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강 염려하지 말라
본문 | 마태복음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염려를 합니다.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자녀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날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 염려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들은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쌓아 두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새들도 먹이를 찾아 날아다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새들의 노력이 아니라 그 새들을 먹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본문의 중심은 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도 먹이신다면 그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를 외면하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까마귀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눅 12:24).
까마귀도 심거나 거두지 않고 곡식을 저장할 창고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까마귀가 어떻게 먹고사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까지도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참새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6–7).
당시 참새는 매우 값싼 새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참새 하나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도 핵심은 참새가 아니라 “너희”입니다.
작은 참새 하나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면 그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5–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다윗도 고백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사람은 우리를 잊을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잊지 않으십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작은 참새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염려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기르시고 돌보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2.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들의 백합화는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수고하거나 옷을 짜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솔로몬이 누렸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은 염려의 문제를 믿음과 연결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눈앞에 있는 문제는 크게 보면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부족하면 돈만 보이고, 앞날이 불확실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시고 돌보셨는지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걱정해도 염려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일하고, 계획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까지 염려하며 짊어지고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리고 그 이유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형편과 필요를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며 돌보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염려가 찾아올 때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실하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풍족하게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먹을 것과 입을 것처럼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먹고사는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는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일을 오늘부터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예수님은 내일의 염려를 오늘까지 끌어와 짊어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내일의 염려에 사로잡히기보다 오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르시고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작은 참새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둘째,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실하게 하되,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셋째,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뒤로 미루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늘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며 우리를 기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십시오.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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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