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스포츠에 열광하며 유니폼을 사는데 2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축구를 좋아하는 아빠가 함께 해외축구 경기를 보자고 제안하면 옆에 앉아서 다른 일을 하곤 했다. 심지어 영어 모의고사 지문에서도 축구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하면 '오프사이드'나 '패널티킥', '프리킥'과 같은 용어를 알지 못한다는 핑계로 문제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이번 생에는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축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2년 전 세계가 카타르 월드컵으로 축구에 열광하고 있을 무렵이였다.
정확히 몇 강전 경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한 명 있었다. 다들 손흥민, 김민재 같은 선수들에게만 주목하고 있었지만, 오현규 선수는 후반전 쯤에 교체멤버로 들어와 손흥민이나 이강인 등의 선수들이 좋은 골을 기록할 수 있게 뒤에서 어시스트를 해주며 결국 좋은 성과로 이어지게 도와주는 모습이 희생적이고 대단해 보였다.
성공적으로 경기가 끝난 이후, 인터넷으로 카타르 월드컵 예비멤버로 뽑혔을 때 오현규 선수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모든 선수가 간절하게 준비했다. 실제 경기처럼 항상 준비하는 과정,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는 나를 다시 일깨워줬다. '그래서 이 선수들이 국가대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울 점이 많았다."
오현규 선수의 말은 평소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나는 공부나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이 들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등번호 없이 예비선수로 뽑힌 오현규 선수는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고 더 성장해서 '4년 뒤에는 월드컵에서 당당히 등번호 달고 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어느 분야에나 있기 마련이고, 이에 쉽게 절망한다면 다른 일 또한 해낼 수 없으리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오현규 선수의 열렬한 팬이 되어있었고, 16만원이라는 큰 돈을 모아서 현규 선수가 활약하는 셀틱(스코틀랜드 축구 클럽)의 유니폼을 구입했다.
하지만 유니폼을 사고나서 이틀 뒤, 뉴스를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현규 선수의 이적설이 사실화 된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돈을 모아 산 첫번째 유니폼인데 선수가 이적하다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유니폼을 배송 받고도 그렇게 크게 기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2026년에 있을 북중미 월드컵 선수 명단 발표에도 오현규 선수의 이름은 빠져있었다. 유니폼과 26년 선수명단 발표는 나에게 한동안 실망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3일전 아무 생각없이 폰을 켜다가 발견한 신문 기사가 있었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오현규, 배준호 합류... 홍명보호, 내달 요르단, 이라크 2연전 명단 발표"
오현규 선수가 뽑히지 못해 아쉬웠던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재선발된 것이다. 유니폼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이 씻겨 내려가는 듯 기뻤다.
아직 부족한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준 오현규 선수를 존경하고 응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축구이든, 수학이든, 소설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 속에서 진정한 인생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