.
-그냥 청기씨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해 봤어. 잘 살고 있지? 애들도 많이 컸겠다. 그치?
-애들? 큰 놈 둘은 시집가고........ 어느 책을 읽었는데?
-청기 씨가 쓴 책을 다시 읽어보다가 문득 궁금해서 전화를 했지?
-어느 책을 읽었는데? 글쎄 그 책 제목이 뭐냐구?
삼십대부터 틈틈이 소설을 써서 단행본을 네 권이나 냈다. 작품의 깊이 보다는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얘기다. 작품집은 거의 오 년 단위로 괜찮다고 생각되는 작품만 골라서 내 작품의 궤적을 정리하는 일종의 문학 앨범 차원으로 한 권씩 출간을 했는데 어느 책을 읽었느냐에 따라서 그녀를 만난 지가 얼마나 되느냐를 짚어볼 수가 있다.
-옛날에 청기씨가 준 책 있잖어? 우아한 배꼽이라고.
대충 짚어보니 우아한 배꼽은 두 번째로 낸 소설집이고 출간한 지가 십이 년이나 되는 책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본 지가 십 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아! 그 책? 그 책을 읽고 그 다음에는 책을 안 받았어?
-지금도 글 써?
-긁적이고 있어. 그 책을 내고 두 권을 더 냈는데........ 그 책을 받았다면 우리가 만난 지 십 년이 넘었겠다.
-역시 청기씨는 그럴 줄 알았어. 그 바쁜 시간에 어떻게 끊임없이 글을 써?
-바쁜 사람일수록 짬이 많다잖어?
목소리만으로도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아롱거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름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처럼 지냈는데 뭐라고 불렀더라....... 누구 엄마가 아니라 그냥 이름을 부르며 지냈는데 그 이름이 입가에 돌면서 기억나지 않는다. 참 미안하고 미치겠다.
예전 일이지만 이웃으로 살적에는 격의 없이 지냈다. 그러니까 내가 말바우라고 불리는 도시의 변두리, 마암리로 이사를 간지가 벌써 이십 년이 넘었고 그곳에 십일 년을 살다가 택지조성지구에 집을 지어서 나온 지 십 년이 다 되었다. 그 시골 동네에서 만나 허물없이 지낸 여자다. 시내 공단에 있는 주공아파트에 살다가 말바우의 촌집을 사서 이사를 가고 이 년쯤 살다보니 동네 입구 국도변에 이층으로 큼직한 식당을 지어서 이사를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이미 그 시골 동네의 동민으로 순수한 그 동네 사람과 친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시골사람들의 습성이 그렇다. 특히 집성촌은 더 심하다. 처음에는 상당히 배타적이다. 나도 그 동민으로 인정받기까지 모든 일에서 소외되는 상당히 모진 기간을 보냈다. 들어온 사람, 언제 팔고 나갈지 모르는 부동산업자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촌집을 허물고 양옥단층을 지어 집들이하면서 돼지를 한 마리 잡아 동네잔치를 하고 나니 동민으로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내 또래들과 친구가 되고 동우회에 가입하고 나니 그때부터 이웃에서 대문 안으로 누군지도 모르지만 미나리나 상추 등 먹을거리를 밀어 넣어주는 풋풋한 시골인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때쯤 동네입구 국도변 텃밭에 식당을 지으면서 이사를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그 식당이 바로 그녀의 집이었다. 그 때 나는 이미 동네 친구들과 가끔 술자리를 같이 하곤 했다. 식당이 없는 동네에서 조그만 슈퍼 하나가 겨우 있었는데 그곳에서 술을 사서 동네 입구의 정자나무 그늘아래 평상에서 동네노인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마시곤 했는데 식당이 생기니 그곳에 수시로 드나드는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치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주차장이 넓어도 장사가 그리 잘 될 리가 없다. 식당 홀에서 술내기 화투를 쳐도 손님하나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땐 그녀도 주방에서 나와 화투판에 끼었다. 고스톱을 잘 치지 못하는 나는 번번이 그녀에게 지고 술값을 내야만했다. 그녀가 식당이 잘 안되어도 먹고 사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이제야 이름이 기억난다.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름이 기억난다. 나보다 너덧 살 많은 그녀의 남편이 진규 씨였다. 진규 씨가 자기 소유의 대형버스로 삼교대하는 어느 회사의 직원들을 출퇴근을 시켜주는 속칭 ‘모찌꾸미’를 하고 있었기에 생활비는 걱정이 없고 식당은 덤으로 하는 것이다. 시간이 많은 진규 씨와도 금세 허물의 벽이 무너지고 그 식당은 저녁이면 갈 곳이 마땅찮은 우리 술꾼들의 약속도 없이 슬금슬금 모여드는 놀이터가 되었다. 너무 갑작스레 전화를 받으니 식당 간판도 기억에 가물거린다.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보고 싶다.
-그래 언제 한 번 만나자. 만나서 소주 한 잔 해야지........
-여기에 찍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되지?
-응. 내 휴대폰이야. 이 번호로 전화를 하면 돼.
-그래 알았어.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정말 기억만 생생하게 부활시키고 안부도 제대로 묻지 못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배차를 담당하고 일보를 정리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부장 현장을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중기를 수배해 보라는 부탁을 하고 다시 말바우에 살고 있는 토박이 정수에게 전화를 했다. 정수는 거의 매일 만난다. 내가 그곳에 들어가 정수에게 포클레인을 가르쳐서 농사를 지으면서 직접 포클레인을 사서 영업을 하고 있기에 일 때문에 거의 매일 만나거나 배차 때문에 통화를 한다. 정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왜? 저녁이 되니 출출한 겨? 한 잔 하고 싶어?
-그게 아니라. 옛날에 말바우에서 식당을 하던 진규 씨 있지?
-그래서 왜?
-진규씨 언젠가 죽었다고 그랬지?
-그래....... 한 삼 년 되었을 걸....... 그때 나도 연락을 못 받아서 못 갔다고 했잖어?
-그랬나?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마누라 이름이 뭐더라.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금자 씨? 금자 씨가 전화 왔다고?
-그래 맞다 금자 씨! 나 정신이 왜 이런지 몰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인데.........
-연락 않고 지냈어? 나한테는 가끔 전화가 와.
-그래? 그랬구나. 알았어. 내일 현장 어딘지 알고 있지?
-오늘 하던 현장 하루 더 한다고 했는데 왜 또 바뀌었어?
-아니야 그대로 하면 돼. 그만 끊는다.
정수의 말을 들으니 금자 씨가 맞다 서금자. 우리는 그 얼굴에 무슨 금자라고. 비아냥거리며 농으로 금자라는 이름이 아깝다고 은자 씨라고 불렀다. 은자 씨는 그곳에서 식당을 약 이 년 정도 하다가 나보다 먼저 말바우를 떠났다. 이유는 집을 지으면서 얻은 빚과 예전에 빚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식당이 경매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구김살 없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생글거리는 얼굴이 기억에 가물거린다. 그 후에 그녀는 송정동에 월세를 얻어 식당을 하겠다고 했다. 그 식당 이름이 개판시대였다. 인쇄소로 쓰던 자리에 식당을 한다고 인테리어를 한다고 해서 정수랑 식당으로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곳에 가보았다. 사철탕 집이었다. 그 식당이름을 내가 지어주었다. 그 동네의 이름을 따서 송정식당이라고 하려는 것을 남들 기억에 남을만한 특이한 이름으로 지어야 한다며 사철탕 집이니 개판시대라고 하라고 내가 우겼다. 우리 시대가 개판이 아니냐고,
진규 씨도, 은자 씨도 그 상호가 맘에 들었는지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간판을 다 만들어 놓고 문제가 생겼다. 시청에 허가를 내러 가니 담당자가 남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상호로는 허가를 내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미를 먹는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결코 유쾌하지도 기발하지도 않은 상호였겠지. 그 자리에서 은자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
-갑자기 무슨 일인데?
-여기 시청인데, 개판시대로는 허가를 내 줄 수가 없다고 그러네. 담당자가 안 된다네. 간판까지 다 만들어놨는데........
-이유가 뭐래?
-남에게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명칭은 안 된다네.
-그래? 그럼 가판지대라고 고쳐서 허가를 내 그리고 간판을 고치면 되지.
-가판지대라고? 그게 무슨 뜻인데?
-몰라. 급하니까 그렇게 일단 허가를 내고 사업자를 등록하라고.......
-알았어.
그렇게 사업자를 내고나면 검사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인쇄소를 하던 자리에 가판지대라고 상호를 고쳐 허가를 내고 가게에는 개판시대라는 간판을 버젓이 달고 영업을 했다. 마음먹은 대로만 된다면 부자가 안 될 사람이 없겠지만 장사란 결코 마음먹은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이다. 골목 안에 위치한 것도 그렇고 주차장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월세가 싼 곳을 찾다보니 그런 위치에 가게를 얻어 식당을 개업한 것이다. 정수와 몇 번인가 손님으로 가보았지만 우리 외에 손님은 별로 없고 계원들과 지인들이 들락거리는 정도였다. 그렇게 해가지고 유지될까 우려가 앞섰다. 그 때는 이미 진규 씨가 하던 버스마저도 경매로 날아가고 없는 상태였다. 밥줄이라곤 오로지 그 식당에서 나오는 수입뿐이다. 온 식구가 수입이 시원찮은 식당에 목을 매고 있었다. 하루에 몇 테이블을 받나 속으로 따져보니 월세를 제하고 그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정수도 나도 그 개판시대에 갈 적마다 서로 말은 않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당이 되는 꼴로 미루어 정말 개판시대나 혹은 개판지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빗나가면 좋았을 우리의 우려는 결코 빗나가지 않았다. 냉혹한 시장경제의 총구 앞에서 개판시대는 장렬히 전사했다. 겨우 이 년 정도 버티다가 빚만 더 지고 북삼 어디론가 식당을 옮긴다고 했다. 그 후로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개판시대에서 은자 씨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들리는 풍문으로 북삼에서 촌집을 빌려서 사철탕이 주 메뉴인 식당을 하고 진규 씨는 그 골짜기 어디에선가 개를 사육한다고 했다. 그 때는 개 값이 소 값보다 비싸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거리가 멀어지자 우리의 발길도 점차 멀어지고 개판시대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렇게 십 년, 까맣게 잊고 있던 은자 씨로부터의 전화를 받고 나니 지난 세월이 아득하게 여겨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녀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어떻게 변했을까? 그 옛날 허물없이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그때의 모습이 아니라 많이 변했을 것 같기만 했다. 십년 세월인데 변하지 않을 수야 없겠지. 옛정이 되살아 연민의 이름으로 그녀가 그리워졌다. 인간이란 그렇게 간사한 동물인가 보다. 나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존재인데 전화를 받고나니 견딜 수가 없도록 보고 싶은 것이다. 진규 씨가 죽었다는 소문도 뒤늦게 들어 문상도 못가고 미망인이 된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전화를 끊고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고 윗도리 주머니에 든 전화번호 수첩에 은자 씨의 전화번호를 적었다. 나는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지 않는다. 자주 거는 몇 명의 번호가 단축으로 입력되어 있을 뿐이다. 꼭 명함이 든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는다. 가끔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전화기를 물에 빠트리거나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중요한 전화번호까지 몽땅 날아가기 때문이다.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 현장입구에 있는 세륜기를 점검하다가 물에 빠트리기도 했고, 골재 채취장에서 차량관리로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전화기를 모래밭에서 잃어버리기도 했다. 물론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마저도 잃어버리거나 물에 빠트리는 경우가 있지만 볼펜으로 적은 수첩은 물에 빠트려도 말리면 번호를 알아볼 수가 있을 정도다. 내 책상 서랍에는 물에 빠트렸다가 말린 전화번호 수첩이 들어있다. 급할 때는 그곳에 적힌 번호를 찾기도 한다. 어쨌든 은자 씨의 전화번호가 일회성으로 끝날 스팸 번호가 아니라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고 번호가 맞는지 다시 휴대폰을 열어 확인까지 하면서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서 점심이라도 한 끼 같이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옛 기억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K가 갈매기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부랴부랴 K가 있는 곳으로 갈 채비를 했다. 차를 가지고 갈까하다가 손가방을 메고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손가방에는 지갑과 손수건 그리고 물 한 병과 담배가 들어있을 뿐이다. 페달을 밟아 한참 가는데 전화가 들어와서 자전거를 세우고 전화를 받으니 K였다. 갈매기살 집에서 팔공산성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팔공산성은 꽤 고급스런 한정식 집이다. 나는 티셔츠에 반바지차림이고 자전거를 타고 가니 그 고급스런 한정식 집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다. 그런 한정식 집으로 옮길 때는 이유가 있다. 내가 모르는 귀한 손님과 같이 있을까 우려가 앞섰다. 그렇다면 내 차림은 실례에 해당한다. 내가 복장이 이렇다고 K에게 말하자 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복장에 신경 쓰지 말고 속히 오라는 말만했다. 누구랑 있는지는 묻지 않고 자전거를 돌려 부지런히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거의 이십 분을 달려 팔공산성에 도착하니 방을 하나 차지하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 예술가들이었다. K와 얼마 전에 국전에 입상하고 서실을 운영하는 J와 창작예술촌 촌장으로 있는 P의 부부가 나와 있었다. 어디를 봐도 귀한 손님은 없고 J의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대동하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이렇게 비싼 음식점으로 올 때는 무슨 의미가 있는 날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물었다. K의 말에 의하면 택지지구에서 옮기는 어느 문중의 제실을 짓는데 현판의 글씨를 J가 쓰고 P가 각인하여 현판식을 마치고 주인 없는 돈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럴 땐 푸짐하게 먹고 마셔주는 것이 한 부조하는 것이다. 너무 마시면 자전거로 귀가할 걱정을 하면서도 돌아오는 잔을 사양할 수가 없었다. 술이 어지간히 들어갔을 때 눈에 뜨이는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콩나물을 담아낸 접시였다. 고급식당인 만큼 그릇도 차별화시켜 방자유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콩나물 접시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방자유기를 인데 놋그릇의 질감이며 연꽃무늬 모양이 집에 가져가서 재떨이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어있는 콩나물 접시를 들고 J에게 말했다.
-접시 너무 이뿌다. 재떨이 하면 쥑이겠다.
-정말 그러네. 가방에 하나 넣어.
-그럴까?
우리는 장난스럽게 그 콩나물 접시를 내가 메고 간 손가방에 넣었다. 그게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접시를 가방에 넣어놓고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했다. 그날의 화두는 나그네였다. 너도 삶의 나그네요 나도 생의 나그네라는데 합의를 하고 K는 술기운에 일어서서 나그네라는 시를 외우고 P는 나그네를 노래로 불렀다. 취했다. 내가 자전거로 귀가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다난 P가 집으로 전화를 넣어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차를 가지고 와서 자전거를 접어서 짐칸에 싣고 손가방을 메고 돌아왔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생겼다. 지갑을 꺼내기 위해 열어본 손가방에 놋접시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지난밤에 장난삼아 가방에 넣은 것을 술기운에 깜빡 잊고 그대로 들고 온 것이다. 술기운에 집에 가져가서 재떨이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도저히 그것을 재떨이로 쓸 수가 없었다. 재를 떨 때마다 훔쳐온 물건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한참을 갈등하다가 그 물건을 돌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막상 가져다주려니 난감했다. 뭐라고 하지? 식당 문은 열었을까? 손버릇이 안좋은 작자로 오인 받겠지. 하지만 엄연히 남의 재산이니 돌려주어야한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놋접시를 들고 나와 팔공산성을 향했다. 그곳으로 운전하면서도 마음은 무거웠다. 팔공산성에 도착하니 너른 주차장은 깨끗이 비어 있었지만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아마도 점심 손님을 받기 위한 준비 중인 모양이다. 나는 접시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가 카운트 위에 올려놓고 청소를 감독하는지 그곳에 앉은 지배인에게 들고 온 접시에 얽힌 사연을 대충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가끔 그릇이 없어진다고 그는 설명하며 돌려받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적반하장이다. 내가 미안해해야 할 일인데....... 고개를 꾸벅하며 다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식당을 나서니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모든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버린 기분이었다.
은자 씨와 점심을 같이 할 수 있는 날은 의외로 일찍 왔다. 놋접시를 전해주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평동을 지나면서 문득 그녀가 생각나서 차를 세우고 전화번호를 뒤져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오전 열 시가 지나고 있었다. 집에 있을까 싶어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는데 그녀는 전화를 받았고 씻고 있던 참이라고 했다. 나는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고 그녀는 한 삼십 분 정도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부품가게에 잠시 들렀다가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신평 주공에 산다기에 주공아파트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부품가게에 들러 중기에 필요한 부품 몇 가지를 사서 잽싸게 주공아파트 앞으로 갔다. 점심을 같이 먹는 것보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맘이 설레었다. 아파트 입구에 차를 세우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한적한 주공아파트 안에서 걸어 나오는 바다를 보았다. 걸어서 나오는 그녀를 보자 바로 바다가 연상되었다. 바다가 연상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넓고 잔잔한,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그런 바다였다. 바다는 아파트 입구에 서서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쭉 훑어보았다. 내가 경음기를 한번 울리자 넓고 푸른 바다는 내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차 좋은 걸로 바꾸었네. 앞자리에 타도 괜찮은가 모루겠네. 사모님 자리 아녀?
출렁, 바다는 앞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풍덩 바다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이네. 우째 하나도 안 변했노?
-뭘 팍삭 늙었지 뭐. 아부성 발언은 여전하네.
-오랜만인데 손 한번 잡아보자.
악수를 하면서 보니 앙상하고 가느린 그녀의 손은 지난 세월을 속일 수가 없었다. 안전띠를 매고 차를 출발 시켰다. 근데 정작 갈 곳은 정하지 않았다. 호젓하게 점심을 먹으면서 오래된 회포를 풀만한 식당을 머릿속으로 물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고속도로입구로 차를 몰았다. 이 작은 도시에서 남의 눈에 뜨이지 않고 둘이서 오붓하게 점심을 먹기란 쉽지 않다. 익명성이 얕은 도시라 아차하면 아는 사람 눈에 띄어서 오해받기 십상이다.
하이패스 차선을 통과할 적에 그녀가 말했다.
-다섯 시까지는 돌아와야 해여.
-왜?
-사촌 동생이 하는 식당에 서빙을 하고 있어. 다섯 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하거든.
-알았어.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마땅히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무작정 상행선으로 핸들을 꺾었다. 상행선으로 올려 달리면서 어디를 갈까 더듬었다. 추풍령에 내려 갈비찜을 먹고 오면 되겠다 싶어 바다에게 물었다.
-추풍령 갈비집이 어때?
-난 고기 안 먹는데.......
-그래? 고기 장사를 하던 사람이 고기를 안 먹는다니 아이러니군.
그 말에는 대답이 없었다. 차가 속력을 낼 때까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왜 아무 말도 없어? 오랜만에 만나니 궁금한 게 많을 터인데,
-너무 오랜만이라 무엇부터 물어볼지 모르겠어.
나는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허벅지 위에 얹힌 가느린 손을 더듬어 잡았다. 바다는 순순히 손을 나에게 맡기고 있었다.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참 미안하다. 너무 무심하게 지냈지?
-바쁘게 살다보면 다 그렇지 뭐. 연락 못한 내가 도리어 미안할 따름이지.
-창규 씨는 명을 달리했다는 소릴 들은 것 같은데.......
가장 절실한 부분을 에둘러 감이 없이 정곡으로 찔렀다. 내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삼 년이 넘었네. 희귀병이었어. 처음에는 인파선 암이라고 했는데 진단받고 한 달도 걸리지 않았어.
-그랬구나. 참 미안하네.
-뭐가?
-그냥. 살아있는 것도 미안하고, 진규 씨 간 것을 모르고 있던 것도 그렇고.......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는 잔잔한 감정을 그대로 바다에 쏟았다.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말이 없었다. 바다의 손을 잡은 채 차는 정물같이 조용한 고속도로를 달려 추풍령 휴게소에 닿았다. 추풍령 톨게이트는 휴게소 중간으로 나가야 있다. 톨게이트를 빠져 나올 적에 바다는 나직이 말했다.
-저 뒤에 공원묘지에 아버님이 계시는데 얘야 네가 여기 웬일이니 그러시겠다.
진규 씨는 어디에 묻혀 있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잡은 손에 힘을 좀 더 주었을 뿐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거의 사십 분을 넘게 잡고 있었던 셈이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에 들어서며 말했다.
-남의 여자 손을 이렇게 오래 잡고 있어서 되겠어?
-남의 여자 손이 아니라 이젠 주인 없는 여자 손이야. 자기 돼지띠지?
-응. 돼지띠는 돼지띠인데 섣달 그믐날 나서 하루 만에 한 살 먹고 돼지띠에 턱걸이 했지.
-동갑이네 뭐. 나도 시월 생인데 겨우 두 달 차이네.
-그럼 친구해도 되겠구나.
-여태 친구로 생각 안했어?
-아니, 나는 남의 여자로 생각했는데....... 엉큼하게.
그 말에 바다의 주먹이 내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차를 천천히 운전하면서 국도변의 식당을 훑어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거, 마땅한 식당이 없네. 황간으로 갈까?
-그러지. 월류봉을 거쳐서 반야사를 보고 나오면서 황간 올갱이국을 먹는 게 어때?
-올갱이국 좋지. 근데 지금 시장한 건 아녀?
-난 원래 점심 안 먹어.
황간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차 속력을 붙여 황간으로 향하는 국도를 달렸다. 국도변 중간 중간에 러브호텔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 러브호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에 가서 회포를 풀고 갈까? 친구가 많이 굶었겠다.
-고양이가 쥐 걱정하지 말고.......
말을 흘리면서 주먹이 또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같이 다니려면 옆구리를 조심해야겠는데.......
황간 입구에 들어서니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언덕위에 정자였다. 언젠가 몇 번 가 본 정자였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 저곳에 가서 좀 쉬었다가 갈까?
-풍광이 좋은데, 고백하기 좋겠다. 나 자기에게 고백하고 상의할 게 있거든.
바다는 정자의 풍광을 훑어보며 나직이 대답하고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나에게 상의 할게 있다고.
-응. 고민이 좀 있어서........
고백하고 상의할 게 무엇일까 속으로 헤아렸다.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단지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요즘 같은 경기에 금전적인 문제를 요청하면 입장이 난처하다.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정자 언덕 아래 차를 세우고 계단 입구에 가니 가학로라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그것을 보니 누각의 이름이 생각났다. 가학루였다. 상행선 열차를 타고가다 보면 그림처럼 참 보기 좋은 누각이다. 가학루로 오르는 계단은 얼마 전에 공사를 마친 듯 돌계단이 깨끗이 놓여있었다. 둘이서 나란히 걷기에 충분할 정도의 넓이였다. 돌계단을 오르며 바다의 손을 잡았다. 계단은 곧은 것이 아니라 언덕이 워낙 가팔라서 지그재그로 경사를 완만하게 하고 난간까지 돌을 깎아 설치해두었다. 공사비가 꽤나 들었겠다.
계단 중간쯤 오르다가 바다의 손을 끌어 돌려세웠다. 그리고 슬며시 그녀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이 좋은 풍경 속에서 바다에 풍덩 빠져볼까?
-바다라구?
-응. 친구 마음이 태평양이잖아?
-꿈 깨! 나 그리 깨끗한 여자 아니야.
바다는 잠시 안겨 있다가 슬며시 몸을 빼며 말했다. 깨끗한 여자가 아니라구? 그럼 상의한다는 게 금전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남자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언덕에 올라서니 가학루보다 뒤에 있는 황간 향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데이트하는 연인처럼 손을 잡고 문이 열려있는 향교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한낮이었다. 향교 마루에도, 섬돌에도 송홧가루가 노랗게 앉아 있었다. 나는 향교마당 빛 좋은 잔디밭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빼물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바다는 마당에 깔린 잔디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고 살피고 있었다. 딱 오십이다. 그녀의 나이가, 그 나이의 바다가 해맑은 소녀처럼 여겨졌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저 바다에 풍덩 빠져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칫하면 바다가 아니라 수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앞섰다. 정확히 친구이고, 마음을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 이상으로 발전하면 부담이 생길 것만 같았다.
담배를 다 피우자 바다가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서라는 말이었다. 내 엉덩이에도 송홧가루가 묻은 모양이다. 바다가 잠깐만, 하더니 내 엉덩이에 묻은 송홧가루를 정성들여 깨끗이 털어주었다. 다시 바다의 손을 잡고 가학루로 갔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원래 찾기가 힘들다. 정자는 좋은데 낭떠러지 아래로 흐르는 냇가에는 오랜 가뭄으로 물이 말라있었다.
-신발을 신고 올라가도 되는가 모르겠네.
가학루의 두꺼운 마룻장을 보며 바다가 나직이 뱉었다. 모든 게 조심스런 여자다.
-이 송홧가루에 신발 벗고 올라갈 거야?
내가 먼저 신발을 신은 채 마룻장에 올라서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퉁을 놓았다. 가학루에 올라서서 한참동안 말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황간 시내를 둘러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바다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렇게 만나니 꿈만 같아.
바다가 고백할 게 있다고 했으므로 그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그녀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조용해?
나는 그녀의 어깨에 두 팔을 올리며 친근감을 더 두텁게 하고 나직이 그녀가 입을 열기를 종용했다. 그녀도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무 얘기라도 괜찮아. 우린 친구잖아.
-그래 친구....... 남자가 있어. 아니 이젠 있었다고 해야겠다. 식당 할 적에 만난 사람인데 모기업의 간부야. 만난 지 팔년이 넘었어.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만난 지 팔 년이라면 진규 씨가 살아 있을 때부터 만났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나는 태연한 척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다른 여자가 생겼어. 식이 아빠 살아 있을 적에 그렇게 이혼을 종용하던 자식이.......
거기까지 얘기하고는 눈시울이 글썽이더니 기어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머니의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다른 여자가 생긴 걸 어떻게 알았는데?
-메시지가 왔어. 일주일간 해외출장이라던 자식이 다른 여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잘못 넣어서 나에게 온 거야. 해외출장도 거짓말이었고........
-혼자 사는 홀아비야?
-아니, 별거중이야. 만나자는 장소에 내가 나갔으니 제까짓 놈이 얼마나 놀랐겠어? 제가 메시지 잘못 보낸 줄은 모르고.......
-상상이 되네. 그래서 끝장낸 거야?
-아니! 난리를 부렸더니 그 자식이 뜻밖의 제안을 하더라구. 식당을 하나 차려주겠다는 거야.
-식당?
-응. 조그만 국밥집을 하나 하고 싶었거든.
-그 작자 돈은 좀 있는 거야?
-그 정도 형편은 될 거야.
-근데 내 마음에 변화가 왔어. 그 비열한 자식이 꼴도 보기 싫은데 그 식당을 할 수가 있을까?
나는 다시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조용히 말했다.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돈으로 식당을 차려서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런 작자라면 식당 차려주고 그것을 볼모로 얼마나 거들먹거릴지....... 포기하는 게 어때?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은자 씨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사람을 하나 만들어라.
-친구가 있잖어?
-나를 그런 대상으로 생각했어?
-아니 애인이 아니라 상의할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여자가 혼자 살려면 바람막이가 필요해. 그 자식을 바람막이로 생각했는데 뒤통수 맞았지. 식이 아빠를 대신해서 믿고 상의하고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있었으면....... 그렇게 생각하다 청기 씨가 생각났어.
-나도 남의 남자야. 나를 뭘 믿고?
-청기 씨는 겪어봐서 알아. 남자이기 이전에 친구야.
그 말에 나는 바다를 힘껏 껴안았다. 오십이 다 된 바다의 볼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내 어깨를 적시고 바다의 어깨 너머로 또 다른 잔잔한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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