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퍼억, 으아악, 퉤에, 저리 꺼지지 못해, 이 쓰레기 같은 인생아. 한 사내가 자신의 두 번째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다가와, 날 더 때려보지 그래? 날카로운 표정과 멋드러진 콧수염,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검은색 가죽장갑을 낀 사내는 쓰러져 있는 상대를 향해 침을 내뱉는다. 흠씬 두들겨 맞아 가눌 수조차 없는 몸을 간신히 전봇대에다 기댄 상대는 여전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를 흘겨본다. 어디, 더 덤벼보지 그래! 아랫입술이 찢어져 발음은 새나가지만 상대의 말투는 제법 크고 또렷하다. 그렇게 힘껏 두들겨 맞았어도, 사내는 절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맞으면 맞을수록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 적어도 남자라면 저래야 하는 거야!"
아버지가 무릎을 탁 치며 말한다. 돌려보고 또 돌려봤을 비디오테이프는 이미 늘어질 대로 늘어져 이제는 지지직 소리까지 낸다. 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오직 이것뿐이다. 방 한 구석에 누워 액션영화를 보는 것. 그것도 보고 또 본, 지루하기 그지없는 영화를.
“옳지, 옳지. 그래야지. 잘한다! 이단 옆차기로 머리통을 날려버려. 아주 발이 쭉쭉 나가네. 자고로 남자란……"
첩혈쌍권, 백두무간, 화용영색…… 팔십 년대 유행하던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제목을 살짝 교묘하게 바꿔서 나온 영화들. 나오는 사람들 이라고는 다들 어깨가 딱 벌어진 남자들 뿐이었다. 흑백영화에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액션만 나오는 영화들. 그 속엔 오로지 피 흘리는 깡패들과 이긴 승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죽음의 승부>라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의 영화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액션영화 중 하나였다. 거액의 돈을 숨겨 둔 불상을 차지하려는 세 남자가 서로를 속이고 배반하면서 결국엔 모두 죽음에 이르고 말지만, 정작 그 불상은 이미 용광로에 녹아버리고 없었다는 전형적인 ‘권격' 영화였다. 보고 또 보아서 이제는 소리만 듣고도 어떤 장면일 지 눈에 선한 그런 영화를 마치 처음 보는 영화 보듯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는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버지의 두 눈동자 속에는 오직 공중돌려 가위차기로 상대의 머리를 날리는 액션배우만이 들어 있었다.
“이 아버지가 왕년에 말이지. 저 권영문이 보다, 저기 저 리차드 박보다 훨씬 더 잽쌌어. 이십 대 일! 그건 싸움 축에도 못 껴. 이 아버지가 어땠냐 하면……"
또 시작이다. 아버지는 액션영화를 볼 때마다 나를 앞에다 앉혀두고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스무 살 때의 이야기. 이십 대 일로 싸우게 된 아버지가 (물론 그 '한 명'이 아버지 였음은 말 할 것도 없다) 이십 명을 맨 손으로 물리쳐서 귀덕리에서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었다는 그 이야기.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마치 지나간 일을 회상이라도 하는 듯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눈을 지긋이 감고 상념에 잠기곤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마치 종로 바닥을 주먹 하나로 평정한 김두한 이라도 되는 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말했다. 이미 서른 번도 더 넘게 들은 그 이야기를 말이다.
“그래서, 그 녀석 중에 말이야, 어떤 건방진 녀석이 내게 덤비길래 그만……"
“좀 조용히 해주실래요!"
잔뜩 신이 나서 말하고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일순간 멈춘다. 쾅, 그리고 탁. 문을 닫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울린다. 진식이의 말 한마디면, 그리고 저 문 닫는 소리만 들리면 우리집은 찬물을 끼얹은 것 마냥 싸해진다. 아버지는 하던 이야기를 도중에 멈추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함성 소리가 혹시 진식이의 방에까지 들릴 까봐 안방 문을 슬며시 닫는다. 그리고 잠시 일시정지 상태였던 비디오를 다시 재생시킨다. 잠깐 동안 정적이었던 텔레비전에서 이내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상대편을 흠씬 두들겨 패던 권영문이란 배우는 전세가 역전되어 상대편 아지트로 끌려가 두 팔이 묶인 대로 뺨을 맞고 있었다. 아까의 기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개를 숙인 채 두 뺨이 울그락 불그락 부풀어 오른 권영문은 아까 공중돌려 가위차기를 하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비굴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맞은 뺨을 감싸 쥐고 있는 권영문은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가끔씩 아버지가 내쉬었던 것 마냥 아주 깊고 쓸쓸한 한숨. 아버지는 그런 권영문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내 눈엔 그런 아버지가 권영문 보다 더 비굴하고 처절해 보인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인 진식이에게 조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저 말만 아버지니까.
사실 진식이는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진식이가 아버지를 부를 땐 늘 ‘그 사람, 혹은 저 사람'이라 부른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뀌는 호칭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그 사람이 되기도 했고 저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가 진식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방문을 꼭 닫는 것 외엔 없다. 진식이가 없으면 우리 가족은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아버지와 나는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내가 만 서른 살이 된 오늘까지 아버지는 내내 경제적 무능력자로 남아있다. 단 세 식구뿐인 가족의 생계도 오롯이 책임지지 못했으니까.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진식이 만이 우리집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요즘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책과 씨름하고 있다. 그 작은 방에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질 때나, 텔레비전 소리가 거실을 통과 해 진식이의 방까지 들려오면 문을 다시 쾅, 하고 세게 닫거나 ‘좀 조용히 하세요, 시끄럽잖아요'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아버지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날카로운 진식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어깨가 축 처졌다.
이십 명쯤 되는 상대를 거뜬히 맨 주먹과 맨 다리로 쓰러뜨렸던 권영문은 결국 상대의 거센 일격필살의 발차기를 통해 쓰러지고 만다. 입술은 터져있고, 쌍코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할딱거리는 숨을 놓지 않으려고 권영문은 있는 힘껏 다시 의자다리를 잡으려 하지만, 결국엔 스르르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어설프기 그지없는 하모니카 소리가 엔딩곡으로 흘러나온다. 카메라는 마지막까지 권영문의 모습을 잡고 있다. 권영문은 비록 쌍코피가 터진 채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기까지 그가 보여줬던 액션은 그 어떤 것보다 더 빛이 났다, 라고 말하는 것 마냥 권영문의 뒤에서 광채가 보인다. 어설픈 컴퓨터 그래픽이다. 내가 봤을 땐 권영문은 영웅이 아니라, 입술이 터진 채로 죽어버린 패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검은색 배경에 흰 글씨체로 주인공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올라가는 것을 보고서야 텔레비전을 껐다.
비디오 재생기 옆에는 소복히 먼지를 덮어 쓴 액션영화 테이프가 서른 개 남짓 더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 그 테이프를 쌓아놓은 순서대로 돌려보았다. 매일 똑같은 액션과 주인공들, 그리고 하모니카 배경음까지. 비디오 가게 가장 안쪽 진열장에 먼지를 소복히 덮고 있을 법한 그 테이프들. 주인조차도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그 비디오테이프들이 언제부턴가 아버지를 지탱해주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그 지겨운 액션영화를 볼 때만 웃었다. 입꼬리를 활짝 올린 채로. 아버지에겐 그것들이 삶의 낙이었다. 하지만 그 애물단지 비디오는 형과 나에겐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겨운 것들에 불과했다. 방에서 누워만 있던 아버지가 비디오테이프를 재생기에 넣는 딸깍 소리가 들리면 진식이는 늘 아버지를 향해 툴툴거렸다. 지겨워! 정말!
오늘로서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십 오년 째 되어간다. 십 오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서히 엄마라는 존재는 우리에게서 잊혀져 갔다. 내가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만큼 엄마는 점점 잊혀져 갔지만, 엄마가 집을 나간 날 만큼은 아직까지도 또렷히 기억난다. 잊을 래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날은. 내가 그 날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사 월 이십사일. 내 열 다섯 번째 생일날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날따라 유난히 표정이 밝았다. 여태껏 엄마와 살면서 엄마 표정이 밝았던 적이 딱 세 번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술을 안 먹고 온 날이었고, 하루는 진식이가 중학교를 수석 입학 한 날이었고, 하루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엄마에게 돈봉투를 건넨 날이었다. 입꼬리가 연신 올라가 있는 엄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시장에 갔다. 그리고 미역국을 끓이고 내가 좋아하는 잡채도 만들었다. 엄마에게 생일상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간장 양념이 알맞게 배인 당면에 간간히 들어가 있는 나물들과 돼지고기는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난생 처음 생일 축하를 받게 된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기뻐서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지를 않았다. 이런 풍경이야 말로 내가 예전부터 꿈꿔왔던 가정의 모습이었다. 아내는 정성스레 저녁을 준비해 퇴근하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돌아오자마자 현관으로 달려가 ‘아빠!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하며 안긴다. ‘뭐 좋은 냄새가 나는데?'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시치미를 뚝 떼며 ‘글쎄요, 무슨 냄새일까요? 한 번 맞춰 봐요!'라는 다정한 말투를 내뱉으며 남편의 가방을 받아든다.
덜컥, 쾅, 지지지직. 역시나 그건 내 머리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이명자 어딨어!"
터벅, 턱, 지이이이이익. 신발을 질질 끄는 버릇은 여전했다. 술에 걸죽히 취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주특기는 술 들이마시기요, 또 하나는 두 아들이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엄마를 액션영화의 상대역처럼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액션영화는 때리고 때리다 지쳤을 때 끝이 났다. 이리와! 또 어디 숨었어! 나를 보며 활짝 웃었던 엄마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진식이 마저, 그런 아버지를 한 번 쏘아보더니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를 한 내가 바보지,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진식이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쾅, 진식이는 방문을 굳게 잠가버렸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정신 차리시라구요!"
그날도 역시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단지 잠시 헛된 희망을 품었을 뿐. 엄마는 주먹을 들이대며 금방이라도 발로 찰 것 같은 아버지를 피해 부엌 찬장 뒤에 숨어버렸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찾아 안 그래도 좁은 집을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뒤졌다.
이명자! 이리 나오지 못해! 어디로 숨은 거야?
아버지는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다가 이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디서 퍼 마신 건지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난 그때 처음으로 털썩 주저 앉아버린 아버지가, 이대로 영영 앉아서만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느님께 기도 드렸다. 하느님, 하늘에 계신 하느님, 제 마음 아시죠? 제발요, 제발요, 아멘. 엄마는 찬장 뒤에서 그런 아버지를 숨 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엄마의 두 눈과 내 두 눈이 마주치지만 않았더라면 엄마는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를 경멸하듯이 쳐다보던 내 두 눈과 그런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엄마의 두 눈이 순간 마주쳐 버렸다. 엄마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엄마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아버지를 노려보는 내가 들어 있었고, 또한 실핏줄이 터져 있는 채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허공에다 팔을 휘둘러 대는 아버지가 들어 있었다. 엄마는 어쨌거나 아버지의 아내였다. 주정뱅이와 술꾼과 더 이상 아버지라는 이름조차 무색한 김장국의 아내였던 것이다. ‘난 절대 저 사람처럼 살지 않아, 당신은 아버지도 아니니까'라고 쉴 새 없이 얘기하고 있는 내 눈과 엄마의 눈이 마주쳐 버렸던 것이다. 엄마는 금세 고개를 숙여 내 눈을 피했고 나 역시 엄마를 다시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상까지 엎어버렸다. 내 잡채. 그 먹음직스럽게만 보였던 잡채는 시금치 따로, 돼지고기 따로, 당면 따로 모두 마루 바닥에 흩어져 버렸고, 나는 그때 그래도 아버지라고 먹지 않고 기다렸던 나 자신을 원망했다. 그것도 아버지라고. 엄마는 그날로 아버지가 잠들자마자 집을 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잘 있어, 엄마 갈게. 엄마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응, 엄마. 나는 여행용 가방을 마치 보물 다루듯이 감싸 안고 나가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잘 가, 엄마. 다시는 돌아오지 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덤덤하게, 아주 덤덤하게. ‘하느님, 저 사람의 주먹을 평생 못 쓰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게 내가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저항이었다. 내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기도. 진식이는 항상 누워 있는 아버지 쪽을 향해 먼지를 털었다. 저 잡귀, 얼른 썩 꺼져버려라. 하느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신 건지 아버지는 더 이상 주먹을 쓰지 못한다. 그때처럼 있는 힘껏 주먹을 꽉 쥐고 뻗어보아도 힘이 없어서 그런지 더 이상 파괴력을 갖지 못한다. 그때부터였나. 아버지는 자신의 주먹의 힘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액션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작은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배우들이 마치 자기라도 되는 것처럼. 아버지는 화려한 액션을 펼치고 있는 주인공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부터 우리 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옷에 붙어 있는 먼지와 같은 존재였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먼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금방 털어내도 좋을 그 먼지.
“어디 가?"
“응, 서점에."
진식이는 한동안 닫고 있었던 방문을 열었다. 그새 얼굴 살이 빠진 게 그 공무원 시험인지 뭔지를 준비하는 게 힘든 모양이었다. 안 방의 열린 문틈 사이로 아버지가 진식이를 빤히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진식이는 그런 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불쾌해, 정말 불쾌해. 신발을 신던 진식이가 짧게 내뱉는다. 진식이는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맨다. 운동화 끈을 있는 대로 꽉 조여 매는 건 진식이의 오랜 습관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식이는 늘 운동화 끈을 꽉 조이면서 살았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운동화에서 발이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자주 운동화에서 발이 빠지곤 했다. 내가 묶는 매듭은 늘 느슨했다. 매듭을 왜 이렇게 맸어? 이러면 금방 끈이 풀리잖아. 매듭은 이렇게 매는 거라구. 자, 잘 봐. 진식이는 내 운동화 끈을 매주면서도 늘 나에게 매듭 묶는 법을 알려주었었다.
“아, 왜요! 왜 자꾸 쳐다보시는 건데요!"
진식이가 급기야 화를 낸다. 꼭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다. 터질 것 같이 짓눌린 볼과 씰룩거리는 입술은 진식이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난 상태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저, 만 원만 놓고 가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놓고 가라, 라는 목소리는 귀를 쫑긋 세워야지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놓고 가라…… 놓고 가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서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진식이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낸다.
“형, 이거 저 사람 갖다 줘."
진식이와 아버지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버지의 호칭은 저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저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고 있다. 언제부터 저렇게 되어 버렸을까, 아버지는. 그래도 예전에는 때릴 힘이라도 있었고, 물건을 던질 힘이라도 있었다. 늘 술에 쩔어 살아도 ‘나, 니네 아버지야! 어디 아버지 앞에서 큰 소리야!' 라고 말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모습 그대로다. 진식이가 공부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고, 손님을 상대한 결과였을 그 돈. 아버지의 뭉툭한 손이 만 원짜리 지폐를 꽉 쥐고 있다. 마치 내가 어릴 적 막대사탕을 뺏기지 않기 위해 오른손에 막대를 꽉 쥐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조그만 택시회사를 했었다. 다섯 대의 택시가 앞에 세워져 있던 작은 사무실은, 회사라고 부르기엔 멋쩍었었지만. 진식이와 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저 멀리서도 아버지와 엄마가 손걸레를 들고 택시를 박박 닦는 모습이 보였다. 택시에서는 반짝 윤이 났다. 아버지는 택시의 구석구석을 손걸레로 열심히 닦았다. 엄마는 사무실에서 쥬스 한 잔을 따라와 아버지 에게 건네며 ‘좀 쉬었다 해요, 여보'라고 말하며 아버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기도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것만 마저 좀 닦고'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눈가에 자글한 주름이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런 행복은 정말 잠시였다. 아버지의 그 택시회사는 부도가 났고 우리 가족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모든 것을 다 택시 회사에 쏟아 부었던 아버지에게 남은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쓰러진 몸을 일으키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늘 술에 쩔어 살았고 그때부터 아버지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만 마시세요.' 진식이가 아버지의 술병을 뺏었던 그 날, 아버지는 진식이의 뺨을 내려쳤다. 진식이의 하얀 볼이 울그락불그락하며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건 다 필요 없는 거라고! 어서 공부나 하란 말이야! 변호사 되고 의사되고 회사 사장님 되는 데 이런 건 필요 없어! 아버지가 내려친 건 망원경이었다. 망원경의 렌즈는 이미 깨지고 없었다. 유리파편이 바닥에 떨어졌고, 진식이는 깨져버린 렌즈를 줍다가 손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는 아직까지도 진식이의 손바닥에 남아있다. 별을 보는 걸 좋아했던 진식이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늘 같은 자리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별이 좋다고, 까만 하늘에 박혀 있는 별에 가고 싶다고 소원을 빌던 진식이었다. 진식이에게 제일 소중한 물건이었던 그 망원경을 사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기다란 천체망원경을 보긴 했다만, 아버지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그런 건 백 만원이 넘는다고 하더라. 우선 이걸로 보고 아버지가 나중에 천체망원경인가 뭔가 그거 사다 줄게. 그래도 그게 망원경 중에는 제일 좋은 거라고 하더라."
아버지가 진식이에게 망원경을 건넸던 날은 택시가 한 대 늘어난 날이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아버지는 그 날 망원경과 두둑한 돈봉투를 들고 왔었다. 엄마는 그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였다. 진식이는 그날 망원경을 품에 꼭 안고 잤다. 망원경을 안고 잠을 자면 꿈에서도 커다란 별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 별에 아버지랑 엄마랑 형이랑 다같이 놀러가고 싶다고 말했던 진식이었다. 망원경의 렌즈가 깨져버린 그 날 이후부터, 진식이는 별을 다시는 보지 않았다. 별 따위는 없다고 굳게 믿어버렸다.
“백과사전에서 보니까 내가 그토록 믿고 있던 그 별이 사실은 인공위성이라고 하지 뭐야. 사실은 별이 아니었던 거야. 난 별인 줄 알았었는데"라고 말하던 진식이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진식이가 믿고 있던 그 별은 사실은 망원경을 가지고는 볼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반짝거리는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이었다. 진식이는 그때부터 방 한구석에 처 박혀 교과서만 읽어댔다. 그때부터였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진식이의 망원경이 깨지고 난 이후부터 진식이는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불렀다.
쨍그랑. 술잔과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 소리가 참 경쾌하다. 아버지는 술잔에 술을 따른다. 흔들흔들, 손이 떨려 술이 술잔 안에서 흔들린다. 위태롭다. 홀짝. 아버지는 한 번에 마시지 않고 조금씩 입맛을 다신다. 아버지는 오늘로써 세 번째 액션영화 비디오테이프를 재생기에 집어넣고 있다. <나는 왕이다>라는 유치한 제목의 영화. 드르르륵, 오래된 테이프에서는 필름이 감기는 소리가 난다. 오로지 맨주먹 하나로 싸우는 사내는 온 몸에 피멍이 들도록 맞기만 한다. 각목으로도 맞고, 유리병으로도 맞는다. ‘어디 덤빌테면 덤벼 봐. 나도 당하고 있지 만은 않을 테니까. 남자답게 맨주먹으로 상대해 주겠어.’ 좁다란 골목길에 사내와 패거리들만이 남았다. 카메라는 그들의 추격전을 천천히 훑어간다. 사내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흐른다. 헉헉, 사내의 호흡이 점점 가빠진다. 사내는 지금 골목의 막다른 길에 서 있다. 뒤에서는 계속 패거리들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벽, 꽉 막혀 있는 벽. 사내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니가 맨주먹으로 상대한댔지? 어디 한 번 붙어보자고.’ 패거리들 중 한 명이 검지손가락을 까닥거린다. 한 쪽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사내를 빤히 쳐다보는 그들의 눈에선 살기마저 느껴진다. 사내는 점점 그들에게로 다가간다. 그에게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주먹, 그 뿐이다. 꽉 쥐어진 주먹이 상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뒤에서 패거리들이 던진 벽돌에 사내는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맥아리 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내의 손에는 여전히 주먹이 꽉 쥐어져 있다. 절대 절대 지지 않아, 너희 같은 자식들에게. 사내는 있는 힘껏 외친다. 하지만 사내의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만 들릴 뿐이다. 아버지의 눈이 잠시 흔들린다. 그저 술잔과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진식이도 없을 뿐더러 분명 이쯤이면 옛날이야기가 나왔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대로 술만 마시고 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다. 액션영화의 주인공들은 아버지를 닮았다. 이길 수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향해 한 번도 내밀지 못한 그 주먹은 피지도 못한 채 꽉 쥐어져있다. 아버지, 오, 아버지, 불쌍한 내 아버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주먹을 쥘 힘마저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기 안의 테이프는 계속 재생되고 있다. 아무도 믿지 않는 자신의 그 시절을 천천히 되 뇌여 보기라도 하듯이, 그것도 아니면 주먹조차 쥘 힘이 없어 그저 멍하니 액션영화만을 보며 그 안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동경하는 것인지, 아버지는 세 번째 액션영화 <나는 왕이다>에 빠져있는 중이다.
“여기 진식이 학생 있어?"
“진식이 없는데요."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 방에서 아버지가 대문 쪽으로 다가온다. 주인집 아줌마는 아버지의 흐리멍텅한 두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대체 집세가 얼마나 밀렸는지 알기나 하세요! 수도세, 전기비도 밀렸고. 내 그쪽 사정 어려운 건 알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진식이 학생 공부하면서 돈 버는 거 안됐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런닝셔츠 하나만을 입고 나온 아버지가 아직 초봄의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떤다. 더욱이 주인집 아줌마의 연설 아닌 연설은 삼십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아버지는 그동안 고개를 숙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남자는 언제나 고개를 빳빳히 들고 다녀야 해. 설사 너희들이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고개는 절대 숙이지 말아라.’ 그런 아버지가 집세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이 꼭 스프링 인형 같다. 고개를 들고 싶어도 흔들거리는 스프링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는……
“까짓 것 백 만원이 돈이라고."
아버지는 주인집 아줌마가 지나간 곳을 향해 침을 퉤하고 뱉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저 호주머니에는 소주를 사고 남은 돈 고작 오 천원이 남아있을 것이다. 잔뜩 구겨진 채로.
“형, 잠깐만 이리와 봐."
계속 책만 읽던 진식이가 갑자기 책상 이곳저곳을 뒤적거린다. 그러다 아예 서랍까지 엎는다. 진식이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길래, 진식이가 저리도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것일까. 나를 부르는 진식이의 목소리가 작아서 처음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가 들을까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형, 혹시 내 책상 위에 있던 통장 못 봤어?"
“통장이라니, 무슨……"
“아니, 됐어."
진식이는 내 말을 중간에 가로채더니 갑자기 안방으로 다가갔다. 내, 저 사람을 그냥. 진식이의 혼잣말이 멀리 서 있는 나에게 까지 들려왔다.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높았다. 터벅터벅, 아버지가 있을 안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진식이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탁!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냥 멀찍이서 바라보기로 했다.
“어딨어요?"
진식이가 빤히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자 구석에서 액션영화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난다. 한참 패싸움 중이던 액션영화는 일시정지 상태로 멈추어졌다.
“뭐가?"
“자꾸 이럴 거예요! 내 통장 어딨냐구요!"
“통장이라니."
“아, 어딨냐구요!"
“무슨 통장?"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아버지는 진식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진식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었다.
“비굴하지도 않아요? 이렇게 자식 통장을 몰래 훔쳐가서 쓴다는 게. 저 싸구려 영화 볼 시간에 거울이나 한 번 더 봐요.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진식이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까부터 아버지는 진식이 앞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진식이의 방에서 나왔다. 살짝 열린 안 방 문 틈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거울을 보고 있었다. 작은 손거울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울을 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버지는 그저 멀뚱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쉰다. 나는 그저 멀찍이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거울 속에는 너무나 작아져 버린, 너무나 변해버린 아버지가 들어있었다. 멍하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이내 오른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본다. 숱도 없는 머리카락은, 어느새 인가 하얗게 변해있었고, 이마의 언저리에는 거뭇거뭇한 반점들이 보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 하냐?"
“뭘요?"
“통장인가 그거, 말이다."
아버지는 거울을 바닥에 내려두고 열린 문 틈 사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묻기 전까지는, 진식이의 그 통장이 아버지의 호주머니 속에 잔뜩 구겨진 채로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기 때문이었다.
진식이에게 그 통장은 희망 같은 존재였다. 진식이의 책상 서랍 안 쪽에는 깨어진 유리조각이 있다. 그 유리조각은 다름 아닌 깨져버린 망원경의 렌즈 조각이었다. 진식이는 그걸 버리지 않고 있었다. ‘별은 없어, 그거 인공위성이거든' 이라고 말했던 진식이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별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다섯 달 동안 용돈을 아껴가며 모은 삼십 만원으로 아버지가 깨뜨렸던 그 망원경을 살려고 했었던 모양이었다. 진식이는 아버지가 통장을 가져갔다고 굳게 믿는 눈치였다. 그날 이후로 진식이는 아예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진짜 저 사람 용서 할 수가 없어. 꼭 찾아내고 말 꺼야. 내 통장."
진식이는 아버지가 잠시 슈퍼에 나간 사이에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얗게 먼지가 묻은 비디오테이프는 이리저리 널부러진 지 오래였고, 찬장 안쪽에서부터 서랍 구석까지 진식이의 손이 닿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런데 안방 구석구석을 뒤지던 진식이가 갑자기 가만히 서 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안 방으로 다가가니 진식이가 찬장 안쪽에 있는 서랍을 열어 놓은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진식이 옆에서 찬장 서랍을 훑어보던 나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랍 안 쪽엔 깨진 망원경이 있었다. 아버지가 진식이에게 사 주었던 그 망원경,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진식이가 보는 앞에서 깨뜨려 버렸던 그 망원경. 그 망원경이 찬장 안쪽 서랍에 들어 있었다. 렌즈가 깨져버린, 이제는 쓸 수조차 없어져 버릴 만큼 낡은 망원경이 진식이의 두 눈에 들어왔다. 진식이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벌써 십 년이나 지나버렸다. 아버지는 십 년 동안 저 나무서랍 안 쪽에 깨져버린 망원경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진식이는 서랍 안쪽에서 먼지를 뽀얗게 덮어 쓴 그 망원경을 집어 들었다. ‘형, 이거 렌즈만 바꿔 끼우면 다시 쓸 수 있을까. 별을 볼 수 있을까.’ 진식이는 손에서 망원경을 놓지 않았다. 며칠 후 진식이의 가방 안 쪽에서 통장이 발견되었다. 파란색 배경에 분홍색 돼지가 그려져 있는 통장, 입금주 이진식. 분명 진식이의 통장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통장을 찾은 진식이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안방을 뒤적거리더니 결국은 네 가방 속에 있었네. 그럼 이제 그걸로 망원경 살거니?"
“벌써 생겼잖아. 새 망원경."
진식이는 책상 서랍 안 쪽에서 깨진 렌즈조각들을 모으고 있었다. 버리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요 근래 보았던 진식이의 표정 중에 제일 밝아 보였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아버지의 손이 순간 멈칫한다. 아버지가 채널을 멈춘 곳에서는 여자 사회자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양념을 하면 어떤 맛이 나나요? 제가 한 번 먹어 봐도 될까요, 요리사님? 투박한 손가락을 가진 남자 요리사는 연신 당면을 주물락 거리고 있다. 여자 사회자는 카메라 앞에서 잡채를 집어 먹으며 ‘너무 맛있어요'라며 입꼬리를 활짝 올리며 웃는다. 요리사는 사회자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주물락 거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잡채였다. 카메라가 계속 비추고 있는 잡채에서는 반지르르한 윤기나 났다. 아버지는 남자요리사가 잡채를 만드는 걸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요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요리사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지금 다른 채널에선 이달의 특선 영화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액션영화가 한 편 방영되고 있을 터였다. 아버지는 그것도 잊은 채 계속 요리사가 주물락 거리는 잡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형, 이거."
“이게 뭐야?"
진식이가 내게 건네준 건 오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다. 내가 먼저 돈을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진식이가 내게 돈을 준 적은 처음이었다.
“그냥,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저 사람이랑 군것질이라도 해."
책이 많아 뒤가 볼록 튀어나온 가방을 멘 진식이가 신발 끈을 묶는다. 가방이 무거워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 가방이 무겁기 때문일까. 진식이의 어깨가 평소 때보다 더 처져 있다.
“오늘 늦을 거냐?"
요리 프로그램이 끝났는지 텔레비전을 끄고 현관으로 나온 아버지가 진식이를 향해 물었다. 아버지가 진식이에게 말을 먼저 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 역시 처음 보는 광경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멍하니 그 두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식이에게 말을 건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꽤나 덤덤했다. 나는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에 바빴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에 집중하면서.
“일찍 올게요."
진식이는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한테 말했다. 일찍 올게요, 일찍 올게요…… 그 말이 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늦게 올 걸 알면서도 묻는다느니, 그런 건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느니 하며 투덜대거나 아예 대답도 안하고 나가버렸던 진식이었다. 진식이의 아버지의 처진 눈을 빤히 쳐다보며 일찍 올게요, 라고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진식이와 아버지의 눈이 서로 이렇게 마주친 것도 몇 년만이었다. 그동안은 서로 눈을 피하느라 바빴으니까.
“오늘 니 형 생일이잖냐. 되도록 이면 일찍 와라."
귀까지 벌게진 아버지가 진식이에게 넌지시 말하고는 방문을 슬쩍 닫았다. 안방에서 야, 퉤에, 퍽,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액션영화가 벌써 시작된 모양이었다. 사월 이십사일. 내 생일은 십 오 년 전부터 없었다. 생일이라는 말 자체를 몇 년 째 잊고 살았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생일' 이라는 말에 기분이 왠지 이상해졌다. 아까 아버지가 보았던 요리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윤기 있는 잡채가 내 눈에 자꾸 아른거린다. 십 오 년 전에 엄마가 만들었었던 잡채도 그렇게 윤기가 났었다. 탱탱한 당면에 시금치에, 양념된 고기까지 정말 먹음직스러운 잡채였다. 아버지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십 오년 전 아버지로 인해 망치고 말았던 내 열 다섯 번째 생일날 저녁을. 내가 그토록 아버지를 원망했던 그 날 저녁을.
내 손에는 구인광고 신문 하나가 들려있다. 어제 진식이가 내게 했던 말이 잊혀지질 않았다. 형은, 꿈이 뭐였어? 글쎄, 내 꿈은 뭐였더라. 어릴 적 가정환경 조사서에 있는 장래희망 란에는 늘 대통령을 썼었다. 아버지는 내가 연필로 대통령이라는 세 글씨만 꾹꾹 눌러써도 좋아했다. 여태껏, 진지하게 내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진식이의 말을 듣고서. ‘형, 다시 일해 보는 게 어때? 아르바이트라도. 언제까지 이렇게 집에만 있을 거야. 이제 형도 나이가 서른이야. 이렇게 대책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할 거야?’ 진식이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바코드로 물건을 찍고, 식당에서 접시를 날르고, 팬시점에서 하루 종일 cctv에 비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나는 내가 뭘 원하고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하지만 여전히 답은 내릴 수 없었다. 난 예전부터 늘 그렇게 지내왔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진식이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나는 그저 그런 진식이를 뒤에서 멀뚱멀뚱 쳐다 볼 뿐이었다. 나는 공부도 잘 하지 못했고, 사람들을 사귀는데 조차 익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게 바라보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오랜만에 거리에 나와 보니 그새 꽃망울이 피어있다. 분홍색의 화사한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손으로 벚꽃잎을 잡아보지만, 어느새 내 손에서 그것은 날아가고 만다. 사람들은 웃는다.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로. 내 옆에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은 남자가 나를 스치면서 쓱 지나간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계속 숙인다. 챙을 아래로 내리니 시선은 점점 밑을 향한다. 모자를 더 눌러썼다. 거리를 걸어보았던 게 언제였더라.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대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아버지와 함께 액션영화를 볼 때면 나는 늘 두려웠다. 나에게 주먹을 날리는 사람들이, 그리고 한없이 맞기만 할 것 같은 약하디 약한 내 자신이. 세상은 가진 자들 투성이다. ‘자고로 남자에겐 의리하고 깡 하나만 있으면 돼.’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진식이는 내게 말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면 공부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한다고. 구인광고 신문을 펼쳐본다. 봐, 세상에 나를 찾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공장, 중소기업, 화장실청소, 학교급식실. 나 하나쯤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구. 사람들과 차와 간판들로 뒤죽박죽 섞여있는 지구. 살아남기 위해선 주먹 아닌 주먹을 써야 하는 이 지구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내 아버지는. 내가 주먹을 날려야 할 곳은 대체 어디지? 이 빙글빙글 잘만 돌아가는 지구에서.
아버지와 나와 진식이가 살고 있는 월세 사십 만원의 이 집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찾아오는 사람 또한 없다. 거리로 나가면 사람들은 걷고, 달리고, 차도 다니고, 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지기도 하고, 자전거도 다니고, 번쩍거리는 간판들도 있고, 팬시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사람들은 웃고 또 웃는다. 이 집에서는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다. 지구는 그대로 멈춰 있을 뿐, 아니 그 모든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을 뿐, 아버지와 나 역시 그대로 멈춰있기만 할 뿐이다. 오로지 보고 또 본 액션영화만이 소리를 내며 재생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 집에서 재생되는 건 오로지 그 영화들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액션영화를 바라보며 현란하게 발차기를 하는 배우들을 바라보며 마치 자신이 발차기를 하는 것처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자기 자신한테 발차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뱅글뱅글 잘만 돌아가는 이 지구에게 발차기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냥 멍하니 보고 또 보았다. 빙글빙글 잘도 감기는 비디오테이프. 하지만 나는, 그리고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일시정지가 되어있었다. 재생버튼을 눌러 줘야 만이 다시 움직이는 일시정지 상태.
아버지는 액션영화를 빤히 쳐다본다. 자신과 너무나 닮아있는 주인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지난날을 회상이라도 하듯 영화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어느 때처럼 진지하다. ‘난, 다른 것은 필요 없어. 이 주먹 하나만 있으면 돼.’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주인공은 이제 정확히 삼십 분 후면 상대의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 서른 번도 넘게 더 본 영화의 주인공의 마지막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쥐었던 주먹을 피지 않는 주인공은 내 아버지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그래, 그렇지! 그래야 하는 거야!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남자가 마지막으로 날리는 발차기에 아버지는 들떠있다. 예전과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아버지는 액션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펼치는 액션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제법 액션 배우처럼 폼도 그럴싸하다. 흡흡, 쨉쨉, 아버지의 입에서는 알 수 없는 말들이 흘러나오지만 아버지의 그 표정만큼은 전보다 많이 밝아져 있다. 아버지는 오늘도 액션영화를 보며 주먹을 뻗는다. 비디오테이프는 계속 재생되고 있다. 아버지는 멍하니 액션영화를 본다. 몇 십 번씩 돌려봐서 이제는 지지직 소리가 나는 그 비디오테이프를, 마치 처음 본 것 마냥.
심사평-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
정영길 (소설가, 한국어문학부 교수) / 윤흥길 (소설가, 한서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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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크게 보면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와 ‘이야기하기’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떠받치고 있지만 바람직한 것은 깔끔한 덧칠로 그 경계나 틈새마저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과일의 껍질과 속살이 뒤섞여 영양가 높은 과일즙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려면 우선, 이야기는 ‘있을 법한 것’이어야 하고, 이야기하기는 ‘그럴듯한 것’이어야 한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들려주는 것이 다름 아닌 소설이다.
물론 이런 전략의 기초가 되는 것은 문장 공부다. 정확한 문장 구사 능력이 없으면 위에서 말한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어휘력과 조응규칙 등 어법에 맞는 문장력, 나만의 개성 있는 글투를 구사하려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좋은 소설가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먼저 <타인의 방> <충치> <겨울나기 나무> <액션배우를 꿈꾸다> <번지 점프를 하다> <사월의 눈> <반가운 손님> <무인도> <노인은 언제나 별을 보고 있었다> 등을 골랐다. 수십 편이 넘는 응모작 가운데 위의 작품들은 대체로 안정된 문장력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모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전하는 데는 흠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액션배우를 꿈꾸다>와 <번지점프를 하다>를 두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전자를 당선작으로, 후자를 가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작은 아버지에 비해 나와 동생의 성격 창조가 미흡하고 결말도 느슨했지만, 단단한 문장력으로 보아 앞날을 기대해 볼 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가작 또한 당선작에 비해 모자람이 없는, 오히려 깔끔한 면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소품인데다가 주인공이 자살을 선택하는데 대한 개연성 등이 부족하여 아쉽게 가작으로 밀려났다. 충분한 문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므로 앞으로 더욱 정진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