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고리
결말단계에 만난 악연의 고리
신근식
인간이 태어나고, 삶에도 사연이 있다. 하물며 일상생활에서 삶의 연속에도 하나같이 인연이 날줄, 씨줄로 얽매이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나의 삶에서 좋은 인연, 악의 인연으로 점철된다. 그 영속이 바로 나의 삶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인연은 나나 남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악연은 상대방에게는 좋은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분명 해악을 끼치고 그 흔적을 남기고 마는 것이다. 나의 삶에 분명 나쁜 것을 갖다 준 것이다. 스스로 지난한 삶을 돌아 보건대 많은 부족한 판단으로 남에게 작은 해를 입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정녕 내가 손해 볼지라도 해악을 끼친 적이 없다. 그러나 어찌하여 흔히 말해서 "재수가 없어 하필 그러한 사람과 인연이 닿았을까?"라고 추측 하는 일은 수다하게 나에게만 남는 기억인 것은 스스로 괴로울 뿐이다.
2016년 직장에서 은퇴한 후 제2의 인생이모작을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 만난사람이 H영감이다. 내가 사회복지사 1급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H씨는 ‘복지사 1급’은 매우 귀하다고 매번 ‘사회복지사 1급’님이라고 하면서 전화오기 시작하여 “복지사업에 좋은 것이 있다”며 나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H씨는 올해 일흔다섯이고 시각장애 1급이다. 예전에 웅변을 배워서 인지 화술이 정말 뛰어났다. 그리고 달서구에 있는 성안오피스텔에 사무실이 있다고 같이 쓰자고 하였다. 나는 은퇴 후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어서 쾌히 승낙하고,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H씨 책상주위와 뒤편 서가에 온갖 종류의 건강관련 제품이 잔뜩 쌓여 있다. H씨는 자기 사무실을 찾는 사업자는 모두 다 팔아 주겠다고 호언장담 하던 그런 남을 믿게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하나도 팔지 못하고 제품들이 오래 방치되어 유통기한이 지나 못쓰게 되어 피해를 주는 것이다.
H씨 소개로 두 번째 만난사람이 L영감이다. 자칭 발명가로 일흔여덟 살이다. 발명가답게 제일 먼저 한 일이 있다. 채소는 노지재배보다 비닐하우스에서 태양의 일조를 이용한 특허재배로 질도 좋고 조기수확이 가능하여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생활혁신형 창업지원 사업에 신청하여 선정되었다. 이천만 원의 지원금 받는다는 것 알고 두 영감들이 눈독 들였다. H씨는 사무실 임대료, 식사와 부대비용을 부담하게 하였다. 그리고 L씨는 특허 비닐하우스재배 견본모델비로 1,000만 원을 요구하였다. 나는 “배보다 배꼼이 더 크다”고 하여 운영비가 너무 모자라서 안하겠다고 하였다. L씨는 자기 아이템으로 했기 때문에 무조건 반은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이템을 수정하여 올리겠다고 옥신각신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합의 보고 일을 시작하였다. 결국 견본모델하우스 설치하는데 예상외로 경비가 많이 들어 그때부터 손실금이 불어나기 시작하여 끝내는 법적분쟁까지 가는 큰 곤욕을 치르고 말았다.
H씨 소개로 세 번째 만난사람이 J영감이다. 이 사람은 일흔일곱 살이고,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단계 바닥의 선수였다. J씨는 반고개시장 안에 사무실이 있다며 방 한 칸과 책상을 무료로 주겠다고 하여 사무실을 옮겼다. J씨는 처음에 교원그룹의 네트워크로 시작해서 잘 안 되니까, 다음은 제이온 건강식품, 인크루즈 여행, 황병태 노니 등 쉴새 없이 업종을 바꾸었다. 나는 사무실을 무료로 사용하는 까닭으로 어쩔 수 없이 한 구좌씩 드는 바람에 벌이는커녕 사무실 운영경비가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 모두 날라 갔다.
다음에는 네 번째 만난 사람은 P영감이다. 올해 여든 살이고 이때까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영감이다.. P씨는 노인대학경영에 관련하여 자칭 전문가다. 여든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골이 장대하고 언변이 좋으며 늙은 음악가이다. 그리고 대구에서 제일 잘 산다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대학에서 근무한 이력으로 한 때는 노인대학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P씨와 같이 다니면서 노인대학을 할 수 있는 장소와 경비 부담할 지원자를 물색한다고 대구 시내 여러 군데 누비고 다녔다. P씨의 노력으로 동아쇼핑 문화센터에 섭외가 되어 "이제 교육프로그램과 학생모집만 하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P씨는 같이 노력한 나를 제쳐두고 "교육원장"과 "사무국장" 직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 보고 어이가 없었다. 결국 섭외가 되지 않자 그제야 나에게 와서 하자고 하여 일언지하에 "노(No)" 라는 대답을 매물차게 날렸다. 시간과 발품이 헛되어 내 일상의 마음이 쓸쓸하고 허허롭기만 하였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지는 구나하는 것을 새삼 혹독하고도 아리게 느꼈다.
제2인생을 나은 인생으로 만들려고 무던히 애쓴 결과는 모든 악연들과 만나 너무 많은 경험과 비싼 값을 치르게 하였다. 이 모든것이 나의 부덕의소치이다. 세상 살아가는 일상 일들이 일어나고 끊어지고를 악연으로 만난 연결의 고리 떼고 나니 절치부심(切齒腐心) 하여도 몸이 가볍고 가슴이 후련하다. 너무 늦게 내 인생의 깨달았음에 고통이 너무 심하였다. 다시 그길로 돌아 갈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예순하고 여섯에 세상 당혹함을 지난한 체험으로 말하고 싶었다. 오늘 너무 속이 후련하고 한층 앞으로 살아갈 날이 가볍다.
이제 다시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일을 도모 하지 않겠다고 뼈를 가는 호된 다짐을 하는 것이다. 오로지 남에게 속지 않으려면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분석적으로 따져 보는 습관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사 흐름이 모두 그러할 진데 어찌 함부로 가벼이 생각하여 무슨 일이든 도모하려 하였든가? 참 이 나이 먹도록 진실로 부끄러움이로다.
이제 나를 못살게 굴었던 그 사람들의 연치(年齒)가 여든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일이지만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지 마음이 안쓰러울 뿐이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할 시간에 되돌아보면 일생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나일 것이다.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 했듯, 사람은 배은망덕하는 경우가 많다하여 이르는 말이다.
세상은 너르고 할 일도 많다고 하였다. 아직도 내일의 아침 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까지 덤벙대고 살아왔던 길에서 이제부터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혹시 모르는 일이라 혹하는 습관도 버릴 것이다. 이제라도 결말단계에 이르러 악연의 고리를 하나하나 전지가위로 잘라내는 나의 무서운 결정을 내린다. 진즉에 글 써서 나의 마음을 다스렸더라면 혹한 마음도, 인간경영의 노하우도 축적하였을 것이다. 세상사만시지탄(世上事晩時之歎)이나 몰랐을 때보다, 늦게라도 알았을 때가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20230426)
*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
첫댓글 너무 솔직하게 쓰시니 막힘이 없고 읽는데 까끌까끌하지 않아 좋습니다. 솔직히 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두번다시 그런 사람들과 엮이지 않겠지요~
이제 두번 다시 엮이지 않을 것이고 선한사람과 놀랍니다. 감사합니다.
대화가 좋은 소리로 들립니다.
카페지기.
자기의 삶을 거울삼아 비춰어 볼 수 있는 지금 글쓰기는 놀랍고도 신비로운 약인것 같네요.
스스로 자신을 다듬어가며 치유해가는 모습 훌륭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경험이 삶이 되고 뼈가 된다고 했던가요?
당신을 늘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