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章 냉혹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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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리를 달렸을까? 상관안은 유난히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며 괴소성(怪笑聲)을 듣게 되었다. "계집년! 어서 무릎을 꿇어라!" 듣기 잔혹한 목소리였다. "네년이 계속 저항할 경우, 여기 잡혀 있는 너의 수하 여섯이 일제히 참수(斬首)당할 것이 다." 짙은 안개에 가리어져 있는 곳의 지형은 한 개의 거대한 호리병과 같았다. 위는 좁고 아래쪽은 넓은 분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안개가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고 모여 괴이한 풍광(風光)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분지의 북쪽 벼랑 쪽에 한 개 곡도(谷道)가 나 있었다. 곡도의 너비는 삼 장 정도였다. 그 가운데 서서 검을 쳐들고 있는 백의여인 하나가 있었다. 옷이 피투성이고, 검은 머리카락이 풀어져 안면을 덮고 있어 얼굴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여 인이었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다급한 소리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눈빛뿐이라 해도 과언 은 아니었다.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일단의 홍의인 무리가 있었다. 그 우두머리는 타는 듯 붉은 승포를 걸치고 손목에 염주알을 건 복면여승이었다. 그 앞, 흑의복면인 여섯 명이 피범벅이 되어 나뒹굴어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고 그 뒤를 홍 의복면인 백여 명이 서 있었다. "호호호……!" 홍의여승이 어깨를 흔들며 웃어제쳤다. "너희들이 이제껏 발호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사부님의 명에 따라 혈탑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백의여인이 초췌한 표정이 되어 답답한 숨소리를 내자. "나는 사흘 전, 사부님께 명을 받았다. 이제야 내가 나설 때라는 것이 사부님의 말씀이셨다. 나는 너희들의 수급을 사부님께 선물할 작정으로 여기 왔다. 어떠냐? 과연 과거의 천녀교도 들과 다른 것이 있지 않느냐? 너희들이 이제껏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은, 허수아비 같은 자들만을 상대로 했기 때문이다." 복면여승의 기고만장한 말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쯧쯧……!" 어디선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있었다. "누… 누구냐?" 득의해 말하던 복면여승이 고개를 휙 돌려 사방을 살폈으나, 사람의 모습은 아무 데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신비한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미혼관음(迷魂觀音)! 네가 혈탑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고 못내 서운해 했었다." 나이와 성별을 짐작하지 못할 신비한 말소리였다. "네가 금족령(禁足令) 아래 혈탑을 떠나지 못하는 신세였다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 이유는 너를 죽일 수 없어서였다. 너를 죽이자면 혈탑이라는 지저분한 곳까지 가는 번거로움이 있 어 애석했었는데, 여기 와 목을 바치려 하다니……." "누… 누구냐? 도깨비면 사라지고, 사람이면 모습을 나타내라!" 발작적으로 외치는 복면여승은 천녀제가 이불지보다 먼저 거둔 제자, 미혼관음이라는 요승 (妖僧)이었다. 말이 승려이지, 승려가 될 수 없는 여인이었다. 남자를 잡아먹는 도깨비라고 할까? 그녀의 치마폭 아래 고혼이 된 미남 청년들의 수는 열 손가락을 스무 번 접었다 펴야 헤아 릴 수 있는 정도였다. 미혼관음은 혈탑을 떠나지 못한다는 명령 아래 그간 무림 땅을 밟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혈탑의 정예고수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 미혼관음아, 네게 내렸던 금족령을 해제하겠다. 네게 금족령을 내렸던 까닭은, 과거 네가 혈홍문을 없앤 장본인인지라 불지가 그것을 알 경우, 네게 화가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을 알아도 상관없는 일로 화했다. 그래서 너를 강호로 내보내는 것이니, 삼살일령 을 잡도록 해라! 천녀제가 금족령을 해제하며 한 말이 이것이었다. 미혼관음은 천녀제의 명에 따라 정예고수 오백을 이끌고 나와 강호를 휩쓰는 중이었다. 연전연승 승승장구하며 도처에 시산혈해를 이룩하던 미혼관음은 한 번도 자신의 정체를 들 키지 않았었다. 천녀교의 내막이 원래 비밀스러운 것인지라 아는 사람이 희귀한 판이니, 누가 그녀를 알겠 는가? 그런데 오늘 신비한 목소리에 의해 완전히 발각당하고 만 것이었다. "하하… 천녀제가 너를 내보낸 것은 결코 좋은 뜻이 아니다. 네가 눈 안의 가시 같은지라 강호로 내보내 죽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아느냐?" 신비한 목소리가 비웃어 말하자. "웬 개소리냐?" 미혼관음의 눈알에서 노광이 뻗쳐 나왔다. "하하… 천녀제는 과거 천녀제의 충신(忠臣)들을 몰살시킨 광녀(狂女)다. 너만 살아 있어 이 상하다 여겼는데, 결국 너마저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함정 안으로 빠뜨려 놓는구나." "차… 차도살인이라고? 사… 사부가 충신들을 죽였다고?" "그렇다. 너는 천녀제가 천녀교의 오랜 부하들을 모조리 죽여 뇌옥 안에 산처럼 쌓아 두었 다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냐?" "그… 그것이 정말이냐?" "물론이지!" 대답 소리와 함께 미혼관음의 눈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흑의인영 하나가 있었다. 검은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자, 그의 전신에선 테산을 능가하는 기도가 뿜어지고 있다. 옥면혈마 상관안,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천뢰혈적을 허리띠 사이 에서 빼어 내 품안에 감추고서야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상관안은 신비하게 출현해 중인을 놀라게 한 후, 미혼관음 앞쪽을 내려다봤다. 여섯 명의 복면인이 피범벅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팔이 떨어진 사람, 한쪽 다리가 끊어져 죽기 바로 직전인 사람. 여섯 사람의 몸뚱이에서 흘러나오는 선혈은 한 말은 됨 직한 대단한 것이었다. 미혼관음은 상관안이 절세적인 고수라는 데 당황하다가 상관안이 여섯 사람을 바라보고 있 다는 데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분명 무성곡의 인물일 것이다. 그러면 잡아 놓은 자들을 인질로 이용해 싸움이 없이도 이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미혼관음의 교활함은 천하가 알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 천하제일요(天下第一 妖)로 불리었을 것이다. 이십 년 전, 천하에 이름난 몇 명의 신진고수들이 있었다. 그 우두머리 되는 사람은 무림제일기재 천룡신협 상관위, 그리고 무림제일기녀 단방이었다. 그 다음이 북천검사(北天劍士)와 천지대협(天地大俠)이고… 이들은 중원이검(中原二劍)이라 불리었었다. 그 다음에 천하제일요 미혼관음이 끼었고, 그 뒤에 상관안의 어머니 천하제일미 백화선자가 있었다. 사문제일인 혈홍신검 이검엽도 그때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강호의 대세가 이십 년 전에 비할 수 없이 혼란되었다고는 하나, 그들 신진고수들의 뛰어남 은 지금껏 중인의 입에 회자되고 있었다. 미혼관음은 자신의 꾀야말로 천하제일이라 믿고 있었다. 자신의 꾀에 자신이 속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유아독존 격으로 살아가는 여 인이고, 사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스러운 여인이었다. "호호호……!" 미혼관음은 상관안이 유령같이 나타났다는 데 얼떨떨해 하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호호호……!" 미혼관음이 미친 듯 웃자. "미혼관음! 관(棺)은 없다만 지금이 곧 네가 죽는 순간이거늘, 무엇이 그리 통쾌해서 신나게 웃는 것이냐?" 번쩍-! 섬뜩한 안광이 죽립을 뚫고 뻗쳐 나왔다. 미혼관음은 일순 공포를 느꼈으나 곧 냉정을 회복했다. 지금 칼자루를 잡고 있는 쪽은 자신이 아니던가? "어리석은 놈! 죽기는 왜 죽느냐? 네가 죽지, 내가 죽겠느냐? 너는 여기 나타나지 않았어야 했다." 미혼관음이 득의해 말하며 양 소매를 쳐들었다. "준비해라!" 그녀가 말꼬리를 길게 끌자. "예!" "예, 총순찰님!" 그녀 위쪽에 서 있던 홍의복면인들 중에서 체격이 건장한 자들 이십사 인이 목청을 뽑아 외 치며 다섯 걸음씩 걸어 나왔다. 그들은 학이 날개를 펴는 듯한 진세를 이루어 미혼관음의 좌우로 늘어서는 가운데 소매 속 에서 죽통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죽통의 끝이 상관안 쪽으로 겨냥되었다. 미혼관음이 두 팔을 한데 합해 합장하며 돌연 불호성을 외웠다. "나무관세음보살……!"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사악했다. "내가 명을 내리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독한 독침(毒針)이 스물네 개의 죽통 안에 서 일제히 발사된다." "흠……!" "그러면 앞쪽 사 장이 초토화하고 만다. 네놈의 신법으로 보아 일신을 구하는 데에는 별 장 애가 없을 것이나, 다른 사람들은 살 수 없을 것이다." "후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목숨으로 나를 위협해 보겠다는 것이냐?" "바른 말이다. 항복하지 않으면, 네가 구하려 하는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하하……!" 상관안은 기가 막히다는 듯 껄껄 웃다가 손바닥을 위쪽으로 내저었다. 싸늘한 파공성이 일어나며 푸른빛 장력이 허공을 갈랐다. 우르르릉- 꽝-!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가 상관안의 손바닥에서 일어난 삼매진화(三昧眞火)에 의해 산산이 불타 근처가 잠시 맑아졌다. 그 범위는 사십 장에 달했다. "어… 엇!" "저… 저것이 무슨 수법이냐?" 천녀교 고수들 틈 속에서 경악성이 연발되었다. 상관안의 일 초 신위(神威)가 중인을 경악케 한 직후였다. '이때를 기다렸다.' 상관안의 입가에 살기가 떠돌며 그의 몸뚱이가 빛살같이 빠르게 움직여졌다. 상관안이 신형을 폭사시키는 순간, 미혼관음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자지러지게 놀라 외 쳤다. "쳐… 쳐라!" 미혼관음이 더듬는 말로 명령을 내릴 때. "늦었다!" 상관안의 냉막한 호통 소리가 중인의 고막에 통증을 주는 가운데 상관안의 열 손가락이 세 번 퉁겨졌다 오므려졌다. 츠츠츠측-! 지극히 강맹한 지력이 일어나 죽통을 들고 서 있는 이십사 인의 몸뚱이를 겨냥해 폭사되어 갔다. "어… 엇!" "쏴라!" "독침을 발사해라!" 뒤쪽에 있는 무리들이 자지러지게 놀라며 아우성칠 때, 사방에서 연달아 폭발음이 터져 나 왔다. 꽝- 꽝- 꽝-! 스물네 차례 연달은 폭음, 그와 동시에 죽통을 들고 서 있는 이십사 인이 고슴도치같이 변 해 나뒹굴었다. "케에에에에에엑……!" "크아악……!" 이십사 인은 거의 같은 순간, 단말마와 함께 숨을 거뒀다. 상관안이 시전해 낸 지력은 그들의 몸뚱이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고 있던 죽통의 끝을 겨냥한 것이었다. 벽력강지공(壁靂 指功). 사문(邪門)의 지력(指力) 중에서 가장 빠르고 위력적이라 하는 벽력강지가 죽통을 박살냈다 는 것은 물어 보나마나 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죽통이 폭발했다는 것도 불문가지한 일이었다. 이십사 인이 죽은 이유는, 품안에서 꺼내 든 죽통이 지공에 적중되어 터지는 통에 퉁겨 나 온 독침 때문이었다. 죽은 모습이 처참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십사 인이 시체로 되어 나뒹굴 때, 상관안은 여섯 사람의 몸뚱이를 뒤로 하고 미혼관음 앞을 막아 서고 있었다. "이제 이들의 목숨으로 나를 위협하지는 못한다." 상관안이 차게 말하자, 미혼관음이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귀… 귀신이구나." 미혼관음이 어찌 오백 년 전부터 실전되었던 사문의 제일지공 벽력강지를 알아볼 수 있겠는 가? 미혼관음은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토록 교활하던 머리도 굳어 버린 듯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미혼관음! 네게 몇 마디 묻겠다. 그 다음 말하는 자세를 봐서 적당한 벌을 내릴 것이니, 알 아서 대답해라!" 냉혹한 음성. 그 음성은 지옥에서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미혼관음에 대한 원한으로 말하자면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십 년을 속아 살게 한 장본인!' 상관안의 눈은 언제부터인가 혈안(血眼)으로 화해 있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흑의선인의 가르침을 망각한 지도 오래였다. '그리고 나를 죽이려 한 장본인! 너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본 이상, 나를 낭산으로 끌고 갔던 일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 상관안은 활활 타는 눈빛을 죽립 밖으로 폭사시키며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했다. "천… 녀… 제… 는… 어디… 있… 느… 냐?" 그의 말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진력(眞力)이 들어 있었다. 미혼관음의 내공에 비해 다섯 배는 되는 내공. 미혼관음은 겁이 나 도망치고 싶었으나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대신 입이 저절로 벌려졌 다. "사… 사부는 탑에 계시다." 뜻과는 다른 바른 대답이었다. 상관안의 막강한 내공에 심령을 금제당하고 만 것이다. "혈탑 말이냐?" "그… 그렇다. 황산 천도봉 위 혈탑 안에 계시다. 그… 그곳이 바로 천녀교의 총단이다. 사… 사부는 혈탑성회를 준비하기 위해 그곳에 머물러 계시다." "무상마녀는?" "사… 사매(師妹)도 거기 있다. 사매는 지… 지금 폐관하고 있다. 음… 음양무상신공을 전수 받기 위함이다." "너는 왜 전수받지 못했느냐? 공로를 더 많이 세운 사람은 너인 줄 아는데?" "그…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나는… 나는 사부님께서 명하신 대로 할 뿐이다." 순간, 상관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전음으로 돌려 물었다. "과거… 천지죽림 안에서 천지대협을 죽인 장본인이 너냐?" "으으……!" "마후상인을 뒤쫓아온 천녀교의 총순찰이 바로 네가 아니었더냐?" "나… 나다. 그… 그러나 천지대협을 죽인 것은 아니다. 나… 나는 그에게 암기를 던진 후, 그의 팔 하나를 잘랐을 뿐이다. 그… 그는 팔이 잘린 채 불타는 죽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고 타죽었다." "으으……!" 상관안의 숨결이 고조되었다. 그는 오랜 과거에 벌어졌던 일 장의 혈겁을 기억하고 주먹이 으스러져라 불끈 쥐다가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 "누… 누구냐? 누구이기에 이리 고강하냐?" "나는… 네가 잘 아는 사람이다." "뭐… 뭐라고." "내 목소리를 잘 들어 봐라, 내 목소리가 과거보다 조금 어른스러워지긴 했으나, 자세히 들 으면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 것이다." 순간. "……." 미혼관음이 고개를 찡긋하고 상관안을 자세히 살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그때. "하하… 복마신니의 현몽이 신비하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라네. 십년지기(十年知己) 를 몰라볼 줄이야?" 상관안이 복마신니라고 말하는 찰나, 미혼관음의 머리카락이 침같이 되어 복면을 뚫고 삐죽 일어났다. "귀… 귀신이구나!" 그녀를 복마신니라 부를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그녀의 뇌리 속에는 이미 사자의 명단에 올라 있는 자. 천하제일의 자질을 지닌 죄로 십 년을 속아 살다 처참하게 제거된 자. 그런데 그가 눈앞에 버티고 있으니……. '이… 이놈이 죽어 귀신이 되었던 것이군.' 미혼관음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다가 돌연, 이를 악물었다. "에잇!" 미혼관음의 두 손바닥이 새빨갛게 물들며 음독한 장세를 만들어 냈다. 장심을 활짝 펼쳐졌 으나 큰소리는 나지 않았다. 빙살멸혼강(氷煞滅魂 )! 미혼관음이 장기를 삼고 있는 필살의 장력인 바, 그 아래 원혼이 된 사람의 수는 무려 이백 을 넘는다. 냉풍강기(冷風 氣)가 일어나자 일대에 무서리가 내렸다. 상관안은 장력이 날아드는 것을 모르는 듯 두 팔을 늘어뜨린 자세에서 장력을 그대로 가슴 으로 받아 냈다. 펑-! 둔팍한 소리와 함께 그의 어깨가 경미하게 들썩거려졌다. 반면, 미혼관음의 입에서는 단말마의 비명성이 토해졌다. "아악!" 우두두둑-!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미혼관음의 상반신이 뒤로 활같이 제쳐졌다. 상관안의 몸뚱이를 때릴 때 일어난 반탄진기(反彈眞氣)에 의해 두 팔이 으스러지고 만 것이 다. "으악!" 미혼관음의 비명 소리가 잠룡곡에 메아리치는 사이, 흑의복면인들이 하나둘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관안은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하수들은 항상 대세의 흐름에 따르는 법. 강호 대세가 백도로 돌아선다면 그들은 언제 천녀교를 따랐느냐 싶게 협사로 행세할 것이 니, 쫓아가 해치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크으으……!" 미혼관음은 두 팔이 부러지고 오장육부가 으스러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짐승처럼 흐느꼈다.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삼엄한 검기가 그녀의 목줄기를 가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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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그녀의 머리통이 허공으로 날아오를 때 검을 곧추잡고 상관안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백의여 인 하나가 있었다.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창백한 얼굴인데, 오똑한 콧날이 아주 아리따워 보였다. 미혼관음의 목을 벤 장본인이 바로 그 여인이었다. "죽이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그처럼 고통을 줄 필요는 없지요." 여인은 극심한 내외상(內外傷)을 입고 있었다. 무수한 혈흔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미혼관음은 제 손에 죽어야 합니다. 상대가 미혼관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승부 를 빨리 냈었을 겁니다." 백의여인은 상관안이 자신을 바라보고 아무 말 않자, 양 뺨에 홍조를 띄우며 다소곳이 허리 를 숙였다. 그녀가 감사의 말을 하려 할 때. "낭… 낭자시구려?" 상관안이 말을 더듬었다. "저를 아십니까?" 여인이 고개를 갸웃할 때, 상관안이 왼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죽립을 벗어 내던졌다. 천하에서 가장 준수한 용모가 나타나는 순간, 여인의 얼굴에 경악과 흥분의 표정이 스쳐 지 나갔다. "아… 아니?" 백의여인이 몸을 휘청이며 세 걸음 물러났다. 여인의 얼굴에 경악지색이 떠오르자, 상관안이 두 손을 모아 길게 읍한 후. "항마령주시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소." "으음……!" 큰 충격을 받고 할 말을 잃고 마는 여인은 바로 항마령주였다. "여기서 항마령주를 뵙게 될 줄이야? 잠룡곡이 무성곡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여기서 영주 를 뵈올 줄은 몰랐소." "여… 여기 어인 일이십니까?" "무림화타 할아버지를 찾아왔소." "그… 그분을 아십니까? 그분은 지금 와병 중이시지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몸을 움 직이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항마령주는 상관안의 일들을 주마등같이 떠올리고 얼굴 표정을 몇 차례씩이나 바꿨다.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 상관안에 대한 마음이 미움인지, 아니면 사랑인지 알 수조차 없었 고… 상관안을 보고 있는 것이 괴로운 일인지, 즐거운 일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여간 두 사람은 일단 말을 중단하고 쓰러져 있는 여섯 사람을 구하는 데 힘을 합했다. 두 사람의 의술 모두 뛰어난 것인지라 여섯 명을 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 여섯 사람, 그리고 상관안이 잠룡곡 입구에서 구한 세 사람. 그들은 상관안과도 구면이 라 할 수 있는 항마구검사(降魔九劍士)였다. 항마구검사의 소굴이 바로 무성곡이었다. 무성곡은 원래 구루산에 있었다. 그러다가 이곳으로 옮겨졌었고, 과거 천녀제의 방문을 받은 후 봉문(封門)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얼마 후, 상관안은 항마령주와 함께 항마령주가 지키고 있던 곡도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부상당해 쓰러진 여섯 사람은 상관안에 의해 온전히 구출된 세 사람에 의해 보살피게 되었 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곡도가 끝나고 또 하나의 분지가 나타날 때. "저는… 소협이 옥면혈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항마령주가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기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어… 어찌 아셨소?" 상관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날, 형주 안에서 알았습니다. 소협이 형주제일장을 멸망시켰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제가 과거 소협을 오해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항마령주가 그렇게 말하자, 상관안의 답답하던 마음이 따뜻한 봄바람에 겨울눈이 녹듯 한순 간 편안한 것으로 화해 갔다. "감사하외다. 영주께서 오해하시어 매우 괴로웠소!"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저는 중원무성께 절기를 전수받았으나, 아무래도 여인인지라 강호에 서 행동하는 데 모자라는 것이 많습니다. 아량으로 관대히 용서해 주십시오." "하하…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소생이오." 두 사람은 웃는 가운데 곡도를 빠져 나갈 수 있었다. 그 안은 세외선경(世外仙景)이었다. 검은 안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고, 어디 를 봐도 푸른 그늘이 있을 뿐이었다. 아름다운 새가 지저귀며 날아다녔고, 맑은 물이 기이한 과일나무 숲 사이를 졸졸 흘러다녔 다. 그리고 그림같이 서 있는 한 채의 누각이 있었다. 항마령주는 상관안에 대해 의심하는 바가 하나도 없는 듯 환한 표정으로 앞길을 인도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한 쌍(雙)의 원앙인 양 아주 다정히 누각 앞에 이르게 되었다. 누각의 문은 쇳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꽉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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