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가지 생명-영적 생명과 육적 생명 ♡♡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다. 사람의 탄생은 더욱 신비롭다. 그러나 태어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성장하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 사는 보람, 사는 재미를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는 보람, 사는 재미를 누리면서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당신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해서,
-뛰어난 재능이 없어서 등,
기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공부를 제대로 하고, 건강하게 태어나고, 뛰어난 재능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보람 있고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하고 재능은 있지만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고, 인간 관계나 환경적으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
그러나 특별 나게 잘 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지만 행복하고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운명이나 팔자 소관이라고 생각하는가?
○ 영적 생명과 육적 생명
성경에 의하면 두 가지 생명, 두 가지 삶이 있다. 한글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는 생명을 말할 때, 생명, 산다, 또는 life, live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성경에는 문맥에 따라 '영적 생명' 또는 '신적 생명'과 '육적 생명' 또는 '세상적 생명'이 있다.
육적 생명은 동물적인 생명이다. 태어나서 먹고 자고 성장하다가 때가 되면 죽는 동물적인 생명을 말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생명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육적 생명-또는 삶-은 어떤 생명인가?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3).
육적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면서 제 멋대로 살다가 죽으면 끝장이 나는 삶이다. 그러나, 신자의 생명은 죄와 세상을 따르는 육적 생명이 아니라 영적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신자들의 삶은 영적 삶, 신적 삶 즉 영적 생명이다. 특히 요한이 쓴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에서 말하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인데 대부분이 영적 생명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적 생명이 아닌 영적 생명이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여기서 말하는 영생 또는 생명은 죽으면 천국 가서 누리는 생명도 포함하지만 현재 이 땅에서 누리는 영적 생명도 포함한다. 통상 말하는 현림 천국, 심령 천국, 관계 천국(가정, 교회, 직장, 사회 등)을 포함한다.
영적 생명은 육적 생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육적 생명은 죄로 타락한 인간의 생명이지만 영적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함께 하는 생명, 성령이 거듭나게 한 생명,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한 생명, 내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기 전까지는 세상적으로는 오히려 잘 나가는 삶을 살았다. 건강한 몸, 좋은 학벌, 좋은 직장을 가졌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의 대부분을 가졌다.
그러나 예수를 알고 난 후, 이런 삶을 헛되고 헛된 육적 삶임을 절감했다. 예수를 알기 이전의 삶은 비록 세상적으로는 나은 삶이었지만 “쓰레기 같은 삶”이었음을 고백한다.
○ 육적 생명과 영적 생명의 특징
첫째, 육적 생명은 첫째 죄와 잡신의 종노릇을 하는 생명이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가 당시 최대 문명국인 애굽의 황태자로서 누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도 하나님이 없는 삶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삶이기 때문에 죄악 된 생명이다.
그러나 '영적 생명'은 이런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된 삶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둘째 육적 생명은 허무한 생명이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 . .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3; 12:13).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구보다도 풍성하게 누린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한 말이다.
필자도 믿음이 없을 때는, “아니 자기는 이 세상 부귀영화를 실컷 누렸으니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실컷 누리고 난 후에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면, 예수를 믿기 이전에 세상적으로는 잘 살았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육적 삶은 정말 허무하고 쓰레기 같은 삶이란 사실을 절감한다.
그러나 영적 생명은 인생의 참 의미와 보람을 누리는 생명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이라”(롬 14:17).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셋째 '육적 생명'은 참 기쁨과 평안이 없는 생명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령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삶의 무게와 스트레스에 눌린 삶을 살고 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 2:9-10).
그러나 '영적 생명'은 참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삶이다. 하나님이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과 평강을 주시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이라”(롬 14:1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넷째 '육적 생명'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 가는 생명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성취를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제약과 연약함에 부딪쳐 그릇된 인생을 살기 쉽다.
“애굽(당시 최대의 문명국가)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3).
“여호와(하나님의 이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재앙)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 17:5-7).
그러나 '영적 생명'은 하나님의 지혜와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므로 형통하고 복 받는 삶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마지막으로, '육적 생명'은 결국 영원한 죽음으로 치닫는 생명이다. 잠시 즐거움과 편안함을 줄 지 모르지만 결국은 영원한 죽음으로 치닫는 삶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 .(롬 6:23).
그러나 '영적 생명'은 미래는 물론 현실에도 누리는 삶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생명과 풍성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이미 영적 생명을 가졌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가 죽지 않는 영원한 영적 생명을 얻음은 물론 이 땅에서 살면서 그 영적 생명을 ‘풍성하게’ 얻게 하기 위함이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풍성한 생명이 무엇인가? 풍성한 생명이란 곧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적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당신은 과연 지금 풍성한 영적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혹시 당신은 예수를 믿지만 다음과 같은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음 속에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이 있는가?
-습관적인 죄악이나 은밀한 죄를 아직도 짓는 것은 아닌가?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고, 의심,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 좌절과 낙심, 원망과 불평으로 차 있는 것은 아닌가?
-인간 관계가 힘들고, 건강에 이상이 있고, 재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씀과 기도에 힘쓰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영적으로 답답한 것은 아닌가?
-기타?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재앙을 내리신다. 불순종하는 자는 육적 생명을 살고 순종하는 자는 영적 생명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9).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 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