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장. 테플론(원자폭탄에서 프라이팬까지)
테플론(Teflon)이라는 것은 폴리테트라 플루오르 에틸렌에 대한 뒤퐁 사이 등록상표이 며 달라붙지 않은 프라이팬에서 우주복, 인공 심장판막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사용되며 매상은 10억 달러에 달한다. 그것은 뒤퐁 사의 젊은 화학자 로이 J. 플랑켓트에 의한 우연 한 발견의 결과인데, 그는 이 운명적인 날인 1938년 4월 6일의 겨우 2년 전에 오하이오주 립대학에서 갓 학위를 받았다. 이날 플랑켓트는 테트라 플루오르 에틸렌에서 독성이 없는 냉매를 만들 목적으로 이 가스 봄베의 밸브를 열었다. 그런데 아무 가스도 나오지 않아서 플랑켓트와 그의 조수 잭 리복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봄베의 무게는 불화탄소(플루오로카 본)의 기체가 가득 들어있음을 증명하고 있었으므로 플랑케트는 이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봄베로 냉매의 연구를 계속하는 대신 이 '비어있는' 봄베에 대해서 호기심 을 만족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밸브의 주둥이에 철사를 밀어넣어 보고 봄베에 이상이 없 다는 것을 확인한 후 봄베를 톱으로 가로 잘라 보았다. 그 속에서는 매끈한 하얀 분말이 나타났다. 화학자인 그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즉각 이해했다. 테트라 플루오로 에틸렌의 기체분자가 서로 중합되어 고체의 물질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 때까지 아무도 이 화합물이 중합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는데 이 신비한 '비어있는' 봄베 속에서 그것이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루워졌던 것이다. 이 우연한 발견과 이 폴리머의 이상한 성질에 용기를 얻어서 플랑켓트와 뒤퐁 사의 화학자들은 바로 '폴리테 트라 플루오르 에틸렌'을 필요에 따라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왁스와 같은 백색 분말은 실로 놀라운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강한 산과 염기 그리고 고열에서도 끄떡없으며 어떠한 용매에도 녹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래보다 불활성인 한편, 모 래하고는 달라서 미끈미끈하다. 그러나 이런 재미있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하더라도, 만일 제2차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새로운 폴리머에 관해서 오랜 세월동안 그 이상의 연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매우 고가였기 떄문이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 원자폭탄 제 1호의 제조에 관계하고 있던 과학자들이 원폭용 우라륨-235를 제조하는데 사용되는 물질의 하나로써 6플루오로화 우라늄이라는 위험한 부식성 가스에도 끄떡없는 개스킷(gasket)용의 재료를 필요로 하는 새태가 일어났다. 미국 육군의 원자폭탄 계획 담당의 책임자였던 레 슬리 R. 그로브즈 장군은 우연히 뒤퐁 사의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들이 개발한 매우 불활성 인 새로운 플라스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비슷한 우연의 정보로 인해 영국에서 레이다 설비용 절연체로서의 폴리에틸렌 사용이 전쟁 중 개발을 촉진하게 된 이야기에 관하여는 제 26장을 참조할 것). 그것이 고가라는 것을 들은 그로브즈 장군은 가격은 상관없다고 대답했 다. 이와 같이 해서 이 미끈미끈한 폴리머는 혼합해서 개스킷과 밸브로 성형되었다. 이것들은 확실히 부식성인 우라늄 화학물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뒤퐁 사는 전쟁 중에는 테플론을 이 용도로만 제조했다. 일반 국민은 전쟁 후까지 이 새로운 폴리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 실제로 테플론으로 도금한 빵 찌는 판과 프라이팬이 시판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이었다. 여러 가지 새로운 폴리머가 그렇듯이 처음 대중용으로 생산된 이들 테플론 제품은 약간 기 대에 어긋났다. 이 플라스틱은 달라붙지 않은 조리용 기구의 표면에 접착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부들의 습관대로 박박 문지르다 보면 냄비나 프라이팬은 벗겨지는 것이 었다. 온갖 기술을 다 동원하여 실험해 본 뒤퐁 사는 1986년에 테플론 가공의 4세대 째인 실버스톤 슈프러를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3세대 째인 실버스톤보다 2배의 내구력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 동안 그 외에도 많은 용도가 개척되었으므로 조리 기구의 가공은 그다지 중요 하지 않게 되었다. 플랑켓트는 1910년 오하이오 주 뉴 칼라일에서 태어났다. 1932년 맨체스터대학을 졸업했으 나 대공황이던 때라 직장을 얻지 못하고 오하이오주립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유명 한 화학자 폴 폴로리와는 대학과 대학원 동급생이자 친구였다. 플로리는 고분자 물리화학의 업적으로 1974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로이 플랑켓트는 1936년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학위 를 받은 후 뒤퐁 사의 잭슨연구소에 들어가서 냉매로서의 플루오로카본을 연구하도록 명 받 았다. 이 연구 중에 젊은 플랑켓트는 극적으로 테플론을 발명해 냈던 것이다. 그 후의 테플론의 개불은 고분자 제품을 그때까지 주로 취급해 온 뒤퐁 사의 다른 부문에 인계되었다. 플랑켓트는 화학자로서 다른 일로 옮겼으며, 곧 이어서 뒤퐁 사의 플루오로카본과 4에틸연 제조부서의 관리직으로 출세했다. 프레온 제품이 부장이던 시절에는 텍사스 주 코퍼스 크리 스티 부근에서 공장 설치에 전력했다. 1975년에 뒤퐁 사를 퇴직한 후 플랑켓트 부부는 코퍼 스 크리스티 가까이에 있는 섬의 별장에서 지내며 낚시와 골프를 즐겼다. 플랑켓트는 모교 인 맨체스터대학과 오하이오주립대학 그리고 워싱톤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 고 필라델피아시로부터 존 스코트 메달과 아메리카 제조업협회, 플라스틱공업협회, 아메리카 화학자협회 등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1973년에 그는 플라스틱전당에 가입하였으며, 또 1985 년에는 아메리카 발명자 영예 전당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플랑켓트는 이러한 영예 이상으로 전세계 수백만의 생명에 불 밝힌 테플론 이용법 의 다양성에 긍지를 갖고 있다. 그는 테플론재의 대동맥이나 맥박 보조기가 신체 안에 장치 되어 있는 덕택으로 오늘도 살아있다는 편지나 전화가 너무 많아서 다처리 하지 못하고 있 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신체가 거부반을을 일으키지 않는, 많지 않은 물질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테플론은 인공 각막이나 턱, 코, 두개골, 허리나 무릎 관절 등의 인공뼈, 귀 부분, 인공 기관, 심장 판막 또 는 힘줄이나 봉합용 실, 의치, 담관 등에 사용할 수 있다. 테플론은 우주복의 외피감으로서도 사용되었다. 전선이나 케이블의 절연체로서 달에서 태 양으로부터 강력한 복사열에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선의 선단 부분이나 기타의 내열 보호막 또는 연료탱크에도 테플론이 사용되고 있다. 이 훌륭하고 귀중한 응용도 모두 로이 플랑켓트의 세렌디피티적 발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명 우연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발견된 것은 우연을 만나 사람에게 호기심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설) 로이 플랑켓트가 불소(플루오린)의 화합물에서 냉매를 개발함에 있어서 또 하나 다 른 세렌디피터적인 일이 있었다. 1928년 제너럴 모터스 사의 냉장고 부서의 찰스 F. 케터링 은 당시 냉장고에 사용되고 있던 암모니아와 이산화유황과 같은 유독 유해한 물질 대신에 안전한 무색, 무취, 무미, 무독, 불연인 냉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화학 문헌을 면밀히 조사 한 결과 토마스 미즐리와 알버트 헨은 불소와 염소를 모두 함유하고 있는 탄소화합물을 결 정해야 하는 단계에까지 갔는데 불소의 화합물이 때로는 유독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독성의 보고를 시험하기 위해 미즐리와 헨은 간단한 클로로플루오로카본의 견본을 합성 해서 그것으로 동물 실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시약회사에서 3불화안티몬 28그램이 들어 있는 다섯 병을(그 당시 미국에서는 이것이 전부였다) 주문했다. 그들은 이 다섯 병 중에서 한 병을 무작위로 선택하고 그것을 사용하여 클로로플루오로카본을 합성시켰다. 이 클로로 플루오로카본 화합물의 가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불소를 함유한 유기화합물은 독성이 없다는 그들의 믿음을 확인해 준 것이었다. 이 실험을 재확인하기 의하여 두 사람은 다른 병에 들어있는 3불화안티몬으로 이 클로로플 루오로카본의 견본을 계속 합성하여 기니피그로 실험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몇 번을 반복해도 기니피그가 전부 죽는 것이었다. 주의깊게 조사해 보았더니 다섯 병 중에 한 병을 제외한 나머지 네 병의 3불화안티몬에는 물이 함유되어 있었는데 이 물 때문에 치사성의 가 스인 포스겐(phosgene)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포스겐 속의 염소원자는 이 클로로플루 오르카본 합성의 출발원료로서 3불화안티몬과 함께 사용된 유기염소화합물에서 유래한다). 기니피그를 죽게 한 것은 클로로플루오로카본이 아니고 포스겐이었던 것이다. 미즐리와 헨이 맨 처음 동물실험에서 습기가 없는 3불화안티몬의 병을 선택할 수 없었더라 면 아마도 그들은 클로로플루오로카본을 냉매로 쓴다는 아이디어를 포기하였을 것이며, 이 들 화합물이 유독할 것이라는 잘못된 보고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좋은 선택으로 프리 지디어 사와 뒤퐁 사와의 공동사업으로서 뒤퐁 사 안에 클로로플루오로카본 화학의 연구개 발을 담당하는 프레온 부서가 생기고 겨기서 로이가 테플론을 발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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