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SE7RYM_CmuI
토라포션 이름 (파라샤)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베훅코타이 / 내 규례 | 레 26:3-27:34 | 렘 16:19-17:14 | 눅 13:1-15:32 |
<단락 1> 1. 레 26:3 너희가 내 규례 (베훅코타이)와 계명을 준행하면 4.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시내산 언약은 순종에 대한 축복과 불순종에 대한 징계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언약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이 언약의 내용을 어겨도 아무런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언약의 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한 목적으로 토라를 지켜서는 안 됩니다 (율법주의). 그러나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롬 3:28).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은 주인의 명령을 준행한 후에 어떠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보상을 주는 것은 주인의 은혜이지, 그것이 순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을 때의 축복과 어겼을 때의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은 항상 옳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에 헌신한다면 (삶의 방향성),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1) 레 26:14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15.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20.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21. 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다’의 히브리어는 ‘할라크’이며, ‘걷는다, 행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오랜 시간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선)과 세상의 말 (악)을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걷기 위해 (히 : 할라크 : 준행, 걷다) 말씀 (토라)을 주셨습니다. 토라를 두 가지의 관점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신랑 하나님과 신부 이스라엘이 서로에게 지켜야 할 조건들을 기록해 놓은 결혼 서약서입니다. 예슈아의 신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토라는 하나님 나라의 헌법입니다. 그래서 토라를 지켰을 때의 보상과 어겼을 때의 징계가 반드시 규정되어야 합니다. 법을 어겼는데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그 말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이 세상을 운영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No’ 부터 말하게 합니다.
2) 레 27: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봉헌 (헌금)은 우리의 욕심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수입의 첫 열매 (비쿠림), 십일조 (마아쎄이), 할라 (빵반죽의 첫 부분으로 제사장께 바치는 것)를 드리는 것과 장자와 동물의 초태생, 서원한 예물, 밭이나 포도원의 가장자리 (이웃 사랑)를 남겨두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수입의 약 22.5% 이상을 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많은 것을 소유하면 안정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지배당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 214번, 구원에 대해서는 218번 정도 말합니다. 그러나 재정에 관해서는 3000번 정도 나옵니다. 그렇다고 재물이 믿음과 구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재물과 땔 수 없는 관계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 방법으로 돈을 벌고, 돈을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잘못되어진 재정의 생각들은 십자가 앞에 버려야 합니다.
(1) (공동번역개정판) 눅 16:11 만약 너희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예슈아는 우리가 세속의 재물 (세상의 재물)을 다루지 못한다면, 참된 재물 (하나님 나라의 재물)을 다룰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의 재정을 다스려야 하나님 나라의 재물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물에 충성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을 노예로 다루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재물을 보물처럼 소유하지 않고,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재물을 다루면서도 단순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을 노예로 다룰 줄 아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을 훈련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재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습니다.
(2)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재물 (Mammon)이라는 단어는 맘몬신 (돈이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영)에서 왔습니다. 이 재물 뒤에서 사람을 조정하는 영이 있습니다.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 행복하겠다’ 하면서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말씀합니다. 행복이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며,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어떤 사람이든 침체되며, 일상이 진부해지고 지루하며, 따분해 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좌우의 날선 어떠한 검보다 예리하고,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할 수 없으며,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되어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는 자가 아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데 뜻을 두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들에게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행할 때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심는 것은 절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마 6:19-21).
(3) 렘 27:5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권세와 재물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권세와 재물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재정의 축복은 언약 (약속)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믿음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나에게 이런 재정의 축복이 오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의 잘못된 생각을 십자가에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면서 입으로 선포하고, 믿음과 결부시키며,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번 주 하프타라 (예언서)는 예레미야 17장입니다.
<단락 2> 2. 렘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13. ...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 것을 믿기 때문에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와 수치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린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 죽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시장이 반찬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배고픈 사람에게 밥먹으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배고픔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주면, 버럭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우리에게 예슈아를 주십시오. 예슈아가 없이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함으로 배를 채우면 어떠한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말씀합니다. 운동이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는 것처럼 세상과 분리되어진 거룩한 삶은 우리의 영적인 식욕을 증대시킬 것입니다.
1) 렘 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는 모두가 기근에 시달릴 때에도 걱정 없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자들이며 (권리포기), 매일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한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치른 광야 (세상)에서 물가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에 심겨진 나무가 되어졌습니다. 이제부터 이 나무가 해야 하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깊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하다보면, 때에 따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형통’이라는 단어는 인간적인 번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의 히브리어는 ‘찰나흐’이며, 그 뜻은 하나님의 계획이 뜻대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다가온 것은 고난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