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 장 찍힌 이혼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 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 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는 시 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 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소리를 향 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 퍼를 열고 방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 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 한 생각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마경덕, <가방, 혹은 여자> 전문
시를 하나의 정의항 속에 가둬 놓는 것은 맹수를 맨손으로 잡아서 쇠로 만든 우리 안에 집어넣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우며 위험한 일이다. 시를 간단한 말로 짧게 정의하는 것은 많은 내용을 복잡하게 늘어놓으며 정의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 그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을 지닌 시에 대해 나는 일단 하나의 관점 - <시는 인간과 삶에 대한 인간적 통찰의 산물이며 통찰의 수단이다> -을 택해 마경덕 시인의 <가방, 혹은 여자>를 읽었다.
마경덕 시인은 <가방, 혹은 여자>에서 한 여인의 가방을 통해 그 여인의 삶을 들여다 본다. 사실 가방은 남성의 경우에도 중요한 것일 수 있지만 여성에게는 거의 신체의 일부분처럼 친숙하고 중요한 물건이다. 그러기에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은 어떤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버릇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습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시인의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통찰은 전쟁, 참혹한 천재지변처럼 규모가 크고 극한상황을 이루는 대사건, 혹은 거창하고 요란한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오히려 아주 평범하며 작고 하찮은 일상적 사물을 통해 이루어질 때가 더 많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인의 통찰 체험은 종종 작고 하찮은 일상적 사물로부터 얻은 깨우침이나 깨달음, 그리고 놀라움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마경덕 시인이 엿보게 해준 한 여인의 가방 속에는 '도장 찍힌 이혼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 '시어머니' 그리고 깨진 접시가 들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말해주는 것은 그 여인의 깨지고 부서진 삶이다. 게다가 그녀는 깨지고 부서진 것일망정 열심히 그녀의 가방 속에 집어 넣는다. 이는 현실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보여주는 실 제적인 모습이다.
한 여인의 깨지고 부서진 삶에 대한 인간적 통찰의 결과를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길고도 복잡한 산문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 은 자신의 통찰체험과 통찰대상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국면과 상황을 시를 통해 아주 쉽고 간단하게 드러낸다. 그 뿐만 아니라 시인에게 시는 세상바라 보기의 아주 중요한 방법론이자 통찰의 수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