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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일본과의 문화 콘텐츠 사업을 업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일본 각 지방의 지원을 받아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돕다 보니 자연히 일본 구석구석을 도는 기회가 많다. 일본 땅에 발을 디디면 19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옛 풍경이 자주 눈에 띄는데, 예를 들면 1980년대에 만든 토요타의 택시가 아직도 거리를 누비고, 초등학생들이 가지런한 제복 차림에 가죽 가방을 메고 똑같은 모습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그렇다. |
일본이란 나라는 전통을 존중하고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전통의 고집과 첨단의 변화가 공존하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가지런한 제복’, ‘똑 같은 모습’, 등에서 전제 정치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중략) 일본인들은 많은 것이 빠르고 간략해지는 지금 시대에도 그런 문화를 잘 지켜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손수 적어 일일이 보내거나, 주겐中元 이라는 기간에는 평소 만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직접 포장한 선물을 보내거나 하는 등 사람이 손수 작업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
우린 기계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여기엔 사람 냄새가 없고 삭막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들의 생각을 유추해 보면, 기계 문명에는 ‘성의’와 ‘정성’이 빠져있다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자필로 받는 이를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적어 보내는 연하장이나 편지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린 어렵고 번거롭다고 손을 뗀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일본에는 아직도 ‘손수 작업’만이 경의를 최대로 표현한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부럽다면 부러운 일이다.
(중략) 아날로그 문화를 사랑하는 일본인이 가장 아날로그답다고 인정하는 곳이 교토라 한다면, 교토라는 곳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이 될까? 일본인들은 귀한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전통 종이를 사기 위해 교토를 찾고, 400년 넘게 이어져 오는 노포老鋪에서 파는 녹차와 화 과자를 사기 위해 교토를 찾는다. |
여기서 유별난 전통을 집요하게 고수하는 일본인의 일면을 엿볼 수가 있다. 오로지 정성이 깃든 것을 최고로 여기는 문화, 우리의 유교 문화가 일본에서 꽃이 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교토의 위상이 어떤 곳인지를 느낄 수 있는 문장이다.
그는 끝을 이렇게 맺고 있다.
교토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산책을 하러 찾는 곳, 마음의 자연스러운 치유를 위해 수십 번씩 찾는 ‘마음의 고향’이다. 산책을 하며 사색에 잠기며 야쓰하시를 먹고 쌉싸래한 말차를 음미한다. 또 아라시야마의 대나무 바람을 맞고, 기부네의 정기를 받으며 오하라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
교토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이 가능할 것 같다. 3박 4일이나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는 교토에선 산책 삼아 나다닐 수는 없다. 정해진 목표가 있어 뭐라도 하나 더 봐야 하고, 이름 난 곳에선 사진을 불이 나도록 찍어놔야 안심이 된다. 명승고적을 둘러보면서 사색에 잠길 여유를 가져야 하겠지만, 바쁘게 이동해야 하는 패키지여행으론 뒤처지기가 십상이다. 단지 인상 깊은 느낌이나 경험을 가슴에 가득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책은 지은이의 책 『교토 일상 산책』에서 해도 충분할 것 같다. 끝. 2020.9.1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