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밤, 에어컨이 없는 숙소는 천장에 군용헬기의 프로펠러같은 선풍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성능은 미약하다. 하는 수 없이 문을 열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뿔사 모기장 사이로 모기가 침투하여 잠자는 나를 괴롭힌다. 모기는 이국인이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일어나서 모기를 잡으려고 덤벼들지만 가시권에는 없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굴, 팔, 다리 골고루 물지 않은 곳이 없다. 카톡으로 소식을 전하는 지인들은 킬리만자로에 이어서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떠난 나를 부럽다는 투의 답신을 주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불편한 잠자리와 고산병의 여진 그리고 음식이 맞지 않아 고역인데 주변 환경도 엉망이다.
숙소와는 반대편, 북쪽에 있는 능귀해변으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55달러에 흥정을 하고 약 1시간가량 이동했다. 널따란 주차장을 거쳐서 허름한 건물과 제멋대로 버려진 쓰레기 더미가 있다. 그사이로 원숭이, 고양이, 사람들이 공생하고 있다. 식음료를 파는 슈퍼마켙과 기념품가게도 있다. 나무를 조각하고 수를 놓아 만든 수공예품 가게가 골목길을 따라 쭉 늘어서 있고 흥정꾼들이 다가오지만 외면하고 곧장 백사장으로 향했다.
내륙 쪽은 낡은 건물과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불결하지만 바다는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얀 모래사장과 에머랄드 빛의 바다 수면은 잔잔하게 찰랑거리고 있다. 해변의 호텔과 열대식물 그리고 야자수는 휴양객을 빨아들이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청춘 남녀들은 윈더서핑과 패러글라이드를 즐기고 전통복장을 한 현지인들은 2명 1개조로 다니면서 사진 찍기를 권유한다. 휴일을 맞은 학생(?)들은 제법 난이도가 있는 율동의 퍼포먼스로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파도가 일렁이는 수면과 백사장의 경계선을 걸으면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모래사장을 걷다가 한 호텔로 발길을 옮기니 투숙여부를 확인하고 걸음을 막는다. 인근의 한적한 장소로 옮겨 그늘막에 누워서 휴식을 취해 본다. 새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 두둥실 떠다니고 소슬바람 부는 에머랄드빛 바다는 멍 때리기 좋은 환경이다.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구조인가? 나름 열심히 산 것에 대한 실과를 맛볼 수 있다는 환경과 마음자세가 주는 이점이다. 저마다 잘 난 사람들 많지만 홀연히 떠나 황홀恍惚의 경지 같은 시간을 맛본다.
안성자유가 그 앞에서 시중을 들고 있다가 말했다. “어찌된 일입니까? 선생님의 몸이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이 꺼져버린 재 같습니다. 책상에 기대고 계신 모습이 전과 다릅니다.”남곽자기가 말했다.“훌륭하구나 좋은 질문이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었다. 네가 그 모습을 보았구나. 그렇다면 너는 아느냐 너는 사람들의 피리소리를 들었지만 땅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네가 땅의 피리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하늘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남곽자기가 대답했다. “대지가 기운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 한다. 바람이 일지 않으면 그만이나 일었다 하면 모든 구멍이 성난 듯 울부 짓는다. 너도 윙윙 부는 바람소리를 들어보았겠지. 산과 숲의 술렁임과 백 아름되는 큰나무의 구멍들이 귀 같고 코 같고 입 같고 목이 긴 병 같고 술잔 같고 절구통 같고 웅덩이 같은데 물 흐르는 소리, 화살 나는 소리, 꾸짖는 소리 들이쉬는 소리, 외치는 소리, 아우성 소리, 둔한소리, 맑은 소리를 낸다. 앞의 것들이 우우하면 뒤따른 것들이 오오하고 화답하는 구나 소슬바람에 작은 소리로 답하고 회오리 바람에는 큰소리로 답하는 구나. 그러다 사나운 바람이 잦아들면 모든 구멍들이 텅 비게 되어 고요해진다. 너도 저 나무들이 크게 울다가 잦아지는 것을 보았겠지 ” 자유가 말했다. “땅의 피리소리는 자연의 구멍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피리소리란 피리구멍에서 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피리소리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남곽자기가 말했다.“바람이 내는 소리는 제각각 다르지. 온갖 물건을 불어서 제각기 자기 소리를 내니 모두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나게 하는 것은 누구란 말이냐?”
顔成子游立侍乎前曰 何居乎 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 今之隱机者 非昔之隱机者也 子綦曰 偃不亦乎 而問之也 今者吾喪我 汝知之乎 女聞人籟而未聞地籟 女聞地籟而未聞天籟夫 子游曰 敢問其方 子綦曰 夫大塊噫氣 其名曰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呺 而不聞之翏翏乎 山林之畏隹 大木百圍之竅穴 似鼻 似口 似耳 似枅 似圈 似臼 似洼者 似污者 激者 謞者 叱者 吸者叫者 嚎者 宎者 咬者 前者唱于而隨著唱喁 冷風則小和 飄風則大和 厲風濟則眾竅為虛 而獨不見之調調 之刀刀乎 子游曰 地籟則衆竅是已 人籟則比竹是已 敢問天籟 子綦曰 夫吹萬不同 而使其自已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
안성자유립시호전왈 하거호 형고가사여고목 이심고가사여사회호 금지은궤자 비석지은궤자야 자기왈 언불역호 이문지야 금자오상아 여지지호 여문인뢰이미문지뢰 여문지뢰이미문천뢰부 자유왈 감문기방 자기왈 부대괴애기기명왈풍 시유무작 작즉만규노호 이불문지요료호 산림지외최 대목백위지규혈 사비 사구 사이 사견 사권 사구 사와자 사오자 교자 호자 질자 흡자규자 호자 요자 교자 전자창우이수자창우 냉풍즉소화표풍 즉대화 여풍제 즉중규위허 이독불견지조조 지조조호 지유왈 지뢰즉중규시기 인뢰즈차죽시기 감문천뢰 자기왈 부취만부동 이사기자기야 함기자취 노자기유사<제물론>
사람의 피리소리가 호흡기를 통해 기氣가 내뿜음으로써 바람이 만들어진다면 땅의 피리소리는 자연이 내뿜는 기에 의해 바람이 만들어진다. 인뢰와 지뢰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호흡기의 기냐 자연의 기냐 차이다. 천뢰, 즉 하늘의 피리소리는 무엇일까? 천뢰는 존재가 구속받지 않고 마음을 비운 상태(虛心)로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각자의 방식에 따라 노래 부르는 것이다.
희로애락의 감정, 생각, 행동은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버리는 오상아(吾喪我)의 상태에 이를 때 가능하다. 즉 오(吾)가 아(我)를 버릴 때 가능하다. 이런 감정, 생각, 행동은 모두 ‘아我’가 있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나’라는 의식이 있기에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걱정하고, 한탄하고, 변덕 부리고, 고집 부리고, 아첨하고, 방자하고, 솔직해지고, 꾸민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내는 온갖 피리소리들이다. 그래서 ‘아(我)’의 마음에서 생겨난 감정, 생각, 행동의 피리소리를 지워야만 ‘오(吾)’의 마음으로 하늘의 피리소리를 만날 수 있다.
대지의 피리소리와 사람의 피리소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대지의 피리소리에선 바람의 강약에 따라 반응한다. 이에 반해 사람의 피리소리는 부는 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소리를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이런 마음들이 왜 번갈아 가며 자꾸만 생겨나는 걸까. 그것은 마음에 아(我)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이런 자의식이 있기에 같은 소리라도 제각각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그러니 아(我)라는 의식, 즉 자의식을 없애는 일이 중요하다. 장자는 이런 자의식을 없애는 방법으로 말라죽은 나무(槁木)처럼, 불 꺼진 재(死灰)처럼 몸과 마음을 만들면 된다.
오상아(吾喪我) 상태에 이르면 하늘의 피리소리를 만나고, 오상아 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감정, 생각, 행동이 반영된 피리소리를 만난다. 장자가 죽이라고 한 나(我)는 성심(굳혀진 마음, 아집,편견, 독선)이다. 성심을 내려놓고 비울 때 자존감이 생긴다. 죽은 나무와 꺼진 재처럼 자신을 내려놓고(허심) 수양을 하다보면 마음속에서 내(我)가 사라지는 오상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대지의 피리소리, 사람의 피리 소리 (당시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설쳐대는 현상을 보고) 다 내려놓고 하늘의 소리 (무위자연의 경지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노장사상가) 를 듣기 위해 그저 바보처럼( 인위가 개입되지 않는)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