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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9주일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히브리서 12:1~13)
히브리서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브리서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브리서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히브리서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죄는 코로나같다 : 가까이 있고 위험함]
교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죄가 쉽게 접근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복음으로서 사람의 영혼을 자유케 한다.
그런데 그것은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가 있다는 것을 죄를 가끔씩 범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어느덧 죄가 사람에게 너무 많이 있다.
복음 안에서의 자유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면죄부처럼 여기게 되어, 교회가 오염될 위험이 대단히 가까이 있다.
자기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속은 죄의 종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외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속은 아닐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방치되면, 심지어 성령을 상대로 대대적으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본인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괜찮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여러사람과 함께 있으면, 서로를 의지하므로 더욱 안심하게 된다.
같이 죄를 범하면 같이 안심한다. 그러므로, 죄가 많은 교회는 망하게 된다.
이렇게 죄의 오염이 교회에 너무 가까이 있다.
초대교회 때 있었던 죄에 관한 문제점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
이를테면 도덕폐기론이 있다.
죄를 지어도 다 용서받으니까, 괜찮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대범한 악한 모습으로 죄를 품는다.
반대로 바리새인처럼 외적으로만 거룩하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겉으로는 온전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죄를 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죄에 대한 부실한 경계로 인한 자세는 마음속으로 죄를 품게 되는 나쁜 역할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는 죄의 권세를 이기고, 또 매일 죄의 권능도 이겨낸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잘 싸워주는 것이다.
죄를 소홀히 하면 믿음이 오염될 수 있다.
신자의 믿음은 하나님의 의와 소통하는 수준의 것이다.
하늘에서 인정하는 엄청난 은사다.
사람의 믿음은 하나님의 가장 높은 것까지 바라보고 소통할 수 있는 정도다.
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는 것이 죄를 경계하지 않는 것이다.
죄인으로 살던 옛습관이 가까이 있으므로,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을 망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칠 수 있다.
[의롭다 하심 &거룩하게 하심]
신자의 여정은 칭의와 성화다.
칭의라 함은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다.
성화는 신자가 거룩하므로, 계속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이 두가지 요소가 신앙생활을 견인해 가고 있다.
칭의라는 단계를 통해 우리는 거듭나게 된다.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니, 옛것을 다 버리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우리의 삶이 생겨난다.
이 살아난 생명이 살기 위해 삶을 주신다.
거룩한 삶이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중생의 씻음이 칭의,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성화다.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주님의 수준까지 자라나는 것이 성화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의 삶을 지배한 것은 죄다.
우리 삶의 방식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 속의 삶에서는 하는 일들이 다 죄다.
겉은 죄가 아닌 것 같아도, 다 더럽게 만든다.
그러나, 믿는 자는 믿는 날부터, 자기를 지배했던 죄의 권세가 부숴진다.
믿을 때 죄의 권세가 부숴지고, 당장 거룩해지는 권세가 만들어진다.
갑작스런 엄청난 대변화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가 되면, 과거의 살던 모습처럼 죄안에서 사는 것은 버려야 한다.
이미 사고 방식 자체가 죄의 방식에 젖어있다.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거듭난 자가 되어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 있어도, 누가 이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
안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어떻게 행해야할지, 배우지 않으면 발전시킬 수 없다.
마땅히 해야할 삶을 살지 못한다.
합당한 변화를 시원스럽게 하지 못한다.
믿었는데도, 과거의 모습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이것은 어처구니 없는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믿기전에는 이미 죄에 순종하여 살았는데,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안에서 산다는 것은 영적으로 맞지 않는 체제의 활동이다.
소속이 하늘에 있는 자가 행동은 지옥의 행위를 하고 있다.
원칙도 맞지 않고, 도리도 맞지 않고, 모순적이다.
로마서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해서 죽었다면, 죄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매일 죽는 것이 아니다. 한번 죽으면 완료가 된 것이다.
죽은 사람이 한마디 더하겠다고 살아날 수 없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다면 말이 안된다.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 죄를 행한다는 것은 자기를 망치는 것이다.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삶은 아주 깨끗하게 만들어진 삶을 가진 자다.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삶은 거룩한 자의 삶이요, 앞으로도 거룩하게 살 삶이다.
어떤 사람은 칭의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화는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칭의와 성화는 구원이라는 여정에 있어서, 한켤레의 신발과 같다.
같이 걷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칭의는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즉시적이고 완성적이다.
믿음이 유지되는 한 누구도 없애지 못한다.
여기서 끝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성화의 삶으로 끌어내신다.
의롭다함으로 법적인 사무처리를 끝내고, 성화로 법적환경 안에서 성도가 신앙생활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현실이다.
칭의는 마치 하나님께서 자동차를 주신 것과 같다.
그 자동차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자동차는 운전해서 가야 한다.
성화는 이와같다.
[옛 사람은 죽었고, 새 사람은 거룩하고 훌륭하게 성장한다]
옛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 믿지 않는 사람이다.
옛사람은 부분적으로 죄인이 아니라, 완전히 죄인이다.
세상 사람중에 착한 사람도 있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다.
나아질 잠재성도 없다.
반면에 새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다. 예수의 은혜로 주신 생명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자로 만들어진 자다.
새 성품이 주어진 자다.
새 사람의 성품은 경건에 능하고, 의로움이 쉽다.
의롭게 활동하고, 거룩하게 활동하는 것이 쉽도록 준비를 갖추어주셨다.
새 사람은 아직 완벽하지 않더라도,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이며, 그 안에 거룩함이 있어서, 계속 성장 할 수 있는 자다.
의롭게 된 곳에는 거룩함이 시작된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의롭게 된 자가 거룩한 자로 변화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의롭게 되었는데도,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애초에 의롭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의롭게 되었지만, 자기가 모르고 있어서 자기 영혼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자는 경건한 영역 안에서 새롭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부여받은 자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에 거하면서, 많은 복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환경과 능력으로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미래가 열려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과거 스스로 산다고 했지만, 마귀안에서 살던 것이 없고, 이제는 하나님의 인도가 시원스럽게 이루어지는 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잘 받아들이는 자, 하나님의 것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가 된다.
구원은 법적 변화일 뿐 아니라, 믿는 자에게 일어나는 실제적인 변화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로마서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다.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죄에 대하여 살겠는가.
옛사람의 습관을 가져오는 것은 절대 안된다.
우리는 일단 죄와 분리된 상태로, 거룩한 자로 무대에 소개된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그 속에서 살지 않는다.
일부러라도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우리]
로마서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침례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다.
예수께 연합된 것을 침례로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다.
침례는 실제적인 사건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나의 구주라 하니까, 하나님의 방법으로, 2천년전 골고다 현장으로 가서 예수의 죽음과 함께 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장사되는 사건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상징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우리는 공개했다.
우리도 죽음을 지나왔다.
예수와 연합해 들어갔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과 함께 우리도 죽었다.
또, 침례는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는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셨다.
로마서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한 것은 죽은 것이다. 또, 침례로 부활에도 참여한 것이다.
부활에 연합하는 것은 새 생명을 받는 것,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그가 죽으신 결과다.
믿는 자의 거룩한 삶은 죄에 대해 죽은 결과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죄에 대하여 우리도 죽고나서, 살아난 거룩한 삶이다.
우리가 죄와 결별한 결과다.
로마서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확인시켜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의롭게 되었으니, 안심하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의롭게 된 것은 이후로 거룩하게 사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구원은 죄인을 의롭게 여기실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 수 있는 기질을 주시는 것이다.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의 것을 담고 살 수 있는 능력, 환경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신자는 구원받기 전의 죄인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
[죄의 몸은 공식적으로 전멸했다]
로마서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옛사람에서 옛이란 말은 시간적으로 앞선 과거라는 것보다 오래된 것, 묵은 것, 버려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옛사람은 없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은 내 생명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생명은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이 아니다.
옛생명은 버리고, 그리스도의 새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시키려고 하나님도 노력하신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옛사람을 버리지 못해서 그렇다.
우리는 고통을 겪지도 않고, 주님의 죽음에 참여했다.
우리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버렸다.
만약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구원이 없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거짓 그리스도인이다.
[죄는 몸에 남아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
죄의 몸이 멸해졌다는 원어의 뜻은 다 쓸어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형체는 남았지만,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망가진채 거기 있는 것이다.
죄가 백프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육체에 남아있는 죄의 잔재, 죄의 저항이 있다.
지옥에 갈 것이 하나님이 의롭다하신 자를 넘어뜨릴 수 있다.
그만큼 권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믿음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심으로 다시 넘어진다.
육체는 연약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육체가 있는 동안 이런 성향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죄의 잔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육체를 훈련하므로 제어하는 힘을 늘여야 한다.
이 문제만은 피흘리까지 해야 한다.
우리가 평소에 소홀히 하지 않고, 죄를 경계해야 한다.
육신을 타고, 죄가 살아나려고 하는 저항을 끊어야 한다.
하늘에 가기까지 우리는 이것 때문에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로마서 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로마서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로마서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죄의 압제에서 완전히 끊어졌다.
그러나, 육체의 연약함으로 죄가 나타날 잠재력이 있다.
이는 우리가 피흘리기까지 싸워서 제어해야 한다.
제어하지 않으면, 이 위대한 새로운 피조물이 고스란히 망할 수도 있다.
피흘리기까지 싸울 가치가 있다.
우리 연약함과 싸울 방법이 있다.
[피흘리까지 죄와 싸우자]
하나님의 의에 참여하자.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돕는 천사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로마서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로마서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교회가 원수에게 괴롭힘당하지 않도록 하자.
이미 원수들은 박살이 났는데, 아직도 속이고 있다.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고, 그리스도의 기질이 있고, 그리스도의 장치가 있다.
우리 앞에 주어진 삶 잘 살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싸워야 한다.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준비하신 미래를 만날 것이다.
거룩함을 소홀히 하지말고, 피흘리기까지 싸우자.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삶은 거룩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져있다.
주님의 성품이다.
주님의 성품으로 성공하는 우리가 되자.
모든 악하고, 더러운 죄를 극복하고, 승리하자.
하나님이 이루어진 모든 뜻과 은혜 전적으로 환영합니다.
주님을 환영하오니, 우리 안에서 역사하소서. 승리하게 하소서.
설교요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그는
선악을 분별하시는 이로서 불의를 용서치 않고
영원히 멸하기 위하여 심판하신다(히 10:30~31)
하나님은 자기의 의(義)로써 뜻을 세우시고(마 3:15)
품속에 계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심이다(요 1:18)
하나님의 뜻은 이름으로 드러내심같이(마 1:21)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 하심이다
음부라 하는 우주는 타락한 천사를 가둔 곳이요(벧후 2:4)
마지막은 형벌할 불못이다(계 20:13~14)
우주라 하는 음부에는 생명이 없고 소망도 없다
현재 음부의 주인은 ‘바알세불’이라 하는 마귀니
바알세불이란 똥집 주인이란 뜻이다(마 12:24)
주 예수의 복음은
그 음부로부터 나오라
그 똥집을 벗어나라는 권세 있는 명령이다(마 4:17)
예수는 음부의 대문을 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시요
구원의 문(門)이요 천국 문이 되셨다(마 16:17~18)
〇 예수의 피는 천국 문이요 생명이다(요 10:9)
성령은 구원받은 자들을 그 문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
〇 그 이름을 힘입고 부활하신 주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 영생에 들어간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그 길로 행하는 것이다
〇 음부로부터 영생으로 옮겨 가는 문은 하나뿐이니
곧 침례다
침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유일무이한 권세다
※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 받음으로 신령한 사람이 되니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죄와 싸우고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이겨야 한다(히 12:4) (視無言)
히브리서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브리서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마태복음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요한계시록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마태복음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태복음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