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묘비는 대부분 글자(명문) 위주로 구성되는 반면, 팔미라의 장례 부조는 고인의 얼굴과 상반신을 입체적으로 조각하고 그 여백에 글자를 새겼다. 한국의 묘비는 봉분 앞 야외에 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팔미라의 부조는 지하 무덤(입구나 시신이 들어가는 벽면 틈새)을 봉인하는 벽석(Cover slab) 겸 표지로 사용되었다.
막카이는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작은 상자(향합 또는 보석함)나 소품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팔미라 장례 부조에서 자녀나 어린 시종이 무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은, 고인의 제의(祭儀)를 돕거나 집안의 풍요와 고인에 대한 정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식적 요소이다.
팔미라의 무덤은 개인 묘가 아니라, 한 가문이 수 세대에 걸쳐 함께 묻히는 지하 대형 가족 석실 묘지(Hypogeum) 형태가 많았다. 무덤 내부 벽면에는 시신을 안치하는 선반 형태의 공간(Loculus)들이 여러 층으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가문의 특정 구역이나 가족 단위 공간을 봉안할 때 가족 관계를 명확히 표시하기 위해 부자나 부부, 자녀의 모습을 함께 조각했다.
고대 사회에서 자식(특히 아들)은 가문의 혈통과 재산, 사회적 지위를 승계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부조에 아들을 함께 새겨 넣음으로써 “이 인물이 가문의 정통 후계자를 둔 가장이자 부유한 가문의 주인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가문의 번창과 연속성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았다.
첫댓글 Funerary Relief of ‘Abd’astor and his son Maqqai
압드아스토르와 그의 아들 막카이의 장례 부조
중앙의 주인공은 ‘압드아스토르(‘Abd’astor)’이며, 왼쪽 뒤에 조각된 작은 인물이 그의 아들 ‘막카이(Maqqai)’이다.
오른쪽 배경에 새겨진 문자는 고인의 이름인 압드아스토르와 가계 기록을 나타내는 아람어 명문이다.
로마 지배하에 있던 팔미라는 동서 무역의 중심지였기에, 로마의 복식/표현 양식과 반사막 지대의 고유 문화(아람어 문자와 시리아 예술 양식)가 결합된 독특한 석조 미술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수염을 기른 압드아스토르(‘Abd’astor)’의 상반신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특유의 정면을 응시하는 눈매와 주름진 옷자락 표현이 팔미라 석조 미술의 대표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형태의 부조는 고대 팔미라인들이 지하 무덤(입구 또는 벽면의 시신 안치 공간)을 봉안할 때 고인의 얼굴을 기리기 위해 붙여두었던 묘비 부조이다.
우리나라의 묘갈(墓碣)이나 묘비(墓碑), 그리고 무덤 안에 함께 묻는 묘지석(墓誌石)과 기능 및 목적이 거의 동일하다.
고인의 이름, 가계(부모/자식 관계), 사망 연대나 추모 문구를 돌에 새겨 잊히지 않게 기록했다.
고인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무덤이나 그 주변에 설치했다.
한국의 묘비는 대부분 글자(명문) 위주로 구성되는 반면, 팔미라의 장례 부조는 고인의 얼굴과 상반신을 입체적으로 조각하고 그 여백에 글자를 새겼다.
한국의 묘비는 봉분 앞 야외에 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팔미라의 부조는 지하 무덤(입구나 시신이 들어가는 벽면 틈새)을 봉인하는 벽석(Cover slab) 겸 표지로 사용되었다.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돌에 기록을 남긴다"는 인류 공통의 장례 문화가 각 지역의 예술 양식에 맞춰 표현된 것이다.
팔미라 장례 부조에 묘사된 의상, 장신구, 머리 모양은 동서양 문화(그리스·로마 문화와 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 문화)가 융합된 팔미라 특유의 양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압드아스토르’처럼 그리스·로마식 두꺼운 겉옷(Himation)을 몸에 두르고 내부에 튜닉을 입는 형태가 흔하다. 어깨와 가슴을 따라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주름 표현이 특징이다.
바지와 긴 소매 튜닉을 입은 동방(페르시아) 스타일의 파르티아식 바지 costume로 조각된 경우도 많으며, 옷감에 정교한 자수나 패턴이 새겨지기도 했다.
장신구는 상대적으로 절제되어 있으나, 신분을 나타내는 반지나 옷을 고정하는 정교한 핀/단추 장식이 묘사된다.
머리 모양은 짧고 꼬불꼬불한 곱슬머리와 정돈된 수염이 대표적다. 이는 로마 제국 2~3세기 황제들(예: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등)의 헤어스타일 및 고대 근동 선대 양식의 영향을 받은 형태이다.
아들 막카이(Maqqai)의 복식과 헤어스타일 역시 성인인 아버지 압드아스토르와 비교했을 때 매우 재미있고 정교한 특징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머리가 이마와 관자놀이 라인이 드러나고 짧게 정리된 성인 남성의 수염·곱슬머리라면, 아들 막카이의 머리는 머리 전체를 풍성하게 감싸는 동글동글한 소라 모양의 곱슬머리 캡(Cap) 스타일로 묘사되어 있다.
고대 지중해 및 근동 미술에서 소년이나 청소년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이던 전형적인 둥근 곱슬머리 양식으로, 나이가 어린 자식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막카이는 가슴부터 아래로 곧게 내려오는 긴 소매 튜닉(Tunic)을 입고 있다.
옷 앞부분 중앙에 수직으로 두 줄의 선(줄무늬)이 정교하게 파여 있는데, 이는 고대 로마 및 근동 지역에서 유행하던 수직 띠 장식인 클라비(Clavi)를 표현한 것이다.
옷자락 전체에 수평으로 촘촘하게 잔주름(Fluting/Pleats)이 잡혀 있어 옷감의 재질감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손목 부분은 밴드로 좁게 마감되어 있어 활동성이 좋은 소년용 튜닉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막카이는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작은 상자(향합 또는 보석함)나 소품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팔미라 장례 부조에서 자녀나 어린 시종이 무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은, 고인의 제의(祭儀)를 돕거나 집안의 풍요와 고인에 대한 정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식적 요소이다.
이 부조는 성인 남성(아버지)과 어린 소년(아들)의 나이대별 헤어스타일 차이와 복식 구조의 디테일을 한 화면 안에서 대비하여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이다.
두 사람이 같은 날 동시에 전염병이나 사고, 전쟁 등으로 부자가 동시에 목숨을 잃어 한꺼번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고대 팔미라의 장례 문화에서는 동시 사망이 아니더라도 부자나 가족을 한 부조에 함께 조각하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팔미라의 무덤은 개인 묘가 아니라, 한 가문이 수 세대에 걸쳐 함께 묻히는 지하 대형 가족 석실 묘지(Hypogeum) 형태가 많았다.
무덤 내부 벽면에는 시신을 안치하는 선반 형태의 공간(Loculus)들이 여러 층으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가문의 특정 구역이나 가족 단위 공간을 봉안할 때 가족 관계를 명확히 표시하기 위해 부자나 부부, 자녀의 모습을 함께 조각했다.
고대 사회에서 자식(특히 아들)은 가문의 혈통과 재산, 사회적 지위를 승계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부조에 아들을 함께 새겨 넣음으로써 “이 인물이 가문의 정통 후계자를 둔 가장이자 부유한 가문의 주인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가문의 번창과 연속성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았다.
부유한 가장이 자신이 살아있을 때 후계자인 어린 아들과 함께 훗날 자신이 묻힐 무덤의 표지석을 미리 제작해 두었을 수 있다.
아버지가 먼저 사망했을 때, 유족들이 아버지를 추모하면서 그의 뒤를 이을 어린 아들의 모습을 함께 새겨 가문의 안녕을 기원했을 가능성도 높다.
가족 간의 유대감, 가문의 계보 보존, 그리고 후계자를 통한 영원한 기억을 도상(圖像)으로 남기고자 했던 고대 팔미라인들의 장례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