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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기는 하나님의 솔루션/ 욥기 5: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여러분! 고난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질병,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단절, 마음의 고통 등 다양한 고난이 우리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 따라 고난이 단지 고통으로 끝날 수도 있고, 반대로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의 장소였지만, 극심한 더위와 추위, 물과 식량의 결핍으로 인한 고난의 자리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거센 바람을 만난 돛단배와 같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파도를 탓하며 돛을 놓았고, 원망과 불평 속에 멸망했습니다. 반면 바람에 맞춰 돛을 조정한 능숙한 선원 같은 이들이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고난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고난의 세월을 승리한 링컨 대통령 이야기입니다. 링컨은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7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학교에 다닌 기간은 합쳐서 1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9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청년 시절에는 동업 실패로 막대한 빚을 졌으나 끝까지 갚아 나갔습니다. 정계 진출 후에도 선거에서 8차례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실패할 때마다 "넘어진 것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재기했습니다. 그는 시련으로 단련된 믿음과 인내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분열을 막아내며 노예제 폐지를 이뤘습니다. 고난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고난의 원인을 말씀드렸습니다. 본문은 지난 주일과 같기 때문에 본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오늘은 고난을 이기는 하나님의 해결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은 '고난을 이기는 하나님의 솔루션'입니다. 여러분, 이 솔루션을 통해서 자신의 고난의 원인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고난 속에서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고난의 원인을 분별하십시오.
요한복음 9장 2절입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맹인 된 것이 자신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3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가 고통받았던 진짜 원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죄 때문이라고 잘못 판단했던 것입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또 고난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당하는 고난이 영적 연단인지, 영적 공격인지, 아니면 타인이나 세상으로 인한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병의 치료는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됩니다. 환자가 병원에 가면 의사는 그 증상이 무슨 병 때문인지 진단하며, 이때 오진하면 심각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올라온 상담 사례입니다. “어머니가 기침 증상으로 의원에서 비염, 천식 진단을 받고 11회나 통원 치료를 받았으나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대학병원에서 기존 CT를 다시 판독해보니 폐암 판정이 나왔습니다. 진단 잘못에 따른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단이 잘못되면 올바른 치료가 불가능하듯, 고난도 정확한 진단과 원인 파악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명확한 해결책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난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2.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기뻐하십시오.
지난 주일 본문은 욥기 5장 7절이었습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이 당연하듯 모든 사람에게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불시험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드시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담대히 수용하십시오.
베드로전서 4:12-13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 그 자체가 기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고난을 통해 내 신앙이 단련됩니다. 그릇이 커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으로 연결 됩니다. 십자가의 고난 뒤에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마시고 오히려 즐거워하십시오.
3. 원망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야고보서 5:11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이나 공예품, 칠기에 들어가는 금박(金箔)은 혹독한 제련과 단련의 산물이었습니다. 금을 아주 얇은 박(箔)으로 만들기 위해 숯불에서 녹이고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미세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금을 만들었습니다. 그 순금 덩어리를 종이 사이에 넣고 망치로 수만 번을 두들겨야 비로소 빛이 통과할 정도로 얇고 아름다운 금박이 완성되었습니다. 성도의 연단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감정이 앞서 하나님이나 사람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난에 마침표를 찍으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에게 마침내 결말의 복을 주십니다.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아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서정적인 시를 읽으면 시인이 되고 싶어집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찌린
머나먼 청춘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 피우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그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이 시는 하나의 아름다운 결실이나 성숙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수많은 시련과 인내를 노래합니다. 시 속의 ‘소쩍새의 울음’, ‘천둥의 울음’, ‘간밤의 서리’는 국화꽃을 피우기까지 겪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늦가을의 국화 한 송이는 세월의 아픔과 노고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정체입니다. 이처럼 성도 역시 고난의 터널을 지나 순금처럼 연단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찾아오면 원망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4. 내 힘을 빼고 기도에 힘쓰십시오.
유다 3대 왕 아사 때, 구스의 세라가 100만 대군과 전차 300대를 이끌고 침략했습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 아사 왕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고백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아사가 자신의 힘을 내려놓고 기도에 힘쓸 때 하나님이 친히 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적진 가운데 초자연적인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시니 구스의 100만 대군은 단 한 사람도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완전히 패퇴했습니다. 고난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릴 때, 주님은 압도적인 능력으로 반전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5:13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 중에 기도하면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①하나님과 친밀해집니다. ②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마음을 채웁니다. ③상황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지혜의 눈이 열립니다. ④하나님이 직접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⑤문제를 뛰어넘을 만한 그릇으로 변화됩니다. ➅절망이 변하여 찬송과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누군가 나를 밀어준다면 큰 힘이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나를 밀어주신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하나님이 밀어주신 사람이었습니다. 1777년 겨울, 미국 독립전쟁 당시 워싱턴 장군은 포지 밸리에서 혹독한 추위와 기아, 영국군과의 현격한 전력 차이라는 극심한 고난을 맞았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워싱턴은 자신의 경험을 내려놓고 눈 덮인 숲속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부르짖는 그의 모습을 목격한 한 주민은 "미국은 승리할 것이다. 워싱턴 장군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전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워싱턴이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때 지혜와 담대함을 주셔서 강대한 영국군을 물리치고 미국 독립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조지 워싱턴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삶을 밀어주셨습니다. 저는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밀어주시는 사람이 되고 싶고, 여러분 역시 그런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고난을 만날 때마다 내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밀어주실 것입니다.
5. 말씀을 붙들고 삶의 방향을 돌이키십시오.
무게를 잴 때는 저울을 사용합니다. 길이를 잴 때는 자를 사용합니다. 방향을 잡을 때는 나침반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에는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캐논입니다. 고대 근동에는 갈대가 흔했고, 갈대는 말라도 변형되지 않았습니다. 길고 곧게 뻗은 특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 곧은 갈대를 표준 길이로 잘라서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했습니다. 희랍어 '카논(Kanon)'은 바로 이 '곧은 자'를 뜻했습니다. 여기서 유래한 단어가 '캐논(정경)'입니다. 갈대 자가 굽어지거나 변하지 않았던 것에서 착안하여 성경을 캐논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길을 제시하고, 성도의 믿음과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유일한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문제를 만났을 때 성경으로 내 모습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시편 119:67, 71을 보겠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다윗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하님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릇 행했습니다. 그는 말씀에서 벗어났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하면서 주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준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 안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내 생각이나 세상의 조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만약 고난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불순종이나 죄, 어리석음이 있다면 회개하고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시편 107:17-20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이 말씀은 인간이 고난에 빠지는 이유와 절망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미련한 자들은 죄악의 길을 따르고 악을 범하여 극심한 고난을 맞이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세고 막막한지 입맛마저 잃어버리고 마침내 사망의 문턱에 이를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이처럼 절망적인 고난 중에 사람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셔서 그들의 아픔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결국 고난을 이기고 치유받는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길은 날마다 성경을 스스로 읽고, 선포되는 설교 말씀을 마음을 다해 청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나를 살리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비로소 우리 삶에 시작됩니다.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기쁨의 신학자’ 존 파이퍼 목사는 '하나님을 기뻐함이 그분을 영화롭게 한다'는 기독교 쾌락주의를 선포해 온 설교자입니다. 2005년, 그는 전립선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절망적인 순간이었지만, 목사님은 세상의 위로 대신 즉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9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시편 107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그에게 치유의 말씀을 보내셔서 죽음의 위험한 지경에서 그를 건져내어 고쳐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이 암조차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통로임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자 공포가 떠나가고 평안이 찾아왔으며, 그는 투병 중에도 《암을 낭비하지 마세요》라는 책을 쓰며 온전히 완쾌되었습니다. 1946년생인 그는 만 80세인 지금까지 작가와 설교자로 활발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 중에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고난 중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말씀을 읽고 청종하여 내 심령에 받아들이고, 회개할 때, 고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될 것입니다.
6. 혼자 견디지 말고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고린도전서 12:26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혼자 고난을 짊어지려 하면 영적으로 고립되고 마귀의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회 안에서 아픔을 나누고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있을 때 고난을 이겨내기가 더 쉽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는 삼나무(레드우드)입니다. 삼나무 중에서도 가장 키가 큰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있는 ‘하이페리온(Hyperion)’이라는 나무입니다. 키가 무려 약 115.9m입니다. 아파트 40층 높이고, 93m의 자유의 여신상보다 높습니다. 삼나무의 특징은 뿌리가 땅속 깊이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얕게 뻗습니다. 그런데도 강력한 태풍이 몰아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나무는 홀로 자라지 않고 수십, 수백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옆 나무의 뿌리와 서로 사슬처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교우들과 교제하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얽히고설켜서는 안 됩니다. 믿음과 기도와 아가페 사랑으로 얽히고설켜야 합니다. 그럴 때 거친 고난의 바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혼자 견디지 마시고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7.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확신하십시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가이자 평론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의 매우 유명한 실화입니다. 한 귀부인이 실수로 아주 고급스러운 실크 손수건에 잉크를 크게 쏟아버렸습니다. 너무 속상해하며 "이제 이 손수건은 아예 못쓰게 망쳐버렸다"고 낙심해 있을 때, 존 러스킨이 그 손수건을 잠시 맡겨달라고 청했습니다. 존 러스킨은 며칠 뒤 귀부인에게 손수건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는 흉물스럽게 번진 잉크 자국을 지우려 한 것이 아니라, 그 검은 얼룩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나무와 숲, 날아가는 새의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얼룩 때문에 버려질 뻔했던 손수건은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하나의 명작 예술품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진리를 설명해줍니다.
로마서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입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삶의 모든 일, 곧 기쁨과 슬픔, 성공과 고난마저도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가장 좋은 열매와 완전한 선을 이루어 내십니다.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분노하지 마십시오. 분노는 가시로 자기를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아픔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조화시켜 그분의 선과 성도의 유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8.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으십시오.
성도에게 고난은 영원히 머물 목적지가 아니라 잠깐 지나가는 터널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아도 이해하기 힘든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지만, 그 고난은 장차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하늘의 영광으로 연결됩니다. 로마서 8:18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사도 바울의 삶은 복음을 위한 처절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심 후 순교하기까지 약 30여 년의 사역 기간 동안, 그는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으며 피투성이가 된 채 감옥에 갇혔습니다. 분노한 무리의 돌에 맞아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10여 년에 걸친 세 차례의 전도여행과 로마 투옥 생활 속에서 강도의 위협과 거친 풍랑을 만났고, 세 번 배가 난파되어 망망대해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웠습니다. 마침내 로마의 차디찬 지하 감옥, 참수의 날이 다가왔을 때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로마 외곽의 처형장으로 끌려가 차가운 칼날 아래 목을 내놓으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이 이토록 잔인한 고난을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하늘의 영광으로 연결됨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잠시 지나가는 땅의 통증 뒤에 주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과 하늘의 영원한 상급, 그리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받게 될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보았습니다. 영원한 천국 영광의 소망이 있었기에, 30년 넘는 굶주림과 추위, 육체의 가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승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스펄전 목사가 거친 풍랑을 만난 배에 타고 있을 때, 한 승객이 불안에 떨며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이 바다의 파도가 우리를 삼키면 어쩌죠?" 스펄전은 "바다가 아무리 사납게 요동쳐도, 이 바다 전체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세상 만사와 우리가 겪는 고난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할 때, 주님은 친히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주가 일하시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우리가 날이 저물어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즉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을 신뢰하며 걸으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의 손 안에서 고난은 능히 극복되고, 문제는 해결되며,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의 결론을 맺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